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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영성 - 친밀한 사귐과 풍성함을 누리는 비결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18년 8월
평점 :
예수 그리고
쉼.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냥
오라고 하신다.
이것저것 잔뜩
가지고 오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고 하신다.
이것이 쉼의
영성의 출발이다.
초대는
그냥하지 않는다.
무언가 누릴것을
준비하고 한다.
주님은 쉼이라는
잔잔한 물가와
풀밭에서 잔치를
배설해 놓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이 초대엔
허울도, 명예도,
부와
권세도 필요
없다. 뭔가
거창한 선물
조차도 필요치
않다. 다만
있는 모습
그대로
가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서
우리의 첫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초대를 받고
보니 뭔가
잘나 보이고
싶어진다. 그래서
꾸미기 시작한다.
이것저것 치장하고
꾸미다 보니
본질의 나는
없고 내가
만든 괴물같은
나만 존재한다.
머리털까지 아시는
주님이신데
나를 만드신
그분 앞에서
가면을 쓰려고
한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그냥 오라고
하신다. 너의
짐이 무거우니
그 짐
내려놓고 오라는것이
아니라 그
짐 그대로
오라고
하신다. 잊지
말자. 그냥
가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시면서 일의
영성을 가르치신다.
'수고하고'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전심으로 임하라는
것이다. 건성건성
대충대충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생각해
보라.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는
주님의 열심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의
두번째 문제가
드러난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칭찬 받는
이가 아닌
손가락질 받는
이가 되어
버렸고, 존경받는
이가 아닌
비난 받는
이가
되어 버렸으며
심지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는
세상의 지탄을
받는 근심거리가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자신의 일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는
성도 다와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인 다와야
한다. 교회는
다닌다고 하는데
성실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지 않은
이들이 너무
많다. 비단
직장 뿐만
아니라 매번
예배에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이들과
뭐가
그리 바쁜지
예배 시간에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모습은
수고하는 모습이
아니다. 주님의
'수고하고'라는
말씀은 맡은
일에 죽을
힘을 다하라는
의미를
가진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42.195km를 완주하고
결승선을 통과한
후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것처럼 죽을
힘을 다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하셨다.
밤이 늦도록
가르치셨으면서도 새벽
미명에 하나님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지셨고 단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셨다. 그렇게
사신 주님이
'수고한' 사람은
나에게 오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주님의 초대에는
쉼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부르셔서
'쉼'을
제공하신다.
쉼이란 멈춤이다.
하던 일을
놓고 잠시
멈추는 것이다.
창조의 마지막을
쉼으로 가지셨던
것 처럼
말이다. 멈춰야
보이고, 멈춰야
들을 수
있고, 멈춰야
즐길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세번째
문제를 발견한다.
도무지 멈추지
않는다. 쉼을
주신다는데도, 참된
안식을 주신다는데도
여전히
분주하여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처럼
폭주한다. 이
분주함이 제일
중요한 본질을
잊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주님께
가기가 어렵다.
쉼은 그런
분주함을 벗어나
주님께 온전히
집중시키는
것이다. 그분에게
시선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고
그분을 즐기는
것이
쉼이다.
그런데 우리는
쉴 수
없다. 우리의
염려와 근심이
그 쉼을
제한한다. 쉬면
큰일이라도 나는것처럼
스스로를 들볶고
불편하게 한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의 마지막은
사고와 폐차인데도
여전히
질주한다. 온갖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가득
실은 폭주기관차가
질주를 하다보니
주변에서 불안해
한다. 그리고
결국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런
우리에게 친절하게
'너희 짐을
맡기라'
(벧전5:7)고
말씀하신다. 맡기라는
표현이 좀
밋밋해보여서 실감이
나지 않는가.
영어 성경을
찾아
보면 대부분의
번역본이 맡기라를
'던진다. 집어
던진다'는
의미의 'cast'를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손에 쥐고
쩔쩔매지 말고
그냥 던져
버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상황을 헬무트
틸리케의 글을
인용해 염려를
손에 들린
핀 뽑힌
수류탄으로 비유한다.
핀이 뽑혀
있어 금방
터져버릴 수류탄을
손에 여전히
들고 있을
바보는 없을걸
같은가? 아니다.
여전히 있다.
바로 우리들이다.
던져야
한다. 버려야
한다. 그렇게
주님께 맡겨
버리면
된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를
외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멈춤을 말씀하시고
쉼의 자리로
나오라고 초청하신다.
더 이상
밍기적거리지 말고
움직이자.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자.
그 걸음
마다 함께하시는
주님의 쉼과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