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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3
홍성욱 지음 / 책세상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다시 푸코를 읽다가, 벤담의 원형 감옥과 감시 세계에 대한 것으로 가볍게 이 책을 집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1791년 제안한 원형 감옥인 파놉티콘은, 그리스어로 ‘다 본다’는 ‘Pan(All) + Opticon(Seeing)’의 합성어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는 시선의 비대칭성으로 피감시자가 스스로 감시의 내면화 기능을 수행하게 하여 효율적 감시 체계를 구축한 감옥이다. 푸코는 이 파놉티콘이 18C 이후 사회 전반의 통제와 규율의 원리로 확산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담의 파놉티콘을 연구한 학자에 의하면, 푸코가 파놉티콘을 상징적인 메커니즘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해석의 오류를 일으켰다고 한다. 벤담의 원형 감옥은 하난의 계획안으로만 존재하여, 18C ~19C 동안 파놉티콘의 핵심적 요소가 실제 채택된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푸코는 벤담의 원형 감옥이 학교, 병원, 공장 등에도 이용될 수 있다고 했지만, 기원적으로 볼 때 오히려 그러한 공간 배치는 공장에서 감옥으로 넘어온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강제적 감옥과 합법적인 학교, 공장의 감시 메커니즘이 동일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벤담의 파놉티콘에 비해 이제는 ‘전자’ 파논티콘의 시대에 접어 들었다. 이 때 전자 감시는 피 감시자의 자발적 협조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터넷의 각종 회원 가입에 자신의 정보를 스스로 제공해야만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이 가능한 것처럼. 전자 신분증제도, 생체 인식, GPS , 휴대폰 위치 추적 시스템, 몰카, 인공위성 에셜런 시스템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치밀하게 우리는 감시의 체제 안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시 체제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파놉티콘처럼 소수자에 의한 다수의 감시가 아니라, 오히려 다수가 소수의 권력자를 감시하는 시놉티콘(Synopticon)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 권력에 대한 역감시가 가능해졌다. 시민운동의 정치 권력 감시, 인터넷의 쌍방향 기능이 가져다준 기능 등으로, 권력 감시가 새롭게 가능해졌다.
읽기는 쉽지만, 현재 우리의 감시 문화를 다시 확인한다는 점에서 결코 기분 좋은 책읽기는 아니다. 현재와 같은 감시 사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예를 들어, 개인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는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고, 모든 사이버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는가? 주민번호를 입력하지 않는 사이버 회원가입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 역시 개인 정보의 내용은 그대로 유지될 뿐 아니라, 과연 그런 변화 자체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현실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은 필요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점에, 단지 각 개인이 자신의 정보 노출을 조심하는 수준의 실천 외에는 무엇이 가능한가하는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