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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잘레스 씨의 인생 정원 -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배운 삶의 기쁨
클라우스 미코쉬 지음, 이지혜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5월
평점 :

해고, 쉼, 시골 마을, 80, 텃밭, 단순, 자유, 느리게 사는 법....
저자가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화두이다. 속도 만이 살 길이 되어 버린
무한속도경쟁 사회에서 슬며시 혹은 억지로 발을 빼서 느리지만 누구보다 알차게,
느긋하지만 누구보다 정확하게, 자유롭지만 나름의 규칙과 방법으로 체계적인 삶을
살아 가는 것, 어쩌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꿈꾸는 은퇴 후 설계의 대표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넘어지는 거야'
십여년전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불던 시절, 대학 졸업 후 한 직장만 다니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해고를 당했을 때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오지랖 넓게 내가
했던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그땐 나름 멋진 말을 했다고 자찬하며
우쭐거렸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달아 오른다. 다행히 그 친구는 몇 달후 다른 직장에
더 좋은 조건으로 입사했다. 그렇다. 우리는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먹고 산다.
그 경험치가 내 스펙이 되고 경쟁 무기가 된다. 실패도 해봐야 하고, 좌절도 겪어 봐야 하며,
이와 맞서 기쁨과 쾌락도 누려봐야 한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맛있는
녀석들'에서 출연자(우리는 그들을 뚱4 혹은 뚠뚠이들 이라 부른다)들이 외치는 구호가
하나 있다. '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 먹어 본 자 만이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림의 떡은 그림일
뿐이다. 눈 앞에 아무리 산해진미가 놓여 있어도 먹어 보지 않으면 그 맛을 못 느끼듯이
우리의 인생은 경험한 만큼 누리고, 경험한 만큼 얻을 수 있다. 먹는 것에도 선택이 존재한다.
먹느냐 마느냐는 갈림길에서 먹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 그 맛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이 인생의
갈림길에서 경험해보는 것을 선택한 사람은 그 삶의 참 맛을 알게 된다. 그 맛이 어떨지라도.
앞만 보고 달려와 인생에 모퉁이도 샛길도 굴곡도 없고 반항이라곤 모르고 정도만 걸어 온
모범가의 전형인 은행 투자 상담원 니클라스(처음인 니콜라스인줄 알았다). 농담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은행 지점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고 충격을 잊고자 휴식을 겸한 탈출을 감행해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작은 해변 마을인 에스테포나로 향하고 그 곳에서 만나는 이들과의
생활을 통해 그의 삶의 한 조각을 만들어 간다.
이 책에서 반가운 이름 두개를 만났다.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 공항(말라가 공항). 몇 년 전
태양 해변이라는 의미를 가진 스페인 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인 코스타델솔을 가기 위해
들렀던 이곳에서 기상악화로 무려 17시간을 공항 바닥에서 뒹굴렀고 이때 같이 공항 바닥을
온 몸으로 뒹굴러 다녔던 독일 친구들과 남은 일정을 같이 할 수 있었던 추억의 장소가 바로
피카소 공항이다. 그때 우리를 상그지 꼴로 만들었던 그 녀석이 바로 '레반테'라는 이름을
가진 강하고 습한 바람이다. 축구 팀의 이름이기도 한 이 녀석은 저자의 말처럼 자연의
위대함과 공포를 동시에 실감나게 해줄 정도로 강력하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레반테가
등장하면 상점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가 은둔을 시작한다.
그렇게 에스테포나에 머물게 된 니클라스는 운명처럼 곤잘레스씨를 만난다.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담은 듯 그윽한 눈을 가졌고, 태어난 곳에서 100km 이상 벗어나 본적이 없음을 당연한듯
말하며, 흙에서 자랐기에 발 밑에 단단한 땅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손가락이 식물의 뿌리처럼
흙 속으로 파고 들 때 세상 만물과 맺어졌다고 말하며, 흙이 자신의 집이고 자신의 땅과 자신은
하나라고 생각하는 곤잘레스씨와의 만남은 그에겐 행운이었다.

삶을 살아가는데 굳이 복잡할 필요도, 빠를 필요도 없이 자신의 속도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곤잘레스씨의 모습에서 느리게, 천천히, 그리고 계속 자신의 길을 걷던 옛 현인들의 모습이
스쳐간다. 흙을 사랑하기에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기에 자연이 준 선물들의
가치를 알고 그렇기에 더 가지려고도 더 쌓으려고도 하지 않고 일상에 감사하는 안분지족의
삶을 사는 그가 부러워졌다.

곤잘레스씨의 정원에서 배운 겸손을 바탕으로 한 수용과 신뢰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억지로
버티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력적인 자연의 힘을 이해하지 않고는 현재를
수용하거나 다가올 일을 신뢰하기가 불가능하고 신뢰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갖춘 사람만이
여유를 품을 수 있다.
끝으로 곤잘레스씨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마지막 조언을 적어 본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 가짐이라고 생각하네. 끊임 없이 배움을
즐기고, 낯선 것을 대할 때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을 품게나. 두려움은 행복의 가장 큰
적이거든. 중요한 것은 결국 그거 아닌가. 행복하게 사는 것 말이야.'
곤잘레스씨를 만나 니클라스는 정말 행복한 행운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