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철학 이론의 단순한 연대기적 나열과 설명이 아니라 철학이론간의 관계, 그것들이 산출된
시대, 그리고 그 이론을 제공한 사상가들과 관련된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 철학 체계는 인격적,
문화적, 역사적 진공 상태에서 발생하는 순전한 지적 활동의 산물이 아니라 그 창시자의 기질과
인격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문화적, 역사적, 철학적 상황을 반영하는 개별 철학 천재의 업적이다.
하나의 철학이 그 창시자의 인격과 기질을 반영하고 그것들과 연관 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할 만한
사실이다. 또한 철학이 그것이 발생하는 전반적인 지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에 의존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과거의 이론에 대한 연구는 자신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철학자들의 작품이나 그들의 저술 단편(현존 할 경우)을 이용하는 일차 자료와 이런것이
없을 경우 특정 철학자의 생애와 이론에 대한 설명, 철학사에 대한 일반적 개별적 논문, 어떤 가르침에
대한 비판, 여러가지 책에 들어 있는 그들에 대한 언급들인 이차 자료를 이용한다.
평소 관심을 가졌던 중세 철학이 대해 먼저 읽어 보았다. 저자는 쇠퇴기의 로마 제국을 파괴한 북부
야만족들과 서유럽에 이미 존재했던 라틴계 민족들이 혼합하여 생긴 새로운 민족적 기질, 일차적으로
라틴적 출처에서 전달된 그리스와 그리스 로마세대의 문화, 동방 형태보다 라틴 형태의 그리스도교를
토대로 중세 철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며 중세를 테오도시우스의 사망 때 제국이 그 아들들에게 분할된
주후 395년부터 콘스탄티노플이 투르크 족에게 점령 당한 1453년까지로 중세를 규정한다. 로마 제국과
그리스 로마 철학 혹은 헬레니즘 철학의 쇠퇴를 표시하는 그리스도교 시대의 초창기는 그리스도교가
하나의 교리로서 그리고 하나의 제도로서 수립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신학이 철학을 주도하던
시기로 대부분의 철학자는 신학을 기반으로 하기에 로고스 교리나, 자유의지와 노예의지, 원죄, 삼위일체
등이 주된 토론의 대상이었다. 이 당시 대표적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소유할 가치가 있는 지식은
하나님과 자아에 관한 지식'이라고 이야기 하며, 우리가 확고하게 믿는 것을 이해하고 우리의 믿음의
이성적 기초를 아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한다. 신앙이 믿는 것을 이해하려면 지성이 필요하고 지성이
이해하는 것을 믿으려면 신앙이 필요하다. 학문적 이성(ratio scientiae)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에 대한
분석에 의하여 자연의 요소들 혹은 원리들을 발견하려 하고 지혜의 이성(ratio sapientiae)은 내면을
향하며 거기서 하나님과 영혼을 발견한다. 한 분 하나님이 현존과 질서와 운동의 삼위 일체로 파악
되듯이, 삼위일체의 한 반영인 영혼의 실체적 통일성은 현존과 지식과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를 발견하는 것은 다른 하나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쉽지 않다. 여기서 스콜라주의로 넘어가면
더 복잡해 진다. 켄터베리의 안셀무스(1033-1109)의 신 존재증명과 반 스콜라주의로 대변되는 신비주의,
범신론, 자연과학, 여기에 아랍철학까지 넘어가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이 책이 20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 각 대학의 철학과 역사학 교과서로 사용 된것이 쉽게 수긍이 갈 만큼
그 내용이나 설명의 폭이 광범위하고 깊다. 각 세대를 아우르는 프랭크 틸리(Frank Thilly, 1865-1934)의
지적 충만함과 각 시대와 철학자들에 대한 포용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 책은 탁월한 균형 감각을 가졌다. 각 시대와 각 철학자들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며 치우침 없는
객관성을 보인다. 역사적 발전에서 내적 논리를 분별해 내면서도 개별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 정치 문화적 요소들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철학자의 철학이론이 탄생되는
배경과 상황을 정확히 설명한다. 이는 저자 특유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영향을 준다. 사선을 최대한
공정하게 보려고 했고 기술에 대한 기술에 있어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서 그의 책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문장의 길이가 길어지면 이해하기가 어려워지고 설명이 복잡해
지는데 저자는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고 간단하게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 책 어렵다.
8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함 뿐만 아니라 각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에 대한 설명은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고 해도 역시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이 책 안에 들어 있는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음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 책은 두고두고 읽어 보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