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노력을 보았기에 이 책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고 설레임으로 읽어 나간다.
이 책은 초판이 아닌 개정판이다. 초판에서 쏟아졌던 질타와 오류들을 바로잡고 두 번 다시 읽고
싶지 않았던 과거를 곱씹으며 담담히 내 놓은 책이다. 작가 스스로 '아픈 손가락'이라 칭하는
이 책의 시작은 조금 당황스럽게도 해동성국의 마지막 왕자 대광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발해라고 부르는, 드넓은 대 제국의 주인이었던 해동성국이 멸망해가며 쏟아내는 왕자의
절규와도 같은 그러나 결코 의기를 잃지 않고 의연한 면모를 지닌 대장부의 모습으로 발해의
멸망이 거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종산(祖宗山, 중국에서는 장백산, 우리는 백두산으로 부르는)이
분노하여 폭발하고 이 여파로 무너질 대로 무너진 발해를 거져 먹다 싶이 했음을, 남은 발해의
사람들이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 하지만 신산의 노여움이 여전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멸망했음을, 신령님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건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에 신산이
원하는 대로 이 땅에서 사라지기로 결심했기에 해동성국의 마지막 기록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사는 돌고 돌기에 갈라놓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야 한다고 절규하듯 말한다.
이 책은 2020년 8월 14일부터 12월 29일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너무도 긴 시간동안 그 치열한 사태의
현장의 주변을 서성인다. 작가의 상상력은 역시 뛰어나다. 누군가 그랬다. 상상력은 뛰어난 지적
능력이며 자신이 가진 지식에서 나온다고. 전작에서 느꼈던 작가의 지적 상상력은 8년 전의 책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백두산의 이름이 화산이 폭발한 뒤 흰 돌들이 산 정상에 쌓여 하얗게 보여서
흰 백(百)에 머리 두(頭)를 써서 백두산이라 불렸다는 사실과 숙종 때 세운 백두산 정계비, 일본이
청나라와 맺은 간도협약, 김일성과 주은래 사이에 천지의 45%는 중국의 영토라고 확정해서 체결한
조중변계조약, 중국도문교두, 6300km였던 만리장성의 길이를 8851km로 늘려 놓은 박작성((泊灼城)
등은 팩트다. 이렇듯 작가의 글은 픽션과 논픽선이 적절히 버무러져서 맛깔스러움을 더한다. 얼키고
설킨 등장인물들의 이해관계와 미묘한 갈등으로 이야기가 가끔 산으로 가긴 하지만 인물들의 심리나
감정 묘사는 언뜻 같은 자리에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섬세하다.
결국 백두산은 분노의 불을 뽑아내며 천지의 눈물과 마주한다. 지옥이 되어 버린 북한, 제 기능을
상실한 대한민국, 한반도는 검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다. 해동성국의 마지막 왕자인 대광연의
절규인 '갈라진 허리를 펴고 당장 일어서야 할 것'이라는 경고를 무시한 채 한반도는 그렇게
어둠으로 덮힌다.
여전히 두 동강난 허리를 가진 한반도, 그리고 1년 후 백두산은 다시 화산 활동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