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 - 당신의 가치를 빛나게 할 능력 어필의 기술
잭 내셔 지음, 안인희 옮김 / 갤리온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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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상대방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라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승패는

차이로 결정되기에 어떻게 하면 자신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가 믿게 만드는 완벽하게 의도적인 자기 표현 기술에 대해 말한다. 

"액자 없는 예술품" 가치를 알아 능력이 우리에겐 솔직히 없다. 2007 겨울

불과 사흘전 보스턴 심포니 홀에서 성황리에 연주회를 갖았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장인의 손길이 담긴 활을 가지고 작곡가

브라암스로부터 가장 경이롭고 해명할 길이 없는 작품이라는 극찬을 들은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 샤콘' 연주하였지만 정작 연주가 이어지는 43분동안 두명을

제외하고는 어느누구도 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그가 연주하는

자리 옆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죠슈아 벨의 연주"라는 팻말 하나라도 있었다면 아마도

자리는 수없이 많은 관객들로 가득찼을 것이다. (이것은 2014 홍보를 후에 그의

동료들과 지하철역에서 공연을 갖았을때 모여든 관중들로 증명되었고 그는 어느새 50

넘은 나이가 되어 중년의 멋을 한껏 풍기며 얼마전 내한 공연을 했다.)

별것 아닌것 같지만 여기엔 엄청난 진리가 숨겨 있다. 능력은 현재에 직면한 일에 필요한

재능과 노력의 조합인데 우리가 상대의 능력을 판단하는 근거는 대체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들이기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천재들이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에선 숨겨져 드러나지 않은 천재보다는 적절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액자로 꾸며 사람이 훨씬 능력을 인정받고 소위말하는 성공이라는걸

한다. 결국 저자의 말처럼 "성공하려면 보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라는 명제가

성립되는것이다. 

가장 조심스러운 겁쟁이들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그나마 살아 있으려면 스스로를 포장하고

적절하게 꾸며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 필요한것이 역시 '말과 첫인상'이다. 그중에 '초두'

효과를 기억해야 한다. 30 만에 내린 판단이 5 동안 숙고하고 내린 판단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과 5 동안 하는 말이 결국 일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면접관들은 면접자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대략 5분이내에 사람의 당락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만큼 첫인상이나 초두가 중요하다. 강한 첫인상이나 강력한 초두는 본인의 가치를

극대화 시키는 마법이다. 이를 적절히 활용한 이가 게이츠다. 제품 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을 성사시켜 MS-DOS라는 당대 최고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판매하여 어마어마한 수익을 남긴 그는 분명 허세 가득한 꿈많은 젊은이였지만

허세를 뒷받침할 용기와 잠재력,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라는 화술의

대가였다. 그의 연설의 대부분은 강력하게 시작한다. 먼저 강한 펀치를 날리고 많은

펀치로 상대방을 눕힌다. 이렇게 대부분의 상대는 그에게 설득 당한다. 사람들은

가장 훌륭한 논리를 가진 사람에게 설득된다 것이 아니라 가장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 설득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내셔의 "당신이 인정받지 못한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능력을 보여주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계속해서

머리 속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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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영성 - 친밀한 사귐과 풍성함을 누리는 비결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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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고 .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냥 오라고 하신다. 이것저것 잔뜩 가지고 오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고 하신다. 이것이 쉼의 영성의 출발이다. 초대는

그냥하지 않는다. 무언가 누릴것을 준비하고 한다. 주님은 쉼이라는 잔잔한 물가와

풀밭에서 잔치를 배설해 놓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초대엔 허울도, 명예도, 부와

권세도 필요 없다. 뭔가 거창한 선물 조차도 필요치 않다. 다만 있는 모습 그대로

가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서 우리의 첫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초대를 받고 보니 뭔가

잘나 보이고 싶어진다. 그래서 꾸미기 시작한다. 이것저것 치장하고 꾸미다 보니

본질의 나는 없고 내가 만든 괴물같은 나만 존재한다. 머리털까지 아시는 주님이신데

나를 만드신 그분 앞에서 가면을 쓰려고 한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그냥 오라고

하신다. 너의 짐이 무거우니 내려놓고 오라는것이 아니라 그대로 오라고

하신다. 잊지 말자. 그냥 가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시면서 일의 영성을 가르치신다. '수고하고'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전심으로 임하라는 것이다. 건성건성 대충대충이 아니라

있는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생각해 보라.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는 주님의 열심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의 두번째 문제가 드러난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칭찬 받는 이가 아닌 손가락질 받는 이가 되어 버렸고, 존경받는 이가 아닌 비난 받는 이가

되어 버렸으며 심지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는 세상의 지탄을 받는 근심거리가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자신의 일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는 성도 다와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인 다와야 한다. 교회는 다닌다고 하는데 성실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지 않은

이들이 너무 많다. 비단 직장 뿐만 아니라 매번 예배에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이들과 뭐가

그리 바쁜지 예배 시간에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모습은

수고하는 모습이 아니다. 주님의 '수고하고'라는 말씀은 맡은 일에 죽을 힘을 다하라는 의미를

가진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42.195km 완주하고 결승선을 통과한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것처럼 죽을 힘을 다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하셨다.

밤이 늦도록 가르치셨으면서도 새벽 미명에 하나님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지셨고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셨다. 그렇게 사신 주님이 '수고한' 사람은 나에게 오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주님의 초대에는 쉼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사람들을 부르셔서 '' 제공하신다.

쉼이란 멈춤이다. 하던 일을 놓고 잠시 멈추는 것이다. 창조의 마지막을 쉼으로 가지셨던 처럼

말이다. 멈춰야 보이고, 멈춰야 들을 있고, 멈춰야 즐길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세번째

문제를 발견한다. 도무지 멈추지 않는다. 쉼을 주신다는데도, 참된 안식을 주신다는데도 여전히

분주하여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처럼 폭주한다. 분주함이 제일 중요한 본질을 잊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주님께 가기가 어렵다. 쉼은 그런 분주함을 벗어나 주님께 온전히 집중시키는

것이다. 그분에게 시선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고 그분을 즐기는 것이 쉼이다. 


그런데 우리는 없다. 우리의 염려와 근심이 쉼을 제한한다. 쉬면 큰일이라도 나는것처럼

스스로를 들볶고 불편하게 한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의 마지막은 사고와 폐차인데도 여전히

질주한다. 온갖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가득 실은 폭주기관차가 질주를 하다보니 주변에서 불안해

한다. 그리고 결국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런 우리에게 친절하게 '너희 짐을 맡기라'

(벧전5:7) 말씀하신다. 맡기라는 표현이 밋밋해보여서 실감이 나지 않는가. 영어 성경을 찾아

보면 대부분의 번역본이 맡기라를 '던진다. 집어 던진다' 의미의 'cast' 쓰고 있음을 있다.

손에 쥐고 쩔쩔매지 말고 그냥 던져 버리라는 것이다. 저자는 상황을 헬무트 틸리케의 글을

인용해 염려를 손에 들린 뽑힌 수류탄으로 비유한다. 핀이 뽑혀 있어 금방 터져버릴 수류탄을

손에 여전히 들고 있을 바보는 없을걸 같은가? 아니다. 여전히 있다. 바로 우리들이다. 던져야

한다. 버려야 한다. 그렇게 주님께 맡겨 버리면 된다. 


" 많이, 크게, 빨리" 외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멈춤을 말씀하시고 쉼의 자리로

나오라고 초청하신다. 이상 밍기적거리지 말고 움직이자.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자. 걸음

마다 함께하시는 주님의 쉼과 안식을 누리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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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괜찮아지는 마음 - 상처받지 않는 마음을 만드는 심리의 기술 49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김정환 옮김 / 꼼지락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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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에게나 신경쓰이는 일이 있기 마련이지요"라고 시작되는 저자의 글은

심리학자 다운 냉철한 분석과 다양한 상담을 통한 경험들을 토대로 '일일이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마음 ' 소유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타인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살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자는 그러한 타인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라고 주문한다. 


먼저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진 이들에게 일본의 만담가 아야노코지

기미마로의 자신이 이야기 대본이 완성되지 않으면 결코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는 말을

통해 리허설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말하기가 두렵다면 미리 준비하자는 것이다.

연습해보고 암기해보고 준비하고 다시해보면 최소한 맨땅에 헤딩할 일은 생기지

않을것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계획성이 없고 준비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저자는 위스콘신대학의 리처드 맥펄 교수의 연구(사례 대상자의

64% 리허설 훈련을 통해 말하기 공포에서 벗어났음) 근거로 리허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아직도 두려운가. 그렇다면 '킹스 스피치' 버티를 기억하라. 그는 마이크

앞에서 "더더더...." 말했던 마이크공포증 환자였지만 수많은 노력과 리허설을 통해

훌륭한 연설을 있게 됐다. 연습하고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능숙하게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것이다.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하지는 않는다. 매일 천번 이상의 스윙 연습을 하고 레코드 판의

바늘 끝을 바라보는 집중력 훈련을 쉬지 않았던 뉴욕 양키스의 대표적 선수인 베이브 루스가

그렇다. 피나는 노력과 연습이 그를 위대한 야구선수로 만들어낸것 처럼 누군가 앞에서

말하기가 두려운 우리에게 리허설은 좋은 도구가 것이다. 


요즘 많이 듣는 단어가 루틴(routine)이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반드시 행하는 일련의 동작을

의미하는 루틴은 고도로 집중력을 높여주는 방법인데 이런 동작을 통해 긴장감을 완화시키고

승부욕을 극대화시킬 있다.  루틴이 최고의 집중력을 끌어 올리기 위한 행동이라면 이와

비슷한 표현인 peak performance 최고로 집중되어 있는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손대면

터져 버릴것 같은' 극도의 긴장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런 상태들 역시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극도의 훈련을 통해서 습득되어진다는 것이니 결국 각자의 노력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아직 자신만의 루틴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찾아보길 바란다.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인 아가사 크리스티가 집필 전에 설거지를 한다는 일화는 집중력이

얼마나 좋은 결과를 얻을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없이 많은 리허설을 통해 발견 루틴과 피크 퍼포먼스를 적절히 활용하면 말하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가치도 극대화 시킬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인생을 질질짜며 찌질하다 살지 말고 위풍당당 마이웨이로 살되 소중한 자신을

지키는 적당한 행복주의자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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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눈부시게! - 김보통의 내 멋대로 고민 상담
김보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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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고민거리를 가지고 산다. 많이 느끼고 적게 느끼는 차이가 있을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고 각자 자기 상황에서 느끼는 고민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누구의 고민이, 어떤 고민이 크다고 말할 없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에 솔직담백하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처방을 준다. 예를 들면 이런것들이다. 먹는

것을 참는 의지가 약하다는 이에게 오히려 당신은 먹겠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4년째 만나는 남자가 술만 먹으면 쌍욕을 한다는 30 중반의 여자에겐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걷는 꽃길보다 홀로 걷는 황야가 외로울 거라고 조언한다. 


얼핏들으면 말장난 같기도 하고 그냥 건성으로 대답하는것 같은데 '촌철살인'이다.

한마디 한마디에 가시가 있고 날카로움이 숨겨 있다. 적절하면서도 차갑게 내려지는

답변에선 기지가 번뜩인다. 

그를 엄살쟁이라고, 한심하고 엄살쟁이기에 아직 살아있다라고 생각하는 그의 모친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적당한 엄살과 적당한 한심함을 가진 그냥 사람들이다.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고 못났으면 얼마나 못났겠는가. 그냥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 비록 세상이 그지 같아서 열심히 살고 성실하게 착하게 살면 반드시

손해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린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남을 향해 손가락질 할때 남을 향한

손가락은 하나이지만 나를 향한 손가락은 세개나 된다는 사실을 잊지말고 자신이 먼저

바로 서고 제대로 살아야 한다. 


띠동갑인 남자와의 연애를 두고 주변에서 '어짜피 헤어질텐데 뭐하러 만나냐' 말하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고민하는 여자에게 던지는 저자의 말처럼 "쫄지 말고"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인생을 대신 살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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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8할은 설득이다 - 로마 시대 최강 말발 키케로가 알려주는 말로 이기는 기술
다카하시 겐타로 지음, 유윤한 옮김 / 서울문화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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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제도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고 법률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뇌물, 착취,

폭력이 당연시 되던 고대로마시대의 위대한 말빨의 소유자인 키케로의 '변론술'

축으로 각각의 주제들을 설명해 나가는 책은 설득하기와 설득당하기의 연속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말로 상대를 이기고 뜻을 이룰

있는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설득이란 말을 통해 상대방의 인식과 생각을 바꾸거나 변화시켜 새로운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건을 사도록 하게 하는것, 이해하게 하는것, 동의하고

납득하게 하는 모두가 설득이고 심지어 연애의 시작도 설득이다. 이러한 설득은

결코 지식으로만 되지는 않는다. 많이 안다고 많이 배웠다고 설득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분명 옳다고 생각하는

금 세공사의 자로 잰듯 정확하고  엄정하고 난해한 올바름이 아니라 누구나 받아들일

있는 서민들의 풋풋한 천칭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유식하고 유창하고

화려한 언변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구수한 한마디에 오히려 설득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설득의 3요소 하나인 '논리적'이다. 논리적

설득이란 철저히 근거가 있어야 한다. 무작정 감정에 호소하고 동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에 입각한 사실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또한 근거는 상대방 역시 인정

만한것이어야 한다. 멀리 안드로메다에서 소환된 근거가 아니라 현재 생활 속에서

부딪치고 발견되는 것들에게서 찾아야 하며 근거를 토대로 결론을 연결하는 논리가

필요하다. 논리가 빈약하기 때문에 대화에서 밀리고 설득당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설득과 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를 제시한다. 

바로 자기에게 불리한 대화는 피하고 유리한 대화는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리한

대화라는 것은 자신의 약점이나 허물이 들어 있거나 그것에 대해 아는 사실이 없어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를 말하는데 이런 자리에서는 얻을 있는 것보다 잃어야 되는 것이

많기에 피하거나 줄이거나 주제를 바꿔야 한다. 이와 반대로 유리한 대화에서는 그것에

대한 지식도 충만하고 꺼리낌이 없기에 

대화를 조금 연장하거나 주도적으로 이끌 있다.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간결함이 주는 함정'이라는 부분이다. 요즘같이 짧게,

간단하게, 핵심만, 요점만을 강조하는 시대에서 흔히 벌어지는 오류를 말한다. 예로 들면

"잘합시다"라고 던진 상사의 마디에 각자의 상황에 맞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판단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간결함이 강하고 임팩트 있는 대화 방법이긴 하지만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간결함은 상대방에게 오해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영화 '넘한산성'에서 인조 앞에서 순간의 치욕을

참고 견디며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한다는 화친파 이조판서 최명길과 굴욕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고 비장한 목소리로 싸울것을 주장하는 화전파 예조판서 김상헌의

대화가 떠올랐다. 서로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아낌없는 상찬을 하지만 자신의 주장에 대해

충분한 근거와 논리로 치열하게 대립하는 그들의 대화는 창칼이 오고가지는 않지만

전쟁터를 방불케했고 대화와 토론의 진수를 맞볼 있었다. 만약 그들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그곳에 있던 모두가 설득되기에 충분한 설득의 고수들의 향연이었다. 우리가

어쩔 없이 설득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면 기왕이면 설득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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