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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시 - 아픈 세상을 걷는 당신을 위해
로저 하우스덴 지음, 문형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시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전혀 꿈꿔보지 못한 더 큰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시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아서 시를 쓰는 이의 내면이 깊고 높을수록
우리는 더 깊이 빠져든다. 시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이 의미있는 존재가 되게
만들고 내 안의 무언가를 깨워 내가 아는 나의 모습보다도 훨씬 진실한 스스로를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저자는 비록 지금의 인간 세상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한다.
'내가 바꾸려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인데'
W.B. Yeats는 시를 읽고 쓰는 것이 윤리적 행위라고 말하며, 먼저 시인이 강직함을
회복해야 하고 이를 통해 독자가 그것을 회복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시인 자신이 바로서야 하며 정직해야 하며 온전해야 한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것이기에 바르지 않은 삶은 그 시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시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더 이상 독자들이 시인의 글을 신뢰하지 않으며 공감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김남조 교수님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
'시는 시인의 가치다'
시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논리'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지성은 세상이 어떤 곳이며,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관해 단호하게 이야기하지만 역설은 우리의 상상력을
향해 말하며 우리를 다른 사고체계를 가진 존재로 일깨운다. '이것 아니면 저것,
둘 중에 하나만'이 아니라 '이것과 함께 저것도, 둘 다'를 말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지성'으로만 이 역설을 받아들일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역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현실 그 너머의 무엇을 그리게 하고, 상상 그 이상의
현상에 대해 꿈꾸게 하고, 가치 그 이상의 미래를 바라보게 하며,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지성'에 의해 잘 지내게 되는 것이다. 잘 지낸다는 것은 사적인 삶과 더불어 눈물을 참고
희망을 품으면서 큰 그림을 바라보는 것이다. 가슴 속 심장 박동 소리처럼 울려퍼지는
그 소리를 듣는 것이다.
아주 반가운 싯구를 만났다. 언젠가 KTX 안에서 읽은 잡지에 실렸던 글인데 싯구는
기억이 나는데 도통 누구의 작품인지 생각나지 않았던 글과 시인을 여기에서 마주했다.
'그가 나일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오미 쉬하브의 시 '친절함'에 나오는
글이다. 마주친 그가, 스쳐 지나간 그가, 긴 밤 여행을 다니는 그가 다름아닌 나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친절함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인데 처음 이 글을 읽을 때도,
반갑게 다시 마주한 지금도 어렵다. 친절함은 분명 연습도 노력도 의지도 필요하다는것은
아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어렵다. 심지어 그 뒤에 나오는 말은 더 강력하다.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이지만 이게 정말 가능할까? 물론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분은 몸소 실천하셨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그런데 '친절함'은
여기에까지 미친다. 그래서 더 어려운 것이다.

오랜만에 좋은 시와 해설을 읽었다. 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충만한 상상력으로, 시에
익숙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훌륭한 읽을거리가 되어 주는 이 책은 분명 읽는 이를 위해
쓰인 책이다. 시는 어렵다는 공포에서 벗어나 가볍게 시작할 수 있으면서도 깊이를 갖춘
이 책,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