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 - 전민식 장편소설
전민식 지음 / 마시멜로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민초(民草). 백성을 질긴 생명력을 가진 잡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힘없고, 빽없고, 줄없는

그런 백성들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국력이 쇄하여 남에 손아귀에

넘어가는 상황에 잘난 양반들과 어깨 힘깨나 주던 것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리고

그랬듯이 그들의 짓밟힘의 대상이던 이들이 잘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 땅인데

굳이 지켜야 필요도 없는 땅인데 그걸 지켜야 하는 아이러니와 인간의 내면속 깊은

감정의 생채기가 줄줄이 엉켜 있는 . 그냥 가볍기만 소설이 아닌 묵직한 울림을 주는

그런 책이다.


제목부터 특이하다. '강치' 독도 가제바위 부근에 서식하던 바다사자의 일컫는 말인데 수명은

20 정도이고 길이는 2.5m, 수컷의 경우 것은 몸무게가 470kg 육박했다고 하는데

일본인들의 무차별 포획으로 인해  1994 완전 멸종됐다. 


주인공인 '안용복' 실존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11번이나 등장하는 어쩌면 조선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아(?)였다. 도해금지령을 어기고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범법자이며

일본인 뺨칠 수준의 일본어 능력을 가진 상인이며 선대의 역모죄로 노비가된 외거노비 출신의

천민이며 쇼군으로부터 일본인들의 울릉도와 독도 출입을 금한다는 서계를 받을 정도의

협상가이자 지략가이며 일본의 약탈과 수탈에 맞서 싸운 맹장이기도 안용복.

그런 그가 일본에 납치되고 갖은 고초를 겪은 조선으로 돌아왔을때 그를 기다린것은 어처구니

없게도 범법자의 신분으로 압송되어 결국 유배형을 받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소위 힘있는

자들의 하는 형태는 별반 다르지 않다. 격식과 예의를 차린답시고 정작 보호하고 아껴야 하는

백성은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백성의 공에 숫가락을 얹고 논공행상을 하는 몰염치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작가의 상상속 인물인 토착왜구 '이상용' 등장은 조금 작위적인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정도로

시의적절하다. 밀무역과 살인을 일삼으며 조정의 느슨하고 어이없는 대응을 비웃기라고 하는듯한

그의 괴랄한 행태는 읽는 내내 짜증을 유발했다. 


세상은 소수의 강한자들의 논리로 흘러가고 역사는 항상 승자의 편이었기에 민초들은 언제나

억울하다. 옛날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저 가진것 없는 백성은 따시고 굶지않고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지만 이것 역시 소원하고 세상은 여전히 모난돌이 맞고 바른 놈이 주리돌림을

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소설 내용 일부를 적어 본다.

'굳이 설명하거나 주장하지 않아도 독도는 조선의 땅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조선의 것이었으니 조선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건 당연하다.

일본인들은 당연하지 않기에 자꾸만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했다.'


이것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해의 희열
존 파이퍼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해로 진리를 구현하고 희열로 기쁨을 구현한다 p131

우리 전체에서 하나님을 풍성희 누리기 하시려 예수께서 죽으셨다 p328

 


이 책을 받아든 나에게 기대와 염려가 찾아왔다. 그의 저서들을 탐닉했던 나이기에 자연스레

그의 거침없는 문체와 깊은 영성에서 나오는 우회와 같은 외침에 대한 기대감과 여타 강해에

관한 책들이 그렇듯이 설교의 기법이나 방법들에 대한 조악한( 표현이 거칠다면 용서하길

바란다) 나열식 기술이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생겼다. 그러나 파이퍼 그는 역시 그다. 설교의

본질과 우리가 받아 누리는 수많은 특권들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더도 덜도 아닌 그답게

벅찬 감동으로 진술한 책은 추천사의 어느 목사님의 말씀처럼 '최고'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같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역시 강력하다. 마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재단하고 주물러서 본인 입맛에 맞게 사용하는 이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난치지 않은'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게 헌정한다. 어쩌면 책은 한마디로 끝나도 무방할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고 속임으로 행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설교를 자신들의 무기로 삼아 성도를 억압하고

공격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부어대는 이들도 무수히 많다. 말씀으로 장난치는 그들에게 던지는

파이퍼의 준엄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예배 하는가?'

예배는 교회가 모이는 이유이며 사실은 근본적인 이유다. 예배의 본질은 '마음에서 경험한 사랑에

이끌려 하나님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것이다' 파이퍼의 말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제멋대로의

신앙을 하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제한을 가져온다. 먼저 '마음에서 경험한'인데 마음에서 경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백'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신앙에는 고백이 별로 없다. 맹목적이고 현실적이다

못해 작위적인 신앙이 너무 많다. 이렇듯 고백이 없다보니 회개와 용서의 간절함도 보이지 않는다.

다음이 '사랑에 이끌려'인데 사랑을 노래만 하지 도통 행하지 않는다.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

말씀하시는데 ' 사람이 이와 같이 행해야 하는데' 되어 정작 자신은 빠지고 다른 사람을 보며

비판하고 정죄한다. 그러다보니 시쳇말로 '예수쟁이' 별로 보이지 않고 '교회 다니는 사람' 즐비하다.

끝까지 참으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셨지만 우리는 조금 참다 그만두고 자기 만큼만 사랑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랑에 이끌릴 수가 없다. 이런 우리의 현실은 본질적 예배에 접근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주님께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고 하셨는데도 말이다. 


책의 제목은 '강해의 희열'이다. 파이퍼는 스토트(John Stott) 말을 빌어 강해의 의미를 밝힌다.

'강해는 설교 방식(주해의 연속) 아니라 설교 내용(성경 진리) 가르친다. 성경 강해는 본문에 있는

내용을 끄집어 내어 보여주는 일이다. 강해자는 닫힌듯한 데를 비집어 열고, 애매한데를 명확히 밝히고,

엉킨데를 풀고, 꽉찬데를 펼친다. 메시지의 내용이 본질상 성경본문이 아니라 본문이 전달하려는

실체라는 것이다. 설교 내용이 '성경 진리'라는 스토트의 말에서 '진리'라는 단어가 가르키는 것은

문법적이고 역사적인 명제만이 아니라 속에 담긴 실체 그것의 본질과 가치며 현재 생활에

미치는 의미다. 강해는 본문이 짧든 길든 이를 파헤쳐 본문 스스로의 메시지를 분명하고 알기 쉽고

정확하고 시의성있게 가감이나 왜곡 없이 말하는 것이다. 


저자의 '희열은 커녕 자신이 믿지도 않는 본문으로도 강해는 있다' 문구가 유독 눈에

들어 온다. 사실 여기에 조금 붙이고 싶다. 설교자의 양심에 묻고 싶다. '우리는 얼마나 'ctrl C'

' ctrl V' 빠져 있는지 .' 솔직히 나도 여기에 자유롭지 못하다. 넘쳐나는 설교의 홍수 속에 본문을

정해 놓고(정말 미안하지만 본문도 남이 정하기도 한다) 인터넷과 설교집을 뒤져 온갖 좋은 말과

쓸만한 문장들을 골라 적당히 눈치 채지 못하게 섞어서 마치 자신의 것인양 사용하는 이들에게

과연 '강해의 희열' 있을까. 그뿐인가. 본문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마치기

분전에 본문 이야기를 슬쩍 비추고 설교를 마치는 경우도 있다. 파이퍼는 이러한 우리에게 '성경의

뜻을 밝히는 강해와 의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영광을 공공연히 중시하는 희열이 합해지면

설교다운 설교가 나온다' 말한다. 

파이퍼가 소개하는 예배가 예배가 되고 내가 설교하지만 내가 아닌 성령이 하시는 일이 되며 그것을

통해 기적이 일어나는 방법이 'APTAT'이다. 먼저 인정하는(Admit) 것이다. 자신의 무익하고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과 초자연적인 돌보심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들이고 이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기도(Pray)하는 것이다. 그냥 '도와주세요' 아니라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필요를

하는 것이다. 세번째 단계가 결정적인데 3:5 기인하여 '듣고 믿을 ' 그리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뭉뚱그려 생각하는 우리에게 ' 잔이 넘치도록' 부으시는 은혜를

신뢰하며 피로 사신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뢰를 선포하는 행동(Act) 한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벧전4:11)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저자는 직접 의식되지 않는 실체를 의지하는 행위를

'신비'라고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신뢰의 행동을 모두 마친 그렇게 행하신 주님께 감사(Thanks)한다.

이는 비단 파이퍼 만의 아니 설교자들만의 방법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삶에서 매순간마다 적용해야할

방법이다. 각자의 삶에서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분께 자신의 아뢸바를 아뢰며, 전적으로

분만을 신뢰하고, 들은 말씀을 행하며, 이후의 모든 삶에 감사하는 , 이러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이다. 


설교의 정수는 본문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회중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억지로

어조를 달리하고 우수꽝스러운 행동을 하고 손짓은 어떻게 하며 시선은 어디로 둬야 하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성경이라는 창을 통해 회중의 사고와 마음을 영광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 설교자의 궁극적

목표이고 하나님으로 흠뻑 적혀진 실체를 회중들이 성경말씀의 창을 통해 지각하고 경험하게 하는것이다. 


설교의 무대 중앙은 오직 하나님의 자리이다. 다른 어느것도 없고 양보할수도 없는 자리를

키는 우리는 '거룩한 사명감' '두려움' 가져야 것이다. 바울이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한다'

말한것처럼 우리의 설교와 삶에도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자랑되어야 것이다. 

 

책은 말씀을 선포하는 모든 사역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의 블랙박스 - 내 인생의 딜레마 사주로 푼다
김희숙 지음 / 리즈앤북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통해 사주가 태어난 , , , 시의 기둥을 부르는 말이고 위에 글자 아래의

글자를 합쳐 팔자라고 하며 일주일의 , 월은 음양을 화수목금토는 오행을 지칭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정확하게 읽게 되었다. 


저자는 사주를 풍경화에 비유한다. 사람들이 태어난 달과 시간을 연결시켜 폭의 그림을

그릴 있는데 어느것 하나 같은 것이 없고 모두 제각각 자신의 풍경을 가지고 있다. 어떤

그림은 이미 완성된 것도 있고, 어떤 그림은 열심히 채색 중인 것도 있고, 어떤 그림은 스케치만

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어느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 같은 그림이 없기에 다른

그림을 기웃거리고 비교할 필요도 없이 자기가 주인공인 그림을 그리면 된다. 좋고 나쁜

사주는 없다.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뿐이다. 


사주를 본다는 것은 '운명지도' 해석하는 행위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는 섯불리 해서도 안되고,

대충해서도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운명지도를 본다는 것은 사람의

운명에 대해 알고 이야기해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미 태어난 운명은 바꿀 없지만

자신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있다면 액운을 피하거나 피해를 줄이거나 어느정도 대비는

있을 같다. 


사주 팔자를 해석하는 체계 안에 몸의 오장육부를 배치하였기에 음양과 오행의 관계가 사람들의

선천적인 건강 상태를 나타내며 木은 간과 담의 신경계, 火는 심장과 소장의 순환계, 土는 위장과

비장의 소화계, 金은 폐와 대장의 호흡기계, 水는 신장과 방광. 생식기의 비뇨기계에 해당하며

사주팔자를 통해 이를 어느정도 있다는 사실엔 조금 놀라기도 했다. 사람은 선천적 모든

기억을 몸에 가지고 태어나기에 자신의 몸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의 마지막 '비탈지지 않은 평지는 없다' 말이 눈에 들어 온다. 멀리서 보면 평지처럼

보여도 가까이 가보면 언덕도 있고 비탈도 있는 법이다. 겉으로 보기에 평온하고 행복해 보여도

정작 속엔 갖가지 근심 걱정 거리가 넘쳐나고 힘들고 어렵지 않은 인생은 없는 법이다. 저자도

말했듯이 사주가 모든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선택의

폭을 좁힐 있고 조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어짜피 살아내야 하는 인생이라면 남과 비교하며 걱정 근심 가득한 삶을 살기 보다는 자신을 믿고

자신의 풍경화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사는 편이 훨씬 좋지 않을까. 자신이 바라는 일이 지금 바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열매를 위해 씨를 뿌렸다면 그것을 기다리며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삶이 운명을 개척하는 승리자의 삶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중국은 스마트 인 차이나 - 대륙에 부는 4차산업과 플랫폼 바람
유한나 지음 / 북네스트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나라, 그러나 수많은 모방을 통해 어느새

자신들만의 고유의 것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토대로 세계를 향해 진격해 오는 나라, 옛것을

소유하고 기억하돼 새로움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열광하기에 '혁신' 이뤄가는 나라, 그들

특유의 '멘쯔(面子)'문화를 가지기에 섣불리 친해지기도 가까워지기도 어려운 나라, 중국이다. 


중국의 새로움은 새로운 자원이 대한 분배 모델,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산업의 발전 모델, 새로운

소비와 구직모델, 새로운 제도, 새로운 효율의 6()으로 요약하는데 이것이 중국의 새로운

변혁을 이끄는 기능이고 이를 자신들만의 혁신 모델로 운용하고 있다. 


지금의 중국을 이해하려면 우선 주링허우(九零后-1990년대 출생자들) 대해 알아야 한다. 이들은

청년기의 치기어린 소비를 넘어 시장의 주체자로 등장하였고 처음엔 '이기적인', '비주류',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패배의 세대라는 의미로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뒤를 이은 세대) 지칭

되었으나 지금은 '독립적인', '혁신', '오피니언 리더' 등으로 불릴 정도로 위상이 달라졌다.

인민일보는 주링허우 세대를 '복잡하고 방대한 집단'이라고 정의하는데 여기서 복잡함은 한마디로

정의 없는 그들만의 다양한 개성을 뜻하며 방대함은 중국과 세계에 행사하는 영향력을 말한다.

분명 이들은 이전에 배불리만 먹고 살아도 괜찮다던 '원바오(温饱)와는 달리 생활, 문화, 소비를

즐길 있는 환경에서 자랐기에 생각마저도 다르다. 수는 대략 1 7천만 정도로 추산되며 2020

즈음에는 중국 소비의 35% 차지할것으로 예측된다. 이들은 자유로운 영혼과 다양한 모습을 지닌

정치적 독립심도 강한 집단이며 본인이 좋아하는 것은 하고야 마는 목표에 대한 끈기를 보이고

'나만의 ' 외치는 인격적 독립을 주장하는 특성을 지닌다.


하나의 경제 주체가 있다. 중국 30 인구층인 바링허우(八零后). 어느 사회든 1980년대생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30대인 그들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의사결정권과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2 3천만 정도로 추산되는 이들은 1978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에 태어났지만 사회주의

사상DNA 자본주의의 물결을 동시에 맞으며 자랐기에 성향이나 사고 가치의 기준이 다르다. 이들은

중국 전통 먹거리인 요우타오() 즐겨 먹으며 맥도날드도 즐기는 사회적 양면성을 가진

세대이며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변천과 함께 자란 집단이고 사회주의에서 태어나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세대이다. 

아시아의 실리콘 밸리를 넘어 세계 제일을 꿈꾸는 중국 IT 산업의 허브 중관춘(Zhougguancun

Technologe Park) 30년의 역사를 가진 인재 지원과 첨단 과학기술이 모인 집합체이며 세계적인

IT기업인 바이두(百度), 텐샹(聅想), 샤오미(小米) 같은 글로벌 기업을 탄생시킨 'zero to one'

산실이다. 이곳의 첨단 과학 기술 기업의 수는 2만여개로 한국의 실리콘 밸리라 불리는 판교의

870여개와는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카피캣이었던 중국이 어떻게 IT강국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예라고 있다.

 

현재 중국은 생성(birth), 확장(expansion), 지배(readership), 자기혁신(self renewal)이라는 강력한

성장동력을 사용한 선순환 구조를 통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근현대 중국이라는 곰은 덩치만

크고 느렸지만 5G 모바일이 도입된 지금 곰은 빨라지기 시작했고 엄청난 속도로 세계 속으로

전진 중이다. 비록 중국이 일자리 경쟁, 부모양육문제, 자식교육, 수입의 문제, 식품안전의 문제,

환경오염(대부분의  국가가 동일하게 겪는 문제이다)등의 사회적 불안 요인들이 산적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모두가 골고루 살게하는 균형 잡힌 샤오캉 사회(小康社) 건설을 강조하며 개혁의

촛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의 미래가 기대가 되는 한편 거대 공룡으로의 진화를 목전에 그들의 흉포함이 염려스럽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존재감 - 돋보이는 사람들의 한 끗 차이
레베카 뉴튼 지음, 김은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진정한 존재감은 권력이나 위치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 지혜로움과 품격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방법과 관련이 있다. 존재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하나씩 쌓아가는 특성으로

돋보이는 사람들은 분명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길 바한다. 또한 존중과 신뢰를 받길 원하며 그러한

존중과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자신의 직접적인 영향력

범위에 있는 이들에게 긍정적이고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위해 두드러지고 싶은 것이다. 진정한

존재감을 가진 사람들은 조직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상관없이 '사람들을 이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권위를 존중하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해 어떤 직책에 오를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있는 최선으로 영향력을 끼친다. 


저자는 존재감은 대한 통념의 정체를 밝히면서 글을 시작하는데 여기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존재감을 가진 사람은 타고난다는 것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것과,

존재감은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인데 저자는 이에 대한 단호하게 'No' 말하며

존재감을 가치(어떤것의 중요성이나 진가나 유용성, 행동의 원칙이나 기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개인의 판단) 연관을 짓는다. 존재감은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사람을

진지한 상대로 여기고 사람의 기여를 중요하게 여기며, 사람이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가치에는 책임과 의무도 수반되지만 대부분

존재감을 가진 이들은 이러한 부분에서도 탁월함을 보인다. 


존재감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가치를 더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인데

자신의 의도, 행동, 영향력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효율성과 융통성을

통한 간격 줄이기가 필요하며 융통성은 '사회적 지능(social intelligence) 연관이 있다. 사회적

지능은 정치적 견해와 사회적 관계가 포함된 사항을 이행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존재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사회적 지능이 높다. 사회적 지능이 높은 사람은 현실에 민감하고 이해의 폭이 넓으며

수용성이 있어 주변에 사람이 많고 그들이 또다른 힘으로 작용한다. 


사회적 지능과 연관하여 저자는 '지혜로움을 선택하라' 주문한다. 공자의 말에 지혜를 얻는

세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가 사색으로 가장 고상한 방법이고 두번째가 모방으로 가장 쉬운

방법이고 세번째가 경험으로 가장 어려운 방법이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경험을 통해 얻는 지혜는

가장 어려운 방법이지만 가장 오래가고 가장 현명한 실천적 지혜가 된다. 지혜롭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아는가와 어떻게 추론하는가의 차원을 넘어선 다른 개념이다. 


결국 존재감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다움을 보여주며 나를 '' 인식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강력한 영향력을 마치는 것이 존재감이다. 이에 따른 행동 요인은 분명하고 확실함을 전제로

정확성, 일목 요연하면서도 분명하게 전달할 있는 간결성, 결정된 사항이나 아이디어에 대해

긴박하게 반응하는 기민함이 있다. 누구나 진정한 존재감은 갖출 있고 이것이 자기다움이고

자기세움이다.


저자는 누구나 진정한 존재감은 가질수 있다고 말한다. 존재감은 갖추려면 만능의 슈퍼 히어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수용할 있는  열린 마음과 새로운 행동을 계속 시도하고

지속할 자기 단련과 상호 보완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진정한 존재감은

자신감이 아닌 용기에서 나오고 용기는 지금 순간 자신이 계획하고 목표로 하는 그것을

시행하면서 시작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