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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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철학 이론의 단순한 연대기적 나열과 설명이 아니라 철학이론간의 관계, 그것들이 산출된

시대, 그리고 이론을 제공한 사상가들과 관련된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 철학 체계는 인격적,

문화적, 역사적 진공 상태에서 발생하는 순전한 지적 활동의 산물이 아니라 창시자의 기질과

인격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문화적, 역사적, 철학적 상황을 반영하는 개별 철학 천재의 업적이다.

하나의 철학이 창시자의 인격과 기질을 반영하고 그것들과 연관 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할 만한

사실이다. 또한 철학이 그것이 발생하는 전반적인 지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에 의존한다는

것은 의심할 없다. 과거의 이론에 대한 연구는 자신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도움을

준다. 책은 철학자들의 작품이나 그들의 저술 단편(현존 경우) 이용하는 일차 자료와 이런것이

없을 경우 특정 철학자의 생애와 이론에 대한 설명, 철학사에 대한 일반적 개별적 논문, 어떤 가르침에

대한 비판, 여러가지 책에 들어 있는 그들에 대한 언급들인 이차 자료를 이용한다. 


평소 관심을 가졌던 중세 철학이 대해 먼저 읽어 보았다. 저자는 쇠퇴기의 로마 제국을 파괴한 북부

야만족들과 서유럽에 이미 존재했던 라틴계 민족들이 혼합하여 생긴 새로운 민족적 기질, 일차적으로

라틴적 출처에서 전달된 그리스와 그리스 로마세대의 문화, 동방 형태보다 라틴 형태의 그리스도교를

토대로 중세 철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며 중세를 테오도시우스의 사망 제국이 아들들에게 분할된

주후 395년부터 콘스탄티노플이 투르크 족에게 점령 당한 1453년까지로 중세를 규정한다. 로마 제국과

그리스 로마 철학 혹은 헬레니즘 철학의 쇠퇴를 표시하는 그리스도교 시대의 초창기는 그리스도교가

하나의 교리로서 그리고 하나의 제도로서 수립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시기는 신학이 철학을 주도하던

시기로 대부분의 철학자는 신학을 기반으로 하기에 로고스 교리나, 자유의지와 노예의지, 원죄, 삼위일체

등이 주된 토론의 대상이었다. 당시 대표적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소유할 가치가 있는 지식은

하나님과 자아에 관한 지식'이라고 이야기 하며, 우리가 확고하게 믿는 것을 이해하고 우리의 믿음의

이성적 기초를 아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한다. 신앙이 믿는 것을 이해하려면 지성이 필요하고 지성이

이해하는 것을 믿으려면 신앙이 필요하다. 학문적 이성(ratio scientiae) 외부에서 주어진 것에 대한

분석에 의하여 자연의 요소들 혹은 원리들을 발견하려 하고 지혜의 이성(ratio sapientiae) 내면을

향하며 거기서 하나님과 영혼을 발견한다. 하나님이 현존과 질서와 운동의 삼위 일체로 파악

되듯이, 삼위일체의 반영인 영혼의 실체적 통일성은 현존과 지식과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를 발견하는 것은 다른 하나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쉽지 않다. 여기서 스콜라주의로 넘어가면

복잡해 진다. 켄터베리의 안셀무스(1033-1109) 존재증명과 스콜라주의로 대변되는 신비주의,

범신론, 자연과학, 여기에 아랍철학까지 넘어가면 머리에 쥐가 지경이다. 


책이 20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 대학의 철학과 역사학 교과서로 사용 된것이 쉽게 수긍이 만큼

내용이나 설명의 폭이 광범위하고 깊다. 세대를 아우르는 프랭크 틸리(Frank Thilly, 1865-1934)

지적 충만함과 시대와 철학자들에 대한 포용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책은 탁월한 균형 감각을 가졌다. 시대와 철학자들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며 치우침 없는

객관성을 보인다. 역사적 발전에서 내적 논리를 분별해 내면서도 개별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 정치 문화적 요소들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철학자의 철학이론이 탄생되는

배경과 상황을 정확히 설명한다. 이는 저자 특유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영향을 준다. 사선을 최대한

공정하게 보려고 했고 기술에 대한 기술에 있어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서 그의 책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문장의 길이가 길어지면 이해하기가 어려워지고 설명이 복잡해

지는데 저자는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고 간단하게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어렵다.

800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함 뿐만 아니라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에 대한 설명은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고 해도 역시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안에 들어 있는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음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책은 두고두고 읽어 보여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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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문화 사이 - 당신의 신앙을 보고 읽고 즐기는 것에 연결하라
대니얼 스트레인지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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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다는 P18

세상 속에 들어가 복음을 선포하라 P146


문화는 시대의 상황과 요구에 부응하며 변한다. 기독교 문화가 세상의 문화를 선도 때도

있었지만  그건 이미 나라 이야기고 지금은 오히려 기독교 문화는 사라진 교회 내에서 세상의

것을 흉내내기에 급급하다. 이미 삼십여년전 '사탄은 마침내 대중 문화를 선택했습니다(1992,

신상언)'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 등장해서 당시 교회들과 신학교들에 많은 파장을 주었고

근본주의니 뉴에이지니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등의 이름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상황 앞에 저자는 '문화' 이해하는 일은 쉽게 세상속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실제 상황에서 적용 가능한 대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청년들을 맡고 있는 나에게 책은 하나의 기회이자 도전이 되는 같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문화적 건강 검진'

멋진 말이다. 우리가 매년 건강 검진을 받듯이 문화의 소비와 창출도 점검을 받아야 한다. '양심'이라는

내적 필터에 의한 점검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양심이 절대 기준이 없다. 성경은 양심을

거스르지 말고 따라야 한다(14, 고전8) 말하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양심이 지나치게 민감할 수도,

망가질 수도 있다(딤전4:2,10:22)고도 말한다. 물론 우리의 양심이 도움이 되는 만큼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자유가 다른 양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서로 알고 옳은 길을 가도록 밀고 끌어 주는 공동체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공동체도 완벽하지는 않다. 스스로 속일 있으니 남을 속이는 것은 의외로 쉽다. 하나의 방법은

'교회'이다. 주일에 모이는 것은  '우리끼리의 교제' 아니다. 교회는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곳이고 우리의 흐려진 렌즈를 닦는 곳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힘을 얻고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기는 출발지이다. 건강 검진을

통해 구석구석을 알고 파악하는 것처럼 문화적 건강 점진을 통해 수용 가능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필요한 때이다. 무방비 상태로 세상과 마주하는 어리석음 보다는

먼저 자신을 알고 세상을 마주하는 뱀과 같은 지혜로움이 필요한 때이다. 


저자는 바울을 소개하며 그가 어떻게 시대의 문화에 맞서고 대치하고 연결하고 접근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여러 설교 가장 유명한 설교가 선포된 장소인 아테네의 아레오바고,

그곳에서 바울은 이방 문화를 대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나님께 돌려야 영광이

이방의 신이나 이름모를 신에게 돌리어 지는 것을 보고 분노하는 그의 모습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 상을 뒤엎고 화를 내시는 주님의 그것과 흡사하다. 복음 선포는 거지가 다른 거지에게 빵을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것과 같다. 우리는 우상 숭배와 우상숭배자들로 인해 격분해야 한다. 그리고

격분은 그들의 문화와 맞서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연결시키는 목소리로 이어져야 한다. 아테네의

철학자들에게 지식을 수박 겉핥기로만 아는 '말쟁이'라는 조롱을 듣는 바울은 사도행전 17 22절부터

시작되는 설교를 통해 복음으로 문화에 맞서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정과 이해 그리고 연결과 공략으로

이어지는 바울의 전략은 지적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던 당시 아테네의 철학자들과 군중들의 헛점을

정확히 파고 들었다. 단번에 가능하지 않지만 지속적이고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고 분명하게 접근할

생각지 못한 결과가 이어지기도 한다. 디오누시오와 다마리 처럼 말이다. 


컬러의 추천서의 서두 처럼 지금은 '새로운 문화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책은 대중문화와 가장

인접해 있는 우리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싶다. 바른 분별과 판단이 어려운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문화에 대해 알려주고 그들 스스로가 정확한 판단을 통한 '선택적 수용' 가능한

청년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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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건 있더라고 - 야루 산문집
야루 지음 / 마이마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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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살면서 변하지 않는것을 찾는 것은 어렵다. 빠름의 속도에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면서 뒤돌아 보고 되돌아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그런 우리 앞에 저자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 내며 '변하지 않는 있더라고'라고 말한다. 


오래된 기억들이 살아난다. 아주 오랜만에 플로피 디스크와 마이마이,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와 전축을

봤다. 지금도 여전히 낡은 간판이 즐비한 장원 복집 골목은 기억이 절로 나게 한다. 되돌리기엔

너무 많은 것이 변했고, 지워버리기엔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크고, 모든 모른 뒤돌아 서기엔

지나온 세월이 너무 많다. 우린 그렇게 나이를 먹어 간다. 늙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어 갔으면

좋겠는데 점점 꼰대 짓은 얼굴의 주름 만큼 늘어 간다. 아쉬워 발버둥은 보지만 시간은

어느 누구도 막을 없다. 그냥 그렇게 나이 들어 가는 거다. 우리의 기억은 지울 수록 힘만 들어

차라리 그냥 그대로 두는 편이 훨씬 좋다. 


나도 LP판에 대한 추억이 많다. 돈도 없으면서 사고 싶은 판을 사고선 며칠을 라면만 먹었던 기억도,

친구에게 빌려준 판이 망가져서 왔을 미칠것 같았던 마음도, 황학동 시장을 뒤져 원하는 판을 사서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와 턴테이블 위에 올렸는데 '지이이직직직'하는 괴음만 들려 황당했던 일도, 

이사할때 '소중히 다뤄 주세요'라고 까지 메모를 붙여 LP판이 가득한 상자만 이사간 집으로 돌아

오지 않았을때의 허탈한 마음, 조금씩 모은 돈으로 진공관 앰프를 사서 처음으로 음악을 들을 때의

환상적인 기분도, 그랬던 그것들이 이젠 먼지가 뽀얗게 쌓인 상자에 그냥 담겨 있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사람들은 변하나 그래 나도 변했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LP 판이 주는 아날로그 감성은

좋다. 조금 직직 거리면 어떤가. 세월을 거스르는데 정도의 힘은 들어도 된다. 그냥 있어 줌이

감사하다. 자신이 찾는 판을 발견하고 흥정도 없이 돌아가며 연신 앨범 표지를 훔쳐 보는

아저씨의 모습, 아날로그는 이게 전부다. 


어릴적 살았던 집은 그리 작아 보이는지, 어릴적 힘겹게 뛰어 놀던 운동장은 언제 저렇게 작아졌는지,

어릴적 힘들어서 올라가기 싫어 했던 동네 산은 어느새 잔뜻 눌려 항상 오르내리는 삼층 정도의 높이가

되어 버렸는지, 세월이라는 마법은 어릴적 내가 보았던 모든것을 축소 시킨다. 그만큼 감흥도 줄어

든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가며 점점 세상을 보는 눈에 나의 의지가 가미되어 왜곡 시킨다. 나는 주입식

교육 세대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나랏 말싸미 뒹국에 달아....., 귀하귀하

수귀현야.....' 등과 같은 말도 안되는 것들이 툭툭 튀어 나온다. 이런것들은 잊혀지지 않는 걸까? 

잠시 동안 어릴적 감성에 흠뻑 젖어 보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먼지 덮힌 상자를 열어 Led Zeppelin

Whole Lotta Love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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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블록
키스 스튜어트 지음, 권가비 옮김 / 달의시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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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평범한 가정. 자폐아인 8 아들 샘과 아빠 알렉스의 서로의 간격을 좁히고 이해하고

그러면서 갈등을 겪는 이야기가 책에 가득하다.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고 부인으로부터

시험 별거를 요구받고 아들인 샘과는 간극의 폭이 여전히 벌어져 있는 알렉스, 설상 가상 어린시절

교통사고로 죽은 형이 꿈에 나타나고 10 만에 찾아온 여동생은 혼돈 자체다. 


책은 '내가 별거 중이라니....'라는 글로 시작된다. 여기에 많은 것이 내포된다. 아직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안된 상태이기도 하고, 현실이 믿기지 않는 의문의 표현이기도 하고,

부정하고 싶은 현실에 대한 강한 거부를 표현하는 하기도 하고, 아무튼 문장이 많은 의미를

지니고 묘한 기대감을 갖게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런것 같다.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과정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고 과정들 속에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 가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자폐를 가진 샘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모험이래요.

산책이 아니라. 그래서 그렇게 힘든 거래요' 그렇다. 인생은 분명 모험이다. 그것도 수없이 많은 난관과

어려움이 존재하는 그런 모험이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소통'

어린 시절 조지의 교통 사고를 목격 이후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폐를 가진 아들을 규칙이라는

안에 두고 통제함으로 안전하게 지킬 있다고 생각하는 알렉스가 친구의 조언으로 샘이 좋아 하는

게임인 '마인 크래프트' 준비한다. 그리고 여기에 호응이라도 하는듯 샘은 아빠를 부른다. '이리와

아빠'. 사실 여기서부터 서로간의 벽과 담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샘은 아빠의 그런 접근을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모두가 걸음

나아가려고 생각은 하지만 마지막 걸음을 내딛는 사람이 적은 처럼 알렉스도 샘과의 관계를

개선해 보려고 생각은 했지만 그냥 생각 뿐이었다. 소통이 이런 것이다. 조금씩 동화되어 가고

익숙해지며 친밀해 지는 것이다. 자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고 조금 이해하려는

마음이 소통의 시작이다. 자신의 모험에서 샘을 장애물로, 회피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던 알렉스의 생각이

바뀌면서  샘과의 소통은 이어진다. 아이는 아빠와 소통하고 싶어 하지만 두렵기도 하고 방법을 모른다.

아빠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이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외면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시작된 단절이

서로간의 절충점인 '마인 크레프트'라는 게임을 통해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허물어 지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아빠는 아이를 이해하고 그대로 인정하고 아이는 아빠를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에서 신뢰와

믿음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작가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글이라 그런지 사실적 묘사가 돋보인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 그리고

그렇게 인정한다는 , 어려운 일이지만 책은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과 행복을 알려진다.

그래서 말이 더욱 마음에 닿는다. '대단히 중요한 일이야. 알렉스, 네가 일은 아들을 이해하는

일이야'.  순수하게 노는 방법을 잃어 버린 어른이 순진무구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걱정과 근심을

내려 놓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상과 접하며 아이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내용이 담긴

책은 가슴 한켠에서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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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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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도래가 인간에게 던지는 도전을 그린 <접는 도시>에서 보여준 상상력의 극치를 기억하는

나에게 이번 <인간의 피안> 읽기전 부터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전작에서는 추천사에 실린

글처럼 인간이 어떻게 '무물의 (無物之陣, 루쉰이 주장한 말로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 모호하고

전선이 형성될 없는 상태를 말함)' 같은 존재인 기계와 공존하는가를 현실성 있게 보여준

하오징팡(郝景芳) 이번엔 인공지능의 무차별적 잠식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털어 놓는다.


책에 실린 여섯 편의 이야기는 한번 읽기 시작하면 단숨에 읽어야 정도로 가독성이 좋다. 가득한

상상력과 풍부한 언어의 유희는 가독성을 더해주고 읽는 이로 하여금 현장에 존재하는 사람과 같은

생생함을 가지게 한다. 특이한 것은 책의 내용은 대부분이 '인공 지능'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제목을 '인간의 피안'이라고 정했다는 것이다. 현세를 차안(此岸)이라 한다면 피안(彼岸) 불교에서

해탈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번뇌의 단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단계를 피안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인공지능을 이야기 하면서 피안을 이야기하며 인공지능을 번뇌를 넘어선 '어떤 '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차안(此岸), 인공지능은 피안(彼岸) 있다.

멀리 피안을 바라보는 우리가 있는 차안을 비춰보기 위함이다.'


'영생병원'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 낸다는 병원, 병원에 살기 위해 입원한 어머니, 비록 살아서 돌아왔지만 왠지

어머니가 아닌듯한 느낌을 지울 없는 첸루이, 그리고 비밀을 파헤치며 마주하는 진실들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유전자를 복제해서 만든 인체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이며 환자 자신의 연장인

신인, 대뇌에 이식된 칩의 주도하에 발전하여 반지능 인간을 형성하고 소재가 탄소 나노인 칩은 대뇌의

유기물 소재와 함께 자라다가 신경 망이 완성되면 대부분 녹아 독립적으로 작용하면서 진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신인. 정작 자신이 신인임을 모르는 주인공, 어머니의 비밀을 파헤치려다

자신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신인으로 만들어 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 첸루이. 그리고 병원

시스템에 대한 시위 현장을 향해야 하는 그의 선택은 '미안하지만 오늘 수가 없어'. 무척

혼란스러울것 같다. 누군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진짜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복제된 것이라면

상황 앞에 초연할 사람은 없을것 같다. 더군다나 자신 역시 이미 오래전에 죽을 목숨인데 과학의

힘에 의해 재생되었다고 한다면 충격은 것이다. 그래서 회장의 '당신은 우리 아이입니다'라는

말이 무섭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전쟁. 어쩌면 우린 시대를 비껴 나갈지 모르지만 우리가 선택한 미래로 인해 우리

후대의 누군가들은 분명 인공지능이 인류를 파멸 시키거나 혹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를 맞이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실 보통의 사람들은 아직 '임박한 위험' 대해 무방비 상태이다. 최소한 인공지능을

이해해야 그들과 동행 있을 것이고, 우리 자신을 이해 해야 인간이 가진 우의를 알고 극대화

시킬 있을 것임에도 말이다. 이제 우린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토대로 인공지능과 인간을

넓게 이해하고 인정해야 것이다. 최소한 버틸 있는 (저자는 이에 대해 깊은 사고와 관찰력을

요구한다) 길러야 한다. 


마지막 단편인 '인간의 '에서는 인공지능의 지배하는 세상을 이야기 하며 '자유' 대한 메세지를

전달한다. 흡사 영화 매트릭스의 그것과 비슷하다. 어떻게 인공지능에 대항하고 싸우며 자신들의 자유를

찾아가는지에 대한 작가의 글은 진행이 무척 빠르다. 진행의 흐름에 맞춰 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봐, 알아? 때때로 자유의지야 말로 당신이 주동적으로 선택할

있는, 가장 낮은 확률의 길이라는 말이야'


이미 인류는 인공지능이라는 화섭자의 불을 밝혔다. 그리고 그것은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 것이다. 이제

선택만 남은 같다. '먹힐것인가? 공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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