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 세계기독교고전 32
존 밀턴 지음, 귀스타브 도레 외 그림,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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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진리가 확산되지 않는다면 오류가 지배할 것이요'

19세기 미국의 정치가이자 언론인인 다니엘 엡스터의 말이다. 진리마저도 무참히 짖밟히고

기본적인 가치 마저도 퇴색해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밀턴이

 '실낙원' 썼던 그때와 같이. 

인간의 불순종과 불순종으로 인해 낙원을 잃어 버리게 되는 인간, 인간의 타락의 원인이

되는 뱀의 모습으로 위장하는 사탄,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천국과 지옥, 신에게 도전하는

사탄 그리고 추방, 신의 권위를 가볍게 여기는 인간 그리고 범죄함, 결과 벌어지는

낙원에서의 추방. 방대한 역사관과 깊은 통찰과 성서적 지식을 기반으로 나간 책은

520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한번 압도하고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으로 다시한번 기를 죽인다. 아마도 주해가 없었다면 정말 읽기 힘든 끔찍한 책이거나

솔직히 베개 용도로 사용할 법한 두께이지만 친절한 설명은 책에 깊이 빠지게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사탄과 졸개들의 역시 언변이 뛰어나다. 적절히 상대의 감정을 고조시키며 수위 조절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훔쳐낸다. 사탄이, 몰록이, 벨리알이, 바알세불이 그랬다. 분명 자신들은

천국에서 쫒겨나 지옥에 있음에도 여전히 기세는 꺽이지 않았고 언제라도 천국과 권력을

되찾을 있을듯이 이야기한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이 지옥인데도. 

이에 반해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의 대화는 절절한 연애편지 같다. 서로를 향한 믿음과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아들의 생명을 요구하는 절대자와 그런 아버지의 어쩔수 없는 선택의 아픔을

알기에 인자(사람의 아들, 구약에서 예언하는 메시아) 되기로 결정하는 아들의 선택은 숨기기

어려운 고통이다. 스스로 낮아져야 하며 비천함과 굴욕을 당해야 함에도 ' 일을 있는

이는 오직 너밖에 없다' 아버지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는 아들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천국의 대군과 사탄의 대군의 전투 장면은 스펙타클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글에서 표현하는대로

영상화 한다면 어떤 전투신보다 훌륭한 장면이 될것이고 지금 외화 관객수 1위를 차지한

어벤저스 앤드게임을 능가하는 대작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상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미카엘이 찌른 칼에 처음으로 고통을 알게되는 사탄, 가브리엘이 휘두른 칼에

허리 부분까지 둘로 갈라져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고통에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도망가는

몰록. 사실 전쟁은 상대가 없는 이와 벌이는 무모한 전쟁이다. 오판과 교만은 철저한

패배를 가져 오지만 여전히 사탄은 틈을 노린다.

 

글이 쓰여질 당시의 상황은 30 전쟁이 종결되고 이어 발발한 영국 내전을 마친 만신창이가

유럽사회와 기나긴 전쟁으로 기본적인 인성마저 상실하고 그저 살기에 급급한 군상들, 여기에선

'' '정의' 존재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 남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 앞에

밀턴은 잃어 버린 가치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자신들의 '' 대해 변명과 당위성만을

주장하며 합리화시키기에 급급한 이들에게 던지는 경고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을

사랑하는 이의 관용의 메세지를 구약 창세기 1장에서 3장까지의 사건을 기반으로 1만행에 달하는

대서사시를 통해 전한다. 어릴때부터 당대 최고의 신학자인 토마스 영에게 지도를 받아서 쌓은

탄탄한 신학적 지식과 날마다 경건 생활을 하며 터득한 경건한 종교적 영성과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의 결정체가 책이다. 


밀턴은 책에서 강력한 상상력과 섬세한 묘사, 탁월한 표현, 장중한 흐름등을 마음껏 구사하여

세익스피어 다음 가는 시인이라는 지위를 얻기도 한다. 수사학적으로 고양되는 격조 높은 문체로

일상적 언어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둠으로써 영웅적 주제와 웅대한 구성과 양식성에 알맞는

의식적(ceremonial)문체인 장엄체를 사용하여 품격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실낙원의 주인공은 영웅이 아니라 미약한 인간(아담과하와)이라는 점과 용기와 명예와 같은

전통적인 서사시의 덕목이 아니라 복종과 고난이라는 기독교적 덕목이 주제라는 점에서 고전

서사시와는 다른 길을 걷는 비전통적 서사시이기도 하다.


책은 '인간이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고' 시작해서

'그들은 손을 잡고서 유랑의 발걸음을 서서히 옮겨, 에덴을 지나 외롭고 고독한 길을 갔다'

글을 맺는다. 비록 하나님이 보낸 천사 미카엘에 의해 낙원에서 쫒겨나지만 언젠가 오게

메시아가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속하고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구원의 희망' 전함으로 하나님의 절대 속성인 '사랑' 기억하게 한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결코 홀로 두지 않고, 결코 내버려 두지 않는 사랑 말이다. 어쩌면 밀턴이 희망도 의지도 잃어 버리고

지쳐있는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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