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 - 일러스트레이터 배현선의 사는 마음
배현선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요가는 결코 정적인 운동이 아니다. 실제로 한번 이라도 요가를 제대로 해 본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말을 못한다. 저자의 말처럼 살면서 한번도 어렵게 느껴본 적이 없는 '숨을 들이 쉬고

내쉬는 것'조차 요가라는 이름이 붙으면 생경해지고 어렵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런 힘든

과정을 거치면 몸도 마음도 정신도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주 천천히지만.

시간이 쌓여 가면 갈 수록 조금씩 몸이 반응을 한다. 부드럽고 단단해지고 유연해진다. 저자도

그걸 느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몸과 마음의 실체는 같다. 육체와 정신은 하나로 이어져 있고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은 어느덧 하나 빠뜨릴것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욕심도 많고 탐욕스러운 우리에게 '비움'은 어렵다. 채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덜어내고

비워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곳은 넓고 좁고,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냐 아니냐의 문제다. 그래서인지 유럽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다. 이태리의 테라스가 그런 경우다. 정말 사람 한 명 앉으면 움직일 공간이 없는

작은 테라스지만 그곳에 의자를 놓고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그곳은

해방구다. 저자도 그랬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통유리에 노란 조명, 원목을 사용하여

아늑한 분위기의 인테리어, 정사각형의 하얀 테이블, 제스퍼 모리슨(20세기 기능주의 디자인의

맥락을 세련된 형태로 재해석하는 영국의 산업 디자이너)과 미사키 카와이(일본 현대 미술가)의

대형 포스터가 있는 '그 곳'. 어느것 하나 도드라지거나 튀는 것 없는 공간과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음악, 나긋나긋한 인상의 주인장, 이 모든것의 조화가 공존하는 그곳은 저자의 해방구다. 더불어

커피도 맛있다. 요즘 '스세권'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스타벅스 인근이라는 의미의 스세권은

커피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 역시도 낯선 곳을 여행

할 때 스타벅스 유무부터 확인 한다. 혼자 있어도 전혀 외롭지 않은, 오히려 혼자여서 더욱 좋은

그 시간을 누리는 그곳은 자유와 해방의 성지다.

저자는 히말라야 고산지대 트레킹의 짐꾸리기를 통해 '버림'과 '덜어 냄'에 대해 배웠다.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해서 꼭 그것이 행복이나 커다란 가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겁게 짊어지고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생각보다 삶에서 버리고, 줄이고, 내려놓아도 되는 것들이 많다. 억지로

지고 있는 짐들을 조그만 내려 놓아도 우리의 걸음은 훨씬 가벼워 질것이다.

저자의 일러스트에 필름의 감도(ASA100,200,400)를 구분해 놓고 로모 LC-A를 아는 것으로 보아

저자는 분명 사진을 잘 찍을 것 같다. 다음에는 직접 찍은 사진도 몇장 첨부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여러가지 물건과 얽힌 이야기들을 읽느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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