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샤넬백 대신 그림을 산다 - 똑똑한 여자의 우아한 재테크
윤보형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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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대하기 미술품 경매는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회사를 통해 거래되는 고가의 상품들로

나와는 무관한 세계로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미술에 대한 지식도 없거니와 미술품을 보는

안목마저 없는지라 당연히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저자는 예술 작품에 투자하는 재테크, '아트 테크' 장점을 적금보다 즐겁고, 주식보다 안전하고,

부동산 보다 수익률이 높다고 설명한다. 비교적 적은 돈으로도 시작이 가능하고 부동산 거래에 붙는

'세금'이라는 복병을 피할 있고, 주식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종이 조각이 수도 있는 위험을

가지지만 미술작품은 훼손하거나 분실하지만 않는다면 영원히 것이 된다는 특수성 마저 가진다.

물론 아트 테크가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과 같은 일확천금을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안정적인

수익을 가능케 하는 고수익 저위험 재테크이다. 


부동산 시장이 매수인, 매도인, 중개업자라는 축을 중심으로 돌아가듯이, 미술시장 역시 작가,

컬렉터, 아트딜러를 축으로 움직인다. 미술 시장의 거래 대상은 작품이고 작품을 공급하는 작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작품을 소장하려는 컬랙터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작품을

소장하려는 이가 없으면 작가는 생계를 유지할 없고 작품은 자기 만족에 그친다. 그리고 둘을

연결해 주는 아트딜러가 필요하다. 미술 시장의 쇼핑 호스트인 아트딜러는 갤러리스트, 아트컨설던트,

화상이라고 불리는데 이들은 단순히 미술 작품의 유통에만 관여하지 않고 작가와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통해 작가의 성장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미술계에서는 '최고의 딜러가 결국 최고의 작가를

만든다' 말이 회자 정도로 이들의 영향력은 크다. 


'미술 작품의 가치를 말해주는 지표는 하나이다. 작품이 판매되는 현장이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프랑스 인상파 화가) 말처럼 미술작품은 독특한 가격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보통 미술 작품의 가격은 작품의 완성도, 작가의 대한 평가, 작품의 소장 내력(provenance)

전시 이력을 고려해서 결정하는데 해당국의 경제 성장 전망이 고려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작품의 크기와

가격이 정비례 관계를 형성하는 '호당 가격제' 이제 옛날이 되었고 최근 국제 미술 시장에서는 작품의

크기가 아닌 가치를 작품에 반영하는 '작품당 가격제' 바뀌고 있는 추세이다. 


저자는 친절하게 추천 소장 기간을 알려준다. 100만원대 작품은 최소 20, 200-300만원대의 작품은 최소

10-20, 500만원대의 작품은 최소 5-10, 1000만원대의 작품은 최소 3-5년이다. 구입 가격이 낮은

작품일수록 추천 소장 기간이 이유는 시장에서 작품이 알려지고 수요가 늘어나는데 시간이 걸리고

리세일 주기를 최소 2-3 거쳐야 수익률 측면에서 만족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미술 작품은 묵히면

묵힐 수록 돈이 된다' 미술 투자의 정석이다. 


옷을 후회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100% 마음에 드는 옷이 나타날 때까지 절대 사지 않는 것이다.

미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성급하게 구매하지 마라. 시간을 투자해야 좋은 컬렉션을 가질 있다.'

슈퍼컬렉터인 엘리 브로드(Eli Broad) 말은 기억해야 한다. 작가에 대해 공부하고, 전문가에게

계속 묻고, 자신에게 ' 작품을 사야 하는지' 묻는 검증의 과정을 충분히 거친 구매해야

후회가 없다. 


가치 있는 미술 작품을 찾는 일은 설레는 일이다. 단지 투자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장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작품과 친해지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 끊임없이 보고 듣고를 반복해야 좋은 작품을 골라 있다. 역시 뭐든 쉬운것은

없고 공짜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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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필사시집
윤동주 지음, 나태주 엮음, 슬로우어스 그림 / 북로그컴퍼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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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란 이름처럼 아름다운 이름은 없다. 윤동주란 이름처럼 부드럽고 둥글고 순하고

선한 이름은 없다.'

나태주 시인이 윤동주를 생각하며 글이다. 누군가를 칭찬하기도 어렵지만 진심과 존경을 담아

칭찬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런데 문장을 보면 윤동주를 생각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나태주의

진심이 담겨 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언제였을까 하고 기억을 떠올려

보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그만큼 강팍해져 버렸다. 아름다움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할 여유 마저도

갖지 못한 삶을 살아내기 급급한 지금의 우리에게 윤동주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되지' 


윤동주. 우리 대부분은 이름을 기억한다. 저항 시인이며 독립 운동가며 우리의 것이 탄압 받던

시기에 우리말로 시를 쓰고 글을 썼던 인물로 기억은 하는데 정작 그의 시는 서시, 자화상, 헤는 ,

고향집 정도가 알려졌을 대부분 알려지지 않았다. 역시도 숭실고등학교(윤동주의 모교

하나) 나왔기에 교정에서 있었던 외의 시들(팔복, 참회록, 십자가등) 기억하지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시가 대부분이다. 28 라는 젊디 젊은 나이에 불과 6개월 이루어진 그토록 고대하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채 낯선 일본의 형무소에서 타계한 그의 삶은 조국의 아픈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고뇌하는 삶이었고 아픔과 고뇌는 그대로 속에 녹아 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복도에 걸려 있던 그의 '팔복' 당시 혈기왕성했던 나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희망이 없다. 앞이 보인다. 그래서

이상 기댈 기운 마저도 없어 그냥 슬퍼해야 하는 조국의 현실을 노래하는 그의 팔복은 충격이었다.

여덟번을 반복하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읽으며 슬퍼함의 복은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고 슬퍼하는 복을 누린다 한들 그게 정말 복일까라는 의구심 마저 들었다. 마치 이상

'1의아해가무섭다고그러오.....' 열심히 도로를 질주 시킨 13인의 아해를 이야기하고는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라고 허무하게 마무리 하는 오감도의 그것과 흡사하다.

시인 모두 조국의 아픔과 현실을 허무를 소재로 사용하여 글을 썼다.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말하지만 안에 담긴 시인의 간절함과 절박함은 독자들의 마음을 더욱 깊이 흔들어 놓는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윤동주의 십자가의 구절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자신의 삶을 예수에 투영시킨다. 조국의 상황과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아파하는 자신과 죽기 위해 와서 죽음을 받아 들여야하는 예수를 '괴로웠던 사나이'

묘사한다. 아픔을 알기에 고통과 괴로움을 알기에 현실 자신과 조국의 암담한 현실 앞에서

시인은 예수를 떠올린다. 그러나 죽음 뒤에 것을 알기에 행복한 예수와, 조국의 현실이 지금 비록

암담하지만 마침내 갖게 조국의 해방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행복한 예수를 부른다. 죽음 앞에서 조차

초연했고 마침내 죽음을 이긴 예수의 모습 속에 자신을 대비시킨다. 그렇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처럼

자신에게도 십자가가 허락 된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얻을 있다면 길을

걷겠다고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흘리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는 죽음을

맞이했고 시인도 죽음을 맞이한다. 


번이고 읽었다. 읽는 내내 절절함이 묻어난다. 시어 하나하나가 시인의 염원과 열망이 담겨있다.

간절함이 뿌려진 마냥 속에 녹아 있다. 어떤 시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그리고 장을 덮으며

그토록 열망하던 해방을 보지 못하게 데려간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태주 시인은 글씨를 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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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길을 잃는 이상한 여자 - 상상할 수 없는 독특한 뇌를 가진 사람들
헬렌 톰슨 지음, 김보은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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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 우리가 경험하거나 말하는 모든 이야기는 우리 머릿 속에 1.36kg 짜리

비슷하게 생긴 덩어리 덕분이다. 지금 확실한 것은  '이상한 ' 소위 '정상' 뇌의 수수께끼를

들여다 보는 독특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뇌들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된 특출한 재능이

있으며, 이런 능력이 자유롭게 해방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세계에 대한

사람의 인지가 항상 동일하지 않다는 점과 사람의 뇌가 우리가 믿는 것처럼 정상인지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을 들어 '이상한 ' 소유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마음을 가진 환자들의 이야기와 사랑하는 사람을 찾은 이야기, 세상을 탐색하는 이야기들을 전하며

그들의 삶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뇌가 어떻게 특별해 지고 다를 있는지에 대해 책을 통해 다룬다. 


'방향 감각'이라는 번도 의심해 보지 못한 능력이 사라지는 병을 앓아 집에서조차 길을 잃는 여인

'샤론' 특별하다.(물론 책에 기록된 이들 모두 특별하다.) 손상이 없음에도 주변에 대한

 심적지도를 만들 없고 사용할 수도 없는 현상에 대해 '발달성 지형학적 방향감각상실 장애'라고

명명한다. 환자에겐 건물에 오래 살아도 화장실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모르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아무런 노력과 의지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행하는 일들이 멈춰지고 기억되지 않는다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사론도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 우리는 대부분 방향 찾는 일을 쉽고

자연스럽게 여긴다. 낯선 도시에 가면 뇌는 장소에 관한 감각을 형성하고 여행의 기준이 되는

집을 찾고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 랜드마크를 인식하며 주변 지형에 익숙해지지만 질병을 가진 사람은

이런 활동이 중단되어 기억하지 못한다.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경계 세포는 실제 상태 정보를 방향

탐지 세포와 공유한다. 이름이 뜻하는 그대로, 방향 탐지 세포는 머리가 향하는 특정 방향을 기억하는

세포다. 세포들이 활동을 멈추면 고장난 네비게이션 처럼 지도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머릿속

지도가 섞여 버리면 길을 잃어 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샤론처럼 말이다. 아직까지 완벽한 치료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장소에 가면 본거지를 정해 놓고 그곳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하고

환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특별한 지형지물을 기억하고 지형지물 사이의 거리를 기억하고 동물들

처럼 자주 뒤를 돌아 보고 주위를 둘러 보는 것으로 돌아갈 길을 기억하는 방법이 현재로선 최선이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타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조엘 역시 독특하다. 타인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사람의 뇌가 행동을 그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까지 느낄

있게 하는 '거울 뉴런' 능력을 통해 사람이 마치 행동하는 주체인 것처럼 타인의 행동을 내면화 한다.

겨울 뉴런은 우리가 공감하게 해주지만 타인의 경험을 그대로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뇌의 다른 영역에서

오는 신호가 타인과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구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 뉴런의  활성이 남다르게

왕성한 사람의 경우, 타인이 느끼는 촉각 감각과 감정을 보면 자신도 똑같이 느끼게 되는데 이런 감각을

'거울 촉각 공감각'이라 한다. 조엘은 감각이 특별하게 발달해서 타인의 촉각은 물론 감정까지

해석하고 이해한다. 조엘은 사람을 숫자를 인식하고 각각의 숫자에는 개성이 있음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숫자로 인식되는 '8 사람' 열심히 일하는, 강한, 성실한 사람이고 진실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숫자는 사람의 정보가 많아지면 조금 변화하기도 한다. 조엘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사람과의 '객관적 거리' 유지하기 되었다. 아쉬운것은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뇌는 타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억누르지 못하고

경계에서 혼란을 겪는다. 책에 등장하는 9명의 특별한 사람은 우리 속에서 흔하게 만날 있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우리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동반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자신의 뇌에 관해 작더라도 새롭게 알아낸 사실이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너무

우리의 뇌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에게 사랑을 느끼고,

지독하게 어려운 문제의 답을 찾고, 우리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게 하는 모든 일은 우리의 두개골

안에서 윙윙 거리고 움직이는 질척질척한 물질의 역할이다. 뇌가 만들어내는 삶을 즐겨야 하며 그럴

권리가 우리에겐 있다. 우리의 뇌가 창조할 있는, 상상하기 조차 힘든 대지가 얼마나 넓은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 수수께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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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쇼크 - 인류 재앙의 실체, 알아야 살아남는다, 최신증보판
최강석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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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하다. 2020 벽두부터 시작된 우한발 코로나 19 확산으로 사회가 마비되고 모두가 고통과 불편을

겪고 있는 지금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책은 이미 2016년에 출간된 책이다.

바이러스는 항상 존재해 왔는데 이번은 조금 강력한 것인가 싶다가도 예전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률

통계를 보면 그나마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메르스는 치사율이 39%

가까웠고 사스 역시 10%대의 치사율을 보였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2-4% 치사율을 예측하고

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Taleb) 저서인 '블랙스완' 우리가 가졌던 일반화의 오류에

대한 저격이었다. 이전까지 우리는 어느 누구도 '까만 백조'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선장에 의해 발견된 검은 깃털을 가진 백조( 자체가 

 어울리지만) 발견됨으로 서구인들에게는 기존 관념과 편견을 뒤엎는 엄청난 사고의 혼란과

충격이었다. 블랙 스완은 과거 경험자의 관측값 영역을 벗어난 범위에 놓여 있어서 매우 예외적이고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지만(희귀성)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고(엄청난 충격

파장),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소급하여 예견할 있는(예견의 소급 적용) 속성을 가지고 이를 'X 이벤트'

(Extreme Event)라고 부른다. 이는 메르스 사태 그대로 증명되었다. 누구도 중동에서 그것도

낙타를 매개로 해서 전염된다고 예측하지 못했고 '설마 우리나라에도 들어 오겠어'라는 안이한 생각과

대처가 중동을 방문하고 들어 명의 확진자에 의해 국내에 유입 발생한  '블랙 스완' 현상이

벌어졌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의 99.9% 이상은 우리 인간과 아무런 상관 없이 서식한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사람이 아닌 다른 숙주에 서식하며 살아간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을 유발하여

고통스럽게 만드는 나쁜 바이러스가 있는가 하면 우리 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침투할 이들을

통제할 있는 능력, 면역을 우리 몸에 부여하는 백신으로 사용하는 착한 바이러스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는 세포에 감염되고, 세포 속에서 후손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데 하루면

충분하다. 바이러스가 숙주 몸속에서 일단 정착을 시작하게 되면 숙주 면역계의 공격과 같은 험악한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바이러스가 진화하는게 아니라 바이러스 유전자가 진화하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자연숙주'라는 정해진 서식지에서 살아간다. 거기서 숙주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숙주의 면역체계라는 무기가 무리하게 작동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번식하고 숙주 역시

무리하게 바이러스를 제거하지 않으려는 공생의 관계가 형성된다. 


바이러스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인간이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바이러스

역시 안정기를 맞이하며 인간 세계의 주연으로 등장하게 된다.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농경 생활에 필요한 가축들과의 직접적 접촉이 빈번해 지면서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좋은 푸시& 여건을 충족시켰다. 이후 우리에게 '마마' 불렸던 천연두는 1980 천연두 근절이

선언되기까지 최대 5억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수천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바이러스들이

생성돼서 소멸되기를 반복했는데 일부 바이러스들은 주기적으로 발생하며 인류의 생존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대표적인 것이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이다. 1918년에 출현해서

1년동안 50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스페인 독감은 악명이 높다. 20세기 후반 이후 최악의

바이러스는 아프리카 밀림지역 침팬지로부터 사람에게 넘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면역 세포 속에

숨어 지낼뿐만 아니라 수시로 바이러스의 껍데기를 바꾸는 영악한 녀석인 에이즈 바이러스인데

1980년대 이후 7000만명 이상이 감염 되었고 4000만명 가까이 사망했다. 인류가 문명 생활을

시작하면서 끊임 없이 수많은 바이러스들에 의해 고통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체가 무엇인지 수가 없었기에 아무것도 없는 인간은 그냥 악마를 피하는게

상책이었다. 바이러스의 존재를 인식하며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20 정도에 그친다. 


지금 순간 지구촌 어딘가에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고 있는지도

른다. 상당 수는 지역에서 유행하다가 찻잔 속의 태풍처럼 사라질것이고, 일부 바이러스는

지역사회를 넘어 세계로 확산 것이다. 우리 생활 반경이 넓어지고 빨라질수록 전염병의 확산도

빨라진다. 이번 코로나19 처럼 말이다. 이때 우리는 가장 소극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방법인 마스크

착용과 씻기등과 같은 개인 위생에 철저해져야 한다. 어디서든지 씻기와 같은 개인위생만

지켜도 손에 묻은 병원균의 80%이상이 소멸되고 감염 위험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속히 코로나19 라는

사회적 공포에서 벗어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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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논리학 - 말과 글을 단련하는 10가지 논리 도구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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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설득 당하느냐 설득하느냐의 시대를 살고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혹은

상대방을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다. 책은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설득하는 최강의 무기인 '논리' 대해 이야기한다.

 

설득이란 말과 글을 통해 이뤄지는 언어의 논리이다. 인간이 가진 두가지의 욕구는 자연을 이해하고

조정하려는 욕구와 인간을 설득하여 움직이게 하는 욕구인데 전자에는 수리 논리가 후자에는

언어 논리가 필요하고 일반적으로 언어 논리에 대한 욕구가 더욱 크고 강하다. AI 대변되는

4 산업 혁명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논리학은 어쩌면 저만치 멀리 있는 학문이라고 있으나

인공지능이 가지는 한계인 비판적 사고와 복잡한 의사소통이라는 벽은 우리에게 논리학에 대해

다시 집중하게 만든다. 이제 권위의 시대가 아니라 설득을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사느냐 죽느냐'

문제보다 '설득하느냐 못하느냐' 문제가 훨씬 현실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합리적인 정신활동인

논리학을 제안하며 합리적이고 정당할 때는 설득당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불쾌해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소크라테스 혹은 플라톤과 베이컨 정도는 논리학과 충분히 연관이 있을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야모토 무사시' 정말 의외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의외다.

그런데 의외가 너무 적절하다. 전신() 미야모토 무사시와 논쟁술의 대가인 쇼펜하우어를

비교하며 설명하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특별히 무사시의 '오륜서' 나오는 검술과

쇼펜하우어의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실린 논쟁술 사이에는 놀랄만큼 공통점이 많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뻔뻔하라 그리고 승리하라'. 칼은 위험하지만 자체로 악하거나 선하지 않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선악이 달라진다. 논쟁술은 교활하고 뻔뻔하지만 실용적이고 파괴력이 크다.

 

논쟁은 주도권 싸움이다. 누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에 무사시는 '주도권을 쥐면

전쟁에서 빨리 승리 있기에 주도권을 쥐는 것은 병법에서 가장 중요한 이치다'라고 말한다.

논쟁에서 주도권을 있는 좋은 방법 하나가 '질문 던지기'이다. 권투 경기에서 잽을 던지는

선수가 경기를 주도하는 같이 논쟁에서도 질문을 던지는 자가 상대를 제압한다. 일상적인

질문이 아니라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어 자신의 주장을 펴지 못하게 하거나, 반대로 나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을 없게 만드는 질문인 '전략적 질문' 던져 상대로 하여금 곤란을 겪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는 상대로 하여금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들어 결국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하게 하는

'잘못된 이분법(false dichotomy) 이용한 공략'이다. 상대가 질문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거나 반박하지 못한다면 쉽게 원하는 목적을 이룰 있다. 여기서 조금 나가면 저자가

'교활한 질문'이라고 표현한 '복합 질문(complex question) 이용한 공략' 있다. 가지 이상의

질문을 결합하여 상대가 어떠한 대답을 하더라도 불리한 상황이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신

요즘엔 도박하지 않지?' 같은 질문이다. ''라고 대답하면 예전엔 도박을 했다는 말이고 '아니오'라고

하면 지금 도박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논리학 상으로 복합질문의 오류라고 지칭되는 방법은

의외로 강력한 힘을 가진다. 상대에게 발각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논쟁에서는

'정당한 수단을 쓰든, 정당하지 않은 수단을 쓰든' 관계없다. 자신의 주장을 방어하고 상대의 주장을

무너뜨리면 그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자신의 '토피카'에서 아무하고나 닥치는 대로 논쟁을 벌이지 말하고 했다.

'결코 불합리한 것을 내세우지 말고, 만약 그럴 경우 자신에게 창피하게 여길 만큼 충분한 분별력을

가진 사람들과만 논쟁하라'라고 교훈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그런 사람은 100 사람이

있을까 말까 하다면서 누구하고든지 논쟁하라고 말한다. 뻔뻔하게 싸우고 반드시 승리하라고 말이다. 

산속 깊은 곳의 샘물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수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독을 만드는 도구가 되는 것처럼

결국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책을 다시 읽었다. 설득이라는 관점에서 진리라는 말은 우리가 받아 들이고

따라야만 하는 어떤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리는 패러다임이나 유대성의 산물이 아니라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2000년전 빌라도가 비겁하게 발뺌을 하며 무엇이

진리냐고 물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기 것인지 아니면 법정에서 진리는 이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버틸 것인지 대한 선택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책은 법정에서

아주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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