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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자본주의 시대 - 권력의 새로운 개척지에서 벌어지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투쟁
쇼샤나 주보프 지음, 김보영 옮김, 노동욱 감수 / 문학사상사 / 2021년 4월
평점 :
애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이은 기념비적 저작이라 칭송 받으며
현대의 국부론이라 불리는 소샤나 주보프의 <감시자본주의 시대>를 만난다. 저자의 깊이와 설득력,
해박한 식견은 어려울 수도 있는 이 책을 잘 읽히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경제적 철학적 함의를
통해 디지털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침해 당해야 하는 우리에게 훌륭한 자기방어
수단을 제공한다. 특별히 주보프 특유의 지적 엄격함은 자칫 편향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장에 균형을
맞춰 위험하리만큼 비인간적인 이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며 우리의 미래에 대해 진솔함을 더한다.
이 책을 처음 접하며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에서 그려낸 전체주의 사회에서의 '빅 브라더
Big Brother'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편재된 감시 및 세뇌 체제를 동원해 모든 이의 사고 방식을 획일화시켜
그 구성원들을 조직의 일원으로 만드는 장면들이 생각났다. 폭력조직 내에서의 인간은 '조직의 일원'이
되고, 빅 브라더 내에서의 인간은 큰 기계 속 톱니바퀴와도 같은 '빅 브라더의 일원'이 된다. 그러나
주보프는 이 책에서 감시자본주의를 빅 브라더 체제의 정 반대에 서 있는 체제로 통찰한다.
감시자본주의 체제는 단순히 우리의 정보를 빼내서 팔아 먹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정보를 통해 우리의
행동을 수집하고, 분석하고, 범주화하고, 예측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함과 동시에 우리의 행동을 유도하고,
통제하고, 조정하고, 조건화한다. 예로 우리가 구글을 검색함은 우리가 구글의 검색과 수집 대상이 되는
역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즉, 감시자본주의 체제하의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엄한 인간이 아니라,
수집 당하고 검색 당하는 데이터이자, 타인의 이익을 위한 감시 자본이며, 감시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된
꼭두각시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이것이 주보프가 말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테크놀로지의
역설이다.
주보프가 빅 브라더의 반대편에 서있는 이유는 '극단적 무관심 radical indifference' 때문이며 그는
자본주의 감시체제를 '빅 아더 Big other'라고 칭한다. 즉 '극단적 관심'을 통해 타인을 쇄뇌화시키고,
훈육하고, 강제하여 '자기 편' 혹은 '빅 브라더'로 흡수시키려는 빅 브라더 체제와는 달리, 감시자본주의
체제는 '무관심'의 논리를 내세워 인간을 '타자화 otherize'한다. 빅 브라더가 극단적 뜨거움이라면
'빅 아더'는 극단적 차가움이다. 빅 아더의 관점에서 우리는 오로지 다른 개체, 행동하는 유기체인 뿐이다.
크건 작건, 약하건 선하건, 여기에 브라더는 없다. 화목한 가족이건, 지겨운 가족이건, 가족의 인연 따위도
없다. 인간을 부단히 '타자화'시키고, 빅 아더와 타자화된 인간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성도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인간 자체보다 오로지 데이터와 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패턴이 중요한데, 주보프는 인간을 마치
상아만 빼앗기고 죽임을 당해 버려지는 코끼리에 비유했다. 섬뜩하다. 그러나 이미 이것은 현실이다.
저자는 '산업 자본주의에게 정복당한 자연은 말을 할 수 없었다'고 전제하며 인간의 본성을 정복하려는
자들에게 그들이 노리는 희생양들에게도 우렁찬 목소리가 있음을 일깨우며, 그 위험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게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데에 '이제 그만' 이라는 동 베를린 사람들의
외침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인류 속에서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의 주체이자 저자가 될 수 있는 작은
외침인 '이제 그만'. 이것이 우리의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