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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믿음을 찾아서 - 미지의 섬이 확신의 섬으로
앨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분의 은택을 아는 일이지 그분의 본성과 성육신 방식을 추측하는 일이
아니다. P227
너희는.....너희를 낳은 하나님을 잊었다. P131
'복음주의와 기독교'에서 만난 저자는 불 같았고, '알리스터 맥그레스의 기독교 변증'에서 만난
그는 지독한 이상주의자였으며, '회의에서 확신으로'에서 만나는 저자는 철저한 복음주의자였다.
이번엔 어떤 모습의 그를 발견하게 될지에 대한 가득한 흥미로움과 그의 방대한 지식의 양을 쫓아
가야 한다는 또다른 부담감으로 이 책을 접한다.
'믿음'이라는 미지의 발을 내딛다'라는 프롤로그의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또 어떤 역설적 표현으로
우리를 뒤 흔들어 놓을지 기대감은 점점 증폭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관대한
기독교 정통을 제시하며 '신경(혹은 신조)를 우리가 길을 찾도록 돕고 무엇을 찾아야 할지 말해주는
지도로 보며 이 안내서를 통해 '신앙'(믿음)이라는 섬의 묘하고 매혹적이고 때로는 압도적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대학원 시절 배웠던 '메타노이아(metanoia)를 다시 만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회개(repentance)라고
이해하고 번역하지만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지성의 완전한 변화, 즉 정신을 돌이키는 것, 혹은 생각하는
방식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조정해 그에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보고, 상상하고, 그 세계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분명 회개라는 표현은 미진하다. 진정한 의미의 메타노이아는
흥미로운 대상을 향한 돌아섬을 넘어서 완벽하게 그와 같아지려는 심적 얼망이고 간절한 바램이며 그에
따른 적극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신경은 '나는 믿습니다'로 시작된다.
저자는 이 말을 근거로 믿음의 대상, 주체, 본질, 방향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
이야기'의 일부가 되겠다는 결심이다. 우리가 입버릇 처럼 혹은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믿습니다'는
사실 엄청난 책임과 의무를 가진다. 철저하게 나는 그의 것이라는 전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것'이라는 것은 나의 존재의 의미를 밝혀준다. 나의 소유와 모든것의 주인은 이미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것이 아니기에 소유권을 갖기 위해 애쓸 필요도 과시할 필요도 없다. '전적인
의지'와 '내어 맡김'만이 필요 할 뿐이다. 믿음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내것이 아니면서 내것인양
우쭐대는 어리석은 방종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청지기일 뿐이다. 주인이 맡기고
허용한 것을 소중하게 아끼고 잘 사용하면 된다. 자연이 그렇고, 사람들이 그렇고, 물질과 지혜가 그렇다.
저자는 이에 대해 자신의 피난처, 영혼의 안전한 닻, 세상을 보는 이치에 맞는 방식, 버티고 견딜 수 있는
굳건한 기반을 발견했음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선언'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 온다. 성경적 의미로
선언은 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인데 그 시절 이러한 행동은
죽음을 각오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어쩌면 세상이 볼때 너무도 무모한 일이었으나 정작 본인들에게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실제로 신경에 쓰여진 라틴어
크레도(credo)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신뢰하거나 신용함, 그것이나 그를 확신함'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믿음을 인격적 헌신으로 보았다.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동의의며, 그것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이며, 우리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시고 붙드시는 우리를 변화시키도록 맡기겠다는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결단'이고 하나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자신을 내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헌신하시면서 동시에 우리에게도
헌신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믿음은 순종으로 이어지는데,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기꺼이
신뢰하고 복종하겠다는 의지가 순종이다.
'복음은 늘 동일하지만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 복음과 우리 사상계에
끊임없이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에밀 브루너의 말이다. 믿음은 성장해야 한다. 머물러
있는것은 퇴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년기의 단순한 믿음이나 과거에 가졌던 현상들에 집착하고
머무그 고 과거라는 향수에 젖어 현실앞에 무기력하고 나태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을 빌어 마르틴 루터의 파투키아(fiducia)보다는 우리가 신뢰하는 대상을 더 많이 이해하고
탐구하려는 욕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우리는 마음과 목숨 뿐 아니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부름 받았다.

이 책은 방대하다. 수없이 나오는 철학적 개념들과 깊은 묵상에서 출발하는 신학적 진술들은 '역시나'를
부른다. 종교적 위선을 말하고, 도덕적 타락에 분노하며, 지적 무지함에 경종을 울린다. 하나님을 거쳐
'vare Deus vere homo'인 예수에 대한 글과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에 대한 글이 이어지며
'아멘'으로 끝을 맺는다. 신경의 마지막 아멘은 우리가 사랑하고 신뢰하고 소망하는 대상을 마침내
보게 해 달라는 기도이며 그 기도가 응답될 때 우리의 믿음이 옳았음을 확인 할 뿐 아니라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룰것이다. 소개하는 글에 적혔듯이 '신비하고 매혹적이며 압도적인' 이 책을 신앙의 깊이를
더하고 싶은 열망이 강한 분들이나 신학생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신학전반에 대한 학술적 진술이
들어있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신앙의 성숙과 확고한 믿음의 토대를 마련하는 좋은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