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거룩 - 신앙의 공회전을 멈추고 거룩으로
강정훈 지음 / 두란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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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있게 해주는 열쇠 구멍이다. P47

생활거룩으로 살아야 한다. P171

 

성화는 성품으로 시작하여 일상생활에서 드러나야 하고 성화가 드러나야 영역은 성격과

일상생활이다. 우리 성격이 십자가에서 계속 수술 받지 않고 입으로만, 교리로만 성화를 말하는

A. 토저의 말을 빌린다면 '종교적 소꿉 놀이' 불과하며 유치하게 짝이 없는 행동들이다. 


'이미' '아직'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믿었기에 '이미' 속하는 구원과 믿음 이후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아직'

속하는 구원. 솔직하게 말한다면 '아직' 아닌 희망사항에 불과 수도 있다. 믿기를 고백했기에

덧붙일 것이 없어야 하는 우리에게 구원을 볼모로 정체를 없는 제약과 제한들을 너무 많고

이는 개교회의 전반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성경 어디에 찾아봐도 구원의 다른 조건과 이유가

존재하지 않고 다른 이름 역시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면(믿으면) 된다. 저자는 부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이후' 대해 말한다. 애굽과 가나안 사이, 홍해와 요단강 사이로

통칭되는 간극에 '구원 이후' 존재 한다. 신분 만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회심과 바로서기를 통한 '제대로 ' '성화의 ' 그것이다. 


처음 책을 받으며 기대했다. 내가 익히 아는 분의 책이기에 그의 촌철살인과 같은 직언과 폭풍과도

같은 과감함과 무딘 심장을 쪼개고 들어오는 강력한 드릴과 같은 묵직한 울림을 알기에 더더욱

그랬다. '교회학교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 '신수성가' 이은 '생활 거룩' 제목부터

도전적이다. 그런 기대감과 들뜸으로 장을 열었다.


예상했지만 프롤로그부터 독설(아니 이건 째찍이고 바른 소리다)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다. 복음의

수성과 교회의 거룩성을 맞바꾼 현재의 결과를 말하는 '불편한 진실' 그렇고, 고신대 박영돈

교수의 '많은 이들을 구원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거룩하게 하는데는 실패했다' 말이 그렇고, '오직

믿음이 아닌 오직 말뿐'이라는 구호가 그렇고, 교회 교패는 많은데 신패(信牌) 없다는 말이 그렇고,

박영선 목사의 '세상 사람들에게 팔린다' 말이 그렇다. 여기에 파이퍼(John Piper) 목사의

선언은 결정적이다. ' 속에서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으면 지옥에 것이다'. 입만 거룩한 우리는

말에 충격도 받아야 하고 무릎도 꿇어 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개혁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에서 '칭의' 몰입한

나머지 칭의만능주의를 살고 있다.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된다는 은총의 교리이다. 여기에는 다른 어떤 것도 첨가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필요하다. 그런데 '칭의만능주의' 빠지다 보니 칭의의 본질인 '죄인되었던 우리' 잊어

버리고 자신이 정말 의인인양 착각을 한다. 더불어 착각은 타인을 향한 정죄의 무기가 되어 전가의

보도인양 마음대로 휘둘러 여기저기서 상처 받고 고통받는 이가 속출하고 결국 교회(믿음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떠나고 만다. 매일매일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쳐서 복종케 하는

회개의 진심으로 나아가야 성화에 가까워 지는데 회개는 없이 죄에 대해, 거짓에 대해, 가짜에 대해

스스로 타협을 버린다. 마치 중세교회의 그들처럼. 그래서 칼뱅(John Calvin) 이렇게 선언한다.

'성화 없이는 칭의도 없다.' 물론 성화는 칭의의 열매로 반드시 나타나지만 성화가 칭의의 어떠한

근거나 조건이 될수는 없다. 


성공회 대주교인 헤르스 코트 박사는 구원을 셋으로 나눈다. 이미 받았고 이미 완성된 영혼 구원인

거형 구원(I was saved), 지금 받고 있거나 혹은 받아 가고 있는 현재형 구원(I am being saved),

미래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미래형 구원(I will be saved)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것은 '현재형 구원'이다. 현재형 구원은 지금 이순간 이루어져가는 구원으로 삶에서 , 생활에서,

인격에서, 성품에서 이루어 내야 미완성의 구원이다. 사도 바울의 이에 대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빌립보 교인들과 지금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 한국교회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며 지식에만 집중되는 성경공부와 온갖 미신적 요소를

가진 주문을 외는 듯한 기도를 예로 든다. 실제로 교회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살펴 보면 교재

수준이 신학대학 수업 수준이거나 심한 경우 이를 뛰어 넘기도 한다. 여기에서 문제 하나가

발생한다. 성경공부 인도자(대부분 목회자 1) 내용을 충분히 그리고 정확하게

숙지하였느냐이다. 신학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들도 각각의 전공 분야가 있어서 자기 분야만

가르치는데 개교회 목회자가 무슨 만물박사도 아니고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고대근동문화,

고대역사, 지리, 거기다 문장의 해석에다 요즘에는 상담이나 심리학까지 등장하다 보니 어느것

하나 제대로 수가 없고 부실 밖에 없다. 가르치는 이가 부실하니 배우는 역시 부실하기

마련인데 평생 들어서 그런지 이런 저런 풍월은 많아 잘난척도 잘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말씀을 배우는 목적은 말씀을 제대로 배워서 말씀 대로 사는 것인데 제대로 배우지 못하니

제대로 수도 없다. 제대로 살아야 영향력도 미치고 방주도 될텐데 여전히 우리는 교회다니는

사람이니 '생활 거룩' 요원하다. 지식으로만 성장하고 연륜만 늘어가는 현대판 바리새인이 되어

가는 현실이다. 


하나의 문제는 기도다. 샤머니즘과 유교적 사상이 토대이기에 우리의 기도에 무속의식이 잠재해

있는것도 문제지만 기도의 본질에 대한 오해 역시 무시 못할 부분이다. 하나님은 '자판기' 아니다.

자판기에 일정한 돈을 넣으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처럼 기도를 이만큼 했으니까, 봉사를 이정도하니까,

헌금을 예배를 이렇게 하니까라는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는 잘못된 생각이 우리의 기도를

하늘나라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만든다. 주님의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말씀은 그냥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고 암송을 하라는 1차원적 요청이 아니라 '그렇게 살라' 강한 명령이다. 그렇게

기도하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것이 안되니 '생활 거룩' 수가 없다.

 

세상 사람들의 기독교 혹은 크리스천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다. '남과 다르다' 것이다. 지금 교회가

욕을 먹고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것은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이다. 같이 살아 보니 세상 사람이나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차이가 없기에 그들의 기대는 점점 교회로부터 멀어 진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명령하신 '거룩' 무게 잡고 어깨 힘주고 엄숙한 하는것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 생각, 행동, 삶으로 살아내는 '인데 거룩을 말로는 찬양으로는 쉴새 없이 부르지만

정작 중요한 '교회밖 거룩' 찾아 보기 어렵다. 저자는 이를 '신앙의 공회전'이라고 부른다. 이런

공회전은 연료만 낭비 뿐이다. 우리는 이런 공회전과 같은 게토(getto) 신앙에서 벗어나 '생활 신앙'

살아야 한다. 교회 자기들 만의 거룩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제대로 살아 내는 '생활 거룩'

살아야 한다. 


저자는 인생 1 밧단아람과 가나안에서의 130년과 인생 2 애굽에서의 17년을 이름마저도 '발꿈치를

잡는 '이자 희대의 사기꾼인 야곱의 등장시켜 그의 삶을 통해 개입하시는 하나님과 더디지만 성화의

길을 조금씩 이루어 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 같이 빨리빨리를 외치는 시대면 속터져

죽을 만큼 더디지만 탄탄하게 다지며 길을 걸어 나간다. 때론 흔들리기도 하고, 때론 넘어지기도

하지만 어느새 그는 부쩍 앞으로 나가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이제. 하나님의 도움으로 나는 자신이

것이다'라고 말한것처럼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이름을 밝힘으로써 에서라는 마음의 가면을 벗고

오롯이 야곱으로서의 삶을 산다. 결정권을 내려 놓고 바라보며 지켜보는 입장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깊게 하나님께 들어 간다. 야곱의 이상 에서 행세를 하지 않고 야곱으로 살때 비로서 성화가

시작된다. 


우리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 안에 가진 '그것(혹은 우상) 내려 놓아야 제대로 성화가 시작된다.

하나님 보다 앞서 있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그게 우리의 '에서'이다. 성화 없는 열심은 광신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성화 없는 우리의 신앙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폭주 기관차와 같다. '기독교인이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있게 해주는 열쇠 구멍이다' 최초의 미국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더욱

절실해 진다. 


책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초신자는 초신자대로, 오래 믿은 사람은 오래 믿은 사람대로, 사역자는 

사역자 대로 각각 자신에 상황에 맞춰서 읽는 다면 분명 도전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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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 정말 풀 수 있겠어? - 단 100개의 퍼즐로 두뇌의 한계를 시험한다! 이 문제 풀 수 있겠어? 시리즈
홀거 담베크 지음, 박지희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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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유난히 싫어했던 나에게 '수학의 '이라던가 '문제 풀이의 희열' 사실 그림의 떡이다.

저자가 도입부에서 제시하는 첫번째 두번째 문제 역시 그렇다. 첫번째 문제는 이미 답을 알고

있기에 굳이 원을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반감이 생겼고, 두번째 문제는 저자의 '지금은

까다롭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러나 아무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아하게 출구를 발견하는 경험을 가능한 많이

해보라는 말에 자극을 받아 문제에 도전해 본다. 나는 저자의 말처럼 수학을 좋아하고 머리쓰는

수수께끼 풀이를 즐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오기가 생긴다. ' 문제를 정말 있겠어?'라는

질문이 묘하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도발처럼 들린다. 이제 문제를 주시한다. 저자의 말처럼 충분히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생각한다. 그러나 계속 꼬이고 혼란스럽다. 문제의 내용을 정확히

분석하려고 해도 말이 같다. 그냥 밀고 나가 본다. 다시 벽에 부딪친다. 체계적으로

생각하라는데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체계적인 건지 모르겠다. 엎친데 덮친다고 이젠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주문하는데 머릿속은 이미 복잡하다. 나가 본다.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저자는 이를 창의적이라고 부른다) 길을 찾아 본다. 보는 시각을 바꾸고 구성을 달리 하라는

주문에 따라 생각을 정리해 본다. 생각이 너무 많이 나가 이제는 비틀기까지 해본다. 이번에는

앞에서 부터가 아니라 뒷문을 공략해 본다. 수납의 경험을 살려 정리를 하며 시도해 보고 도미노가

무너지듯이 연쇄적인 상상력을 통해 문제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저자가 주문하는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아쉽게도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다시 오기가 발동한다. 이건 정말 수학이 재밌고

문제풀이가 즐거운 사람들이 하는 놀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조금씩이라도 실마리가 보이는 것에

희망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 본다. 


장은 워밍업을 하라는 듯이 익숙하고 쉽다. 문제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린다. 창의력을 요하는 두번째 장에서 다시 커다란 벽을 만난다. 문제를 비틀어 본다. 정리도

해보고 깊이 생각도 본다.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문제라는물을 민낯이 드러나며 정체가 밝혀진다.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이 수학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희열이구나 하는 맛을 정말 조금 맛 보았다.


책에는 모두 100문제가 등장한다. 문제들은 나름의 제목을 가지고 등장하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라는 장에 등장하는 '미친 난이도를 가진 문제'라는 이름을 가진 문제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증명을 하라는데 감도 안잡히고 머릿속이 까매지고 뒷면의 답을 보아도 이해가 안된다. 결국

포기했다. 몇몇일에 걸쳐 문제를 풀어 봤고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풀고 이해했으나 결국 문제는

미완으로 남겨뒀다. 그러면서 저자가 한가지가 떠올랐다. '어느날 문득 불현듯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얼마만에 이렇게 집중을 해보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닫고 살았던 수학의 눈을 조금 열었고

깊은 어딘가에 감춰두었던 창의력의 샘에 물이 조금 고인 기분이다.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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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티, 유토피아의 시작 - 유튜브로 미리 보는 2025 라이프 스토리
정동훈 지음 / 넥서스BIZ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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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이 세계가 들썩거리는 '소비자 가전 전시회(Customer Electronics Show) 열린다.

가전이라는 이름을 가지지만 결코 가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역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음을 행사를 주관하는 협회 이름의 변천에서 있다. 1924년에는 '라디오 제조사 협회',

1950년에는 '라디오-텔레비전 제조사 협회', 1957년에는 '가전 산업 협회', 1997년에는 '소비자

가전 제조사 협회', 1999년에는 '소비자 가전협회', 2015년에는 '소비자 기술협회' 명칭이

바뀐다. 이는 시대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혁신 기술의 흐름과 공간과 시간의 확대를 의미하고

시장이 인간 중심, 가치 중심으로 변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저자는 이에 대해 공간의 확장과

생활혁명, 콘텐츠, 기술이라는 분야로 나눠서 이야기 한다. 


제목이 '스마트 시티'이다. 스마트 하다는 , 너무 포괄적인 의미라 집어 이것이 스마트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사전적 의미로 '맵시 좋은, 깔끔한, 똑똑한, 영리한' 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여기에 'city' 붙는다. 결국 도시가 맵시 좋고, 깔끔하고,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의미이다. 도시가

스마트하려면 필요한 몇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통신망이다. 긴박하게 움직여야 하는

수많은 기기들을 지연 없이 운용하기 위해서는 4 산업 혁명의 근간을 이루는 초고속 통신망인

5G 필수적이다.


스마트 시티, 자율 주행 자동차, 가상현실등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  혁신 기술의 대부분은 5G

전제로 한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5G 이동 통신에 필수적인 중대역(3.5GHZ대역) 초고대역

(28GHZ대역) 주파수 대역을 할당한 최초의 국가이기도 하며 2019 4 3 오후 11 세계

최초의 5G상용화 국가가 되었다. 5G 최대 다운 속도가 20Gbps, 최저 다운 속도가 100Mbps

이동통신기술로 1㎢ 반경 안에 있는 100만개의 기기에 사물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5세대

이동 통신 5G의 공식 명칭은 'IMT(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s)-2020'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현재 사용하는 LTE보다 20배 이상 빠르고 끊김없이 많은 기기를 연결 할 수 있고

지연 속도가 현저하게 낮기 때문에 자율주행이나 원격의료등 무지연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는

서비스에 최적화된 통신이다. 이제 우리는 '연결'의 시대를 넘어 모든 사람과 사물이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는 '초연결(Hyperconnectivity)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셜 미디어와 IT 디바이스의 발전으로 세계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된 초연결사회는 사회 불안과 사이버 범죄와 사이버 윤리 문제등으로 골머리를 앓게 될것이고

개인정보 보호와 투명성 보장을 위해 사회 규범이나 법규등이 개선. 강화되어야 할것이다.

 뿐만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4 산업 혁명을 준비했고 지금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독점

혹은 독식'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부분이다. 검색 엔진은 구글, 컴퓨팅 클라우드는 아마존과

MS, 사무용 소프트웨어는 MS, 스마트폰은 애플 삼성전자 화웨이 등이 세계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기반의 플랫폼 서비스 역시 부지불식간에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으며 이미

점령 당한 형편이다. 이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글로벌 기업들의 놀이터로

전락할 있음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앞으로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할 것이고 중심엔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존재할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것 처럼 산재해 있는 데이터들도 모으고 조합하고 나눠서

사용하는 현명함과 이를 토대로 인공지능을 운용하는 기술력을 가진다면 지금 우리가 꿈꾸는 것들이

현실로 이루어 지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미래는 우리에게 이미 와있다. 단지 모두에게 있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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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미담 - 주원장의 8체질 토크쇼
주석원 지음 / 세림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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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이란 속에 존재하는 장부(오장육부)들의 대소구조이다. 우리 몸은 오장(, 심장,

(췌장), 신장, ) 육부(, 소장, , 대장, 방광, 삼초) 있는데 기능별 세기의

크기가 각기 다르다. 


책은 재미있다. 무엇보다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간담이 서늘하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간뎅이가 부었다' 등과 같은 말이 오장육부에 해당하는 기관들의 활동을

토대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있었다. 특히나 (쓸개) 바로 뒤에 작은

주머니 형태로 달랑달랑 붙어 있는데 여기에 간에서 합성한 담즙을 보내서 저장하기에

담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쓸개즙을 저장하는 주머니라는 뜻이다. 이런 해부학적 특징

때문에 간신처럼 교활한 사람을 일컬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라는 속담이 나온 것이다. 


체질 의학은 한의학의 원조라고 하는 중국에도 없는 의학으로 이제마(1837-1900)선생이 창시한

우리 고유의 의학이다. 여기까지는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 이제마 선생의 이름 ''자가

'건널 제濟'이고 ''자가 ' 마馬' '제주도 '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뿐인가.

사상체질인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이 ,,신장,비장(췌장) 크고 작음을 기준으로

나뉘어 진다는 점과 8체질 의학의 권도원 선생의 이야기와 체질의학의 탄생 배경등 흥미진진한

내용들로 시간 가는 모르고 읽게 되었다. 물론 장을 거듭할수록 메모가 없이는 진도 나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지긴 하지만 역시 읽는 재미이다. 


또한 책의 표지에 있듯이 읽다 보면 자신만의 한의사가 옆에 있는 기분이 정도로 상세한

설명이 들어 있고 어렵다는 체질을 권으로 끝내 버린 저자가 감히 자부한다고 말하듯이

체질에 대해 조금이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면 책을 펼쳐 들면 된다. 체질별 특징에서 부터

식단에 이르기까지 망라 되어 있다. 


말미에 있는 '체질 자가 진단법' 쉽게 자신에 체질에 대해 알아 있게 설명되어 있다.

자가 진단법으로 진단해 보니 나는 '토양체질' 이다. 겨울에도 얼음을 좋아하고,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고,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속이 쓰리고, 평소 몸이 붓고, 소변 횟수가

잦고....체질의 특징에 해당하는 대부분이 일치한다. 단지 아쉽게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감자,

옥수수가 해로운 음식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과유불급'이라는 해결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나의 체질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해로운 음식과 이로운 음식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조심스러운 섭식을 통해 건강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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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 우아하고 지혜롭게 세월의 강을 항해하는 법
메리 파이퍼 지음, 서유라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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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지혜롭게 세월의 강을 항해하는 방법'

나이가 들수록 우아해지기는 어렵다. 우아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인데 세상 좋은 말은 갖다 붙인것 같이 좋은 말이다. 중년 혹은 노년의 여인에게

우아하다는 말은 가장 듣기 좋은 칭찬 하나 것이며 노년을 우아하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중년의 여인들 모두가 기대하고 꿈꾸는 미래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녹녹히 않아서

우리에게 쉽게 '우아한 노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나이가 들어가면 점점 주변의 시선에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점점 두려움도 많아지고 현실 앞에

서는게 주저해지고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도 생기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염려가 몸을

조여 온다고 한다. 이런 노년들에게 저자는 무심코 한마디 던진다.

 "걱정할 필요 없다"


노년이 주는 가장 선물 하나는 진실성(authenticity) 찾을 가능성과 문학평론가인 마가렛

풀러가 '빛나는 자기 주권(Radiant Sovereign self)'이라고 불렀던 두려움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나아갈 있는 능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갖게 인생의 여정 내내

지니고 살아 왔던 거짓 자아와 이별하고 '진짜 ' 찾게 되는 것이고 내면의 깊은 곳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을 있는 잠재력을 발견하며 드디어 진실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발견하는

'진짜 ' 자신의 정체성이고 진심이다. 


시간은 관점의 훌륭한 스승이다. 현실에 충실하고 주어진 경험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우리는

시간이라는 약으로 상처를 치료할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끝없이 실수를 저지르며

결과로 고통을 받을 가능성을 가지는 한편 인간에게는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이러한 깨달음은 회복력과 더불어 희망을 잃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게 하고 깊은

시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점점 명확하게 알게 한다. 가장 넓은 렌즈로 세상을 있고 최대한

관점을 취하면 감사와 지혜, 그리고 우리 삶의 도덕적 연속성에 대한 감각이 따라오게 된다.

이런 경험은 우리의 정체성을 강화시켜주는 동시에 타인과 연결된 평화로운 삶을 제공한다. 


모든 위대한 진리는 모순을 품고 있다. 인간은 혼자인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이다. 인간의 삶은 즐거우면서도 비극적이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

존재하지만 어떤것이 원인이고 어떤것이 결과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것은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이가 결국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세상 누구도 자신의 끝을 알지 못하지만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는 동등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의 삶에 최선으로 살아야 한다. '훌륭하고 완결된 무언가로 녹아드는 경험,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말처럼 자신의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진정한 행복인 것이다. 


'노년은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상승이다.

육체의 힘이 줄어 들수록 우리는 밝은 빛을 향해 나아간다.' 메이 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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