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질감 - 슬픔이 증발한 자리, 건조하게 남겨진 사유의 흔적
고유동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박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보통 사멸은 소멸이고 흔적이 사라져 가는 것이며 뭔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의 사멸은 독특하다. 사멸 안에 생이 내포되어

넉넉히 살아냄을 전하며 그곳에서 새로운 삶이 준비되고 시작된다.

작가는 좌절에 빠졌거나 심연을 헤매는 이에게 위로를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그래서인가 깊다.


프링글스. 처음 나의 입에 들어간 그것은 신세계였다. 생일 축하 파티에

초대된 저자가 과자에 집중했던 일은 충분히 이해와 납득이 된다.

나도 그랬다. 첫경험의 그 강렬함과 달콤쌉싸레함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구하기도 어려운 시절 그 과자를 사기 위해 남대문에 나갔던 적도 있다.

작가의 어린 혓바닥을 점령한 노란색 탄수화물 덩어리는 지금 여전히

나의 혓바닥도 점령한채 좀체 나가려 하지 않는다. 작가의 섬세함은

그의 글에서 여지 없이 증명된다. 세밀하고도 진중한 표현은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온다. 그렇게 새롭고 낯선 것들에

적응하며 익숙해져 가는것 그것이 '나이듬'이고 '살아냄'이다.


균열 속에서 찾아낸 의미는 단순히 소멸이 아닌 새로움을 향한 질서

정연한 움직임이다. 깨진 유리 처럼 산산이 조각나 버리는 낱말들은

본래의 그 형태를 잃어 버리는듯 하지만 결국 새로운 무언가로 재탄생

되고 조합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은 역사와 기억의 흐름을 가지고

존재한다. 갈라지고 깨어진 그 틈바구니를 헤짚고 살아내는 강한

생명력은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각각의 낱말들은

생소하고 낯설지만 어느정도의 일치감을 가지며 다가 온다.


저자의 깊은 사유는 각각의 낱말들에 개로움을 불어 넣는다. 깊기도

하고 새롭기도 한 각각의 낱말들로 쓰여진 50여 편의 글들은 많은

생각의 꺼리들을 제공한다. 한동안 책상 옆에 두어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