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하지 못하면서 뒤돌아 보고 되돌아 가 볼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그런 우리 앞에 저자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 내며 '변하지 않는 건 있더라고'라고 말한다.
오래된 기억들이 살아난다. 아주 오랜만에 플로피 디스크와 마이마이,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와 전축을
봤다. 지금도 여전히 낡은 간판이 즐비한 장원 복집 골목은 옛 기억이 절로 나게 한다. 되돌리기엔
너무 많은 것이 변했고, 지워버리기엔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크고, 모든 걸 모른 척 뒤돌아 서기엔
지나온 세월이 너무 많다. 우린 그렇게 나이를 먹어 간다. 늙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어 갔으면
좋겠는데 점점 꼰대 짓은 얼굴의 주름 만큼 늘어 간다. 못 내 아쉬워 발버둥은 쳐 보지만 시간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나이 들어 가는 거다. 우리의 기억은 지울 수록 힘만 들어
차라리 그냥 그대로 두는 편이 훨씬 좋다.
나도 LP판에 대한 추억이 참 많다. 돈도 없으면서 사고 싶은 판을 사고선 며칠을 라면만 먹었던 기억도,
친구에게 빌려준 판이 망가져서 왔을 때 미칠것 같았던 마음도, 황학동 시장을 뒤져 원하는 판을 사서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와 턴테이블 위에 올렸는데 '지이이직직직'하는 괴음만 들려 황당했던 일도,
이사할때 '소중히 다뤄 주세요'라고 까지 메모를 붙여 둔 LP판이 가득한 상자만 이사간 집으로 돌아
오지 않았을때의 그 허탈한 마음, 조금씩 모은 돈으로 진공관 앰프를 사서 처음으로 음악을 들을 때의
그 환상적인 기분도, 그랬던 그것들이 이젠 먼지가 뽀얗게 쌓인 상자에 그냥 담겨 있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사람들은 변하나 봐 그래 나도 변했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LP 판이 주는 아날로그 감성은
좋다. 조금 직직 거리면 어떤가. 세월을 거스르는데 그 정도의 힘은 들어도 된다. 그냥 있어 줌이
감사하다. 자신이 찾는 판을 발견하고 흥정도 없이 산 후 돌아가며 연신 앨범 표지를 훔쳐 보는
아저씨의 모습, 아날로그는 이게 전부다.
어릴적 살았던 집은 왜 그리 작아 보이는지, 어릴적 힘겹게 뛰어 놀던 운동장은 언제 저렇게 작아졌는지,
어릴적 힘들어서 올라가기 싫어 했던 동네 산은 어느새 잔뜻 눌려 항상 오르내리는 삼층 정도의 높이가
되어 버렸는지, 참 세월이라는 마법은 어릴적 내가 보았던 모든것을 축소 시킨다. 그만큼 감흥도 줄어
든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가며 점점 세상을 보는 눈에 나의 의지가 가미되어 왜곡 시킨다. 나는 주입식
교육 세대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나랏 말싸미 뒹국에 달아....., 귀하귀하
수귀현야.....' 등과 같은 말도 안되는 것들이 툭툭 튀어 나온다. 왜 이런것들은 잊혀지지 않는 걸까?
잠시 동안 어릴적 감성에 흠뻑 젖어 보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먼지 덮힌 상자를 열어 Led Zeppelin 의
Whole Lotta Love나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