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당연함은 어쩌면 당연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페스트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각기 다르다.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현실로 맞닥뜨려 본 우리는 결코 어느편에도 설 수 없다.
단지 그들의 선택일 뿐이다. 랑베르로 대표되는 도피적 태도를 보이는
이들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하고 외면한다. 페스트는 우리의
죄에 대한 신의 징벌이니 달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파늘루 신부로
대변되는 초월적 태도를 보이는 이들, 삶은 원래 그런 거야.'라는 전제에
굴복하지 않는다. 비록 정말 삶이 무의미한 것이더라도,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내겠다는 부류들이다. 이들은 바닥에 눌어붙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삶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신기루일지라도 삶의 목표로 삼아
열심히 허우적대는 삶을 선택한다. 무엇을 선택하건 자유다. 결단과
책임의 문제만 남는다. '단언하건대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각자 자신 안에
페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건데, 왜냐하면 실제로 아무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또한 잠시 방심한 사이에 다른
사람 낯짝에 대고 숨을 내뱉어서 그자에게 병균이 들러붙도록 만들지
않으려면 늘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단속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병균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