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는 시간을 위한 말들 - 슬픔을 껴안는 태도에 관하여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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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힘들어요. 어리기 때문에 그런가요?'라는 마틸다의 질문에 '언제나 그래'라고 대답하는 영화

'레옹'을 만났다. 사는건 언제나 힘들다. 어릴땐 어린데로, 나이가 들어선 나이든 대로 힘들다.

그래서인지 의료사회학자 아서 프랭크는 인간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때 그 공통성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고통'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저서 '아픈 몸을 살다'에서 '나의 고통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다. 내 고통을 있는 그대로 목격 할 수 있을 뿐이고 고통이 치료될 수 있느냐와는 상관없이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 그것이 바로 '돌봄'이다'라고 말했다.

여행의 묘미는 우연과 여유다. 저자도 그랬던것 같다. 한때는 출발부터 도착까지 타임 테이블을 만들어

분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먹어야 할것, 보아야 할것등의 리스트를 준비해 마치 도장 찍듯이 다녔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떠난다. 딱 하나만 확인하고. 커피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지 혹은 스타벅스라도

근처에 있는지. 초라하고 남루하게 느껴졌던 어느 하루도(삿뽀로 편의점에서는 다들 그런가 보다. 나도

그랬다), 무척이나 화가나서 씩씩대던 날도(나도 타임테이블로 움직일땐 매번 싸웠던것 같다), 한 숨만

터져나오던 어느 밤도, 훗날에는 어떤 아름다움과 의미를 내게 선물할 지 모른다. 그래서 여행은 날마다

새롭다. 얼마전 들른 주문진의 좁은 골목길이 그랬다. 주문진을 백번은 넘게 다닌것 같은데 처음 만난

낯설음이었다. 길을 잘못 찾아 들어간 그 골목은 아직도 1980년대를 살고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힘겨운

시간을 견디는게 버거울 때면 그렇게 지금 여기가 아닌 먼곳을 내다보라고, 아주 예전의 여행들이 자꾸

말을 건다.'

이 책에서 최고의 인생을 만난다. 이도우의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 가겠어요'에 나오는 대화인데 책방

이름이 왜 '굿나잇 책방'이냐는 은영의 물음에 '글쎄.... 잘자면 좋으니까, 잘 일어나고 잘 먹고 잘 일하고,

쉬고 그리고 잘 자면 그게 좋은 인생이니까'라고 대답하는 은섭. 다시 '그게 다냐고' 묻고 '그럼 뭐가 더

있나? 그 기본적인 것들도 안돼서 다들 괴로워하는데'라고 답을 한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사는게

힘들어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쉬지도 못하고, 날 자지도 잘 일어나지도 못했다. 심지어 일도 제대로

못한다. 기본적인 생활조차 못하면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냥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러면서 '이 정도는 견뎌야지', '엄살 피우지마'하며 자신을 괴롭혔던 우리가 꿈꾸는 최고의 인생은

어쩌면 '잘 자고, 잘 일어나고, 잘 먹고, 잘 쉬고, 잘 일하고, 다시 잘 자는것'이 아닐까. 더 열심히, 더 힘을

내서가 아니라 '그저' '계속' 그렇게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평소처럼 똑같이 했는데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온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의 배우 오정세는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희망이라는 것을 준다.

'여러분은 모두 곧 반드시

여러분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힘든데 세상이 못 알아준다고 생각할 때 속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곧 나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요.'

물론 그 동백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그때까지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기다리는 일이 늘 그렇듯 지난하고 고단할 것이지만 언젠가 동백을 만날 수

있을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숨이 턱턱 막히고 한 숨이 터져 나와도 그렇게 다시 계속해서

걸어 가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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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의 마음챙김 - 출근 불안증, 무력감, 좌절감을 씻는 사무실 명상법
리 와이스 지음, 김영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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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직장인들의 희망이 '일과 삶의 균형'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분명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이고 결과는 매번 실패다. 저자는 이런 우리에게 일터에서 느끼는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곳을 환경을 바꾸는 자산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하며 '마음챙김'을 강조한다. 우리 대부분은

월급과 목적의식이라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은 생각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일에 온전히 몰두하지 않거나

더 나쁜 상태로 고통 받고 있다.

1972년에 등장한 '마음을 살핀다(Being mindful)'는 개념은 팀워크나 협상, 커뮤니케이션 등의 사교

기술인 '소프트 스킬'의 범주에 속하는 개인적 특성들 가운데 큰 뜻을 품은 리더들에게 영감을 주는

중요한 기술이다. 특히 이 개념은 대인관계 능력, 즉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 효과적으로 일하게 하는

것의 토대가 되는 사회적인 능력을 포착하는데 사용된다. 실제로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2015) 응답자 중 92%가 소프트 스킬이 기술적 스킬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여기에는 의사소통과 적응력, 창의력, 태도등이 포함된다. 티베트어로 심장과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가

같다. 그래서 마음챙김 수행이나 전통적인 마음 수행법인 로종(logong)은 보통 '마음수련'으로 번역된다.

'처음에 잘하라'는 말은 원하는 결과에 맞춰 일을 어떻게 할지 목표를 세우라는 말이다. 목표와 방향이

분명해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 처음에 아주 조금 벌어진 틈은 나중에는 대처가 불가할 정도로 크게

다가온다. 그만큼 목표와 방향은 중요하다. '도중에 잘하라'는 말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목표와 방향을

제대로 정했으면 명확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갤럽의 연구에서 드러난것처럼 직장인의 1/3은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고 16%는 '일부러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51%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 직원'이라는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다. '끝에 잘하라'는

말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반성하라는 의미이다. 처음 시작부터 일을

끝나는 순간까지 일은 연속 선상에 있고 연속되는 피드백의 순환 고리다.

우리가 어딘가 뛰어 들기 전에 잠깐 멈출때와 마찬가지로 뛰어든 다음에 잠깐 멈추는 데에는 한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영향은 크다. 천천히 가기 위해서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생각과 감정,

상황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인식하기 위해 잠깐 멈춘다. 우리는 완벽해지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연습을

하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완벽과 거리가 먼지도 알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위험을 감수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획기적인 혁신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는 혁신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고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에 실수 혹은 실패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실패를

전제에 두고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반성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reflection'에는

'빛이나 열, 소리를 흡수하지 않고 반사하는 것'이라는 의미와 '깊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숙고하는 것'

이라는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 반성에서 과거를 돌아 본다는 것은 현재의 사건에

자신의 과거와 두려움과 추정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인식하고 그 사건을 좀 더 명확하게

바라보며 능숙하게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반성을 할 때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일상적이고 불완전하며

편향된 관계가 아닌 더 깊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두려움에 맞서는 것은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심지어 그것을 향해 한 걸음도 떼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저 두려움을 향하는 것이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갖고 행동하는 연습을 많이 할 수록 더

능숙해진다. 용감한 성격을 가지려면 끊임없이 용기라는 근육을 강화해야 한다. '용감한 행동을 함으로써

용기를 함양한다(아리스토텔레스)'. 우리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목표를 갖고 일하며 궁극적으로 의미있는

삶을 영위하면서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하나의 작품이 될것이기에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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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 - 일러스트레이터 배현선의 사는 마음
배현선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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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는 결코 정적인 운동이 아니다. 실제로 한번 이라도 요가를 제대로 해 본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말을 못한다. 저자의 말처럼 살면서 한번도 어렵게 느껴본 적이 없는 '숨을 들이 쉬고

내쉬는 것'조차 요가라는 이름이 붙으면 생경해지고 어렵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런 힘든

과정을 거치면 몸도 마음도 정신도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주 천천히지만.

시간이 쌓여 가면 갈 수록 조금씩 몸이 반응을 한다. 부드럽고 단단해지고 유연해진다. 저자도

그걸 느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몸과 마음의 실체는 같다. 육체와 정신은 하나로 이어져 있고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은 어느덧 하나 빠뜨릴것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욕심도 많고 탐욕스러운 우리에게 '비움'은 어렵다. 채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덜어내고

비워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곳은 넓고 좁고,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냐 아니냐의 문제다. 그래서인지 유럽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다. 이태리의 테라스가 그런 경우다. 정말 사람 한 명 앉으면 움직일 공간이 없는

작은 테라스지만 그곳에 의자를 놓고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그곳은

해방구다. 저자도 그랬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통유리에 노란 조명, 원목을 사용하여

아늑한 분위기의 인테리어, 정사각형의 하얀 테이블, 제스퍼 모리슨(20세기 기능주의 디자인의

맥락을 세련된 형태로 재해석하는 영국의 산업 디자이너)과 미사키 카와이(일본 현대 미술가)의

대형 포스터가 있는 '그 곳'. 어느것 하나 도드라지거나 튀는 것 없는 공간과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음악, 나긋나긋한 인상의 주인장, 이 모든것의 조화가 공존하는 그곳은 저자의 해방구다. 더불어

커피도 맛있다. 요즘 '스세권'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스타벅스 인근이라는 의미의 스세권은

커피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 역시도 낯선 곳을 여행

할 때 스타벅스 유무부터 확인 한다. 혼자 있어도 전혀 외롭지 않은, 오히려 혼자여서 더욱 좋은

그 시간을 누리는 그곳은 자유와 해방의 성지다.

저자는 히말라야 고산지대 트레킹의 짐꾸리기를 통해 '버림'과 '덜어 냄'에 대해 배웠다.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해서 꼭 그것이 행복이나 커다란 가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겁게 짊어지고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생각보다 삶에서 버리고, 줄이고, 내려놓아도 되는 것들이 많다. 억지로

지고 있는 짐들을 조그만 내려 놓아도 우리의 걸음은 훨씬 가벼워 질것이다.

저자의 일러스트에 필름의 감도(ASA100,200,400)를 구분해 놓고 로모 LC-A를 아는 것으로 보아

저자는 분명 사진을 잘 찍을 것 같다. 다음에는 직접 찍은 사진도 몇장 첨부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여러가지 물건과 얽힌 이야기들을 읽느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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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구마 겐고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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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호모 노마드(Homo nomad)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호모 에랙투스, 호모 사피엔스를 이은

이동하는 존재라는 의미의 호모 모벤스(Homo movens)를 지나 정착생활을 하지 않는 유목형 인간

즉, 호모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다고 정의한다. 물론 나는 별로 동의 하지 않는다. 저자도 그런것

같다.

저자는 자신을 이동하는 동물이 아닌, 흔적을 남기고 살아 간다는 의미로 '나무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나무는 존재 자체가 그때까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다. 나무의 대부분은 나무의 줄기를 구성하는

리그닌(lignin)이라는 물질로 흔적을 남기는데 흔적이 구조물로 남아 유지되면서 현재의 활동을 지원해

준다. 저자는 이러한 흔적에 집중하며 '장소와 흔적'에 대해 근현대 건축사와 종교 미학과 자신의 건축

철학을 가미하여 다채롭게 이야기한다. 모더니즘 건축과 깔뱅파라는 신학 사조와의 관계와 이로 인한

이동들은 미처 알지 못하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과 모더니즘 건축의 조합이라니 말만

들어도 신기하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독일의 철학자, 저서인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는

일을 구별하는 데에 있어서 따져보아야 할 것은 '존재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태라고 말하며 존재에 눈을

떠야 한다고 주장함)는 '건축한다. 생활한다. 사고한다'라는 강연에서 '건축은 다리다'라고 말했다. 다리라는

표현은 건축은 반드시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건축은 여러개의 받침점을 전제로

삼고 있다는 관점에서 하이데거의 비유는 탁월하다. 가늘고 길어도, 아무리 높아도 여러개의 받침점들이

없으면 건축은 지어질 수 없다. 저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굴'로 연결한다. 굴은 체험하는 장소, 현상학적

존재인 것 이상으로 이곳과 저곳을 연결한다. 굴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굴 저편에 무언가

존재하며 굴은 그곳까지 뚫려 있고 왼쪽에 있는 공간과 오른쪽에 있는 공간이 굴을 매개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굴은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회와 사회를 겹겹이 연결한다. 굴은 동굴처럼 닫힌 것이

아니라 공동성을 환기시키는 밝고 열려 있는 곳이다.

예전에 강릉에 있는 SEAMARQ 호텔 개관식에서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 백색의 건축가라 불리는

명료와 세련미의 대가)가 했던 말을 이 책에서 다시 만났다. '건축의 기본은 거부권입니다'. 단지 현상의

일부를 긍정하는 '좋다'는 보수주의의 별명이며 거기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부는 다르다. '이건 아닌데' 혹은 '이건 마음에 들지 않아'라는 마음은 현상에 대한 부정이다. 그 거부하는

자세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것, 지금까지의 세상에는 탄생하지 않았던 것이 탄생한다.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끊임없이 'No'를 외치는 자세가 중요하다.

버나드 리만(Bernhard Riemann, 수학자)의 '지금까지 시대는 크기를 추구하며 달려온 시대다'는 말은

경제도 학문도 문화도 모두 크기에 집중하고 신봉했던 우리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작은 시간에 발생하는

작은 변화량에 착안하여 변화와 운동의 본질을 파악하는 미적분 방법에서 그는 거대한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도시에도 바람이 불며 비가 내리고 이웃이 있다. 이것만으로 자연은 충분히 존재한다는 의미다.

'나'라는 확고한 존재는 없다. 수많은 '작은 것'들이 모여있는 것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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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을 일으켜 세우는 심리학 - 모든 일에 무기력한 당신이 열정을 불태우게 되는 비법!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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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다 보면 '모든 게 귀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고 그때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무기력은

권태로 이어지는데 권태란 무슨일에도 관심이 없어져서 싫증이나 게으름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런 권태가 예전에는 노년이나 중장년 층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했는데 요즘은 젊은층에게도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여 매사에 무기력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에게 자신이 가진 의욕을

잃어버려 만사가 귀찮다고 느끼는 감정을 사멸시키는 태크닉 몇가지를 전한다.

심리학에 '스며듦 현상'이 있다. '스며들다'란 말은 '밖으로부터 배어들다' 또는 '밖으로부터 흘러들다'

라는 말이다. 뜻에서 알수 있듯이 밖에 있던, 원래 나와는 상관 없던 것이 나에게 온 것을 뜻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외부로부터 오는 것에 그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기에 경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 경계심이 풀렸을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금씩 수용하다 그것에 빠져들면 삶은 이내

그것에 허우적대기 마련이고 때론 그 스며듦은 광기(몇몇의 정치인들이 주로 사용했다)가 된다.

우리의 의욕과 삶에도 이 스며듦이 작용한다. 나쁜것은 나쁜 것 대로 좋은 것은 좋은 것 대로 우리는

스며듦을 경험한다. 저자는 이 스며듦을 이용한 권태 탈출을 제안한다.

어떤 일이든 생각의 변화 하나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 가령 어려운 처지에 몰리게 되면 자신을 절대로

도망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더 이상 무조건 어떤 일이 있어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상황으로 만들어 버리면 무슨 일이든 할 수 밖에 없어진다. 이를 '사전 조치 전략,

precommitment strategy'이라고 한다. 호메로스Homeros의 '오딧세이 The Odyssey'에서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배의 돛대에 묶었던 것이나 '모비딕 Moby Dick'의 작가 멜빌이

집필을 위해 자신의 몸을 책상에 꽁꽁 묶었던 것들이 대부분 사전 조치 전략의 일환으로 자신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 넣고 주어진 일을 끝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기한을 설정하면 마감 시간이

다가올수록 자신을 재촉하는 힘이 강해져서 목표 달성을 위한 에너지가 끓어 올라 동기부여가

높아진다는 '데드라인 러쉬 deadline rush'와 맥을 같이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의욕이 생기지 않을 때는 일을 그냥 내던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로 전환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다른 어떤 일도 할 만한 것이 없는 경우라면 그냥 휴식을 취하는 편이 좋다.

단지 너무 지겨워서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기 위한 변명으로 피곤하다고 말하는 것일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는 의욕을 잃은게 아니라 지겨워졌을 뿐이다. 지겹기 때문에 의욕을 잃은 것

처럼 느끼는 것이다.

심리학자인 저자도 결국 이렇게 말한다. '땅에 떨어진 의욕을 일으켜 세우는 힘은 당신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다.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인 것이다. 인생은 어쩌피 내가 사는

것이고 그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우린 그 인생의 길 위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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