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는 우연과 여유다. 한때는 출발부터 도착까지 타임 테이블을
만들어 분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먹어야 할것, 보아야 할 것등의 리스트를
준비해 마치 도장 찍듯이 다녔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떠난다. 딱
하나만 확인하고. 커피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지 혹은 스타벅스라도
근처에 있는지. 초라하고 남루하게 느껴졌던 어느 하루도, 무척이나
화가나서 씩씩대던 날도(나도 타임테이블로 움직일 땐 매번 싸웠던 것
같다), 한숨만 터져나오던 어느 밤도, 훗날에는 어떤 아름다움과 의미를
내게 선물할 지 모른다. 그래서 여행은 날마다 새롭다. 얼마전 들른
주문진의 좁은 골목길이 그랬다. 주문진을 백번은 넘게 다닌것 같은데
처음 만난 낯설음이었다. 길을 잘못 찾아 들어간 그 골목은 아직도 1980
년대를 살고 있었다. 힘겨운 시간을 견디는게 버거울 때면 그렇게 지금
여기가 아닌 먼곳을 내다보라고, 아주 예전의 여행들이 자꾸 말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