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쉬운 경제학 - 영화로 배우는 50가지 생존 경제 상식
강영연 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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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은사님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학문에 쉬운게 어딨어'라고 하시며 어렵게 배워야 나중에

잘 써 먹는다라고 하셨던 그분이 생각난다. 이 책 제목이 '이토록 쉬운 경제학'이다. 대부분 몇 페이지를

못 넘기고 덮어 버렸던 경제학에 대한 옛 기억을 애써 잠재우려 하지만 과연 쉬울까 하는 마음에 걱정이

앞서 주우욱 한번 넘겨 봤다. 도처에서 튀어나오는 도표와 그래프들이 '나 안 쉬워'라고 말하는 것 같아

반신반의해진다. '경제학', 'Economics'. 벌써 몇 십년전 교양으로 들었던 '경제학 원론'이 전부인 내게

과연, 그나마 내가 좋아 하는 영화 이야기와 버무려 진다니 감사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다.

역시 예상 대로 첫 장은 '기생충'이다. 경제학자들이 다룰 것이 참 많은 영화라는 인터뷰를 본적이 있어

혹시나 했는데 맞았다. 반지하와 계단 밑의 피튀기는 일자리 싸움. 평균 보다 조금 낮은 그리고 조금

어두운 곳 반지하와 평균 보다 훨씬 낮은 곳 불을 켜지 않으면 암흑으로 변하는 계단 밑의 사람들.

이들에게는 집주인은 그저 고맙고 감사한 존재다. 자신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상대방이 오직

경쟁상대이다. 그들을 이겨야 자신의 삶이 보장되고 생계가 가능하기에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뿐 아니라

영화는 '비이성적 과열'에 대해서도 다룬다. 공급과잉으로 과당 경쟁이 벌어지고 순식간에 늘어난

가게들에 실망한 소비자가 발길을 끊으면 그걸로 가게는 끝이 되버리는 가맹점 사업의 최후를 영화속에

버무려 넣었다. 재학증명서를 위조해서 과외를 구하러 가는 아들에게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비이성적 계획'이고 이는 비이성적 판단에서 출발한다. 반지하에서 살면서 끊임없이 지상으로의

탈출을 꿈꾸지만 늘 그냥 꿈이다. 경제학에서 한 사회의 계층 이동이 얼마나 활발한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세대 간 소득 탄력성'은 결국 일자리 문제로 귀결되고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계층 이동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현실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상류사회에 입성하겠다는 의지로 뭉친 주인공을 다루는 '위대한 개츠비'를 딴 '위대한 개츠비

곡선(마일스 코락 Miles Corak, 대대로 이어지는 불평등에서)을 이룬다. 소득 불평등이 심해질 수록

세대란 계층 이동은 어려워진다.

저자의 배열이 탁월하다. 첫 장에서 소득불평등과 계층 이동을 다루었다면 두번째 장에서는 '빈곤'을

소재로 만나게 된 가족(?)과 범죄 그리고 그 해체를 다루는 영화 '어느 가족'이 소개된다. 2018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당시에 그리 각광 받지 못하다 '기생충(봉준호)' 이후에 하위 계층의 삶을 다룬

유사한 영화로 재조명 된 작품이다.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 사이에서 갈등하며 선택하며 행동하는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가난의 경제학과 빈부 격차는 크지 않지만 그에 반해 계층

이동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일본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자식마저 '훔쳐' 만든 가족의 절절한 이야기를

통해 '진짜 가족'의 의미를 묻는 이 영화는 피가 섞이지 않았으니 단순히 '경제 공동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족 같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가 뿔뿔이 흩어질 때 까지 빈곤 상태를 못 면한다. 이들을 보며 과연

물고기를 던져 주는 것 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 주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말이 옳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들에게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배워 물고기를 잡을 여유도 시간도 없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두 영화는 우리에게 '가족'과 '빈곤' 그리고 '계층이동'에 대해 비교적 쉽게

설명을 한다.

이밖에도 이른바 '유보임금'과 '코브-더글라스 생산함수'를 다루는 '82년생 김지영'은 고학력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본분과 위장의 경계에서 '왕갈비 통닭'으로 대박을 쳐버린 '극한직업'에서는

독점적 경쟁시장의 가격결정권과 '원소스 멀티유즈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고, SNS 초보의 어이 없는

실수로 시작된 요리전쟁과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한 '아메리칸 세프'는 '밈노믹스'와 '밴드 웨건 효과'와

아들의 1초 동영상을 통한 '쇼트 폼 경제'와 유튜브에서 한동안 논란이 됐던 '뒷 광고'까지 이야기한다.

마지막에 나오는 설명은 이 책의 위치와 역할을 정확히 지적한다. '경제학은 세상사는 수많은 인간

이야기를 '합리성'을 토대로 설명하는 학문이고' 영화는 세상사는 이야기 그 자체다.' 그렇기에 영화로

경제학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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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불행하게 사는 것에 익숙하다 - 마음이 ‘건강한 어른’이 되는 법
강준 지음 / 박영스토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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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 많다. 신체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도 많지만 정신 혹은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도 많다. 이 책은 '건강한 어른'에 대해 이야기한다. 건강한 어른이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돌볼 줄 알아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큼 마음에 충분한 여유가 있고,

자신감을 가지고 인생을 자주적으로 설계해 가는 어른을 말한다. 사실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은 우린 어쩌면 불행하게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행복을 바라지만 정작 행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행복에 가까워지는 판단 기준을 '타인'에게서

가져오다보니 현실 속에서 느끼는 행복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일상에서의 사소한 만족감이나

즐거움도 행복인데 이런 작은 행복을 무시해 버리고 살기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채로 행복만을 쫓으며

살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을 써서 본인의 행동, 생각 그리고 감정이 상하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사회에서 받는, 타인에게 받는, 스스로에게 받는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고 앞으로 그 강도는 더 강해질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매순간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은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한다.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행복은 가만히 있다고 찾아 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려고 결심하고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도전에 있어서는 남에게 휩쓸리기보단 본인의 선택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더 중요하다. 결국

내가 살아 내는 것이고, 나의 인생이다. 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건강한 정신과 마음이 필요하다. 제대로

생각해야 하며, 제대로 관찰해야 하고, 제대로 판단해야 하기에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을 요구한다. 물론

실패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패가 좌절과 포기가 아닌 잠깐의 작전타임과 같다면 분명 실패는 또다른

모습으로 변화 할 것이다.

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자연적인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우리 몸이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메커니즘인 스트레스가 발동한다. 라틴어 스트링게르(stringer, '팽팽하다', '죄다'의 뜻을 가진다)에서

온 스트레스(stress)는 개체에 가해지는 압력이나 물리적인 힘을 말한다. 즉 생체의 평형을 깨뜨릴 수 있는

모든 외부의 자극을 통칭하여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압력에 의해 내적인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하며 외부의 자극이나 변화에 대한 개인의 신체적, 행동적, 정신적 반응을 의미한다. 이런 스트레스는

회피할 수도 없고 저항할 수도 없는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생물학적

(생리적, 신체 리듬, 영양섭취등), 심리학적(불안감, 우울증, 학대, 적대감 등), 사회 환경적(고립과 결핍,

신체적 정신적 결함 등) 요인들에 의해 발생한다. 현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만병의 근원'이라고 부른다.

이 책의 말미에 '경청'에 대해 나온다. 요즘처럼 자기 말 하기에 급급한 시대에 경청은 참 어려운 항목이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반응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경청은 '적을

아군으로 만드는 힘'을 가졌다. 본인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남'이 아니고 '나'이다. 이건 상대방에게도

동일하다. 세상에는 모놀로그가 아닌 다이얼로그가 필요하다. 들을 수 있어야 대화가 된다. 건강한 어른은

들을 수 있는 사람일것 같다. 자기 말만 하는 것이 아닌 '경청'의 자세를 가진 건강한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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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 K-궁궐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김서울 지음 / 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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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고궁 나들이가 최고의 데이트 코스였던 적이 있다. 물론 나는 그때도 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막 대학을 입학 했을 때 당시 숙대 교수셨던 이모님을 따라 운현궁(흥성 대원군의 사저)마마님께 인사를

드리러 간 것이 어쩌면 나의 첫 궁궐 방문이었을 정도로 별로 친하지 않은 곳이 궁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나라이며 철저한 신분 구조 사회 속 최상류층에 살던 이들이 살던 공간이라는 거리감과 낯설음은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았고 그후 시간이 많이 흘러 이렇게 나와 비슷한 경험의 작가가 쓴 궁궐이야기를

읽는다.

서울 한복판에는 다섯개의 궁이 있다. 놀라운 것은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다섯개의 이름과

위치를 잘 모르며 더군다나 이 다섯개의 궁을 하나의 '궁궐'이라는 덩어리로 이해한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지어진 경복궁, 유니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자연과의 배치가 아름다운 창덕궁, 창덕궁과 연결되어 있고

일제 강점기에 가장 많이 훼손 된 창경궁, 고종황제의 즉위식이 열렸던 덕수궁, 다른 궁궐에 비해 작고

잘 알려지지 않아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사람을 한 명도 볼 수 없는' 그러나 예쁜 산책길이 많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경희궁 이렇게 다섯 궁이 있는데 난 호젓한 경희궁이 가장 좋다.

알다시피 조선의 궁궐은 나무와 나무를 이어 만들었다. 궁궐 전각 바닥의 기단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기둥과 보는 물론이고 벽을 세울 때도 짚 등의 섬유질을 사용했고, 건축물 설계에

쓰이는 도면부터 건축에 사용한 물품과 자재를 기록해 정리하는 마지막 과정에도 종이가 사용될 정도로

나무는 궁궐의 모든 것이다. 닥나무 섬유와 큰 꽃송이가 인상적인 황촉규의 진액으로 만드는 도배지가

완벽한 비건vegan 제품이었던 것과 벽에 바르는 초배지를 과거 시험에서 낙방한 사람들의 답안지인

낙폭지를 사용했다는 점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물론 글자가 쓰인 종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답안지를 절구에 찧어 만든 일종의 재생지를 사용한 것인데 한 장에 집 한채 값에 맞먹는 기와를 써 놓고,

보이지 않는 면에는 재생지를 사용한 절약 정신(?)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것도 하필 과거에서

낙방한 사람들의 시험지를.

조선의 궁궐들을 거닐다 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꽃나무가 별로 없다. 조선 초기에는

과실나무나 누에의 먹이가 되는 뽕나무, 종이를 만들 수 있는 닥나무들, 실용적인 나무를 꽃보다 선호했던

세종의 명으로 궁에서도 꽃나무를 보기 어려웠고, 그나마 꽃을 좋아했던 연산군이 후원에 연산홍 1만

그루를 심으라고 명했을 뿐 공식적으로 꽃나무를 심은 흔적은 발견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저자는 고개만

살짝들면 사계절 내내 활짝 핀 모습으로 반짝이는 꽃나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단청이다. 한 가운데의

분홍색 꽃, 그 꽃을 둘러싼 동글동글한 녹색 장식, 그 다음에 여백을 채우는 선. 건국기념인 유교 사상에

따라 검소함과 소박함, 고고함과 청아함에 높은 가치를 두었던 조선 왕실의 단청은 사대부 집의 단청에

비해 의외로 수수하다. 저자는 이를 무심한듯 시크한 방식으로 부를 드러냈다고 표현한다.

아마도 조만간 저자의 바램처럼 궁궐의 돌을 한번 더 들여다 보는 사람을, 궁궐의 나무를 조심스레 헤아려

보는 사람을, 궁궐의 진짜 색을 상상해 보는 사람을 만나게 될것 같다. 이 책을 본 사람이라면 조만간

궁궐에 가보고 싶어 질것이다. 이쯤되면 저자의 궁궐 영업은 성공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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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자본주의 시대 - 권력의 새로운 개척지에서 벌어지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투쟁
쇼샤나 주보프 지음, 김보영 옮김, 노동욱 감수 / 문학사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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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이은 기념비적 저작이라 칭송 받으며

현대의 국부론이라 불리는 소샤나 주보프의 <감시자본주의 시대>를 만난다. 저자의 깊이와 설득력,

해박한 식견은 어려울 수도 있는 이 책을 잘 읽히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경제적 철학적 함의를

통해 디지털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침해 당해야 하는 우리에게 훌륭한 자기방어

수단을 제공한다. 특별히 주보프 특유의 지적 엄격함은 자칫 편향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장에 균형을

맞춰 위험하리만큼 비인간적인 이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며 우리의 미래에 대해 진솔함을 더한다.

이 책을 처음 접하며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에서 그려낸 전체주의 사회에서의 '빅 브라더

Big Brother'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편재된 감시 및 세뇌 체제를 동원해 모든 이의 사고 방식을 획일화시켜

그 구성원들을 조직의 일원으로 만드는 장면들이 생각났다. 폭력조직 내에서의 인간은 '조직의 일원'이

되고, 빅 브라더 내에서의 인간은 큰 기계 속 톱니바퀴와도 같은 '빅 브라더의 일원'이 된다. 그러나

주보프는 이 책에서 감시자본주의를 빅 브라더 체제의 정 반대에 서 있는 체제로 통찰한다.

감시자본주의 체제는 단순히 우리의 정보를 빼내서 팔아 먹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정보를 통해 우리의

행동을 수집하고, 분석하고, 범주화하고, 예측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함과 동시에 우리의 행동을 유도하고,

통제하고, 조정하고, 조건화한다. 예로 우리가 구글을 검색함은 우리가 구글의 검색과 수집 대상이 되는

역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즉, 감시자본주의 체제하의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엄한 인간이 아니라,

수집 당하고 검색 당하는 데이터이자, 타인의 이익을 위한 감시 자본이며, 감시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된

꼭두각시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이것이 주보프가 말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테크놀로지의

역설이다.

주보프가 빅 브라더의 반대편에 서있는 이유는 '극단적 무관심 radical indifference' 때문이며 그는

자본주의 감시체제를 '빅 아더 Big other'라고 칭한다. 즉 '극단적 관심'을 통해 타인을 쇄뇌화시키고,

훈육하고, 강제하여 '자기 편' 혹은 '빅 브라더'로 흡수시키려는 빅 브라더 체제와는 달리, 감시자본주의

체제는 '무관심'의 논리를 내세워 인간을 '타자화 otherize'한다. 빅 브라더가 극단적 뜨거움이라면

'빅 아더'는 극단적 차가움이다. 빅 아더의 관점에서 우리는 오로지 다른 개체, 행동하는 유기체인 뿐이다.

크건 작건, 약하건 선하건, 여기에 브라더는 없다. 화목한 가족이건, 지겨운 가족이건, 가족의 인연 따위도

없다. 인간을 부단히 '타자화'시키고, 빅 아더와 타자화된 인간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성도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인간 자체보다 오로지 데이터와 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패턴이 중요한데, 주보프는 인간을 마치

상아만 빼앗기고 죽임을 당해 버려지는 코끼리에 비유했다. 섬뜩하다. 그러나 이미 이것은 현실이다.

저자는 '산업 자본주의에게 정복당한 자연은 말을 할 수 없었다'고 전제하며 인간의 본성을 정복하려는

자들에게 그들이 노리는 희생양들에게도 우렁찬 목소리가 있음을 일깨우며, 그 위험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게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데에 '이제 그만' 이라는 동 베를린 사람들의

외침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인류 속에서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의 주체이자 저자가 될 수 있는 작은

외침인 '이제 그만'. 이것이 우리의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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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 2 : 저세상 오디션 (특별판) 특별한 서재 특별판 시리즈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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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회귀 본능처럼 마지막으로 가야할 곳이 어딘지 아는 지혜를 지녔고, 기다림에 지쳐 금쪽같은

자신의 시간을 버린 무경우를 이야기 하는 지혜도 지녔지만 6월 12일 광오시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13인의 인간들은 주어진 시간에 '무책임'한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심판'을 앞두고 있다.

나일호. 현제 나이 16살, 남은 시간 오십팔년, 하루하루 별일 없이 지나가기가 삶의 계획인 정말

무계획한 아이, 지긋지긋한 아침 징크스를 가졌고 세상 억울한 일은 혼자 다 당하는 듯(하긴 변기 속

이름모를 오줌도 본인 오줌이라 오해를 받긴 한다) 세상 억울한 이 아이와 12명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들어 있고 그 이야기는 10번의 오디션을 통해 상세하게, 흥미롭게,

진지하게 소개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심지어 본인의 의지가 아님에도 공평하며 아직 남은 삶이 많으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에도 공평하다. 그 공평함이 어쩌면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될 지도 모른다.

동일하게 주어지는 또 하나인 시간때문이다. 시간 역시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군 더 갖고 누군

덜 갖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 24시간, 1440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다. 다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그 사람의 삶의 질과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카이로스의 삶이

또 어떤 이에게는 크로노스의 삶이 된다. 물론 그 결정은 본인이 한다. 무의미하고 지루한 시간이 될지

다이나믹하고 흥미로운 시간이 될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

착각.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들에게 마천은 세상을 떠나면 문제가 해결되고 안락하고 편안한 세상으로

단숨에 갈 수 있을것이라는 착각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멍청하고 무서운 선택이었는지 말하며 오디션에

연거푸 탈락하여 의기 소심해 있는 이들에게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걸 불가능 하다고 여기지 말고

낙타의 몸을 줄이든지 바늘구멍을 넓히든지 방법을 찾아 보라고 한다. 그렇다. 어떤 식으로든 살려고

발버둥 쳐야 하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 이는 지금 이곳에서나 거기 그곳 모두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선택을 마지막으로 모든게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에게는 더욱

가중돼서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사라져버려 더 이상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것, 기대와 가치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리기

전에 제대로 살아야겠다. 오늘이 힘들다고 해서 내일이 힘들지는 않고, 오늘이 불행하다고 해서

내일까지 불행하지는 않다. 견디며 또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절대 뒤돌아 보지 말고 앞만 보고 걸어야

한다. 그 길에서 언젠가는 만나게 될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조를 꿈꾸는 여우 무호를 만나게 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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