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이야기 -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피엘 드 생끄르 외 지음, 민희식 옮김 / 문학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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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성인의 정서로 인간사회의 모습을 풍자하고 동물을 의인화하여 만든

'여우이야기' 12세기경 사람의 시인이 의해 8음절 2압운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쓰여진 글인데 한시 형식인 5언율시와 7언절구가 생각나게 하는

표현 방식이다. 물론 역본에서는 그러한 운율을 느낄수는 없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여우 르나르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한참 동안 이름이

없이 그냥 여우로 불리워지다 후반부에 가서야 슬며시 흘리듯이 이름이 거명이

되는데 행적을 보면 얼핏 지혜롭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약삭빠르고 교활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 늑대를 상대하는 방법에서 보여주는 그의 악랄함은

놀부를 연상케하고 새를 상대하는 탐욕스러움은 탐욕의 극치를 보여 주고, 사람들을

상대함에 있어서 치밀함은 탄성이 나온다. 이에 비해 등장하는 동물과 인간들의

모습은 치졸하고 우스꽝스럽고 자기 눈만 가린채 ' 안보이지'하는 어리석음 마저도

보인다. 

이솝 우화의 변종이긴 하지만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는 오히려 이솝 우화를

뛰어 넘고 당시 봉건 사회의 종교 도덕과 사회적 악랄함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훨씬

현실적이다. 책에 등장하는 여우는 분명 교활하고 악랄하고 뛰어난 처세술을 지닌

아첨꾼이다. 그러나 그가 그림을 그리며 살아감에 있어서 그건 분명 지혜다. 지혜가

여우를 죽음의 위기에서 살리고 위험과 위협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을

끄는것은 책에 등장하는 여타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이다. 역자도 설명했듯이 그들의 사상

기조에 깔려있는 '관용' 정말 배우고 싶다. 그렇게 악랄하고 교활한 여우에게도

'한번 '라는 기회를 부여하는 그들의 관용은 미련하리만치 분명하다. 여우가 수도 없이

죽을 위기를 맞지만 결국 살아 남는 것은 여우의 지혜보다는 그들의 관용의 결과일 것이다.


도무지 관대함과 관용과 너그러움을 찾기 어려운 현실 앞에 던져진 '여우 이야기'

사라져버린 혹은 감춰둔 우리의 '관용' 끄집어내는 마중물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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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법을 배운 날 - 조나단의 인생 수업
로랑 구넬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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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게 '당신은 죽을 거에요'라는 말을 듣는 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는 의문이다. 곧은 언제인지

어떻게 죽을지도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시한부의 삶을 산다는것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고 죽음을 경험해 보니 않았기에 기분이 상상이 안되지만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희미한 상상력을 총동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갑작스러운 죽음. 과연 죽음 앞에 누가 초연할 있고 당당할 있겠는가.

그리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이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적절한 충고와 조언으로 삶의

방향과 시각을 바꿔 있는 멘토마저 없다면 삶은 허무 것이다. 

빨간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빨간 세상이, 파란 안경을 쓰면 온통 파란 세상이 보이는 것을

우리 모두 알지만 안경을 벗기가 쉽지 않다는 역자의 말처럼 자신의 고착화 시선과

사고를 조금 바꾸는 역시 쉽지 않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평소에 안하던 행동을 한다고

하듯이 죽음을 앞둔 조나단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둥근 보름달만 멋진것이 아니라 사과를 쪼개놓은듯한 반달도

손톱의 하얀색의 조반월을 닮은 상현도 여인네의 눈썹을 닮은 상현도 각기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듯 현재 우리의 마음이 조금 힘들고 지치고 어려워도 안에 내가 존재하며 여전히

삶은 내가 운전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진면목과 숨겨진 가치를 발견 한다는 자체가 이미 삶이다. 평생을

정말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채 익숙해져서 편한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데 그에 비하면 죽음 앞에서라도 자신의 길을 걸어 있다면

그것은 다행인 것이다. 


깊게 저물어 가는 가을에 저자는 우리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진다. 

" 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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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 당신에게 -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과 이별하는 28가지 심리 상담
마음달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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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툴고 타인을 사랑하는 일엔 인색하다.

삶의 잣대 역시 나에겐 인색하고 타인에게는 야박하다. 저자는 이렇듯 기형적인

삶을 사는 우리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들을 가르쳐 주며 인생을 멋지게

운전해 나가라고 주문한다. 


스캇펠의 거짓의 사람들에 나오는 (evil) 산다(live) 거꾸로 늘어 놓은 단어라는

말처럼 악은 삶을 넘어 생명을 무너뜨린다. 섯불리 대항하려 다가는 오히려 내가

괴물이 되어 버린다. 성경에 나오는 말처럼 '악을 선으로 이기라' 자세로 버텨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오른뺨을 사람에게 왼뺨까지 내어 아량이 내겐 없고

겉옷을 입은 이에게 속옷까지 벗어 친절도 내겐 없다. 그런데 저자는 여전히

이해와 관용을 구한다. 


죽음을 위해 살아가던 베로니카가 일주일이라는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되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파울로 코엘류)'처럼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매일 죽는 것은 어떨까?날마다 죽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면 매일을 삶이 분명 지금보다는 좋은 삶이 될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죽고싶어' 아니라 '살고 싶어' 외치고 '죽겠어' 아니라 

'행복해' 이야기하면서 지금이 아닌 미래를 꿈꾸며 최선을 다하는 그것이 사는

길이다. 


둥근 보름날만 멋진것이 아니라 하현도, 상현도 반달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듯이

우리 마음이 지금 비록 어렵고 힘들고 지쳐있어도 안에 내가 존재하며 여전히

삶은 내가 운전해 나간다.

저자의 멋진 말을 하나 소개한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평생 나와 함께 나라는 동반자와 걸어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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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은 필요 없다 - 집중하지 않고도 저절로 일이 술술 풀리는 최강의 두뇌사용법
모리 히로시 지음, 이아랑 옮김 / 북클라우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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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좀해" 

아마도 우리가 살아오면서 아주 많이 들어 말일 것이다.

도무지 집중 없는 상황에서조차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주는

소리는 저자의 말처럼 "집중신앙" 되어버렸고 대부분의 실패는

집중력 부재라는 본의 아닌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 앞에 '집중력은 필요 없다'라고 선전포고를 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목표지향적 집중 보다는 다양한 방법의

시도가 훨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생각을 위해 필요한 조건 두가지를 제시한다.

첫번째는 문제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며 하나는 의도적

한 눈 팔기이다. 


의도적 한눈 팔기. 

얼핏들으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의도적 한눈 팔기는 이미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사용하는 아이디어 창출 방법 하나이다. '무의 경지'

시간을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발견된 아이디어를 기획안으로 만들어

내는 훌륭한 멍때리기는 분명 발상의 전환이다. 무의 경지는 그대로 본질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보는 것인데 크리에이터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아이디어 포지션'

(화장실, 온천, 낚시터, 지하철 , 내가 아는 어떤이는 광화문 네거리 혹은 종각역)

이라는게 존재하고 그것은 성역과도 같다. 그곳에서 목표를 향해 집중하는것이 아니라

최대한 몸을 이완시키고 특별한 생각 없이 한눈팔기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물론 아무것도 떠오를 때도 많다.)


저자는 또한 '집중과 분산' 대해 이야기 한다. 더욱더 집중하기 위해 분산하고 단일화된

목적을 위해 분산했던 것들을 모아 목적에 집중하는 이중적 요소를 지닌 단어들은

효율성과 극대화라는 측면에서는 묘한 연결 고리를 가진다. 

성공으로 이어질 확률이 50% 불과하지만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에서 감독들은 "자신감을

가져"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자신감의 여부에 관계없이 승부는 결정되어 승자와 패자로

나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되도록 실패 가능성이 낮은 쪽을 선택하고

조심스럽게 시도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삶에서의 자신감이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위안이 되어 줄이는 모르지만 결국 삶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유유히 흘러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과장되게 억지로 꾸밀 필요도 위축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저 의욕을 갖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실현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면 된다. 현실은 결코 이상이

아니기에 허황되고 장황한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신뢰를 받기 마련이다. 


이세상의 삶은 수학 문제가 아니기에 유일한 답은 없다. 다만 답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군 그것이 바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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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미식사전
박진환 지음 / 한국외식정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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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먹은 음식을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고 말하는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의 주장처럼 우리는 1년에 1095, 평생 자신의

몸무게의 1600배를 먹고 사는데 여기에는 취향 종교 가치관 사회적 정체성

섹스습관 야망 심지어 인간관계까지 나타난다. 이렇듯 먹는것은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미각의 원천은 마음에 있고 음식은 기억의 맛이다. 그래서 몸이 아프거나 심신이

지쳐있을때 가장 생각나는 것이 엄마표 밥상이다. 분명 특별히 뛰어난 솜씨를

가지거나 엄청나게 좋은 재료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기억은 밥상을

받으면 힘이 나고 생각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있다. 밥상 자체로 이미

사랑이다. 아마도 자식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고 애정과 정성이 담긴 음식이기에

그럴것이다. 

누구나 기억이 존재하고 어린시절의 기억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엄마의

냄새와 음식 냄새인데 엄마의 냄새는 너무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조금은

희미할 수도 있지만 어린 시절 맛보아 기억하는 맛있었던 음식의 맛은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서 어렸을 해외로 입양된 스미스가 언급하는 '고소하고 졸깃졸깃한

' 같이 구체적으로 기억된다. 뿐만인가.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은 자신이

예전에 먹었던 맛의 기억을 떠올려 그것을 먹음으로 대체 보상의 효과를 얻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중세 수도원에서 아침 미사 전에는 음식을 먹지 않고 하루에 한번씩

먹었는데 이때 등장한 단어가 밤새 먹지 못했던걸 드디어 먹는다(break the nights fast)

뜻의 Breakfast라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고, 마음의 점만 찍는다는 점심의 유래도,

오페라의 거장 로시니가 가장 사랑했던 식재료인 송로버섯이 떡갈나무 숲에서 자라는데

육안으로는 돌맹인지 흙인지 구별 없어 후각이 발달한 개와 돼지를 훈련시켜

채취하고 로시니가 송로버섯을 채취하는 돼지를 키우기 위해 작곡을 그만두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의 가치를 가진 재료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삶의 속도가 빨라 질수록 모든 면에서 경쟁도 치열해진다. 이런 흐름이 물질의 풍요는

가져다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적 여유와 안정을 빼앗아버렸다. 음식과 함께하면

소통이 쉽게 이루어지는 음식문화의 시대에 살면서 빼앗긴 정신적 여유와 안정을

정성이 가득하고 맛있는 음식을 통해 조금이라도 찾을 있다면 우리는 분명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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