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멋을 아는 민족이었다. 멋은 그 자체로 이미 품격을 드러내며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말이고 이는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선의 태도이기도 하다. 뚜렷한 사계절과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자연으로 인해 음식문화를 발달된 우리 민족은 잘차려낸 음식상과 멋스러운 음식을
상대방에 대한 예로 여겼을 정도로 맛을 아는 민족이었고 맛은 주로 상류층에서 누리는 '사치'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맛과 멋을 담은 우리의 전통음식 대부분이 사라지게
되었고 대량 생산된 음식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모든것이 흐르고 반복되는 것처럼 여전히 우리의
것을 지키려는 노력은 계속되었고 근래에 들어 자연과 멋을 동시에 담은 '꽃음식'이 주목 받기 시작 했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정조지' 속의 꽃음식을 통해 매화부터 국화에 이르는
20가지의 토종 꽃으로 만든 꽃음식을 찾아내는 보물찾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꽃이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음식에 더해져서 '자연주의'의 동력이 되며, 꽃음식은
꽃 자체를 생으로 또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하여 먹거나 기존의 음식에 더해서 만드는데 그 효용 범위가
광범위하다. 이 책에는 정조지 속 39가지의 꽃음식, 전통 꽃음식 13가지, 정조지 속의 꽃음식을 재해석한
꽃음식 32가지. 도합 94개의 꽃음식이 소개된다.
이 책은 출발부터 신선하다. 세계 최고 요리사 10명이 운영하는 식당을 취재하며 그들의 삶과 요리에
대한 철학, 요리에 담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가던 중, 결국 최고의 요리사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접시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담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숨이
멎을 듯 엄숙하다. '화룡점정'을 찍듯 더해지는 꽃의 마력은 그 자체로 이미 예술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꽃음식'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무분별하고 무식(서로간의 상생도 모르는)하게 합해서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꽃음식들 때문에 '아무 음식이든 꽃만 넣으면 꽃음식이네'라는 혹평을 듣기도 한다.
일본여행에서 유명한 벚꽃빵을 먹고 호텔에서 한시적으로 판다는 벚꽃성찬을 즐겨야 일본 여행을
제대로 한 것이라는 기자에게 진달래화전을 먹어 본적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저자의 말은 속이다
시원하다. 그리고 '정조지'에 담긴 꽃음식에서 작은것의 아름다움, 생명의 소중함, 소소함 속에 빛나는
찰나, 선인들의 멋과 낭만과 여유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나는 이 책 '조선셰프 서유구의 꽃음식
이야기'에서 멋스러움과 맛스러움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을 느끼며 눈과 마음이
호사를 누렸다.

우리나라 곳곳에 터를 가리지 않고 자라는 소나무는 늘 푸른 빛을 잃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의연함을
가지기에 오래된 소나무를 노우(老友)라 칭하며 가까이 한다. 송화는 소나무의 꽃가루이다. 늦봄이면
노란 송화가루로 계곡이 뒤덮히고 그 색이 수수하지만 고상하고 기품이 있어 여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본초강목>에 '송화는 맛이 달고 온하며 독이 없다. 심폐를 윤(潤)하고 기를 늘린다. 풍을
제거하고 지혈을 시킨다'고 나와 있을 정도로 좋은 재료이다. 이런 송화로 송화다식, 송화주, 송화강정,
송화밀수등을 만드는데 정조지에서는 송화다식을 만드는 방법은 따로 기술하지 않고 송화가루를
효과적으로 얻는 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고 송화가루를 구하는 일이 송화다식의 전부일 정도로
어렵다고 한다. 어릴적 외가에 가면 해주시던 것이 '송화다식'이었는데 이렇게 귀하고 어려운 것인 줄
알았다면 그때 궁시렁거리고 안 먹지 말고 한개라도 더 먹을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찾은 외가에서 맛 볼 수 있었던 것이 '송화주'였다. 이제 술 먹을 나이(아마 중3 겨울
방학인것 같다)도 됐으니 한잔 하라고 내주셨던것이 송화주였는데 국화향이 전혀 나지 않았던걸 보면
정조지에 나오는 그 방법인것 같다. 저온에서 침출해서인지 향이 강하지 않고 은은하나 역시 술은
술이다. 나는 그 날 송화주 두 잔에 만취했었다. 송화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어 마시고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송화주라면 그날 난 신선이 되었다.

'정조지'에 소개된 절기 음식 중 꽃을 사용한 음식에는 제비가 돌아 온다는 중삼절(음력 3월3일)의
진달래화전과 제비가 돌아간다는 중구절(9월9일)의 국화화전이 있는데 내가 처음 맛 본 화전이
국화화전이다. 내가 맛본 화전은 저자의 생각처럼 노란 국화꽃이 올라간 것인데 정조지에서 소개하는
국화화전은 사뭇 다르다. 국화를 찧어서 노란물을 들이고, 당귀로는 짙은 녹색의, 대추꽃은 어두운
붉은 빛의 물을 들인 반죽을 지진 다음 팥소를 꽃심처럼 넣고 싸서 만드니 생각지도 않은 온갖 색의
국회가 피어난다는 저자의 표현처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서유구의 발상은 머릿속에 상쾌한 바람과
함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밖에도 요즘도 자주 마시는 국화차, 국화빵이 강해서 취기를 잘 못느끼는
국화주, 말린 국화꽃을 묻힌 경단 등은 강원도 산골에서 자연인으로 살고 있는 지인 덕분에 맛 보았던
것들이라 더욱 반가웠다.
이 책에는 자연이 주는 멋스러움과 날것 그대로가 주는 소박함,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아끼는 마음이
들어 있다. 꽃이 삶기고, 절여지며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갖게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꽃음식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밀가루에 연꽃잎, 참외즙과 약대를 넣어 만든 누룩으로
빚는 '만전향주'와 원추리꽃 잡채, 상추꽃대로 만든 우아하고 감탄할 만한 음식인 상추꽃대볶음은
꼭 만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