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이번 책 <인간의 피안>은 읽기전 부터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전작에서는 추천사에 실린
글처럼 인간이 어떻게 '무물의 진(無物之陣, 루쉰이 주장한 말로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 모호하고
전선이 형성될 수 없는 상태를 말함)'과 같은 존재인 기계와 공존하는가를 현실성 있게 보여준
하오징팡(郝景芳)은 이번엔 인공지능의 무차별적 잠식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털어 놓는다.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이야기는 한번 읽기 시작하면 단숨에 읽어야 할 정도로 가독성이 좋다. 가득한
상상력과 풍부한 언어의 유희는 가독성을 더해주고 읽는 이로 하여금 현장에 존재하는 사람과 같은
생생함을 가지게 한다. 특이한 것은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이 '인공 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제목을 '인간의 피안'이라고 정했다는 것이다. 현세를 차안(此岸)이라 한다면 피안(彼岸)은 불교에서
해탈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번뇌의 단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단계를 피안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인공지능을 이야기 하면서 피안을 이야기하며 인공지능을 번뇌를 넘어선 '어떤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차안(此岸)에, 인공지능은 피안(彼岸)에 있다.
저 멀리 피안을 바라보는 건 우리가 서 있는 차안을 비춰보기 위함이다.'
'영생병원'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 낸다는 병원, 그 병원에 살기 위해 입원한 어머니, 비록 살아서 돌아왔지만 왠지
내 어머니가 아닌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첸루이, 그리고 그 비밀을 파헤치며 마주하는 진실들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유전자를 복제해서 만든 인체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이며 환자 자신의 연장인
신인, 대뇌에 이식된 칩의 주도하에 발전하여 반지능 인간을 형성하고 소재가 탄소 나노인 칩은 대뇌의
유기물 소재와 함께 자라다가 뇌 신경 망이 완성되면 대부분 녹아 독립적으로 작용하면서 진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신인. 정작 자신이 신인임을 모르는 주인공, 어머니의 비밀을 파헤치려다
자신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신인으로 만들어 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 첸루이. 그리고 병원
시스템에 대한 시위 현장을 향해야 하는 그의 선택은 '미안하지만 난 오늘 갈 수가 없어'. 무척
혼란스러울것 같다. 누군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진짜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복제된 것이라면
그 상황 앞에 초연할 사람은 없을것 같다. 더군다나 자신 역시 이미 오래전에 죽을 목숨인데 과학의
힘에 의해 재생되었다고 한다면 그 충격은 더 할 것이다. 그래서 회장의 '당신은 우리 아이입니다'라는
말이 무섭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전쟁. 어쩌면 우린 그 시대를 비껴 나갈지 모르지만 우리가 선택한 미래로 인해 우리
후대의 누군가들은 분명 인공지능이 인류를 파멸 시키거나 혹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를 맞이 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실 보통의 사람들은 아직 '임박한 위험'에 대해 무방비 상태이다. 최소한 인공지능을
이해해야 그들과 동행 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자신을 이해 해야 인간이 가진 우의를 알고 극대화
시킬 수 있을 것임에도 말이다. 이제 우린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을 토대로 인공지능과 인간을
폭 넓게 이해하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버틸 수 있는 힘(저자는 이에 대해 깊은 사고와 관찰력을
요구한다)은 길러야 한다.
마지막 단편인 '인간의 섬'에서는 인공지능의 지배하는 세상을 이야기 하며 '자유'에 대한 메세지를
전달한다. 흡사 영화 매트릭스의 그것과 비슷하다. 어떻게 인공지능에 대항하고 싸우며 자신들의 자유를
찾아가는지에 대한 작가의 글은 진행이 무척 빠르다. 그 진행의 흐름에 발 맞춰 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봐, 알아? 때때로 자유의지야 말로 당신이 주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낮은 확률의 길이라는 걸 말이야'
이미 인류는 인공지능이라는 화섭자의 불을 밝혔다. 그리고 그것은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 올 것이다. 이제
선택만 남은 것 같다. '먹힐것인가? 공존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