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도 전략이다 -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사업정리법
강종헌 지음 / 북네스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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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와 팬데믹 쇼크를 지나며 우리에겐 낯선 광경들이 자주 목격된다. 불과 몇 달 전 만해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식당과 골목이 불이 꺼진채 스산한 바람만 불고 어지럽게 전단지만

날아다니고 임대라고 써 붙인 가게들은 내부에 있는 물건들을 처분하느라 분주하다. 생각지 못한

폐업과 정리는 이제 우리에겐 익숙한 단면이 되어 버린 지금 우리에게 저자는 '폐업도 전략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고 조금이라도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가게든 이익을 남기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고 가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처럼 불가피하게 가게 문을 열지 못하는 상황 앞에서 구조적인 모순과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는 상인들의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실제로 '여의도 불패'를 자랑하던 몇몇의

식당들이 축소 영업이나 휴업 혹은 폐업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임대료와 인건비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데 비해 정부의 쥐꼬리만큼 지원으로는 해결조차 되지 않기에 가용 인원을

줄이거나 영업 시간을 축소 하거나 임시 휴업이라면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뿐인가

넘쳐나는 재고와 치솟을대로 올라있는 원자재비 등은 그나마 은근히 버텨 오던 기반 마저 정리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이 책에서는 재고를 줄이는 방법으로 반값 떨이나 이벤트성 행사들을 통해 자금 회전을 조금이라도

원활하게 하는 방법들과 종업원들을 해고 할 때 법적인 제약이나 문제를 만들지 않는 방법들과

보증금이나 임대료 부분에 대한 예방책등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 책의 목적은 의외로 단순하다.

어차피 다가올 것이라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초기 투자비용을 최대치까지 확보하고 법적인 책임

소재등을 미연에 예방하고 도의적 책임의 부분까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미리 알고

대비하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현실은 앞으로 다가올 폭풍들에 비하면 전주곡에 불과하다라는 예측이 나올만큼

불확실한 미래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앎'을 통해 미리 준비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미

시작된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수많은 기업들과 중소 업체들 그리고 소상공인들이 또 쓰러지고

넘어질 것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막연함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사전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이 책은 그런 우리들에게 좋은 정보들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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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명언명구 : 세가 사마천 ≪사기≫ 명언명구
이해원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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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적인 서명이 없이 태사공서 혹은 태사공기를 줄여서 태사공(太史公)이라 불렸던 책을

삼국시대부터 태사공서의 전문 명칭있고 역사서의 통칭인 사기(史記)로 사용하게 되었다.

사기는 본가, 표, 서, 서가와 열전 다섯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역사상 제왕 등 정치의

중심인물들이 기술된 본기, 세가, 열전등을 통해 인물 중심의 새로운 역사서는 창립하였고

역사서 부분의 주요부분인 본기와 열전의 한 글자씩을 따서 기전체 역사서라고 부른다.

저자는 사마천을 중국의 헤로도토스(Herodotos)라 부른다. 페르시아 전쟁사를 다룬 '역사'를

저술하면서 과거의 사실을 시가가 아닌 실증적 학문의 대상으로 접근하여 키케로가 '역사의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뛰어난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를 빗대어 사마천을 지칭한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글의 흐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탄위관지(嘆爲觀止).

오나라 왕자 계찰이 노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초소(招箾)의 춤을 보고 한말인 이 사자성어는

'더할 나위 없다', '감탄해 마지 않는다'의 의미를 가지며 관지의(觀止矣) 혹은 탄관지의

(嘆觀止矣)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음에 어떤 연주가 더 남아 있더라도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즐겼으므로 더 이상 들을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초소의 연주를 극찬하는 계찰의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경치나 예술작품, 예술적 표현이나 학문이나 기능이 완벽하거나 최고

수준에 도달했을 경우 사용하는 이 단어는 진심이 부족한 우리에게 진심을 보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사물의 최고 정점에 도달하여 여기에서 더할 것이 없음을 뜻하는

탄위관지라는 극찬을 들을 만한 누군가가 존재했으면 좋겠다.

가화우인(嫁禍于人).

한나라 상당의 태수가 조나라 왕에게 상당의 17개의 성읍을 바치겠다고 하자 광양군 조표가

반대하여 한 말인 이 사자성어는 '자신의 재앙을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기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한나라와 조나라와 진나라가 뒤얽혀서 벌어지는 암투 속에서 진위를 밝히고 사실을 직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이가 있다면 그 나라에는 커다란 복일 것이다.

자신의 불행이나 어려움을 남에게 전가한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 이 고사성어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아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남을 향하여 핏대를 세우기 일쑤인

정치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지 살피며 반성하는 반궁자성

(反躬自省)의 자세가 필요한 시기인것 같다.

이밖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잘한다는 의미의 선시선종(善始善終)과 뱀이 변하여 용이

된다 해도 그 무늬는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사화위룡 불변기문(蛇化爲龍 不變其文)등은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사마천의 호통과 같이 들렸다. 이 책은 다양한 고지도들과 사진들 가계도와

간자체와 발음까지 전하는 친절함을 보여주며 사자성어를 통해 보는 역사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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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생활보다 시간독립부터 먼저 하셔야겠습니다 - 일과 삶의 밸런스를 위한 ‘시간독립 프로젝트!’
이영직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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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독립'.

참 독특한 단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에서 독립을 한다. 뭔가 자주적인 요소를

가지는 것 같은데 도무지 맥이 잡히지 않았지만 첫 장을 열면서 바로 문제가 풀렸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실천하는 것을 말하며 이렇게 하면 같은 일을

해도 훨씬 자유롭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의 주체가 되는 것이고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할아버지와 손자 관계이다.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가 아버지를 지하

감옥에 유폐시키고 왕이 된 다음에, 그 제우스에 의해 태어난 아들이 카이로스이다. 주로 시간과

관련된 일에 많이 사용되는 두 단어는 동일한 일상의 반복인 크로노스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인 카이로스로 사용된다. 어떤일에 깊이 몰입하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적 시간 개념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적인 시간과 붓다의 깨달음의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이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크로노스적으로 보내고 아주 일부만 카이로스적 시간으로 보낸다. 시간의 공평함을

특별함으로 바꾸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인 것이다.

'가장 힘든 일을 제일 먼저 하라'

'할머니의 법칙'(오브리 다니엘스), '프리맥의 원리'라고도 부르는 이 이론은 싫어 하는 일을 한

다음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들면 싫어 하는 일을 잘 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긍정적으로 강화된 행동은 반복된다는 학설이 존재한다. 힘들일, 지저분한 일일수록

깔끔하게 처리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 지듯이 막연하고 심각한 고민이라도 몸으로 부딪쳐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길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마크 트웨인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살아있는 개구리를 먹어라. 그러면 하루 동안 그것보다 나쁜 일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겠는가. 우리의 삶은 어짜피 어려움의 연속이다.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쓰는 힘을 그것과

마주하는데 쓰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고민이 고민을 낳는다는 말처럼 고민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저 만큼 가있는 고민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하루 관리가 잘되는 사람이 1년도 잘 관리한다. 잘 관리된 1년들이 모여, 평생이 된다.'는 말처럼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1440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평생을 결정짓는다. 자기

시간에 단호해 질 필요가 있다. 결국 그 시간은 자신의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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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 - 어느 날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 내 인생을 구했다
하이디 엘리어슨 지음, 이길태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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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안전지대 끝에서 시작된다(마이클 하얏트)'

이 책의 제일 첫 머리인 이 문장에서 저자의 생각이 오롯이 드러난다. 어떠한 인생을 살았으며

어떠한 인생을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평생에 걸쳐 안전지대라는

방어막을 벗어나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가끔 그곳을 탈출해 자신의 인생을 산다. 워낙 두텁게

쳐 놓은 장벽이라 쉽게 넘지 못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기어오르고 뛰어 넘으려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일탈'이라 부른다.

'그린 몬스터'

저자의 캠핑카 이름이다. 요즘 나도 캠핑카에 관심이 가서 자주 들여다 보며 고민 중이다. 기발한

방법으로 수납 공간을 만들어 구석구석 쓸모있게 활용 가능하게 만든 내부는 정말이지 프렌스포터의

축소판이다. 창문을 넓고 많이 설치한 녀석(난방과 냉방에 단점이 있지만)도 마음에 들고 주방 공간이

넓직한 녀석도 마음에 들고(대신 침실 공간이 좁다) 침실 공간이 여유로운 녀석도 마음에 들고

(아쉽게도 이 녀석은 주방이 좁다) 충분히 규모있는 배치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는 아쉽다. 그래도

다행인건 요즘은 전기 걱정은 안해도 된다. 저자도 많은 고민과 생각을 거쳐 그 녀석을 샀다. 그리고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겪은 똑같은 일을 겪었다. 자동차와 연결 케이블은 왜 그리 짧은지 결국 연결

케이블을 사서 고정했다고 들었는데 저자도 같은 일을 겪는것을 보며 그때 그 사람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이해가 된다.

'연애 그리고 청천벽력'

우리는 대부분 여행에 대한 환상이 있다.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홀로 여행 온 이성을 만나고 뜨겁게

하룻밤을 보낸 후 서로 연락처도 주고 받지 않고 각자의 길을 떠나는. 저자도 그랬던것 같다. 혼자

하는 여행은 늘 외로움을 동반하기에 누군가의 친절과 보살핌은 금방 가드를 내리고 경계심을 풀게

만든다. 저자가 캐나다인 이라고 지칭하는 이가 그런것 같다. 진심이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진심과 진실은 분명 다르다. 아무리 진심이어도 진실하지 않다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몇일을 함께 보내고 몸을 나누어도 한순간에 무너진다. 참 신기한것은 그럼에도

기다려지고 그리워지고 반갑다. 연락이 안오면 궁금해진다. 내가 예전에 무전여행에서 만났던

그녀처럼 말이다. 갑자기 그녀 생각이 난다.

여행은 정해지지 않은 시간표다. 일정을 정해서 출발하지만 상황에 따라 형편이 따라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바뀌고 변한다. 일 년을 예상한 저자의 여행이 무려 오년으로 늘어 난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고 인생을 설계하며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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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한 용서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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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는 행위는 정의롭지도, 경제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용서는 말 그대로 복수와 보상의

포기다. 용서하는 사람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념하고, 중지하며, 꾸짖기

(가르치고 알리기)를 멈춘다. 그러나 인간은 마법사처럼 순식간에 죄를 없앨 수 없다. 용서라는

개념의 한계는 다만 죄의 청산을 포기하는 것일 뿐 죄인의 죄는 그대로 죄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들은 이 문제의 정답을 자신들이 아닌 '신적 존재'에서 찾는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용서의 문제에 대해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사실상 그것이야 말로 용서해야 하는 유일한 것이 아닙니까'라는

말로 설명한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만이 용서다. 이 말은 용서 할 수 있는 것은 침묵한다는

의미다. 가해자의 동기를 이해하고 자신이 그 입장이어도 똑같이 행동 했을 것이라고 확신할 때 용서는

이미 용서가 아니다. 어떤 행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순간부터 그 행위는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화해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용서는 합리성의 경계 안에 머물며 존재한다.

용서라는 주제의 철학적 스펙트럼은 용서를 '이해, 사랑, 망각'이라는 의미에서 바라본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뜻이다라는 19세기의 문구는 이해=용서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용서가 가능해진다. 용서와

사랑을 연결시킨다면 우리는 '다른 경제학'의 개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만나게 될것이다. 사랑처럼

미쳐야 하며 답례도 못 받는 순순한 소비이어야 용서가 성립된다. 잊어 버려야 용서가 완성된다.

머릿속에서 영원히 기억되지도 않아야 하며 다시 떠올려 지지도 않아야 한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도말(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없앤다)'이라는 표현을 쓴다.

용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행위다. 중개하는 제 3자가 필요하지 않다. 용서는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진행되고 시간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 용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용서는 죽었다(블라디미르 얀켈리비치의 '용서한다고?')'라는 말처럼 용서는 피해자

자신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는 '선물'이다. 용서하는 사람은 복수의 갈망이나

씁쓸한 보상의 요구에 지지 않고 자제를 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정확히 계산하여 되갚아주겠다는

마음의 포기가 그의 '선물'이다.

용서. 참 어려운 말이다. 용서라는 의미를 정확히 알고 난 지금의 용서는 더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외적 용서라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용서는 더욱 더 어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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