세상에서 가장 빠른 철학 공부 - 1페이지로 보는 동서양 핵심 철학 세상에서 가장 빠른 시리즈
보도사 편집부 지음, 박소영 옮김, 오가와 히토시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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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빠른 철학 공부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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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빠른 철학 공부

작가
보도사 편집부
출판
위즈덤하우스
발매
20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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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빠른 철학 공부

철학은 어렵다. 맞다. 정말 어렵다. 해도 해도 어려운게 철학이다. 나 역시 그렇다. 철학에 관련된 책을 수십권을 넘게 읽었지만 여전히 어렵고 이해가 안되고 정리가 안된다. 그래서 괜히 철학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선 주눅이 들곤 한다. 내가 그걸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것으로 밥을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던 중
이 책을 접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철학 공부'. 조금은 의아했다. 철학자들이
몇십년 혹은 평생에 걸쳐 연구한 내용을
한 문장 혹은 세네문장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그것이 깊이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숲과 나무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어려운
철학을 쉽게
정리했다는 사실부터가 의문인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철학은 고대 그리스어로 '사랑하다, 좋아하다'는 의미의 접두사 'philo'와 '지혜'를 의미하는 'Sophia'의 합성어로 '지혜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철학 총론들은 이것을 첫 번째로 다룬다. 이성을 들어 우주와 세계를 구성하는
근원은 '물'이라고 제안하면서 철학이
시작되고 만물의 근원을 탐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물은 공통된 것이 없다고 보는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게 되며 플라톤은 만물의 본질은 하늘에 있다고 주장했고

급기야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의 본질이 지상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철학은
파격적으로 신의 품을
떠나 인간의 곁으로 오게 된다.  이렇게 진행되는 철학은
피타고라스의 '수가 만물을 지배한다'는
선언으로 일대 혁명을 맞이한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말한 탈레스의 제자인 그는 영혼의 윤회를 믿으며 만물은 숫자들이 서로 만들어 낸 관계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가 만물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철학은 규칙성의 개념을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개념의 영역까지 사고가 확정되었다. 어찌보면 불확실한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수학은 답이 있는
명료한 사고이다.

이렇듯 철학을 한다는 것은 단편적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독립된 사상으로 존재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철학 사상은 역사적 흐름과 함께 한다. 여기에서 우리의 지금까지 철학 공부의 맹점이 드러난다.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거나 흥미있어하는 어떠한 일 부분의 철학이나 사상 혹은 사상가를 공부하고 읽다 보니 흐름이 끊기고 어려워진 것이다. 앞선 철학자들과 유기적으로 얽히고 설켜 있는 철학 사상을 마치 'elephant' 게임처럼 접하다 보니 해도 해도 어려운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난맥상을 아는 듯, 한 페이지에 한 명의 철학자와 그의 사상을 요약해 놓는 친절함을 보인다. 중요 사상과 핵심 키워드를 보여 줌으로 철학을 조금은 쉽게 받아 들일 수 있게 되고 시대의 흐름 순(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 동양)으로 배열된 전개는 철학의 흐름을 역사의 흐름에 따라 알아가도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말은 더 깊은 철학 공부가 하고 싶다면 이 책은 입문서로
사용하고 더 깊은 해설서를 읽어 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철학의 깊이를 찾는 다면
그것 자체가
어리석음이다. 이 책은  책 제목 처럼 '세상에서 가장 빨리 배우는
철학 공부' 교재이지 전공도서나
전문이론서가 아니다. 친절한 저자의 그림과
함께, 한 페이지에 소개되는 한 명의 철학자의 이야기를
마음 편히 읽어 나가다
보면 철학 하는 재미에 푹 빠져 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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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과 오십 사이 - 4050세대 인생 새판 짜기 프로젝트
김병숙 지음 / 성안당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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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과 오십 사이 글 냄새 2020 / 2020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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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과 오십 사이

작가
김병숙
출판
성안당
발매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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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과 오십 사이.

중년의 기준을 가르는 묘한 지점이다. 나이가 40대일 때는 50부터가 중년이지
라고 말했고,
50이 되고 나서는 그래도 미련이 남았는지 '요즘은 백세 시대니까
중년은 60 부터야'라고
애둘러 말해 보지만 나이가 들어 간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다.

인생을 25년 주기로 본다면 25살 까지는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자라는 단계이고, 50까지는 가족에 대한 의무로 가족을 부양하는 단계이며, 그 이후가 '나'의 삶을 살며 '나'를 찾아 가는 단계이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내 나이가 많이 들었음이
실감 난다. 그런데 사실 그 다음 주기는
이미 그 전 단계에서 준비해서 넘어와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당면한 상황을 처리하고 해쳐나가는데만도 힘에 겨워하며 벅차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에게 먼저 자신을 챙기고, 냉철하게 파악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도모하며, 자신을 지속적으로 다듬어 가고,

새롭게 변하는 세상에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이 책에는 백세 시대를 살아 가는 두가지 방식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구 버전인 현재의
상황을 버티기로 일관하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도전하는 방식이다. 물론 어느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더 나은 것을 찾으라면 신 버전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살아 본적이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도전은 그 만한 가치가 있는
활동이고 그 도전을 통해 보다 나은 미래는 펼쳐지기 마련이다.

'부족한 나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이 많이 가는 부분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인정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여기에서 모든것이 시작되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제한된 시간을 사는 우리는 다른누군가의 삶을 사는 것 처럼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다른 누군가의 생각의
결과로 살아가는 독단에 빠질 이유가 없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 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이다. 그리고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어쩌면 우린 딱 여기까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렇게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기에 변화가 없고 진보가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학대하지만 결코 진보도 변화도 없이 늘 그자리만 유지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보며 부러워한다. 부러우면 지는 것인데.

'이 나이에'

우리가 많이 쓰고 듣는 말이다. 예전엔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분들이 주로 사용했던 말을 이젠 20대 친구들도 사용한다. 스스로 나이라는 한계를 정해 놓고 그
안에서 움직이고 생각하고 사고하다보니
의식의 한계도 생기게 되고 행동에도
어느정도 제약이 따르게 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다. 우리는 나이가 숫자에 불과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시대를 사는 우리는

나이라는 한계를 극복해야 하며 숫자 이상의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어짜피 현상은 내게 다가 오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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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전쟁 (30만부 돌파 기념 특별 합본판)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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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5년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당시에 금기시 되던 핵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출간해

천문학 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던 작가의 글을 '미중전쟁'이라는 또다른 테마로 만난다. 그의 글은

치밀하다. 그러다 보니 '팩트'를 다루고 그래서 강하다. 현재의 정세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아우르며 써 내려가는 그의 필력은 읽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그의 글을 통해 전해지는 혜안은 마치 미래에 대한 예측인양 들어 맞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러하다.

그런 그가 현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잠망경만 내어 놓고 눈치만 보다가는 결국 우리가 설 자리

마저도 잃게 된다.'

이 책은 비엔나에서 시작된다. 세계은행의 지원금 유용을 조사하는 일을 통해 경제를 기반으로 한

전쟁이 벌어질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냉전이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세계의 흐름은 이미 이념을

뛰어 넘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이 우선시 된다. 경찰국가를 자처하던 미국 역시 트럼프의 등장 이후

모든 것이 미국에 맞춰지고 경제가 우선이 되어 버렸다. 거대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도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중국몽'이나 '군사굴기, 해양굴기'등을 내세워 패권 경쟁에 뛰어 들어 세계는 초 강대국의

각축장이 된지 오래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 했는지는 그가 사용하는 단어나 그 깊이(셰릴 석유 투자

이야기, 1520포럼, 파나마 페이퍼스 사건, 사드등)에서 익히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그는 트럼프와

시진핑 그리고 푸틴,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로  대변되는 초강대국의 입장과 정치적 기조, 추구하는

지향점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내용에 반영하며 이런 정세에 전혀 발 맞추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연속해 헛발질을 하고 있는 종이 외교의 민낯을 속속 밝한다. 한편으로 시원하고

또 한편으론 서글픈 현실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서서 중국과 미국 어느 쪽의 편도 들지 못하는

현실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핵은 문정권이 제1관심사가 아닙니다. 문재인은 핵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고 생각해요. 북한과의 대화'.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화의 때를 기다리다 정작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속절 없이 시간만 간다는 것도 유념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입장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한 문장이 존재한다. ' 할 수 없는 부분이야. 한 가지 결정으로 미국과 중국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없어.

안보는 미국이고 경제는 중국이니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가는 수 밖에.' 어느새 우리 나라는 외줄

타기 선수가 되어 있다. 그것도 일만 피트 상공에서 위태롭게 매달려 줄타기를 하는 외로운 광대처럼

말이다. 문제는 아무도 그 광대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이념과 경제 논리가 수도 없이 부딪친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의 손을 완벽히 들어주지는

않는다. 숲 속에 있으면 나무를 보자 못하고 나무를 보면 숲을 보니 못하는 것 처럼 우리는 일상에 빠져

세상을 보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김진명 작가 특유의 글쓰기는

충분히 단숨에 읽어 내리게 만든다. 그러면서 아쉬운 점은 글이 뒤로 가면 갈수록 뭔가에 쫓겨 급하게

끝내 버린 것 같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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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가르쳐 준 기도 - 신·구약 성경 인물을 통해 배우는 기도의 삶
박광석 지음 / 두란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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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위대하시다면 우리의 정성도 그래야 합니다. P17

일어 서십시오. 장애물 앞에 멈칫 거리지 말고, 믿음으로 그것을 뚫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p197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기도는 어렵다. 하면 할 수록 어렵고 힘들다.' 대부분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주님은

이런 우리의 사정을 아셨는지 친절하게도 '주기도문'이라는 기도의 모범과 성경 곳곳에 다양한 기도의

형태들을 보물 같이 숨겨 놓으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기도를 힘들어 한다. 힘들다 못해 걱정과

근심 덩어리가 되어 매일 주문을 외우듯 뭐라도 해야 안심이 되는 지경에 처했다. 이런 우리에게

저자의 책인 '성경이 가르쳐준 기도'는 제대로 된 기도를 하기 위한 마중물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연다.

이런 책은 참 드물게 만난다. 서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을 전부 풀어 놓는다. 성경에서

기도를 강조하는 곳(에베소서 6:18, 여기에는 모든 기도, 간구,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깨어 구하라,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렇게 다섯번 '기도'라는 단어가 나온다)과 최고의 기도(마26:39,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기도의 최고봉이다), 기도의 모범으로서의

예수님, 정답이 없는 기도, 교제하듯 하는 기도와 같이 기도의 핵심들을 이미 서문을 통해 밝힌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소중하고 기대되는 것이다.

유독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다. 유다의 14대 왕인 므낫세이다.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백성들을

잘 이끌었으며,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쳐들어 온 앗수르를 물리치기도 했고, 기도를 통해 죽을

병이 낳기도 한 아버지 히스기야와는 다르게 자신이 왕이 되자 우상을 끌어 들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아세라와 바알신의 우상을 가져다 놓고, 마술하는 사람과 요술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당과 넘치는

사람들을 끌어 들여 그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지금이라도 돌아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면 모든것을 용서해 주겠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므낫세는 악한 일을 멈추지 않고

결국 앗수르의 포로 신세가 된다. 최소 한달이나 걸리는 먼 거리를 무거운 쇠사슬에 묶인 채 끌려가면서

온갖 생각을 다한다. 사막 길을 끌려 가면서 타는 듯한 목마름과 태양 빛에 가죽이 벗겨져 피투성이가

된 처참한 상황 속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대하 33:12) 상황이

어려워지니 그제서야 깨닫게 되고 크게 뉘우치고 낮아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살려달라고, 하나님 만이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기도했을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해보고

온갖 방법을 다 써 본 후에 그제서야 하나님을 부르는 우리와 너무 흡사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속이 들여다 보이는 행동을 하는 므낫세를 받아주신다.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다시 그를 유다의

왕으로 복귀시키신다. 그렇게 돌아 온 므낫세는 여호와의 전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쌓아 놓은 모든

제단을 성 밖으로 던져 버린다. 말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라 철저히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진정한 회개를 한 것이다. 저자는 '므낫세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라면 우리의 기도 또한

들으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애통함을, 간절함을 결코 그냥 두시지 않는

분이시다. 문제는 우리의 낮아짐에 있다. 머리를 꽃꽂이 쳐들고 마치 맡겨 놓은 자신의 것을 돌려

달라는 사람 마냥 요구하기에 급급한 우리의 기도를 돌아 보게 된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신약에 나오는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기도들을 보면 중요한 특징 하나를 발견한다. '믿음'이다. 주님은

그들의 행위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보신 것이다. 자녀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개 마냥 은혜를 구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주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8)고 말씀하시고, 중풍병자를 상에 매달아 지붕을 뚫고 내린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구원하셨고, 예수님의 옷에서 흘러 내린 가느다란 실 같은 무언가를 만졌던 열 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도 '내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하신다.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간절함'이다. 이들은 간절했고 절실했다. 예수님이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함과 예수님이면 하실 수

있으시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주님은 이것을 '믿음'으로 보신다. 몇번 해보고 안되면 '주님의 뜻이

아닌가봐'하며 포기해 버리는 우리의 얇은 신앙에 대한 도전의 메시지다. 기도에는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기도는 한번 하고 끝내 버리는 일회성 유희가 아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과 주님처럼 목숨을 걸

정도의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기도는 위대한 사역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기도 자체가 이미 '더 위대한

사역'이다는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J. Chambers)의 말과 단 한번도 기도에 실패 해 본적이 없다는

인디언 부족의 기우제가 생각난다.

이 책은 여전히 기도의 맥을 못 잡고 중언부언과 주문을 외우는 듯 기도하는 자신들을 안타까워 하고

있는 우리 교회 젊은 집사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이 책은 그들에게 기도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며,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교재가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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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 공감과 연대의 글쓰기 수업
메리 파이퍼 지음, 김정희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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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예전에 좋아했던 글 하나를 발견한다.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큰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한쪽은 절망과 체념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 쪽은 완전한 소멸로 이어진다. 부디 우리에게 지혜가 있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우디 앨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의 선택은 완전한 소멸이었다.

(물론 그럴 수 있다면 이라는 전제가 깔린)

우리 앞에 체념과 절망 그리고 완전한 소멸만 있다는 우디 앨런의 말처럼 지금 우리의 상황은 충분히

나쁘다. 삶이 쉬웠던 적은 없으나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그 오늘보다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 있어 수백년 이전에는 당장 눈 앞에 닥친 문제만 해결하면 됐다. 오랜 시간 인간은 대륙

저멀리는 커녕 바로 앞 산 너머의 일도 모르고 살았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것만 알았다. 그러던 인류가 과도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게 되자 우리 대다수는 그들이

뿜어내는 넘쳐나는 자극과 어찌할지를 모르는 무력감이 한데 얽혀 불안과 절망에 빠진다. 그렇게

우리는 '실존적 무지(existential blindness)'의 시대를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대상화하고 비인격화하고 비인간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언어는 무기가 된다. '우리와

다르다'는 꼬리표가 달리면 그들에겐 더 이상 문명화된 행동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불법 체류자를

뜻하는 'illegal alien'이 좋은 예다. '불법'이라는 의미의 'illegal'이나 '외국인 체류자' 혹은 '이질적인'이라는

의미의 'alien', 두 단어 모두 지칭하는 사람을 우리와 분리시킨다. 하지만 세상에는 불법인 사람도,

이질적인 사람도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우리는 마르틴 부버(Martin Buber)가 말하는 '나와 너 관계(I-thou relationship)'를 기억해야 한다. 부버는

'나와 그것'과 '나와 너'의 관계를 구분한다.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피상적으로

다룬다. '그것'은 그저 우리의 목적을 돕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마치 은행원은 우리에게 돈을 내어주거나

받아 주는 존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것 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와 너'의 관계로 옮겨간

은행원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꿈도 있고, 욕망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존재가 된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봐야 비로소 상대를 향한 존중이 생기는 것이다. 이때 '나'와 '너'가 '우리'의 관계로 진입하게

된다. 우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에게 꼬리표를 달면 그들의 인간성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그럴수 없도록 우리와 그들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져야 할 책임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의 역사, 그들의 가족, 그들의 감정, 그들의 정당한 요구들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복잡한

인간인지 보여주는 일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연결해야 한다. 연결하면 책임감이 생긴다.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얽혀 있다. 변화를 촉진하는 최선의 방법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의식이 있는 작가는 자기 글 면면에 진정성과 투명성이 배어 있기를 바란다. 그들은 독자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려고 애쓴다. 또 혼자 힘으로 얻기

어려운 아이디어와 경험으로 독자를 이끌고 연결해준다. 이런 유형의 글은 언제나 독자가 준거의 틀을

넓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더 큰 그릇(bigger container)'에 물건을 담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영혼의 성장이란 공감, 명료함, 선에 대한 열정을 꾸준히 키워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더 잘 감응할 뿐만 아니라, 구별하기를 걷어내고 연대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특정한 종류의 지혜를 향한 여정이며, 그 지혜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감사다. 줄루족에게는 연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

이 책에는 글쓰기에 대한 최고의 조언이 들어 있다. '말할 필요도 없어라는 말은 쓰지 말아라. 말할 필요가

없다면 안하면 된다. 여러분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인생이 엿 같다'이면 독자들은 그걸 모면하게 해줘야

한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기에 말에 다리가 달려 멀리 달아난다. 작가는 수많은 길을 제각기 걷지만 하나의

교차로에서 마주친다. 그중 하나가 '관찰'이다. 작가는 호기심으로 세상을 흡수하는 사람들이다. 남의 대화를

엿듣고, 쉴 새 없이 읽고, 자기가 읽는 것으로도 모자라 지하철이나 상점에서 다른 사람이 무엇을 읽는지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렇게 관찰한 것을 글로 쓰는 것이다. 관찰에 대해 틱낫한은 이렇게 말한다. '깊이

들여다 봐야 볼 수 있다. 헤엄을 치며 맑은 강물을 즐길 때, 우리 또한 강물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영감을 북돋는다. 계속 써라. 성공했다면 계속 써라. 실패해도 계속 써라. 흥미를 느꼈다면 계속 써라.

지루하다면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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