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사피엔스 경제학 - 스마트폰 신인류가 생존을 위해 알아야 할 최소한의 디지털 경제 원리
전승화 지음, 김정호 감수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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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를 배우던  나에게 '포노 사피엔스' 신세계다.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ce)

스마트 없이 없는 새로운 인류라는 뜻으로 2015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는 웨이즈 온라인(Always online) 세상을 살아갈 인류를 부르는 말이며 어쩌면

자신일수도 있다. 친절하게도 저자는 디지털 경제학이라는 여행 자체가 낯설고 어려운 우리에게

'비저너리'라는 친구를 제공하지만 어려운건 여전히 어려운 것이다. 


'우리 모두가 변화의 주체이자 객체이다.' 인문학 강의에서 한번 쯤은 들어 봤을 법한 문장을 여기에서

만난다. 그렇다. 우리는 경제, 정치, 사회,문화를 이끄는 소비자이자 생산자이벼 미래에 대한 원인과

결과이고 앞으로 영역은 계속해서 넓어질 것이다. 저자는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적 현상의 조각들을

모아 종착점을 향해 줄기차게 나아가는 추진력을 보인다. 물론 가끔 세상으로 질주하긴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원래로 돌아 온다. 난해하고 복잡한 상황과 문제 앞에서 속도는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전진하며 마침내 끝을 보인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어른들이 살아온 '과거'와는 분명 다르다. 그뿐

아니라 어른들이 꿈꿨던 미래와도 아주 많이 다르다. 이런 다름이 세대간의 격차를 만들고 세대를

분리하고 세대를 나누는 것이다. 


저자는 시간을 대과거,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눈다. 인터넷이 없던 물리적 세상(Physical world) 대과거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한 '경제활동' 역사이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의 3요소인 '토지, 노동력, 자본'이었다. 희소한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선택'이라는 '의사결정' 행위가 수반되고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며 모두들 ' 나은 선택' 하려고 애쓰던 시대였다. 아쉽게도 세대를 살아 왔다.

 

이후 월드와이드웹(WWW) 등장하면서 시작된 과거는 유선 인터넷 시대라고 부른다. 1994

우리나라도 인터넷 상용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천리안, 하이텔 같은 당시엔 획기적인 서비스가 시연되던  시대였다. 이후 인터넷 관련 분야의 폭발적 성장과 거품을 의미하는 '닷컴 버블' 우리의 높은 기대치에 못미치는 인터넷의 한계를 드러냈고 향후 급속한 변화의 물결을 나타내는 전조이기도 했다. 이때 부터 우리는 '온라인' '오프라인' 경험하나 여전히 제한적(당시에는 획기적이었다) 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진화한 인터넷이 이동성(mobility) 확보하게 되면서 모바일 웹과 앱을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 세상' 현재의 모바일 인터넷 시대를 살고 있다. 급속한 스마트폰의 보급은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우리의 삶에 직접 연결 되었고 스마트폰 없이는 생활이 힘들어진 현대인을 빗대어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조어가 등장한다. 이뿐 아니라 스마트 폰의 '배터리 부족' 표시는 현실과의 단절을 의미하고 무엇 보다도 두려운 상황이기에 스마트 폰이 곁에 없으면 불안감을 느낀다는 의미의 '노모 포비아(nomophobia : No+mobile +phobia)' 증상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것은 아직은  의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제 있다.


미래는 글자 그대로 ' 웨이즈 온라인'새상이다. 사람-사물-공간이 복합적으로 연결되고 무수한 센서와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연결된다. 1km 반경 내에 최대 100만개의 사물을 연결할 있으며, 반응 속도도 1ms(0.001) 매우 짧은 5G 네트워크의 상용화는 스마트 시티를 더욱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결국 현재와 미래를 구분짓는 가장 특징은 ' 웨이즈 온라인'이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예측불가하다. 이런 이유로 결국 미래는 '불균형한 결과' 이어질 밖에 없다. 이는 소득 불균형에서부터 교육, 문화,정치, 사회 거의 모든 계층의 불평등을 촉발하고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현상을 심화시킨다. 특히나 극소수의 슈퍼리치에 의한 부의 독점은 소득 불균형의 문제를 넘어 '힘의 불균형'으로 이어져 개인에게 과도한 힘이 주어지는 권력 집중의 위험을 초래한다. 이는 기업과 산업과의 불균형을 넘어 국가간의 불균형으로 이어져 국가간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세상은 더욱 급변할 것이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에서 무자비하게 먹이를 잠식해가는 거대 육식동물에 대항(?)하는 초식동물들만의 생존 방법이 필요한 시기이다. 저자가 말하는 한국 사람들의 특장점 5R(Rapid, Resilient, Reval, Resourceful, Respectful) 살려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과 앞으로 필요한 것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맞이하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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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으로 보는 세계사 - 역사는 화폐가 지배한다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송은애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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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덩이와 별배고둥의 초기화폐에서 비트 코인에 이르기까지 수천년에 이르는 세계의 역사

중요한 시점마다 묘하게 화폐들의 변화와 자본의 이동이 따라온다. 그러는 와중 통화는 교환의

수단이 아닌 투자의 수단으로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고 현대 사회에서 통화는 최강의

무기로 자리한다.


최초의 화폐 개념으로 은덩이가 사용됐다는점은 사실 의외다. 누가보아도 금이 가치를 가지고

좋아 보이는데 태양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몸이 금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파라오의 등장으로

금을 독점하게 되고 권위와 종교성을 상징하는 제화로 머물 밖에 없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와

더불어 금속을 뜻하는 메탈(metal) 그리스어 메탈론(metallon)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본래 달을

의미했고 사람들은 금속 중에서 달과 가장 가깝게 여겼기에 자연에서 채굴되는 양이 적고 번거로운

재련과정을 거쳐야 하는 점이 상인들이 은덩이를 비싼값에 팔아 넘기는데 유리해지므로 이를 화폐로

사용하게 된다. 처음엔 주머니에 달아 무게로 거래하던 은이 '세겔'(당시 노동자의 한달 임금)이라는

단위가 등장하며 점차 거래가 확대되었고 세겔의 50배애 해당하는 '므나' 등장하게 된다. 세겔이라는

단위는 아직도 이스라엘에서 사용되고 있다. 


신대륙의 감소와 이상기후에 따른 흉작으로 침체기에 빠지고, 종교 대립에 의한 오랜 내전으로

혼란을 겪는 유럽은 그대로 '17세기의 위기' 시대를 보내게 된다. 시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네덜란드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일치단결로 카톨릭 종주국인 스페인과 80 간의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을 '네덜란드 독립 전쟁'이라고 부른다. 네덜란드는 전쟁을 치르면서 유럽의 해운을 지배했고

인도양과 대서양까지 진출하여 세계무역의 절반을 지배하는 해양강국이 되었다. 시기 네덜란드의

선박 수는 1 6천척, 선원은 16 3천명에 달했고 이는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독일의 선박을 합친

보다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네덜란드의 조선업이 발달하게 배경에 '청어' 있었다.

겨울에 먹는 생선인 몸길이 30cm 정도되는 청어의 어장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북해로 이동한 까닭에

북해에 연한 네덜란드가 수요가 많은 청어를 독식하게 되었고 위에서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과 식초에

절여 가공한 청어를 수출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게 된다. 이외에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 회사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고배당 전략등으로 막대한 부를 소유하게된 네덜란드는

세계를 아우르는 무역국가가 된다. 그러나 '넘쳐나는 ' '버블' 만드는 세계 경제의 진리는

어김없이 적용된다. '궁정의 '으로 각광받던 튤립에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돈들이 몰려 들게 되고 이는

버블로 이어져 결국 만성 디프레이션에 빠지게 되고 '자본'이라는 눈덩이는 영국으로 이동하게 된다. 


미국 7 대통령 앤드류 잭슨에 의해 단행된 '미합중국 2은행 폐지'  이후 70년간 미국 중앙 은행

부재 사태를 야기했고 이는 1600개가 넘는 소규모 은행의 난립과 발행지폐 7000여종, 위조지폐 5000여종에

이르는 일대 혼란을 가져오게 되며 훗날 미국이 카드 사회로 변신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자본' 이동에 따라 권력과 국력도 이동한다. 영국으로 넘어간 자본의 물결은  영국 화폐 '파운드'

세계 경제 통용 화폐로 사용되게 하나  역시도 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의 '달러' 밀려 나게 된다.

역사 변동의 토대는 '통화' '경제'이며 역사는 화폐가 지배한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비트코인 역시 범주에 속하며 아직까지 통화로써 가치를 부여 받지는 못했지만 향후 어떠한 변화와

혁신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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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예수 - 복음 안에서 만나는 중동
앤드류 톰슨 지음, 오주영 옮김, 김태완.김현경 감수 / 두란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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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모욕을 풍성한 은혜로 바꾼 것이다. p 87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들을 달리게 했다. p213


한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책과 질문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그때 청년들과

각각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일주일씩 고민하고 머리를 맞대던 기억이 난다. 그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질문 앞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저자의 이력 특이한 하나를 발견했다.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해서 행동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행동 양식에 대한 답을 구하는

학문인 '행동 과학' 전공한 점이다. 행동과학은 심리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학문인데

배우기가 굉장히 어려운 학문이라고 알고 있다. 이런 저자의 이력 때문인지 중동 문화 '예수

이야기'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하게 묘사 기대되고 기대된다. 


'기독교인과 무슬림. 복음으로 대화를 시작하다'.

책을 덮는 띠지의 글이다. 그런데 막연하다. 선교는 일종의 '소통'이라고 배웠는데 문화도 역사도

심지어 그들의 종교도 제대로 모른채 일방적 외침과 뻔한 질문들을 던져 그들을 당황케 하는데

익숙한 우리에게 복음으로 대화를 시작한다는 말은 낯설기까지 하다. 그러나 신선하다. 지금

우리의 고질화되고 정형적인 시각이 아니라 2000여년전 땅을 거닐며 사시면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이적과 기사를 베푸실 그때 그분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그들의 입장에서 접근한다.

'시선의 왜곡'이라는 말이 있다. 어떠한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대상이 왜곡되어 보이고

달라 보인다는 말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시선은 왜곡되어 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메세지를 아라비아의 문화로 설명하고 종교적 차이를 뛰어 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는 시도는

약간의 두려움과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 


특별히 결혼식이라는 주제 속에서 만나게 되는 랍비 양성과정은 양산형 목회자 배출 상황에 즈음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개 여섯살 즈음에 시작되는 교육인 ' 세페르, Bet Sefer, 책의 '

열살 무렵까지 계속되며 재능이 있는 이는 '토라' 외우게 된다. 이때 성경을 가르치는 랍비는

공동체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들이며  최고중 최고이다. 열살이 전도 유망한 학생들은 ' 탈무드,

Bet Talmud, 배움의 '라는 다음 단계로 진출하여 14세까지 교육을 받게 되는데 시기에 구약성경의

나머지 책들을 외우게 된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교육이고 14, 15세가 되면 랍비에게 제자로 받아줄

것을 청하게 되고 이에 허락을 받은 이는 ' 미트라쉬, Bet Midrash, 연구의 '라는 배움의 단계를

밟게 되는데 이때 랍비의 지식 뿐만 아니라 랍비가 살아온 방식과 종교적 훈련 마저도 모방하게 된다.

그리고 30 되면 스스로 가르치는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의 경우 신학대학을 나왔다면 7,

일반 대학 출신이라면 3년을 공부하면 전임사역자가 있으니 훈련과 지식의 양에서 현격한

이를 보인다. 아무튼 이렇게 수학한 랍비들은 잔치 중의  잔치인 '결혼식' 최고의 손님이다. 당시

고대근동지역 사람들은 유일하게 결혼식을 통해 사치를 부리거나 훌륭한 사람들을 초대할 있는

구실로 삼는다. 요한복음의 등장하는 가나의 결혼식 잔치에서 예수는 대중 앞에서 행하신 첫번째

이적을 보이신다. 학식도 높고 명성도 높고 자존심도 높은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혹자는 이도

예수의 전략적 도발이라고 하기도 한다). 


누가복음에서는 강력한 메세지가 전달된다. 잔치를 배설하고 사람들을 초대하는데 모두 일치하게

거절을 하고 거절의 내용이 조악하기 그지없다. 먼저 '방금 밭을 사서 나가서 살펴봐야 합니다'라고

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다.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가. 아마도 평생을 모아서 밭일 것이다.

자신의 땀과 눈물의 결실로 소유하게 밭이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러나 여기까지가 우리의

생각과 문화이다. 사막 기후에 경작 가능한 토지는 아주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 때문에 토지 상태를

펴보고 수확량이 얼마나 되는지도 여러달 동안 확인하지 않고는 어느 농부도 뼘을 사지 않는다.

이런 문화적 지리적 배경 없이 말씀을 전한다면 자체가 왜곡이고 오류가 되어 버린다. 두번째

변명 역시 모욕적이다. 비싼 소를 이미 충분히 검토하고 확인하고 비교해서 샀음에도 그것을 시험해야

한다며 초청을 거절한다. 세번째 변명은 조악하고 불편하다. 당시 금기시 되는 '부부 사이의 관계'

대해 공공연하게 말하며 초청을 거절한다. 당시 사회에서 초청의 의미와 그것을 거절할 느끼는

초청자의 모욕감을 알면서도 말이다. 잔치에 초청했으나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거절을 당한 주인과

손님의 관계는 이미 깨어진 것이고 모욕당한 주인이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정당성을 찾을

충분한 명분이 준비된 것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 진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지독한 모욕이 풍성한 은혜의 기회로

바뀐 것이다. 연회에 참석하고 초대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이 배제되고 소외되고 무시당하던 사람들이

초청 대상이 된다. 하인이 나가서 가난한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앞을 보는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누군가의 앞에 서는 조차도 어렵고 불편한 이들을 가장 중요한 손님들을 모셔야 잔치에

초대한 것이다. 이는 당시 투철한 종교집단의 독선과 오만에 대한 도전이고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들의

투철한 종교성과 치열한 오만 앞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이끄는 '겸손' 가르치며 그들의 종교적 자부심과 율법에 의해 닫혀버린 '겸손의 ' 뜨게 한다.

우리에겐 잔치에 초대될 어떠한 명분도 없다. 다만 은혜가 그것을 가능케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있는 유일한 반응이 '겸손'이다. 


저자는 도날드 할리(Donald Hawley) 말을 인용하여 아랍의 전통적인 종족 하다리(Hadari)

배드윈(Bedouin)종족을 이야기하는데 하다리는 동부 산악지대와 오아시스에서 마을과 정원을 이루고

사는 정착민이고 배드윈 종족은 사막의 유목민이다. 농부 가인과 목동 아벨 사이에 끝나지 않은

영원한 전쟁은 베드윈 종족의 동물들이 정착민들의 정원을 마구 짓밟으며 들이 닥치는 시기마다

재개된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그들은 그렇게 싸우고 있나보다. 이는 아라비아 주민들의 대부분이

유목민이라는  대중적 인식의 오류를 지적해 준다. 


책은 생각보다 빨리 '나가며' 내놓는다. 책을 읽는 동안 들었던 나의 의문과 생각이 저자와

일치했다. '과연 예수의 가르침이 그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하는

부분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결코 쉽지 않은 부분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일이기에 이런

사역을 하고 있는 저자의 투지와 용기에 감사함을 표한다. 


책의 부록은 어쩌면 본문 보다 흥미진진하다. 성경훼손문제와 십자가 처형에 대한 이슬람의 견해,

그리스도의 정체성, 아랍인과 아라비아에 관한 성경 구절을 이야기 하는데 특별히 십자가 사건에 대한

측의 견해는 첨예하다. 예수의 죽음이 하나님의 신적인 뜻에 따라 계획하시고 의도하신 용인된

일이라는 역설적이고 온전한 진실에 대해 무슬림들은 부끄러운 비극으로 보는 반면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표현으로 본다. 책을 읽는 내내 느낀 느낌 그대로 이정도의

간극을 유지한다.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의 왜곡' 어느 편의 전적 수용이나 전적 포기 없이는

좁혀지기 어려운 부분이다. 예수께서 사역하시던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끝까지' 사명을 가진 우리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시도해야 부분이다. 


책은 막연함으로 무슬림과 아랍을 바라보는 모든 사역자들이 읽어 보면 좋겠다. 막연함이

간절함과 절실함으로 다가오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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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을까 - 힘든 관계와 작별하고 홀가분해지는 심리 수업
일자 샌드 지음, 이은경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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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속에서 산다. 결코 사람을 떠나서 없으며 모든

사람과는 '관계'라는 것을 통해 연결되고 이어져 있다. 관계 맺음은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며

이를 통해 사회 생활이 영위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센서티브'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깊고 넓게 이해하길 바라는 글을 썼던 저자는 이번에는 폭을 넓혀 다른 사람을

향한다. 나를 넘어선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오는 아픔과 어려움에 대해 어떻게 하면 수월하게

극복하며 자유로워질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중에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이별을 선택했다면 제대로 작별인사를 건네세요.'

우리는 누구나 이별을 한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픔이고 상처가 된다. 미적거리며 제대로 이별을

말하지 못하는 이에게도, 단호하게 이별을 통보하는 이에게도  동일하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아픔이다. 저자는 이에대해 단호하다. 제대로 작별인사를 건네라고 말한다.

'제대로' 작별인사를 건네는 것이 무엇일가에 대한 궁금함과 기대감으로 책을 읽어 나간다. 


인간 관계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다는 말은 오답도 없다는 의미와 같다. 각자의 상황이 답이 되고

형편이 현실이 되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저자는 이렇게 복잡미묘한 우리의 인간관계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음의 네가지를 이야기한다. 마음점검, 대화하기, 문제해결, 떠나보내기. 사실 쉽지 않다. 그리고

떠나 보내기는 더욱 어렵다. 떠나 보내는 것이 눈에서만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지워

보내는 것이기에 더더욱 쉽지 않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제대로 라는 단어가 이해가 된다. 마음 한편에

편린으로 존재하는 기억에서 조차도 지워버리는 , 가슴 뒤편에 꼭꼭 숨겨두고 때때로 꺼내서

곱씹을 그것마저도 도말 하는것, 어쩌면 이게 '제대로'일텐데 우리에게 너무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떠나보내기를 연습해 보는 이유는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있고, 관점이 바뀌면 불편했던

마음이 편하지고 답답하던 가슴이 자유로워질 있다는 저자의 말이 조금 낯설다. 


우리의 관계를 망치는 가장 원인 하나가 '분노'인데 정작 우리는 분노의 원인이나 이유를 정확히

모르거나 무작정 타인에게도 찾을 때가 많다. 분노는 자신이 상처 받거나 다치지 않기 위한 방어기재로

사용되는데 자주 자기기만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거나 못미칠때

여기서 오는 패배감이나 슬픔등이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와같이 분노는 자신도 이유와 원인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자신의 마음을 닫게 만들고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쉽다.

부정적인 생각이 반복되면 신념이 되듯, 분노가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반복된 습관은 자신의

아니라 타인의 삶도 고통스럽게 만든다. 분노의 양날의 검이다. 관계를 망치는 주범이기도 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탈출구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 주문한다.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 놓음으로 새로운 관계 형성의 물꼬를 트게 된다는 것이다. 


책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라고 충고하며, 이상 회복하거나 치유 없는 관계라면 작별을

고할 것을 조연하고 제대로 작별을 고할 있다면 오히려 삶의 활력과 기쁨을 되찾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적거리다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어정쩡하고 궁색한 만남에 대해 '제대로' 작별을

고해야갰다는 마음이 든다. 용기를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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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역 - 현장에서 분투하는 청년사역자를 위한
양형주 지음 / 두란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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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전도, 양육, 기도가 기본이다. 169P

청년을 만날 있는 곳으로 가라. 88P

 

 

'청년이 없는 교회는 미래가 없다' 김회권 교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 교회는 맘모스들만

살아 남고 나머지 교회들은 사라질것이다. 그러나 구호 역시 대상만 바뀌었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별로 데미지를 주지 못한다. 어쩌면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이와 같은

종에   기울이지 않으며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방관하는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저자와는 MEBIC'이라는 프로그램 때문에 심하게 충돌 적이 있다. 명성 교회라는 거대집단에서나

먹을 법한 도구와 장비를 동원하였고 고가의 온갖 인형과 음향기기까지 동원한 그들의 예배에,

예배실에 마이크 하나에 어디 사무실에서도 쓸법한 컬럼스피커를 하나를 사용하는 교회의 입장에서

솔직히 그림의 떡이어서 매직 1 세미나에 참석했던 몇몇 동료 사역자들과 ' 프로그램이 교회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소형 교회들이 사용할 프로그램 이냐며' 언성을 높여가며 부딪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양형주 목사 그는 분명 탁월한 디렉터이며 열정가이다. 그의 사역에 대한 뜨거움은 누구보다

강렬했고 영혼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간절했던 그는 열정적 사역자다. 그랬기에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예배' 부르짖으며 몸을 살랐던 것이다. 그런 그를 알기에

그의 청년사역 이야기를 담은 책이 기대된다.

 

저자는 청년 사역을 자동차에 비유한다. 멈춰 있을 시동을 걸어 가동을 시켜 저단으로 서서히

출발하고 일정 속도가 되면 기어를 변속해 주듯이 청년 사역도 멈추면 움직이게 해야 하고 저단 만이

아닌 때론 고속으로 때론 정속으로 주행할 필요가 있으며 연료가 떨어지지 않게 보충을 하듯 적절한

시점에 새로운 것들이 도입돼서 충전되어야 한다. 


청년부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외적인 부분으로 저출산을 있다. 대학의 정원을 채우기 조차 버거운 실정인 '밀레니엄 키즈'

세대는 저출산의 표본이다.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기르자' 구호는 옛날 옛적 고래당적 얘기고

지금은 집에 아이 한명도 제대로 없는 실정이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모바일 원주민', '디지털

네이티브' 불리는 이들의 사고는 현장 사역을 하는 나조차도 버거운 때가 많다. 정말 독특하다.

개교회 대부분의 대학부를 형성하는 이들이 소위 말하는 'Z'세대이다. 

이들보다 조금 나이가 들고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은 'Y'세대 혹은 '밀레니엄 세대'라고 하는데

욜로(YOLO) 워라벨, 가심비를 따지는 다른 인류이다. 소규모 교회에는 이들이 섞여 '청년부'라는

이름으로 모여 심하면 나이차가 15살까지 나기도 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원주제일감리교회 권용주 목사의 이야기는 청년 사역자라면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내용들이다. 역시도 몇가지를 배운다. 하나가 청년들을 사역의 실험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역자들이 넘치는 열정과 도전 의식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어 외부에서

좋다는 것들을 끌어 들여 판을 벌린다. 그리고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판은 머지 않아 식어 버리거나

사역자의 이탈로 그냥 멈춰 버린다. 그러다 보니 청년부에 오래 있었던 이들은 거쳐간 사역자들 덕분에

어지간한 프로그램 이름은 한번씩 들어 봤고 경험이 있기에 새로운 사역자의 열정이 부담스러워진다.

여기서부터 이미 간극은 벌어진다. 교회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떠한 시도 자체가 조심스러워진다. 


하나는 사역자 자신이 성장한 만큼 그만큼 청년들을 성장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역자들이

그래야 되겠지만 특별히 청년 사역자들은 부단히 자기개발에 힘써야 한다. 끊임없이 영성을 추구하고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며 현실 상황에 민감해야 하고 삶이 투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요한것은 하나님이 대한 갈망으로 깊이 체험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런 사역자의 모습은 그대로

청년들에게 전달되고 이는 선한 영향력으로 전파된다. 


책의 내용 '변증적 지식에서 자라야 한다' 구절이 눈에 들어 온다. 청년들은 논리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논리적인 것을 쉽게 인정하고 마음을 움직인다. 이런 청년들에게 논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성경은 어떤 책인가', '하나님은 어떤분이신가',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종말은 언제 오는가'

교리 7 영역은 계시,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등에 대한 교리적 이해와 숙지를 통해

논리적 접근이 가능하다. 논리적인 질문에는 논리적인 답변이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하나 하나씩

증명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러나 쉽지 않은 만큼 결과는 청년들의 확신과 믿음으로

나타날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설렘을 잃지 말라'

만남, 데이트는 설레고 긴장된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설렘과 긴장이 풀려서 나사풀린 같은

모양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렘도 마찬가지다. 사역자가 먼저 설레야 한다. 말씀을 대하는게

설레고, 말씀을 선포하는게 설레고, 청년들을 만나는 것이 기대되고 설레야 한다. 사역자가 냉담하면

청년들은 즉시 눈치채고 멀어진다. 설레임으로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


앞으로의 청년 사역 여건은 분명 나빠질 것이다. 그러나 준비하는  교회는 살아 남을 것이고 청년이

든한 교회는 미래가 탄탄하다. '다음 세대' 외친지 벌써 십여년이 지나 아이들이 이제 청년이

되었다. 그들이 한국 교회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책은 모든 청년 사역자 뿐만 아니라 교회의 담임 목사님들이 읽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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