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 적당히 베풀고 제대로 존중받기 위한 관계의 심리학
스테판 클레르제 지음, 이주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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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멘탈 뱀파이어'

함께 있으면 괜히 힘이 빠지고 우울하고, 항상 본인이 피해자인냥 징징대고, 매사 나를

비판하면서 자기의 잘못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필요할때만 연락하고 정작 내가 도움을

청하면 사라져 버리는 그런 사람, 분명 있다. 저자는 이런 사람을 나의 좋은 기운을 쪽쪽

빨아 먹는 멘탈 뱀파이어라고 부른다. 이들은 상대방을 고통스럽게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며 상대를 파괴하려는 나르시스트와는 달리 상대에게 의존하여 기를 빨아 먹고 필요한

것이 채워지면 사랑할 줄도 알고 버림을 받으면 괴로워하다가 새로운 숙주를 찾아 나서는

변종 뱀파이어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숙주를 죽여봐야 얻는 것이 하나도 없기에 '기생'이라는

메커니즘을 사용하는 기생충으로 비유한다. 


'정말 피곤한 인간이야'

멘탈 뱀파이어와 함께 시간을 보낸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온통

그에게 신경을 써야하므로 '심신의 피로' 찾아 온다. 가장 흔한 증상이 두통이고 소화불량,

배뇨욕구, 긴장, 호흡장애, 흥분들 처럼 즉각적으로 찾아 오는 증상도 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찾아오는 피부이상증세, 결막염, 관절통 같이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계의

교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 생활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유독 사람을 만나고 나면

정신도 멍하고 몸에 기운이 빠져 나가버린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사람은 되도록이면

아니 일부러라도 피하고 싶은 사람이다. 


저자의 멘탈 뱀파이어를 이기는 전략 마음에 드는 단어가 두개 있다. 첫번째는 '어설픈'이다.

쉽게 거절을 못하고 소심하고 정도 많기에 상대방의 불편과 하소연을 그냥 넘기다 보니 쉽게

상대방의 상황에 개입하고 상대하는 과정에서 여지없이 그들에게 기운을 빼앗겨 버린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다고 어설픈 개입과 어설픈 관심은 뱀파이어들의 좋은 먹잇감이고 기생하기 쉬운 숙주가

되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설픈' 동정심으로 자신의 기운과 맨탈까지 탈탈

털린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 돼지가 진주를 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갈기갈기 찢을

있다' 신약성경의 말처럼 어설픈 행동은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 온다. 

두번째는 '적당히'이다. 얼핏 들으면 형식적으로 내지는 대충대충이라고 들을 있지만 사실 적당히는

정말 어려운 말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중용을 지키며 치우치지 않는 행동이 '적당히'이고

상황이나 형편에 들어 맞는 것이 적당히이다. 베품과 나눔과 개입도 적당히 해야 한다. 오지랖 넓게

과도하게 개입해서 너무 퍼주면 뱀파이어들에게 공략 당하기 좋은 대상이 된다. 물론 베푸는 삶은

좋은 것이지만 여기에도 '적당히' 필요하다.


저자는 글의 말미에 조금 특별한 뱀파이어를 소개한다. 우리 각각의 내면 속에 잠자고 있는 멘탈

뱀파이어들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책을 읽는 동안 어쩌면 나도 그들 하나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는 멘탈 뱀파이어 기질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가능성이 충분하며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그들이 되기도하고 그들에게 당하기도 한다.

멘탈 뱀파이어에게 쉽게 당하지 않으려면(이건 일상생활을 사는데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시작하고, 경험하는 모든것에 책임을 지려는 책임의식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독립 주체로서 생활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습관이 면역력이다. 


'자유를 지켜라. 자유가 나머지를 지킨다'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자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뿌리가 깊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자신의 힘을 믿고, 당당하게

나의 기운을 빨아 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뱀파이어들에게 맞서는 용기있는 자유인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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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온다, 나노봇 와이즈만 미래과학 2
김성화.권수진 지음, 김영수 그림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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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가 나타났다'

죽같이 걸죽한 고온의 우주가 점차 식기 시작하고 우주의 온도가 3000도로 내려갔을때

소립자들이 뭉쳐 수고를 만들어 내고 우주에 있는 물질의 90% 수소이고 우주는 수소에서

우라늄까지 92개의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들을때 마다 신기하다. 우주를 이루는

92개의 원자에는 수소(H), 산소(O), 헬륨(He) 같이 익히 아는 것도 있지만 비스무트(Bi),

프라세오니뮴(Pr), 디스프로슘(Dy) 같이 생소한것들도 있어 항시 궁금증을 유발했지만

파고들면 골이 띵해질것 같다는 선입견에 깊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나에게 책은 새로운

도전이고 흥미로운 출발이다. 

분자가 분자를 끌어 당겨서 점점 복잡하고 거대한 분자를 만들고 분자덩어리와 분자덩어리들이

서로 결합하여 스스로 점점 크고 복잡한 구조물을 만드는데 분자들의 이러한 능력을

'자기 조립'이라고 한다. 인간의 세포는 60 정도인데 각각의 세포에는 리보솜이

수십개가 들어 있고 세포의 가운데 핵이 있고 속에 DNA 들어 있는데 여기에 각각의

유전자 정보가 그대로 들어있어서 DNA 나노컴퓨터의 역할을 하는데 우리 속에는

2760 개의 나노 컴퓨터가 들어 있다는 설명은 그냥 신기하고 한편으론 '이렇게 무지했나' 라는

자책을 하게 한다. 한편 10x10억개의 단백질로 구성된 DNA 가닥을 모두 이으면 대략 1000km

(명왕성 보다 거리) 된다고 한다.

 

다이아몬드와 연필심의 재료가 같다면 믿어 질까? 놀랍게도 세상의 모든 동물, 식물, 화학물질의

90% 탄소를 가지고 있고 탄소는 우주 속에서 세번째로 많은 원소이며 미래에 가장 중요한 원자

하나이다. 탄소 원자 60개가 모이면 만들어지는 버키볼은 지름이 겨우 1나노미터(먼지 보다

100만배 작은 크기) 불과하지만 안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훌륭한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하며

가장 얇은 그물인 그래핀은 두께가 겨우 0.35나노미터에 불과하지만 종이 보다 100만배 얇고, 강철보다

200 강하며, 유리보다 투명하고, 구리보다 100 많이 전기도 통하고, 실리콘 보다 100

빠르다. 생각해보라. 유리보다 투명하고 강철보다 단단한데 종이 보다 100만배 얇은 그래핀으로 만든

자동차를. 아마 너무 가벼워서 가방에 넣고 다녀도 되지 않을까.

물론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노봇이 나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거나 전쟁 무기로 쓰이게

되는 경우 심각한 문제가 초래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위험한 것은 스스로 복제 있는

나노봇이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무한증식할 경우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로

미친기계들에게 지구가 잠식 당할 수도 있는데 끔찍한 재앙을 '그레인 시나리오'라고 하는데

우리가 영화에서 익히 보았던 그런 상황을 의미한다.

 

책은 분명 어린이용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어지간한 성인이 보아도 만큼 풍성하고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특별히 수학이 싫어 문과를 택했던 같은 사람에게는 마치 처음 만나는

신세계처럼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역시나 믿고 보는 와이즈만북스답다. 

끝으로 루이 파스퇴르의 마디를 전한다. 

'무한히 작은 것의 역할은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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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 세계기독교고전 32
존 밀턴 지음, 귀스타브 도레 외 그림,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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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진리가 확산되지 않는다면 오류가 지배할 것이요'

19세기 미국의 정치가이자 언론인인 다니엘 엡스터의 말이다. 진리마저도 무참히 짖밟히고

기본적인 가치 마저도 퇴색해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밀턴이

 '실낙원' 썼던 그때와 같이. 

인간의 불순종과 불순종으로 인해 낙원을 잃어 버리게 되는 인간, 인간의 타락의 원인이

되는 뱀의 모습으로 위장하는 사탄,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천국과 지옥, 신에게 도전하는

사탄 그리고 추방, 신의 권위를 가볍게 여기는 인간 그리고 범죄함, 결과 벌어지는

낙원에서의 추방. 방대한 역사관과 깊은 통찰과 성서적 지식을 기반으로 나간 책은

520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한번 압도하고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으로 다시한번 기를 죽인다. 아마도 주해가 없었다면 정말 읽기 힘든 끔찍한 책이거나

솔직히 베개 용도로 사용할 법한 두께이지만 친절한 설명은 책에 깊이 빠지게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사탄과 졸개들의 역시 언변이 뛰어나다. 적절히 상대의 감정을 고조시키며 수위 조절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훔쳐낸다. 사탄이, 몰록이, 벨리알이, 바알세불이 그랬다. 분명 자신들은

천국에서 쫒겨나 지옥에 있음에도 여전히 기세는 꺽이지 않았고 언제라도 천국과 권력을

되찾을 있을듯이 이야기한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이 지옥인데도. 

이에 반해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의 대화는 절절한 연애편지 같다. 서로를 향한 믿음과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아들의 생명을 요구하는 절대자와 그런 아버지의 어쩔수 없는 선택의 아픔을

알기에 인자(사람의 아들, 구약에서 예언하는 메시아) 되기로 결정하는 아들의 선택은 숨기기

어려운 고통이다. 스스로 낮아져야 하며 비천함과 굴욕을 당해야 함에도 ' 일을 있는

이는 오직 너밖에 없다' 아버지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는 아들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천국의 대군과 사탄의 대군의 전투 장면은 스펙타클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글에서 표현하는대로

영상화 한다면 어떤 전투신보다 훌륭한 장면이 될것이고 지금 외화 관객수 1위를 차지한

어벤저스 앤드게임을 능가하는 대작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상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미카엘이 찌른 칼에 처음으로 고통을 알게되는 사탄, 가브리엘이 휘두른 칼에

허리 부분까지 둘로 갈라져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고통에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도망가는

몰록. 사실 전쟁은 상대가 없는 이와 벌이는 무모한 전쟁이다. 오판과 교만은 철저한

패배를 가져 오지만 여전히 사탄은 틈을 노린다.

 

글이 쓰여질 당시의 상황은 30 전쟁이 종결되고 이어 발발한 영국 내전을 마친 만신창이가

유럽사회와 기나긴 전쟁으로 기본적인 인성마저 상실하고 그저 살기에 급급한 군상들, 여기에선

'' '정의' 존재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 남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 앞에

밀턴은 잃어 버린 가치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자신들의 '' 대해 변명과 당위성만을

주장하며 합리화시키기에 급급한 이들에게 던지는 경고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을

사랑하는 이의 관용의 메세지를 구약 창세기 1장에서 3장까지의 사건을 기반으로 1만행에 달하는

대서사시를 통해 전한다. 어릴때부터 당대 최고의 신학자인 토마스 영에게 지도를 받아서 쌓은

탄탄한 신학적 지식과 날마다 경건 생활을 하며 터득한 경건한 종교적 영성과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의 결정체가 책이다. 


밀턴은 책에서 강력한 상상력과 섬세한 묘사, 탁월한 표현, 장중한 흐름등을 마음껏 구사하여

세익스피어 다음 가는 시인이라는 지위를 얻기도 한다. 수사학적으로 고양되는 격조 높은 문체로

일상적 언어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둠으로써 영웅적 주제와 웅대한 구성과 양식성에 알맞는

의식적(ceremonial)문체인 장엄체를 사용하여 품격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실낙원의 주인공은 영웅이 아니라 미약한 인간(아담과하와)이라는 점과 용기와 명예와 같은

전통적인 서사시의 덕목이 아니라 복종과 고난이라는 기독교적 덕목이 주제라는 점에서 고전

서사시와는 다른 길을 걷는 비전통적 서사시이기도 하다.


책은 '인간이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고' 시작해서

'그들은 손을 잡고서 유랑의 발걸음을 서서히 옮겨, 에덴을 지나 외롭고 고독한 길을 갔다'

글을 맺는다. 비록 하나님이 보낸 천사 미카엘에 의해 낙원에서 쫒겨나지만 언젠가 오게

메시아가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속하고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구원의 희망' 전함으로 하나님의 절대 속성인 '사랑' 기억하게 한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결코 홀로 두지 않고, 결코 내버려 두지 않는 사랑 말이다. 어쩌면 밀턴이 희망도 의지도 잃어 버리고

지쳐있는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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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5 - 열도의 게임 본격 한중일 세계사 5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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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했던가. 글과 명예를 앞세우던 막부가 다른 손에

책을 드는 순간 이미 막부의 절대권위는 무너져갔고 집중되었던 권력은 모래성 같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권력의 쇠퇴기나 교체기가 그렇듯이 막부 말기 일본 역시

피바람이 불었고 저자의 말처럼 일본도의 희멀건 칼날로 막부 말기 난세의 핏빛

컬러를 수놓던 시기였다. 


실제 막강한 권력으로 일본을 지배하던 막부와, 권위와 정통성만을 가진 정부로 양립되는 

일본이 '공무합체' 대의로 내걸고 연합을 시작하는 틈바구니에서 권력도 잡아보고

처참하게 몰락도 하게되는 조슈 번의 모습을 보면서 권력의 무상함과 그래도 끝까지

자신들의 정당성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사무라이 다운 모습이 조금은 느껴졌다. 1863

8 18일의 정변에 의해 교토에서 추방당했던 조슈 번이 군사를 일으켜 교토 시가지에서

벌인 무력충돌인 '금문의 ' 교토 시내에서 3 가구가 소실 되는 1615 '오사카

여름의 ' 이래 최대의 사건이었다. 결과 존왕양이파는 급진전 지도자 대부분을 잃고

세력이 급격히 축소되었으며 언제나 그랬듯이 승자측인 이치 요시노부를 위시한 아이즈

등이 교토정국을 주도하게 된다.

 

수적으로도, 여론으로도, 황실의 지원도 없는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죠슈 번의 무사들은

자신들의 목숨으로 대의라는 것을 펼치고 이슬과 같이 사라진다. 역사는 승자의 몫이기에

이들의 교토점령실패는 어김없이 쿠테타로 그려지지만 만약 이때 조슈 번이 일으킨 금문의

변이 성공했다면 일본의 역사는 조금 흥미롭게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와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는 기독교 구세주 사상을 기반으로 배상제회 교주 홍수전을

중심으로 건국 태평천국이 1850-1866년까지 중국 북서쪽 끝인 감숙성을 제외한 전역에서

만주족 황실인 청나라와 내전을 벌이는데 이를 '태평천국의 '이라고 한다. 이는 명청전쟁

이래로 중국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전쟁이었으며 인류 역사상으로도 가장 유혈 낭자한

내전 하나이다. 이때 죽은 사람이 대략 2천만-7천만(당시 중국 인구 4 5)정도로 추산되니

규모가 어느정도 였을지 짐작이 가능하다. 난의 주체인 홍수전의 죽음을 보면 종교적 신념이

이성 마저도 마비시킨다는 말이 실감될 정도로 자신의 병세에 일체의 의료행위를 하지 않고

면역력과 신적 능력에 의지하며 버티다 결국 병사한다. 물론 그런 기적적인 일로 전시를 일거에

역전 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로 보면 아쉬움만 남는다. 혁명은 부르짖었으나 실제로는 그들의

혁명 대상인 봉건화 되어 갔고 이는 결국 분열과 처음 내걸은 기치의 퇴색을 가져와 실패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태평천국의 이후 만한병용(滿漢倂用)의 관리임명 방법이 자연스럽게 한족 위주로 넘어가게

되었고 상군의 조세 징수가 어렵게 되자 중국의 해관행정권이 외국(영국)인 손에 장악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사회적으로는 여자의 전족 폐지와 참정권 부여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아편 금지로 중국 사회 발전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 오가는 하지만 14년여에 걸친

내전으로 인해 나라는 더욱 더 피폐해졌고 500만 이상의 난민을 양산해 낸 이 난에 대해 마르크스는

'보수적 허탈에 대한 추악한 기형적 형태의 파괴, 건설의 싹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파괴'라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 난은 홍수전의 아들인 홍천귀복이 붙잡히고 최후 잔당 지도자 왕해양이

1866년 1월 29일 토벌되면서 최악의 실패한 난이라는 오명을 쓰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센스와 기발함이 표현 속에 묻어남이 느껴졌다. 단어의 선택이나 사건을 풀어

나가는 방법이나 적절한 삽화의 구성까지 재미있고 역시 굽시니스트다왔다. 특별히 번들의

집합과 이탈 그리고 진입등을 묘사하는 삽화는 매우 흥미로웠고 익숙한 번들의 깃발은 반갑기도

했다. 책을 통해 복잡하고 미묘한 막부 말기의 일본 정치 상황들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역시 역사는 승자의 편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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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잘레스 씨의 인생 정원 -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배운 삶의 기쁨
클라우스 미코쉬 지음, 이지혜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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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 시골 마을, 80, 텃밭, 단순, 자유, 느리게 사는 ....

저자가 책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화두이다. 속도 만이 길이 되어 버린

무한속도경쟁 사회에서 슬며시 혹은 억지로 발을 빼서 느리지만 누구보다 알차게,

느긋하지만 누구보다 정확하게, 자유롭지만 나름의 규칙과 방법으로 체계적인 삶을

살아 가는 , 어쩌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꿈꾸는 은퇴 설계의 대표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넘어지는 거야' 

십여년전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불던 시절, 대학 졸업 직장만 다니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해고를 당했을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오지랖 넓게 내가

했던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그땐 나름 멋진 말을 했다고 자찬하며

우쭐거렸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달아 오른다. 다행히 친구는 달후 다른 직장에

좋은 조건으로 입사했다. 그렇다. 우리는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먹고 산다.

경험치가 스펙이 되고 경쟁 무기가 된다. 실패도 해봐야 하고, 좌절도 겪어 봐야 하며,

이와 맞서 기쁨과 쾌락도 누려봐야 한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하나인  '맛있는

녀석들'에서 출연자(우리는 그들을 4 혹은 뚠뚠이들 이라 부른다)들이 외치는 구호가

하나 있다. '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 먹어 만이 맛을 있다. 그림의 떡은 그림일

뿐이다. 앞에 아무리 산해진미가 놓여 있어도 먹어 보지 않으면 맛을 느끼듯이

우리의 인생은 경험한 만큼 누리고, 경험한 만큼 얻을 있다. 먹는 것에도 선택이 존재한다.

먹느냐 마느냐는 갈림길에서 먹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 맛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이 인생의

갈림길에서 경험해보는 것을 선택한 사람은 삶의 맛을 알게 된다. 맛이 어떨지라도. 


앞만 보고 달려와 인생에 모퉁이도 샛길도 굴곡도 없고 반항이라곤 모르고 정도만 걸어

모범가의 전형인 은행 투자 상담원 니클라스(처음인 니콜라스인줄 알았다). 농담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은행 지점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고 충격을 잊고자 휴식을 겸한 탈출을 감행해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작은 해변 마을인 에스테포나로 향하고 곳에서 만나는 이들과의

생활을 통해 그의 삶의 조각을 만들어 간다.

 

책에서 반가운 이름 두개를 만났다.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 공항(말라가 공항).

태양 해변이라는 의미를 가진 스페인 최고의 휴양지 하나인 코스타델솔을 가기 위해

들렀던 이곳에서 기상악화로 무려 17시간을 공항 바닥에서 뒹굴렀고 이때 같이 공항 바닥을

몸으로 뒹굴러 다녔던 독일 친구들과 남은 일정을 같이 있었던 추억의 장소가 바로

피카소 공항이다. 그때 우리를 상그지 꼴로 만들었던 녀석이 바로 '레반테'라는 이름을

가진 강하고 습한 바람이다. 축구 팀의 이름이기도 녀석은 저자의 말처럼 자연의

위대함과 공포를 동시에 실감나게 해줄 정도로 강력하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레반테가

등장하면 상점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가 은둔을 시작한다. 


그렇게 에스테포나에 머물게 니클라스는 운명처럼 곤잘레스씨를 만난다.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담은 그윽한 눈을 가졌고, 태어난 곳에서 100km 이상 벗어나 본적이 없음을 당연한듯

말하며, 흙에서 자랐기에 밑에 단단한 땅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손가락이 식물의 리처럼

속으로 파고 세상 만물과 맺어졌다고 말하며, 흙이 자신의 집이고 자신의 땅과 자신은

하나라고 생각하는 곤잘레스씨와의 만남은 그에겐 행운이었다.

삶을 살아가는데 굳이 복잡할 필요도, 빠를 필요도 없이 자신의 속도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곤잘레스씨의 모습에서 느리게, 천천히, 그리고 계속 자신의 길을 걷던 현인들의 모습이

스쳐간다. 흙을 사랑하기에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기에 자연이 선물들의

가치를 알고 그렇기에 가지려고도 쌓으려고도 하지 않고 일상에 감사하는 안분지족의

삶을 사는 그가 부러워졌다.

 

곤잘레스씨의 정원에서 배운 겸손을 바탕으로 수용과 신뢰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억지로

버티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력적인 자연의 힘을 이해하지 않고는 현재를

수용하거나 다가올 일을 신뢰하기가 불가능하고 신뢰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갖춘 사람만이

여유를 품을 있다. 


끝으로 곤잘레스씨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마지막 조언을 적어 본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 가짐이라고 생각하네. 끊임 없이 배움을

즐기고, 낯선 것을 대할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을 품게나. 두려움은 행복의 가장

적이거든. 중요한 것은 결국 그거 아닌가. 행복하게 사는 말이야.'

곤잘레스씨를 만나 니클라스는 정말 행복한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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