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책을 탈출한 미적분 - 일상 생활 속 숨은 미적분 찾기
류치 지음, 이지수 옮김 / 동아엠앤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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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수학을 싫어 한다. 산수까지는 제법 잘 하기도 했고 흥미도 있었는데 어느날부터 수학은

나와는 거리가 먼 딴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물론 그 대가는 그대로 나에게 왔다. 갈 수 있는 학교의 이름이

달라졌고 결국 나는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미적분이다. 아마 미적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텐데 그 앞에 '수학책을 탈출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궁금해졌다.

무엇을 말하려는걸까? 어떻게 풀어 나갈까? 이런 기대를 가지고 책장을 연다.

'축소 복사로 얻는 이득'.

뭔가 수학 냄새가 안나는 문장이다. 그리고 첫 장에는 수식이나 어려운 용어들이 나오지 않는다. 기분 좋게

읽어 나갔다. 그러나 추천서를 쓴 웨이 샤오화(魏少莘)의 말처럼 '수학이 쉽다는 것은 거짓말'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알수 없는 문자들과 수식들이 지면을 덮기 시작한다. 양의 정수, 종족 변수, 독립변수..... 솔직히

'덮을까'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그런데 목차에 나와 있는 제목들이 책에서 눈을 못떼게 한다. 명절날

고속열차를 타고, 만두반죽의 크기, 구슬치기, 아치형 다리, 또 만두 이야기, 어항, 음주운전...제목들이 모두

궁금하던 것들이다. 의지를 가지고 읽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전히 어렵다. 갑자기 수학하기 싫어 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쓰는 핑계인 '아인슈타인도 수학 낙제했는데'(아쉽게도 수학이 아닌 다른 과목이

낙제였음이 밝혀 졌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러는 도중 나를 더 갈등하게 만드는 문장을 발견했다. 1644년

이탈리아의 수학자인 맹골리(Pietro Mengoli)가 무한급수가 수렴하는 값(사실 이게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을

구하는 문제를 냈고 그 문제를 1735년 오일러(Leonhard Euler)가 풀었고 수학자들은 이 유명한 난제에

오일러의 고향인 스위스 바젤을 붙여 '바젤 문제(Basel problem)라고 부르고 당시 오일러가 28세 였다고

설명하는데 나의 머리에는 거의 백년이나 걸렸구나 이렇게 어려운걸 쉽다고 하다니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수학이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법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수학이란 단어만 듣고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사실 이 말은 어려서

부터 들어 온 말이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법을 깨닫지

못한 것도, 수학이라는 단어를 듣고 지레 겁을 먹은 것도 인정하는데 여전히 수학은 어렵다. 저자가

말하는 '종이 호랑이'는 여전히 나에겐 '실제'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 책을 통해 아주 조금은 수학이

흥미롭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칙연산만 하면 되지 뭐하고 그 어려운 수학을 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수학책을 탈출해서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들어와 있는 미적분에 대해 배우다 보니 어느새 조금 더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아주 오래만에 수학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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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어, 내 마음의 작동 방식 - 불안과 걱정에서 나를 구하는 생각법 마음이 튼튼한 청소년
그웨돌린 스미스 지음, 장혜진 옮김 / 뜨인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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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걱정에서 나를 구하는 생각법이라는 타이틀이 멋지다. 요즘 청소년들은 알 수 없는(사실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지 못함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불안과 걱정으로 힘들어 하고 방황한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고 살아 남기 위한 전쟁터에 아직 나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성적 줄 세우기등을 비롯한 불합리 함에 맞서 싸우기엔 역부족인게 현실이다. 청소년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을 통해 막연함에서 조금은 벗어 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저자는 우리의 머리가 신체에 붙어 있다는 말로 신체와 머리와의 상관관계를 이야기 한다. 우리의 모든

신체 감각(몸), 우리가 하는 모든 일(행동), 느끼는 모든 것(감정), 그리고 생각(정신)은 전부 뇌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신체들은 어느것 하나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움직이고 활동한다. 몸, 행동, 감정, 정신은 내가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요소들인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 할 수 없음에도 앞으로가 부정적이라고 예측하고 다가올(아직 먼 미래)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과 같은 '점쟁이 오류'를 실생활에서 자주 범한다. 이러한 인지왜곡은 생각에 영향을 미쳐서

심각하면 일상생활 마저 깨버리기도 한다. 비합리적 사고에 근거한 안지왜곡은 자신의 삶에 강력한

생채기를 주기도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불합리한 사고로 몰아 가고 자신을 비하하고 능력을 의심하며

피해자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한다. 이성적 사고는 비이성적 사고를 멈춘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사고를 멈추는 방법은 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이다. 이성적 사고는 이성적 판단에서 오며 이성적

판단은 합리적 생각에서 온다. 이성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합리적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인지행동치료법에서는 비이성적 사고 바이러스를 인지왜곡이라고 부른다. 부정적 정신의 여과는 세상에

대한 지각을 왜곡하는데 이는 영국 속담인 '두더지가 판 흙더미로 산을 만든다'와 같이 어떤 일이 생길때

마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면 두더지가 파 놓은 흙더미로 산을 만드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지왜곡으로 실제로는 일어나지도 않은 문제에 대해 확대해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화해 한다는 것은 내가 남들에게 성가신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 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평생 동안 자기 자신과 화해 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신을

더 많이 인정하고 아낀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이에게 가는 관심과 애정이 줄어 든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과의 화해를 통해 타인과의 화해를 꾀하는 전향적 방법이기도

하다. 저자는 생각하는 법을 알면 감정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며 끊임 없이 불안해 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자신의 사고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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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권민창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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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 가면서 가장 힘든것 중에 하나가 인간 관계이다. 잘해도 문제고 못하면 문제다. 정답이

없기에 수위를 조절하는 조차 쉽지 않다. 시체말로 '그때는 아니지만 지금은 맞다' 비일비재하고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대응하는 방식도 다르다. 일이 이렇다 보니 서점에는 인간 관계에 대한 책들이

어마무시하게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역시 이론이다. 이론은 실제와의 거리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관건인데 갭은 점점 벌어지는 실정이다. 이에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상담을 통해 얻은 재료들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썩은 가지는 잘라 내야 합니다.' 오래 됐지만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를 대하는 저자의 마음이다.

썩은 가지는 잘라 내야 한다. 그래야 새롭게 싱싱한 새싹이 난다. 썩은 가지를 계속 방치하면 나무 밑둥까지

썩는다. 불편하고 나와 안맞는 관계를 '추억'이라고 방치하면 언젠가 관계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심할

경우 기존의 인간관계까지 흔들릴 있다. 이럴땐 과감하게 잘라 내야 한다. 그런다고 큰일 나지 않고,

하늘이 무너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가지가 단단해져서 나무를 튼튼하게 붙잡아 준다. 인간 관계에서

요한 것은 '함께한 세월' 보다 '함께할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 한정된 삶에서 괜히 과거와 추억을 붙잡고

씨름하느라 정작 다가올 미래를 놓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는게 현명하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나의 테두리에 누가 들어오기를 꺼려하는 독립과 자유의 욕구와 그러면서도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은 친밀의 욕구가 존재한다. 두가지가 부딪히며 모순을 형성하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하게 되는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미워할 사람은 존재하기에 결국

맷집을 길러야 한다. 아들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미움 받을 용기'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람 또한

나를 미워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하나의

욕구가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이 가장 갈망하는 욕구는 '인정의 욕구'라고 말한다.

존중하는 말은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 시킨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타인을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를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수용에 있어서 자신의 것을

주장하면 제대로 수용이 안되는 것처럼 타인을 인정할 역시 자신의 것이 아닌 상대방의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근사한 마침표를 찍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우리에게 '마침표를 찍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쉼표도

따옴표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찍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거죠'라고 말한다. 인생이 그런것 같다.

목적의 완성 보다는 실현해 가는 활동과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에 인생에서 모든 순간이 자체로 완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즐길 있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가치있는 삶을 사는 사람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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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 - 우리가 지나쳐 온 무의식적 편견들
돌리 추그 지음, 홍선영 옮김 / 든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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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연 우리는 생각만큼 윤리적인가?'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가 윤리적으로 완벽한 인간일 있다는 생각, 상상하는 모습

그대로 언제나 완벽히 윤리적일 있다는 생각은 허상이다. 사실 대분분의 사람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믿음을 가지지만 이런 믿음은 실제 자신의 모습과 많이 다른게 사실이다. 


저자는 편견의 심리학을 연구하는 전문가이다. 그리고 대학 교수이자 사회심리학자이다. 책은 그런

그녀가 자신이 경험한 편견을 바탕으로 우리가 그냥 지나쳐온 무의식적 편견들을 들춰내고 이야기한다.

그는 여성이고 외국에서 태어난 유색인종이다. 힌두교 여성인 그는 갈색 피부에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 남자와 결혼했다. 표면적으로는 사회 지도층 인사일것 같은 그녀이지만 그는 여전히

유색인종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픔을 겪는다. 그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역시 언제나 되고자 하는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사회적 편견과 윤리적 편견이 맞서는 좋은 방법 하나를 제시한다. 조직학 전문가인 데브라

마이어슨(Debra Meyerson) 말하는 조용한 혁명가(tempered radicals) 그것인데 그룹의 사람들은

조직의 반역자로 나서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성공한 내부자며 작지만 신중하게 현재의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여 변화를 이끄는 촉매 역할을 한다. 개인적 행동은 혁명이 아니지만 일상의 노력들이 하나둘

모이면 진정한 변화와 발전이 일어난다. 그래서 사일러스 하우스(Silas Hause) '매일 혁명하라'

주문한다. 


사람은 누구나 말할 때나 행동할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드러내는 '정체성 주장(identity claiming)'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타인이 알아 보고 인정해 주기를

강력히 열망하는 '정체성 인정(identity granting)'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이 인정받고

있는지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자신의 정체성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우리는

더욱 다급하고 강력하게 자기 확인을 갈구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위협(self-threat)'이라고 한다.

저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구해 주고 싶다' 충동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연민과 백인의 눈물(white

tears) 얼마나 무용한 것인지, 자신은 피부색을 보자 않는다는 말에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마음속에 품은 의도와 겉으로 드러나는 영향력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다. 


책에서 흥미를 끄는 단어를 발견했다. '좋은 실수의 '. 좋은 실수는 그전까지 관심에서 벗어나 있던

중요한 단계나 통찰력에 관심을 집중시켜 새로이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 실수에서 좋은 효과를 얻으려면

성장형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성장형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과제 수행에서도 다른 면을 드러낸다. 실수를 정상적인 배움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이분법적

사고의 오류에서 벗어 있다. 실수는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약이 될수도 독이 될수도 있다.


제목과는 다르게 쉽지 않은 책이다. 책을 읽으며 오히려 돌아가지 않는 머리에 상처를 받았다. 뭔가

같은데 돌아서면 기억이 나지 않고 책을 읽는 도중에도 자꾸 다른 곳으로 생각이 지나간다. 그럼에도

책은 많은 도전을 준다. 특별히 마틴 루터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목사의 '버밍엄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city jail)' 내용은 더욱 그렇다. '지금 우리 세대는 악한 자들의

증오에 말과 행동에 대해 가책을 느껴야 아니라 선한 자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에 대해 역시

가책을 느껴야 것이다'. 침묵은 더이상 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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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러 수용소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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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오늘 2024 1 1 12 기점으로 인터넷 악플러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소설은

시작된다. 인터넷 악플러. 그들은 저마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 놓으면, 혹은 스마트 폰을 키패드를

터치하는 순간, 세상 모든 사탄의 밥숟가락 빼앗는 대범함을 보인다는 저자의 문구가 섬뜩하게 다가

온다. 그들은 직접 죽여 살을 마르고, 뼈와 가죽을 분리한 박제시켜 사냥감을 쳐다보며 흐뭇해 하는

사냥꾼이 아니라 쉴새 없이 또다른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인터넷 속을 헤집고 다닌다.

러다 발견된 먹이감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달려들어 영혼 마저도 갈아 버릴 기세로 물어 뜯는다. '

재수 없어' 붙잡히기라도 하면 세상 불쌍한 사람 흉내를 내며 선처를 호소한다. 이미 피해자의 심신은

망가질대로 망가졌는데 말이다. 


악플러 수용소.

물론 가상의 공간이지만 내심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곳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인권을 강제한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도가 지나친 악플들에 사실 이렇다할 대응을 못하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러한 강제

수용 교화 시설이 있다면 나쁘지는 않을것 같다는 생각을 본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건 그놈의

'추천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좋아요, 구독, 추천에 목숨을 걸었는데 수용시설에 가서도 여전히

추천수에 목을 메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은 조금 의아하기도 하다.물론 아이러니는 책을 읽는 동안

풀렸다. 


수용소 소장의 중에서 재미있는 문장을 발견했다. '저승에서는 살인, 강도, 방화만 저지르지 않으면

중간은 간다고 그려 놨지만, 정작 이승에 존재하는 악마의 90% 이상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거든.

그런데 지옥은 면하다니'. 그렇다 실제 살인을 저지르거나 강도나 방화를 저지르는 사람 보다 악플을

써재끼는 인간들이 훨씬 많은데 그놈의 익명성(그나마 지금은 조금은 나아졌다, 책에서는 아예

'악플러의 힘은 전적으로 익명성에서 나온다고 말한다)이라는 이유로 잡아 내기도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아마도 저자의 생각을 소장의 입을 통해 말하고 싶은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어둠' 대한 생각은

깊은 회의가 깔려 있다. '어둠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가능케 한다. 어둠 속에서 생명이 잉태되고, 어둠

속에서 힘을 비축하고, 어둠 속에서 성장하고, 어둠 속에서 피로를 녹이며, 어둠 속에서 진격한다.

그렇게 어둠은 다른 힘의 원천이며 샘솟는 용기이며, 동시에 악마의 시간이다.' 예전에 읽은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소설이 생각 났다.


책에는 수용된 죄수들의 상담을 해주는 정신분석학자가 말하는 악플러들이 악플을 다는 세가지의

이유가 나온다. 첫번째가 대부분의 악플러들이 속하는 카테고리인 자신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표출하는

케이스다. 이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한계는 스스로에게 채찍으로 행해지고 채찍이 가학이

되고, 가학은 결국 외부를 향한 공격으로 변해 스트레스를 상대를 찾게 되고 익명성의 그늘 아래서

마음껏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싶고, 남으로부터 인정 받고

싶은 경우다. 방대한 기사 본문을 읽기 어려운 현대인들, 속이 꼬여서 다른 사람에게 악플을 달거나 다른

사람을 지적하기는 좋아하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부족한 이들을 대변해주는 듯한 글을 쓰는

이들이다. 주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쓰는 글이 베스트 댓글이 된다. 세번째는 비하를 통한 자존감

회복이다. 자신 보다 우월한 위치의 사람을 끊임없이 비하하며 거기서 오는 쾌감을 기쁨으로 여기는

부류이다. 결국 부류의 이유들은 '자신'이라는 출발점에서 만난다.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 절제가 안되고, 자신에게 불만족스럽고, 모든것이 모아져 먹잇감에다 쏟아내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리고 진실은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거짓의 허울을 벗겨낸다. 감춰져

있다고해서 영원히 숨기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것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한 저자의 경고는 이것이다. '진실은 분명히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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