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책이다. 저자의 삶의 순간순간의 조각들이 주님으로 인해 합해지고 모아져서 하나의 묵상을
만들어 내고 그런 묵상들을 소개하며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함께하심의 기쁨을 맛보는 자리에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에게 돈이 없지 예수가 없냐'
영화의 대사를 패러디한 글이지만 왠지 가슴이 뜨끔하다. 우리에겐 돈도 없지만 예수도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말로는 'Coram Deo'를 외치면서 정작 삶의 자리에
예수가 머물 곳은 치워버려 예수가 들어설 공간 조차 허용하지 않고 자기팔을 열심히 흔들며 사는
무늬만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은가.(나 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수가 있는 사람이란 예수의
흔적을 가진 증인일텐데 보고 들은 바 대로 사실을 말해야 할텐데 우리 입에 걸린 자물통은 견고하다
못해 무적이라 감히 입을 벌려 말하지도 못하거나 입만 살아 있다.

한 때 유행하던 책 제목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며 마음이 힘들고 불편했었다.
물론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주지하고자 하는 의도도 안다. 그럼에도 '왜'라는 의문이 든다.
안 아프면 안되나. 조금 덜 힘들면 청춘이 아닌가. 청춘이라는 계급장은 누가 얼마나 더 아프고
고생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닌데 '청춘이니까 아파도 돼'라는 말 처럼 들려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저자도 그랬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아프니까 청년이 아니라 청년이니까 아프지 마'
자신들의 삶이 그랬기에 대리만족으로 하는 충고일수도 있고, 정말 힘겹게 살아온 자양분을 통해
쏟아내는 진심어린 충고일수도 있지만 사실 '라떼는 말이야'는 꼰대질이다. 그냥 청춘은 청춘 그대로
봐줬으면 좋겠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잣대를 들이대며 이러니저러니 하지말고 있는 그대로의
청춘으로 인정하고 받아주면 좋겠다.
'정죄'
간음하다 잡힌 한 여인을 당시의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군중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손에 '짱돌'을 들고 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눈치를 보지만 그 손에 든
돌멩이는 결코 놓지 않는다. 여차하면 던질 태세다. 정말 죄가 없어서 일까, 아니면 최소한 저 사람 보다는
깨끗하다는 우월함에서일까, 그도 아니면 뭔가 분풀이 할 대상을 찾는 것일까. 우리에게 있는 비교의식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타인을 더욱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한다. '그래도 저사람 보다는'
이라는 알량한 자존심은 결국 서로를 망가뜨린다.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비교하지도 평가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며 상대방을 받아들이면 된다.
이 책은 저자의 삶과 하나님과의 교제의 초원이다. 그런 초원을 모두에게 공개하며 함께 기쁨과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고맙다. 분명 누군가 이 책에 쓰인 묵상들을 보며 힘을 얻을 것이고 도전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된다. 나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