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에떼 -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 어느 한 자유주의 우파의 은밀한 매력 

 

<고종석 읽기> 

 

 고종석을 읽었다. 몇몇 잡지와 신문에서 드문드문 접하던 그를, 몇 권의 책으로 집중적으로 만났다. 누군가가 그를 ‘한국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사람’으로 지칭했을 때, 그의 글을 모아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잡지의 몇몇 칼럼에서 고종석을 대했을 때, 좀 무르고, 분명하지 않고, 유(柔)하다는 느낌이 앞섰다. 진중권이나 강준만에 비하면 그는 눈에 뜨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딱히 따로 그의 책을 볼 마음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그의 책 8권을 빌렸는데, 주로 시사 정치에 관한 4권을 옆에 두고 통독했다.  그의 책은 이전까지 여러 곳에 발표했던 글들을 묶은 것이 대부분인데, 글을 연속적으로 죽 읽어보니, 잡지의 칼럼 한 두 편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칼럼에서 느꼈던, 무르고 흐릿하고 유하던 그의 결점이, 이제는 온화하고 균형잡힌 단단함으로 느껴졌다. 상당히 의외의 느낌이었다. 더구나 그의 한국어 실력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는 국어에 엄청난 애정과 실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럼에도 영어 공용론에 호의적이다!) 그런데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등으로 회화와 작문이 (유창하게) 가능한 사람이다. 그가 구사하는 몇 개의 언어가 더 있었는데, 책을 건성으로 읽다 보니 그 사이 까먹었다. 몇 개의 단어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초라해진다.^^

 그는 한국어뿐 아니라, 외국어, 그리고 언어 일반에 대한 대단한 애정과 실력을 갖춘 사람인 것 같다. 또 그의 한국어 실력은, 국어학 지식과 함께, 언어 구사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한 경지를 이루었다. 그가 파리 사회과학 고등연구원 언어학 석사과정을 밟았다지만, 그런다고 모두 고종석처럼 날씬한 언어를 구사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의 언어는 엄청 세련되었다. 화사하다거나, 기름기가 흐른다거나 하는 세련이 아니다. 담백하면서도 정확하고, 호흡 역시 엄청 편하다. 입 속에 착착 굴리며 달라붙는 말의 물질성과, 그 말의 함의가 정확하게 머릿 속에 착착 포개진다. 언어를 완전히 통제하고 마음대로 부리며, 말의 형식과 내용을 정확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아, 지금 나의 언어는, 겉돌고 있다.)       

 

 고종석은 스스로를 <자유주의 우파>라 한다. 그런데도 강준만과 진중권을 엄청 좋아해서 ‘형제애’를 느낀다 하고,  고은광순, 김어준, 김규항을 말한다. 정치인으로는 강금실을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엄청 좋아하고, 또 추미애와 노무현(대통령 임기 초반 비판적으로 돌아 서지만)을 좋아한다. 조선일보를 극우-유사 파시스트로 규정하고, 조선일보와 상종하지 않으면서도, 조선일보의 해악성을 알리고 싸우기 위해 조선일보를 읽고 분석한다. 국가 보안법을 미워하고, 성차별과 싸우고,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특히 전라도 지역주의를 한국의 인종주의로 규정하며, 모든 ‘전라도 놈’을 위하여 전라도 담론에 정면으로 맞서며, 그러면서 김대중의 정치적 보수성과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김대중에게 칠해진 ‘전라도/빨갱이’에서 빨갱이 보다 전라도 놈이라는 기호가 정치적 동원력이 더 강하다고 한다.)

 이런 우파를 본 적이 있는가? 자신은 좌파가 아니란다. 그가 말하길, 좌파란 곧 혁명이란다. 혁명을 도모하지 않으면서 좌파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우파일 수밖에 없고, 곧 개인의 자유를 우선하는 자유주의자라는 것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우리사회의 이념에 대한 이름 붙이기는, 비틀어져 있다 못해 아주 기괴하지 않은가. 노무현의 정책이 좌빨로 유통되는 사태는 그렇다 하더라도, 우익의 대표자인 ‘김구’ 조차도 뉴라이트에서는 ‘좌 편향’으로 배척하는 이 기괴함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자칭’ 보수는 모두 ‘극우-유사 파시스트’들이고, 기껏 보수 개혁 (혹은 자칭 진보) 세력이라는 자들이 ‘좌파’로 불리고 있다. 고종석은 우리 사회의 그로테스크한 이념적 명명에 저항해서, 세계 보편적 이념 지형에서 자신을 ‘우파’라 말하는 것이다. 그가 우파를 고집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 이념어의 왜곡에 대해 저항하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 지형에서는 그는 충분히 ‘좌파스러운’ 정체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좌파와 거리 두려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자칭’ 좌파에게도 믿음이 없다는 것을 시위하는 것이리라. 고종석 스스로 자신의 이념 정체성을 밝히는 대목을 옮겨 보자. 1999년에 쓴 그의 글을, 길지만 인용한다.   

 

“실상 한국 사회는 극우파가 앞에서 이끌고 낡은 좌파의 일부가 뒤에서 밀어주며 굴러가는 사회다. 이 극우파와 낡은 좌파는 흔히 서로를 욕한다. 그러나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서로가 동류라는 것을. 그들은 둘 다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들은 적어도 그렇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의 유토피아는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적 질서를 전제한다. 이 기존 이데올로기 질서의 두 축 가운데 하나인 낡은 좌파는 때때로 소위 캐비어 좌파이기도 하다. 그들은 널따란 응접실에서 동류 인텔리와 함께 프르미에 크뤼 포도주를 홀짝거리며, 상상 속의 문화 혁명기를 그리워하고 밀림 속의 게릴라를 찬양한다. 그들이 친화감을 느끼는 프롤레타리아는 그들의 관념 속의 위대한 노동자 계급이지, 현실 속의 나약하고 비루한 노동자 계급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프로그램은 아직도 웅장하다. 이 낡은 좌파와 극우파는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정치적 사안에 따라 흔히 힘을 합한다. 나는 그들의 연합을 깨고 우파의 공간을 넓히기 위해서 발언하고 싶다.” (『서얼 단상』176~177)    

 

 낡은 좌파란, 그냥 내가 떠오르는 대로 말한다면, ‘민족주의 좌파’라는 기괴한 조합이 떠오른다. 민족주의란 우파 그것도 극우적 멘탈리티인데, 식민지와 외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한민국에서는 이놈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좌파의 외피를 두르게 된 것이다. 또 캐비어 좌파란, 그냥 내가 떠오르는 대로 말한다면, 대학 강단에서 학문적으로 주절대는 (특히 프랑스 철학자들의 경향성) 쁘띠 부르주아들의 호사를 말하는 것이리라. 물론 실천력이 결여된 측면에서는 나 역시 그런 류이지만, 다행히 캐비어를 먹을 만큼의 ‘쁘띠’도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캐비어 좌파에게서는 쏙 빠지고 싶다. (^^)       

 

 아무튼 고종석 이념의 스탠스는 세계 보편적 지형에서는 자신의 말대로 ‘자유주의-우파’일 것이고, 대한민국의 특수 지형에서는 ‘좌파-빨갱이’ 일 것이다. 이는 그가 교류하는 자들이, 대한민국에서 이념적으로 분류되는 범주를 생각하면, 고종석 자신이 스스로를 우파라 한들,  (기분 나쁘겠지만) 좌파로 유통될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슬픔이다. 우리는 언제 제 이름을 그대로 되찾을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우파든 좌파든 속 시끄러운 가르기보다는, 자신의 글쓰기를 모랄리스트의 글쓰기라 한다. ‘도덕 군자의 글쓰기가 아니라, 내적으로는 보편적 인간성의 탐구가 학문적 무능력(겸손의 표현이다)과 연결된, 비체계적 글쓰기’라 한다. (『서얼 단상』 279) 그래서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말이 있는 것이리라. 그가 말하듯 학문적으로 무능력한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좌든 우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면 이야말로 이념의 포로가 아니겠는가. 아마도 고종석도 이 점에서 자신을 모랄리스트라고 한 것이 아닐까, 나 혼자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는 ‘진영 논리’에 포획되지 않는,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는 드문 경우인 것 같다. 그는 여러 곳에서 강준만의 작업을 엄청 치켜 세우지만, 그와도 논쟁을 벌인다. 강준만이 김우창과 각을 세우자, 고종석은 김우창을 두둔하며, 강준만과 다른 입장에 선다. (물론 나는 김우창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김우창에 대한 고종석의 후한 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종석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은 것 중의 하나가 ‘복거일’ 문제다. 나는 복거일이 싫다. 복거일의 책들을 거의 읽지 않은 내가 복거일에 대한 이런 저런 소문으로만 그를 싫어한다는 것은, 나의 편벽됨과 무지를 공개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래도 나는 복거일이 싫다. 그런데 고종석은 복거일의 엄청난 추종자이다. 군데군데 그를 자신의 ‘스승’이라 한다. 고종석은 말하길, 복거일은 자유주의자이며 인문주의자이고, 그래서 그에게 엄청 많은 것을 배웠고, 따르고, 영향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고종석의 멘탈리티를 경계하며 책을 읽어 간 것이다. 그런데 고종석은 자신의 스승 복거일의 책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를, 작심하고 깐다. 조목조목 복거일의 무지와 비약과 허술함과 윤리성을 까버린다.

 이런 고종석은 기회주의자가? 비윤리적인가?  고종석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 진영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이물감도 감싸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자기 진영이 아니라고 해서 그 사람의 올바름을 배척하지 않는다. 기회주의? 전혀 아니다. 고종석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비판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아주 윤리적 인간이다. 나는 그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절대로 선제공격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상대의 공격을 ‘일단’ 수용한다. (수용하는 척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하나 다시 쳐낸다.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는, 다양한 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노무현의 진솔한 말투를 두고 한나라당에서는 ‘시정잡배’ 운운했던 모양이다. 좋다. 그는 시정잡배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정잡배를 위해 한 마디 변명의 말을 하고 싶다. 시정잡배의 코드는 그 자체가 민주주의적이다. ‘시정(市井)’은 다름 아닌 민중의 생활공간을 가리키고 (…) 그것은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21세기의 민주주의의 코드다.”( 『서얼 단상』 34)처럼, 상대의 힘을 마치 그물처럼 푹 받아들였다가 그 반동으로 쳐낸다. 이처럼 상대의 어법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경우(진중권 논법)도 있고,   

 

 " 나는 그것이 박정희 체제보다도 더 큰 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실이 박정희 체제를 정당화할 근거가 되는가?” (『서얼 단상』 43)처럼 상대의 칼을 살짝 비켜서며 논점를 이동시킨다. 이것과 저것을 이항 대립시키는 상대의 공격을 살짝 비켜섬으로써, 상대의 예봉을 꺾는다.  

 

  또 박노해를 언급하면서 “[나는] 박노해를 평가할 자격이 없다. 그가 가장 힘들게 살아낸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안전하게 살았으니까. 그리고 우리 사회에 우글우글한 파시스트들을 잠시나마 젖혀 놓고 굳이 박노해를 비판하는 것은 공평한 일도 아닐테니까. 그러나 내가 박노해에게 윤리적 평가를 내릴 수는 없어도 심미적 평가를 내릴 수는 있을 것이다.”(『서얼 단상』 180) 라며, 박노해의 ‘분별없음’을 엄청 씹는데, 새로운 층위에서 상대를 파고들며 논점을 무력화시키기는 것이다.   

 

  고종석의 말은 설득력을 있다. 우리는 알지 않는가, 논리로 누군가를 결코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논리가 정확해질수록 증오의 벽만 커질 뿐이라는 것을! 논리보다는 공감이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말이 쉬워 공감이지, 자신과 이념적으로 벽을 쌓은 사람과 어떻게 공감하지? 우리는 누구할 것 없이, ‘같은 놈’들 끼리 논다. 편향확증(confirmation -bias)이라고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기에 같이 노는 것이다. 그래서 ‘논리-공감-설득’은 결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돈다.

 고종석이 설득력 있다는 것은, 그의 언어가 내뿜는 외피의 화사함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의 언어가 품고 있는 ‘소박한 마음’이 내게 와 닿은 것이리라. 그 소박한 마음이란 다른 말로 ‘현실의 인간’이라고 해 두자. 이 현실이라는 말 만큼 애매모호한 말은 없지만, 그래도 달리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곳곳에서, 어떤 이념이든 어떤 입장이든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을 배제하는 모든 현실 억압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는 언제나 한 개인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온전한 조건의 확보를 말하고 있다. 한 개인의 종말은 우주 전체의 종말이라고 그가 말하듯, 그에게 한 개인의 삶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것이 정의든 이념이든, 어떤 것이든, 개인의 삶과 자유 위에 오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삶과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것도 그는 혐오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다시 인간에 대한 예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자유 민주주의의 옹호자, 자유주의자, 그것도 우파라고 하는 것 같다. 우파인 자신에게 한국 사회는 너무 힘들어, 이런 사회적 발언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사회에 발언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의 하나로, 꾸준히 발언하겠단다.   

 

  고종석의 글을 몇 일 계속 연속해서 보니, 그의 섬세한 문장이 논쟁의 지뢰밭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술로도 여겨질 때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우아한 생존술은 아무나 체득할 수는 있는 것이 아니다. 비판적 글쓰기란, 상대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는 언어의 세세한 배치가 필요하다. 그런 장치들이 고종석에게는 좀 더 많은 것 같기에, 글이 좀 빙빙 두르기도 한다. 또 그의 글을 계속 읽다보면, 다분히 냉소적인 느낌이 든다. 그의 도시 기행책인 『도시의 기억』, 파리에 대한 기억의 부분. 마르크스와 하워드 진이 인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공간으로 파리 코뮌을 규정했다지만, 고종석은 파리 코뮌이 딱 2달이 아닌, 2년 혹은 20년 지속되었다면 그런 이상공간을 유지시키지 못했을 것이며, 그렇기에 파리 코뮌이 2달이었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고종석에게서는 현실과 육박하는 대결 의식이 없다. 그런데 이런 류의 현실 인식이 군데군데, 자주 나온다.

 물론 그는 ‘대결 의식’이라는 말의 위선과 폭력성을 비판 할 것이며, 그러면서도 조선일보같은 유사 파시트들과는 열심히 싸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개인적 자유주의자가 된다. 그가 대상과 어느 정도 ‘안정거리’를 두기에 진중권보다는 푸근하고 강준만 보다는 세련되었다. 그러나 또 그것으로 인해 진중권처럼 발랄하지 못하고, 강준만처럼 육박하는 힘과도 멀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논법이 부정확한 것은 아니다. 아주 예리하고 정확하게 목표물을 가격한다. 예를 들어 안티 조선일보 운동의 김정란 시인이 신경숙과 은희경을 어떻게 오인 사격하는지를, 정확하고 날카롭게 지적해 주는 것처럼, 그는 철저하게 ‘정확’하다. 부정확한 통쾌함 보다는 정확한 소심함(?)이 더 안전하다. 아니, 올바르다.  

 내가 읽은 글들은 모두 몇 년전 글들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의 요즘 글들은 읽지 않았기에, 현재 그의 모습을 알 수 없다. 복거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노무현 사후를 어떻게 독해하는지, 지금의 민주당과 진보정당에 대해서는, 그리고 MB의 ‘통치’에 대해 어떤 언어를 적용 시킬 것인지, 궁금하다. 아마도 큰 그림에서는 짐작이 가지만, 그의 예리한 말길을 따라가는 재미가 솔솔할 것이다.  


 『경계 긋기의 어려움』과 『자유의 무늬』는 신문 잡지 등에 실었던 것으로, 아주 짧은 글들의 묶음이다. 단편적이지만, 그의 입장을 간결하게 접할 수 있었다.  
 『서얼 단상』과  『바리에떼』는 주로 잡지에 발표했던 글들이 많다. 분량이 길어 그의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서얼 단상』
「신분제로서의 지역주의」에서  

‘전라도’가 지역 이름이 아닌 정서적 기호로 기능하는 한국 사회를 마음 먹고 비판하고 있다. 저자 자신이 전라도 출신이기에 오히려 전라도를 옹호하는 발언의 입지가 좁혀짐에도  (강준만이 서울대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서울대 폐지론이 얼치기들로부터 감정적 비난을 당하는 것을 떠 올리면 된다), 정면으로 전라도인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고종석은 전라도라는 기호는 전라도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 놈이라는 혈통’을 지칭하는 것이며, 바로 이는 피를 문제 삼은 것이기에 인종주의와 다름 아니라는 지적에, ‘아! 그렇구나 바로 이것이 인종주의구나’하는 공감이 일어났다. “그래서 지역주의와의 싸움은 인종주의와의 싸움처럼 봉건성과의 싸움, 봉건적 심성과의 싸움이다. 그것은 더러 계급 문제와 겹쳐지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신분의 문제이다.”(18) 
   지역주의에 대한 어떤 학술적 시도보다도 가슴에 와 닿는다. 혹시 ‘전라도’라는 기호에 이물감을 느끼지 않더라도, 전라도 사람들의 말을 한 번 들어본다는 마음으로 꼭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조선일보의 동인 문학상 후보를 왜 황석영처럼 거부하지 않았느냐는, 네티즌의 글에 대해, 고종석은 솔직하게 말한다. “나는 지금 내가 나빴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얼마나 나빴는가? 아주 나빴다.”라며 흔쾌히 직설법으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다, 자신의 밑바닥에 있는 인정(認定) 욕망을 고백하며, 깔끔하게 사과한다. 이렇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논자’가 있던가? 신선했다. 이 유려하고 섬세한 결을 지닌 고종석이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드러낼 때조차도 멋있다. 그런데 여기엔 ‘또 뭐 다른 세련된 계산(?)에 따른 것인가’하는, 구질구질한 의심이 순간, 퍼뜩, 들었다.(^^)  


『바리에떼』
「섞인 것이 아름답다」 에서

 -민족주의, 인종주의, 영어 등의 영역에서 ‘고유성’을 주장하는 것은 곧 순결주의이며 근본주의임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곧 파시즘으로 연결될 수 있다.    

 

「식민주의적 상상력」 에서

-   ‘복거일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 부쳐’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복거일의 친일파 옹호 논리를 하나하나 논박하고 있다. 복거일은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라는 책에서 일제 식민지 통치는 체제의 문제였기에, 친일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어쩔 수 없었던 생존의 문제였단다. 그래서 지금의 시각으로 그 때 친일자들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식민지 기간 인구가 늘었다는 것을 바탕으로, 일제 식민시대가 국민들로서는 살만한 사회였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고종석은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복거일의 책을 읽어 보지 않은 나로서는 균형을 잡기 어렵지만, 고종석의 반론은 가히 발군이다. 상대 논지의 핵심을 정면과 측면에서 되받아치는 논법이 대단하다. 고종석은 여러 문장에서 복거일을 자신의 스승이라고 할 만큼 그를 따르고 있음에도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퍼붓고 있다.    

  

 

「반 생물학을 위하여」 에서 

-한 여성학자의 박근혜 지지를 계기로 살펴본 대한민국 여성정치인 이야기이다. 페미니즘 진영에서 박근혜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하는 것이야말로, 여성을 생물학적 성(SEX)으로만 환원하는 것이기에, 나 역시 원칙적으로 비판적이었다. 고종석은 더 나아가 젠더로서의 여성성의 확장을 위해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며, 여성의 정치력 확장을 위한 여러 제안을 펼치고 있다.     

 

「분열속에서 좌표 찾기」 에서 

- 민주당과 열린 우리당 분당 사태에 대한 판단. 고종석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로서, 열린우리당의 분열주의와 영남주의 편승을 통렬히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민주당의 구태, 민주당-한나라당 공조를 더 크게 비판하며, 결국 현실적으로 열린 우리당을  지지할 수 밖에 없을을, 아주 가슴 아프게 밝히고 있다. 정치 동지인 강준만으로부터 공개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정치 정서를 배반하면서도, 큰 틀에서 ‘자유주의’의 몰락을 방지하고, 유사 파시스트(한나라당)의 득세를 막기 위해, 결국 열린 우리당을 지지할 수 밖에 없다고 밝힌다. 이 부분에서 고종석은, 근본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현실의 지정학을 고려하고, 차선과 최악을 구분하며,  자신이 왜 자유주의자인지를 웅변하는 것 같다.

 또 고종석은 이 글이 쓰여진 2003년, 정동영을 개혁의 이미지만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자라고 정확히 진단했다. 나는 2007년 대선 때 정동영의 모습과, 대선 후 민주당을 탈당한 후 무소속으로 그것도 지역구를 옮겨서 보궐 선거에 나온 여러 행태를 보며, 정동영은 개혁적이지도 않지만, 절대로 신뢰할 수도 없는, 무엇을 이루어낼 수도 없는, 기회주의자라고 겨우 인지했는데 말이다.  

 

『서얼 단상』 -한 전라도 사람의 세상 읽기
『바리에떼』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  
『경계 긋기의 어려움』 - 고종석 시평집  

『자유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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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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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만큼이나, 대단한 소설이다. 이런 소설이 1948년 경에 쓰여졌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소설은 대체로 소련의 스탈린 체제 비판, 즉   전체주의 체제의 비판으로 읽히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해석일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군사독재 시절인 1984년 TV에서, 이 책이 냉전에 기대어 소련 체제를 비판하는 텍스트로 선전되던 것을 기억한다. 오웰은 실제로 소련 전체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일상화된 감시 체계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모든 전체주의 비판은 이 소설의 명확한 주제이다. 이런 이유로 이 소설은 냉전시절, 자본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들을 비판하는 텍스트로 이용되었다. 그런데 사회주의자인 오웰이 스탈린 체제를 비판했다는 것이 곧 사회주의 자체의 부정이나 자본주의 옹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데도, 오웰을 사회주의 비판 작가로만 유통된 기간이 있었다. 오웰은 사회주의의 탈을 쓴 전체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인간을 통제하고 소외시키는 그 어떤 것, 자본주의 체제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진정한 인간의 사회’를 향한 열망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21C인 지금에 더욱 절실하게 읽히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일망 감시체제가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빅 브라더로 일컬어지는 감시체계가 현 정보화시대인 ‘판옵티콘’의 시스템을 정확히 비유했다. 현금카드, 폐쇄회로, 도로의 각종 촬영, 휴대폰 위치, 등등 우리의 일상을 확인할 수 있는 전자 감시 시스템의 현실은, 인간의 비주체화를 말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대체로 이런 전자 감시 체계로서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읽힌다. 

 나는 줄곧 이 소설이 지배권력의 헤게모니, 즉 ‘지배 권력 시스템에 대한 복종과 감시’로 읽혔다. 이 소설을 이미 지나간 소련의 전체주의 사회 비판으로만 읽으면, 지금 우리와는 무관한, 그래서 거리를 두고 단지 ‘감상’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긴장감이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소설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 그 자체로 느껴져서, 섬짓할 정도로 생생하고 또 불편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며, 소설 속의 지배당이 모든 사실과 기억을 조작하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왜곡과 조작은, 소설 그대로인 것이다. 지금- 이곳의 언론과 교육을 통제하는 지배권력들의 감시가 온 국민을 상시적으로 옮아 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설 내의 인물들에게, 직업은 그 자체로 ‘의미없는 작업’으로 여겨지고, 이러나 저러나 삶의 본질성과 연결되지 않는, 오직 기계적 움직임만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율성이나 주체성은 전혀 없으며, 오직 ‘소외’를 견디는 비루한 삶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파편화된 인간 군상과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윈스턴은 체제 비판을 일삼고, 체제의 균열을 갈망한다.  

 “그는 비로소 노동자들을 경멸하지 않게 되었다. 경멸하기는커녕 그들이야말로 어느 날인가 생명을 되찾아서 세계를 재건할 수 있는 잠재된 힘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노동자야말로 인간이다.”(234)

“사실 하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은 것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십억의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증오와 거짓의 벽으로 유리되어 있지만, 그리고 이들은 생각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지만 저마다 가슴과 배와 근육에 언젠가 이 세계를 뒤집어엎을 힘을 기르고 있다. 만약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에게 있다!” (306) 로 체제의 저항자인 골드스타인의 메시지를 요약하고 있다.  

 윈스턴은 지배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골드스타인으로 명명되는 반역 세력의 ‘그 책’은 명백히 계급투쟁을 말하는 것이다. 비록 윈스턴은 함정에 빠져, 온갖 고문으로 자신의 비참과 굴종을 드러내지만, 이 소설은 그것으로 이미 독자들에게 계급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만약 이 책을 편안하게 읽었다면, 그 독자는 우리 사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과 다름 아니다. 이 소설이 말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는 바로, 지금 이 곳인 것이며,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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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
하워드 진.도날도 마세도 지음, 김종승 옮김 / 궁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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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진은 촘스키와 함께 널리 알려진 실천적 지식인으로,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은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언어는 현란하지도 않고, 주변을 맴도는 머뭇거림도 없다. 핵심을 명료하게 밝히고 설명을 정확하게 하는, 깔끔함이 좋다. 명쾌하고 쉽다. 그러면서 묵직하다.

  내가 그의 글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판적 지식인들이 갖는 현실 냉소도 없고, 거리 두기도 그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결코 대중 우위에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함께’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스스로, 자신의 계급의    식을 한 번도 잊지 않았다고 밝혔듯이, 그는 시종 자신이 계급적 좌표를 확인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하워드 진은 교육이 어떻게 지배권력의 이익에 복무해 왔는지를 시종 말하고 있다. 특히 역사학자로서 학교의 역사 교육에 대해 그는 할 말이 많다. 그가 『미국민중사』를 통해 콜럼버스가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는지를 밝혔을 때, 많은 미국민들이 보인 다양한 반응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벌이는 열띤 논쟁은 1492년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바로 1992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155)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과거 역사에 대한 해석과 기억은 바로 <지금, 이곳>의 사태를 결정짓는다. 역사를, 역사에 대한 자기의식을 갖지 못하면 언제나 망각과 왜곡에 의해 현실이 침탈당한다. 그래서 나는 이것, 역사의 해석을 <기억의 정치>라고도 부른다. 역사의식은 역사에 대한 잡지식과는 무관한 것이 아니겠는가? 연도기적 사건의 잡지식으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무서우리만치 탈의식적인 우리의 역사 교육을 오래전부터 혐오스러웠던 나로서는, 하워드 진의 지적에 백번 공감한다.  

  그는 역사가 마치 ‘하나의 사실, 하나의 해석, 하나의 진실’이 존재하는 것처럼, 대중을 기만하는 것을 시종 비판한다. 또한 어떤 사안에 대한 기계적 균형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한다고, 또 객관성이라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강조한다. 이는 그의 자전적 책 제목인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를 연상케 한다.

 내가 가장 혐오하는 말이 바로 ‘중립성 혹은 객관성’이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말이지만, 이 말이 지시하는 실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태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었고, 또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단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중립성 혹은 객관성, 자신이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착각! 이것이야말로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이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 받아 왔고, 또 지금도 강단은 그렇게 가르쳐 왔으리라. 바로 이 중립성이라는 것이, 사실상 정치적 무뇌아를 생산한 것이리라. 이것이 교육을 장악한 국가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나는, 언어는 그 자체로 편향적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편향성을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의식이라고, 줄곧 믿고 있다.  

 

 “정치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는 행위는 교육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 교과서가 그 부피와 지루함으로 제아무리 중립을 가장한다 해도, 교사가 아무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입장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모든 교육은 사건과 책과 주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131)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가 선택하고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그리고 어떠한 담론이든 그 자체로 이미 정치적 자장에 포섭되는 것 아니겠는가.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해, 노사문제이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정부 논리, 이것이 바로 정치적 해석을 통과한 결과 아닌가? (그러면서 바로 또 엄청 노조 두들겨 패는 이 분열증적 작태, 말해 무엇하리요~~)  ‘나는 정치에 관심 없으니 투표하지 않겠다’는 바로 그것이 하나의 정치적 선택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인간은 결코 정치적 자장 밖으로 탈출 할 수 없다. 텍스트의 바깥이 없듯이, 정치의 바깥도 없다! 그래서 초, 중, 고, 대학교 역시 가장 정치적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다.  

 

 “교육 받은 계급일수록 (언론과 국가의) 거짓말과 모순들을 기꺼이 수용한다. 교육을 많이 받고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일수록, 특권과 보상이 주어지는 이 체제에 더 많이 투자한 사람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 (…) 이는 교육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을 비판적이고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이 더 뛰어난 것은 아니” 다.(14)

 “학교의 교육 목표는 모든 사람을 똑같은 중산층 신화에 동화시키는 것입니다. 대다수 노동자계급 출신의 학생들, 특히 유색인 학생들은 중산층의 생활을 결코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거의 모든 노동자계급 출신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업 중 다짐받는 약속에 배반당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종의 식민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55)  

 

 학교를 졸업하고서야 학교가 얼마나 기만적인 곳인지 알았다. 누군가 1등을 하면, 누군가는 꼴찌를 해야 하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 뿐인 순환 구조에서, 모든 교사들은 ‘열심히 하라’고만 말한다. 누군가가 1등을 하는 순간,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내려 와야하지 않는가. 또 공부 잘 한다는 것으로 나머지 삶을 보장 받는다는 것도 허구 아닌가? 그리고 더 나아가, 교사들이 교실에서 학습을 독려하는 말들이, 몇몇을 빼고는 대다수 아이들의 내면에 어떤 굴종과 모멸을 각인 시키는 것인지 그들은 알까? 교과서의 우아한 말들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무력한 것들인지 그들 교사들과 교수들은 성찰하고 있을까?

 내가 학생이었을 때, 공부 잘하는 학생이 그래도 올바르다고 생각했는데, 요즈음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 그들은 어떤 사회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일반화 시킬 수는 없겠지만, 권력과 자본을 선취하기 위해 자신의 그 한 줌 권력을 위해 노동자를 짓밟을 것이고, 자신들의 부(富)를 위해 착취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한 체제의 상층부에 진입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체제의 권력과 자본에 포섭되는 것 아닌가? 권력과 부(富)를 지극히 사유화할 미래의 권력자들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가?

  지금 권력자들, 관료들의 모습을 보라. 그들 모두 학창 시절, 수재였거나 적어도 공부 잘하는 모범생 아니었겠는가. 대학 가자마자 고시방에 틀어박혀 법조문이나 달달 외워 사시나 행시에 패스한 놈들이, 친구와는 어떻게 지내는 것인지, 이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지, 지금 내가 누리는 안락이 누구의 땀과 연결되어 있는지, 역사란 어떻게 해석하는 것인지, 한 톨 고민이라도 했겠는가? 모두 자신의 잘난 머리탓 능력탓으로 돌리고, 오직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상층부만을 바라볼 놈들 아닌가. 그것이 성공이라고, 그것 밖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을 키우는 곳이 학교 아닌가? 오직 대중을 수탈할 놈들을 학교가 키워내고 있지는 않는가 한 번 쯤은 반문해 보자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탈색된 그런 괴물의 탄생이 전적으로 학교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그러나 학교와 교사들, 교수들의 책임이 없다고는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변호사가 <조영래>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남들 등쳐 먹는 것은 부끄러운 줄 아는 사람 정도로는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에 검찰총장 후보로 나왔던 ‘천-수재’ 봐라. 총장 한 번 해 먹겠다고 당당하게 인사 청문회 나오는 ‘천-수재’의 그 뻔뻔함을 보면, ‘남들 등쳐 먹지 마라, 그건 부끄러운 짓이야’라는 말은 그에게 아무런 가르침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초등 1학년 개념부터 다시 해야 한다. ‘애들아, 이런 것을 두고 남들 등쳐 먹는 것이라 하고, 이런 짓을 하면 부끄러움과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 때 부끄러움이란 이러이러한 느낌을 말한단다. 아 참! 부끄럽다는 것은 당당한 것이 아니죠~. 그럴 때는 얼굴이 좀 붉어지고 고개가 숙여져야 되는 거란다.’ 완죤 조목조목 코메디다. 

 적어도 그들 수재들에게, 최소한의 <직업 윤리 정신>을, 살아가다가 한번쯤이라도 환기해 볼 수 있도록 어떻게든 학교가 노력해야하지 않겠는가. 공부 못 하지만 친구들 돌아볼 줄 아는, 또 지금의 학교 억압에 고통을 ‘느낄 줄’ 아는, 그래서 모범생이 못되는, 그래서 학교권력에 순치당하기를 거부하고 살아 펄떡이는, 그래서 소위 ‘문제아’라는 학생들, 이런 학생들이 정치적으로도 훨씬 올바르지는 않을까? 지나친 생각일까? 지나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 지나친 내 생각을 바꾸지는 못할 것 같다. 우리가 겪은 중고등학교를 되돌아보면, 폭력 그 자체였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래서 교사는 무엇을 가르치는가라는 것 못지않게, 교사의 발언이 누구를 향하는 가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사들이여! 교실 구석에 파묻혀 소리도 내지 못하는 아이들, 자신을 존재를 내세우지도 못하거나, 혹은 교사와 학교의 억압에 온 몸으로 저항하는, 그래서 학교에서 문제아라고 부르는 이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려 주기를 부탁한다. 당신은 그들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당신의 수업은 그들에게(도) 향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당신의 동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공저자인 도날도 마세도가 파울루 프레이리에게, 미국 교육의 엄청난 실패를 어떻게 이해해야하느냐는 물음에 프레이리가 했다는 말이 재미있다. 

 “도날도 선생, 그렇게 순진해서야. 선생께서 실패라고 부르는 그것이 바로 이 체제가 본래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입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이 누구지요? 흑인들, 백인 노동자들, 소수 민족들, 이민자들입니다.” (86) 
 ‘그것도 몰라?’하는 듯한 프레이리의 대답에 마세도가 어떤 표정이었을까 상상해보라. 우리는 알고 있는가? 학교가 진정 어떤 인간을 원하는지?  

 “누군가 ‘우리는 잘하고 있습니다. 경제도 좋고, 이 나라는 번창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 부유함 중에 제 것은 얼마나 되지요? 이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돌아가나요? 얼마만큼 이리 오고 또 얼마만큼 저리로 가나요?’가 될 것입니다.”(106)

 아주 간단하게 간파한다. 그렇지 않은가? 간단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잘 산다고 다리 밑에 사는 거지가 행복하겠는가? 웃기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계급의식이다. 계급이라는 말만 나와도 내 주변에서는 알레르기 반응에서 발작 수준까지 다양한 군상들이 있다. 어찌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전쟁은 지배 계급이 일으키고 그 전쟁을 노동자 계급이 치른다 (…) 그래서 전쟁은 부자의 배를 불리고 빈민을 사지로 몰아넣는 계급의 문제”이다.(230) 그래서 그들은 “이 나라(미국)가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240)

 또 마세도와 진은 이렇게 묻는다.
“왜 미국 사회는, 미국 (역사)교육은 그런 계급 의식을 실천하지 못했는가?”

 이에 대해 그들은 노동운동이 학교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생산수단의 통제, 인종, 계급, 성(性) 평등의 문제까지 확장하지 않고, 기껏 부의 재분배 문제로만 집중했기에 점차 일반 대중과 동떨어졌고, 자본에 순치되어 갔다는 것이다. 미국 노동운동의 '경제주의'가 결국 편협한 노동운동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란다. 이는 유럽에는 그나마 있는 노동당이 미국에는 없는 한 이유라는 것이다. 경제주의 노동운동의 편협함과, 연계적 사고력의 상실!

 

 그러면서 그는 아주 멋있는 말을 한다.

 “단지 내가 가난한 집 아이로 태어나 돈에 쪼들린 젊은 가장으로 살았기 때문에 계급 의식을 갖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전혀 다른 사회관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고, 나와는 전혀 다른 젊은 시절을 보냈음에도 나와 가까운 세계관을 가진 사람도 많다.”(219)  

 

 적절한 지적이다. 계급의식을 말하면, 꼭 누군가가, 에둘러 말하지만 결국  ‘너, 없이 살아서 그렇지?’라는 경제적 환원주의로 몰아가려 한다. 맞다. 계급이란 것이 원래 '있고, 없고'의 문제 아니던가. 그러나 또 일견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인간에게 날리는 하워드 진의 ‘똥침’이 통쾌한 까닭이다. 나보다 훨씬 잘 나가는 사람이 나보다 더 치열한 사회의식 가지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사람들이 나보다 더 나이브한 사회의식 가지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진은 또 말한다. 우리가 이루려는 사회가 윤리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지적하라고 한다.  

 “단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타인에게 저지른 행위에 죄책감을 느껴서 평등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시각이 진정으로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279)  

 

 마지막으로, 하워드 진이 중등 교원에게 전하는 말을 옮겨 보자.
“지난 수년간 고등학교 교사들과 만나오면서 느낀 문제점은 교사들의 소심함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독단적이거나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위험이 따르겠지요. 교사들은 스스로 움츠려들고 통제 바깥에 있는 현실 때문에 전통 방식대로 가르칠 수 밖에 없다고 변명합니다. 교사들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 위험을 최소화하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업 내용을 제시하고 그것이 주관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 그리고 학생들을 위해 그 원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 포용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그런 생각(인종주의나 성차별주의 생각)을 반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83)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말해오곤 했다. “무엇을 말한다는 것은 또 무엇은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은 또 무엇은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학교 현장 구석구석에서, 학생들의 고통과 함께 하려는 훌륭한 교사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권력에 유린당하는 것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다. 진실을 가르친다는 것이, 말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안온하지도 않음을, 지금의 권력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지금 유린당한 교사들이 부디 견디고, 다시 부활할 것임을 믿는다. 내 어린 딸도 그런 아름다운 교사의 학생이 되는 행운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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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철학 - 지배와 저항의 논리
사카이 다카시 지음, 김은주 옮김 / 산눈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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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폭력이라~ 누구나 이 말에서 부정적 느낌을 먼저 받을 것 이다. 폭력은 당연히 배제 되어야 할 것이기에, 폭력의 부정 을 말하는 것이 교양인의 자질이라고까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폭력은 배제되어야할 것’이라고, 그렇게 간단하게만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해 갔다. 일상에서 느끼는 여러 종류의 폭력을 감지하면서,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결정적인 것은 지난 2008년 5월부터 시작된 촛불의 경과를 보면서, 물리적 폭력은 부당한가라는 고민이 생겨났다. 촛불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거부만이 아니라, 영어 몰입 교육 논란, 공공영역 민영화 등 MB 정권의 비합리성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의 표출이었다. 평화적으로, 너무나 평화적으로! 거리는 축제로 변했고, 발랄하고 즐거운 행진이 되었다. 많은 비평가들이 새로운 시위문화의 출현을 말했다.

 그런데, 당시 촛불이 최선(最善)으로 여긴 비폭력이, 사실은 <지배권력에 순치된 국민의 질서 이데올로기>가 아닌가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반대로 시위가 폭력적이었다면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아마도 그렇게 많은 시민이(비폭력 이데올로기가 학습된 국민이) 참여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권력은 폭력 시위를 부각시켜 시위대를 고립시키고, 강제진압의 명분을 확실히 얻었을 것이다. 

 자, 그러면, 이러나 저러나 촛불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 (시민 네트워크니, 기억의 학습이니, 혹은 확인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는 지금 괄호 쳐 내고 이야기 하자. 그리고 나는 의지적 낙관주의자로서, 촛불은 반드시 기억의 정치로 되돌아 올 것임을 믿는다. 그런데 이것만이 촛불의 의미라고하기에는 너무 허전하지 않은가?) 더구나 당시 촛불의 현장에서 시민을 대하던 국가 권력의 모습을 보라. MB정권에게 평화시위라는 것은, 차도에도 내려오지 말아야 하며, 그야말로 ‘모든 정치적 말과 행위', 즉 그 어떤 의미도 거세된 것만을 평화로 여긴 것이다. 어쩌면 87년 6월처럼 최루탄이 없었던 것을, 아니 80년 5월 광주에서처럼 총을 쏘지 않았던 것을, 국가권력의 ‘평화적 대응’으로 고마워해야 하나? 지난 여름 이후, 국가의 명백하고도 노골적인 폭력을 다시 목도하면서, 그리고 그 앞에서 ‘비폭력’만을 외치는 시민들의 순진함(?)을 보면서, 그리고 촛불 후에 엄청난 국가 폭력의 반동을 보면서, 나는 폭력에 대해서 예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 ‘폭력은 안 된다’라는 막연히 ‘올바른’ 도덕이야말로 도리어 폭력을 용인”(12)하는 꼴이 되며, “더구나 종종 ‘폭력을 행사하는자’는 ‘폭력을 행사할지도 모르는 자’로까지 확대되어 현실적으로 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곳에 폭력이 발생할 것 같다는 이유로 폭력이 행사되는 기묘한 사태마저 생겨나고 있다. 그곳에서는 ‘폭력은 안 된다’는 구호를 부르짖는 자들이 행사하는 폭력만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9)

 이처럼 시민의 폭력은 과대 규정되는데 비해, 국가 폭력은 너무나 손쉽게 용인되는 비대칭성에 대해, 나름의 정리가 필요했다. 그런데 국가라는 것이 추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운영 주체가 있다. 다시 말하면, 지난 여름 이후 보여주는 국가의 폭력은 'MB-한나라당-뉴라이트-조중동-자본가'들이 바로 국가 권력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무엇이 정당한 폭력이고 무엇이 부당한 폭력인지를, '그들' 국가가 독점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그들 국가>가 하면 연애요, 국민이 하면 불륜인게라~.

그런데 당시 나는 촛불의 그 평화가 오히려 좀 기이하기까지 했다. 시민의 넘치는 분노가 저렇게 아름답게만(?) 표출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효한가 혹은 옳바른가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광화문 MB 산성 앞에서 산성을 넘을 것이냐, 마느냐를 두고 현장에서 열 띤 토론이 있었다는데, 시위가 비폭력이어야한다는 것이 주류였단다.  

“그(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직접행동 자체가 ‘평화’적인 것이라는 이미지는 완전한 오해이다. (…) 요컨대 비폭력 시위라면 진압 경찰과도 평화적으로(아주 사이 좋게) 대치해야 한다는 식으로 긴장을 기피하는 것이 마치 비폭력 운동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킹과도, 간디와도 완전히 무관하다. 킹은 비폭력 직접행동을 결코 단순한 ‘평화’적인 수단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평화에 관한 시각의 근본적인 차이마저 숨어 있다고 말해도 좋겠다. 평화란 단순히 ‘파란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인가, 아니면 역동적인 항쟁 속에서 끊임없는 행동에 의해 유지되고 확대되고 심화되어 가는 어떤 힘으로 충만한 상태인가?” (41) 

 간디나 킹의 비폭력 운동이, 진압 경찰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으로 오해받곤 했다. 이 사회에서 누가 가장 비폭력을 힘주어 말하는지 보라. 우습게도 제도 교육권에서 가장 열심히 주입하는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폭력은 나쁘다. 간디를 봐라, 비폭력으로 성인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느냐, 어떤 폭력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역시 학교답다. 그런데 간디는 <비폭력>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비폭력 저항>을 주창했다. 즉 간디의 비폭력 저항의 효용성 유무와는 별개로, 그것이 ‘저항’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것임에도, 대부분 ‘비폭력’에 방점을 찍는다. 예전의 어떤 자료에서 본 간디의 말을 옮겨본다  

“ 비겁과 폭력 사이에 선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폭력을 택하겠다. (…) 세계는 논리만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삶은 어떠한 종류이든지 폭력을 수반하지만 그 사이에서 가장 비폭력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

 즉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비폭력이라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난 당신에 반대한다”는 저항을 행동으로 실천하는데, 저항의 방법이 폭력이 아닌 비폭력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간디의 비폭력 저항이 효용성에서는 의문을 제기 받는다.) 우리는 간디의 비폭력을 마치 ‘힘을 거세한 움직임’으로 세뇌시키는 지배 담론에, 일정 부분 속아 넘어간 것이라 본다. 비폭력의 전술이 유효하려면, 엄청난 지속성과 대항적 에너지가 필요한데도, 우리는 그러지를 못했다. 그런 비폭력 운동은 지속적 응집력을 가져야 하는데, 정말 쉽게 가능하지도, 또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기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비폭력 직접행동의 목적은 대화를 끊임없이 거부해 온 사회에 어떻게든 우리가 제시한 쟁점과 대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위기감과 긴장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 긴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비폭력 저항자들의 임무 중 하나” (42)   

 비폭력이 유용한 전술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지만, 비폭력의 요체는 ‘폭력은 무조건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긴장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적대성(antagonism) 과 폭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는 당신의 결정에 동조할 수 없다!’라는 <적대성의 표출>이, 비폭력 저항의 핵심이다.

 “킹은 자신에게 과격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백인 목사나 ‘자유주의자’들에게, 원래 예수도 사도바울도 루터도 링컨도 제퍼슨도 그 시대에는 ‘과격주의자’가 아니었느냐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 ‘문제는 우리가 과격주의자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어떠한 종류의 과격주의자가 되는가이다.’ 그러니까 적대성이나 대립을 격화시키는 것 자체는 의심할 여지도 없는 대전제이며 어떠한 적대성을 어떻게 격화시킬 것인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킹에 의하면 폭력을 절제한다는 말은 곧 적대성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핵심이다. 적대성과 폭력을 구분하지 않으면 결국 폭력에 직면하더라도 성인(聖人)처럼 행동하라는 단순한 도덕이나 종교론으로 귀착해 버릴 위험이 크다. 비폭력 직접행동이란 대중의 힘을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또한 더욱 급진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 폭력을 절제하는 것이다. 이는 부당하고 거대한 폭력의 힘을 분산시키거나 혹은 반대로 더욱 확정시키면서 자신의 힘을 적절하게 또는 최대한으로 발휘해 대항하는 전술이다.” (46)   

 60년대 흑인들의 앉아있기 운동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 같다. 레스토랑이나, 버스에서 흑인들이 받은 차별에 대해, 그들은 ‘행동’했던 것이다. 백인들의 조롱과 위협, 그리고 신체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그냥 앉아 버티는 것이다. 백인들의 폭력에 대해서 비록 대항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지만, 버티고 앉아 있음으로해서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대해 엄청난 적대감을 표출했던 것이다. 그것은 적극적 행동이었던 것이다. 침묵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닌,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킹과는 달리 맬컴은 폭력에 좀 더 가까이 가 있었다. 우리가 맬컴 X 하면 바로 폭력성이 떠오른 것은, 킹에 비해 상대적으로 폭력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것과 함께, 미국 백인들이 만든 왜곡된 이미지 탓이기도 하다.  

 “수단과 목적이라는 도식으로 정리한다면 확실히 킹 목사의 논리는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역시 올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간디도 비슷하다. (…)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맬컴이 킹의 비폭력주의를 비판하고 폭력을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상호적인 원리’로서 긍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흑인들에게 일상적으로 행사되고 있는 백인 사회의 폭력에 대해, ‘계속 그렇게 한다면 언제까지 잠자코 있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었다. 맬컴이 먼저 공세적 혹은 공격적인 폭력을 권장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52)  

 즉 맬컴에게서 폭력은 단지 수단과 목적이라는 도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미국 사회가 흑인들에게 행사하는 구조적 폭력에 대해, 흑인들이 침묵하거나 혹은 그 폭력을 자신에게로 내향시켜 왔다. 그래서 흑인들은 자존감을 침해 당해 왔다. 이에 맬컴은 백인의 폭력을 우리 흑인이 품고 있지 말고, 흑인의 자존감을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흑인 내부에 쌓인 자기 증오를 버리고, 백인에게 무릎 꿇는 예속을 버리고, 그런 백인들에게 적대감을 가지는 것은, 곧 자기증오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무조건적 폭력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60년대 흑인들이 수시로 린치를 당하고 일상적 폭력에 노출된 상황에서, 백인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이 흑인들의 자존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먼저 폭력을 행사하는 백인에게는 참지 말고 폭력으로 대응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나름 정리해 보자.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으로는 다음 3가지 방법이 있다.
1. 비폭력 : 폭력에 대해 폭력적 행동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대신에 적대성을 표출하는 비폭력 행동을 취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그 유용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간디나 마틴 루터 킹의 경우다.  

2. 대항 폭력(counter-violence) : 칼에는 칼이라는 식의 폭력을 말한다. 즉 어떤 폭력에 대해 동일한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의 근거는, 국가나 체제의 부당한 폭력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채택되는 폭력은, 국가나 체제의 폭력과는 동일한 수준의 폭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더 큰 폭력의 순환을 가져오며, 파괴적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 맬컴의 경우다.

3. 반폭력(anti-violence) : 현재의 부당한 지배관계를 부인하는 것으로, 폭력에 대해 그 폭력을 무력화하고 해체하는 것에 중점을 두며, 자신이 폭력에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가장 고차원적인 설정인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설명이 좀 애매하다. 또 대항 폭력과 현실적으로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가 모호하다.  

 그런데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이처럼 대항폭력이니 반폭력이니 하는 개념이 나오는 것은, 그런 대응수단의 효용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비폭력 운동이 줄곧 시도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효용성이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새로운 저항의 탐색인 것이다.

 그런데 비폭력이든 대항 폭력이든 반폭력이든, 여기에는 또 다른 '사회적 힘'이 결합되어야만 한다. 킹은 미국 인종 차별을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적대성을, 계급간의 갈등에서 찾아내어 이른바 <계급투쟁> 쪽으로 방향을 틀어갔고, 맬컴은 <분노>에 대해 말했다.

“맬컴은 흑인들의 자기 혹은 타자에게로 향하는 증오를 분노로 바꿨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58)

“증오를 치유하는 것은 우선 이 증오를 끝없이 재생산하는 제도의 해체로 향하는 분노이다”(61)

“증오의 제도화 혹은 착취라고 하는 상황 속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짓은 사랑을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그 실질적인 내용을 사랑으로 제거해 버리는 행위이다. 바로 여기에 맬컴의 킹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 있다.” (60)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 말이 단순히 비폭력을 말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순종과 굴종을 말한 것은 아니다. 예수가 ‘오른 뺨을 치거든 왼쪽 뺨까지 내밀어라’라는 것을 단순히 비폭력 인내로만 여기는 것은, 내가 취하는 해석이 아니다. 두 사람이 마주본 상태에서 상대의 오른 뺨을 치려면 가해자는 왼손을 사용해야한다. 왼손의 사용은 상대를 가해하기 위한 상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당시 팔레스타인 땅에서 왼손의 사용은 모욕의 의미가 강했다. 즉 ‘야, 이 자샤! 까불래?’라며 모욕을 가하는 행위였다. 이에 대해 왼뺨까지 내밀고 또 때리라는 것은, 상대방이 오른손으로 진짜 힘을 주어 가격하라는 것이다. 왜? 그래야 때린 그놈을 법정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것이다. 상대를 가격하여 상해를 입히는 것은 당시 로마법에서는 분명 죄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의 이 에피소드는 ‘비폭력 인내’라는 해석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즉 “어? 제국주의 네 놈이 날 모욕해? 이 짜샤! 한 번 해 볼래? 진짜 네 놈이 옳다면 때려봐! 때려봐!”라며 저항, 즉 적대성의 강한 표출인 것이다. 결코 고분고분한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런 해석에 대한 자료는 주로 <예수 세미나> 회원들의 저작들에서 나타나는데, 『예수에게 솔직히』- 로버트 펑크의 해석을 따랐다.)  

 또한 폭력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프란츠 파농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알제리 민족 해방 전선의 투사이자, 정신과 의사. 참으로 멋진 조합이다. 그는 폭력 저항을 적극 실천한다. 파농은 식민주의는 근본적으로 폭력적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이해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에, 시민사회의 매개나 변증법적 통합의 노력조차 부재하게 된다. 그래서 군대나 경찰의 일상적 폭력이 노골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식민주의 사회의 폭력은 근본적 양상을 띠는데, 파농이 말하는 폭력의 본질은, ①식민주의 속에 폭력이 편재하다가 ②그것이 동포나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다가 ③ 드디어 내향을 멈추고 식민주의 자체로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즉 지배자에게로 향하는 폭력으로 ‘부메랑의 요소’라한다. 다분히 정신분석 의사다운 해석이기도 하다. 폭력을 치유의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다. (64)

파농은 폭력은 “원주민의 열등 콤플렉스나 방관 내지 절망적인 태도를 없애 준다. 폭력은 그들을 대담하게 만들며 자기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회복시킨다.”(66)

“투쟁은 폭력적이어야 한다” 즉 비록 독립을 달성했다하더라도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은 그렇지 않은 독립과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 피 흘리는 투쟁을 통한 독립은 식민지 모델로부터 보다 근본적으로 결별하게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식민지 괴뢰정부 밑에서 안주하던 엘리트의 연속성이 유지되어 결국 사회는 본질적으로 전혀 변하지 않을 것(68)

 일제로부터 무장 투쟁 독립을 거치지 않은 우리로서는 ‘식민지 모델로부터 근본적으로 결별’하지 못했다. 그래서 ‘괴뢰정부의 엘리트의 연속성이’ 어떻게 후대의 삶을 왜곡 시키는지, 우리나라 만큼 좋은 예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폭력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분명히 선을 긋고 비판적이다. 그녀는 권력과 폭력을 구분하는데, “아렌트의 말을 빌리면 이론적으로 권력은 목적 그 자체이며 폭력은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하다.” (86)

 아렌트는 말하길, 권력은 개인의 것이 아닌 집단의 것이며, 어떤 집단이 유지되는 한 권력은 계속 존재하게 되며, 이는 사회 생활의 필연적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은 동일한 것이 아니며, 단지 폭력은 권력을 파괴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미셀 푸코의 권력론과도 통한다. “푸코는 권력이란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이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91) 이는 존재와 힘(권력)을 동의어로 전제하는 니체(Nietzsche)적 세계관과 닿아 있는 것이다. 특히 푸코는 권력의 기능을 자본주의적 생산과 연관시켜 살핀다.

“생산의 장에서는 그 힘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도록 강요당한다. 한편 정치의 장에서는 반란 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그 힘을 최소화하도록 조종당하며 이를 통해 더욱 사육에 길들여진다. (…) 이처럼 정치적 힘이라는 측면에서는 최소화되고 생산이라는 측면에서는 힘을 최대화하도록 강요당하는 행위자는 근대에는 ‘노동자’라고 하는 가면(=주체)를 부여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97)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날카로운, 자본주의 권력 통찰이다.

 1992년 LA 폭동은 5일간 55명의 사망자를 낸 최대 규모였다. 로드니 킹이 무방비로 폭행을 당했는데, 이처럼 사회적 다수자와 강자들이 약자와 소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심리에는 “상상적인 전도(imaginary inversion)”(119)가 작용한다고 한다. 강자나 다수쪽이 오히려 약자를 두려워하고 공포를 느끼는, 즉 심리적 전도 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오히려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숙자들이 일반인들의 위협에 훨신 더 많이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일반인들은 노숙자들이 자신을 위협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경계하고 과도한 폭력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디스 버틀러의 지적처럼, 흑인의 페니스가 엄청나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백인들이, 흑인 남성으로부터 백인여성을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흑인 남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수 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사실은 ‘전도된 공포’를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가에 의한 폭력이 항상 ‘예방을 위한 대항 폭력’으로 정당화되는 것도 이와 동일한 메카니즘인 것 같다. 모든 침략 전쟁도 ‘자위’의 구실을 달고 있는 것처럼!  

 “미국의 정치학자 셸든 월린은 현재의 아메리카를 역(逆)전체주의 혹은 반전된(inverted) 전체주의로 분석하고 있다. 지금의 아메리카는 무제한의 권력에 대한 욕구와 공격적인 팽창이라는 점에서 나치즘과 똑같지만 수단과 행동이라는 점에서는 역전하고 있다.(…)나치가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체제를 떠받치도록 요구한데 반해 역전체주의(미국)는 정치적인 동원 해제와 투표의 기권을 요구하고 있다.”(130~131)

 미국민은 왜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가? 미국은 통치 형태로서의 공포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가, 에이즈, 홍수, 살인 등 온갖 뉴스로 공포를 안겨주며 공포를 생산해 내고 있다. 총기 소유자로만 본다면 캐나다가 훨씬 많은데, 미국에서 총기살인 사건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미국이라는 사회가 늘 공포를 조장하고 이웃에 대한 불신을 선동하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또한 이것은 경제 사회 보장의 열악함과 결부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 젊은 층의 살인 비율이 아주 낮음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젊은층의 흉악함을 강조하는 것은, 전후 교육을 비판하려는 정치적 조작에 의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래저래 <전도된 공포>가 폭력 통치의 구실을 마련해 주는 것이며, 더 큰 폭력과 공포를 외부로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 ‘반폭력’이란 말은 모든 국가적 폭력의 근절이라는 이념을 가지고 있다면, 또는 모든 폭력을 구조화하고 있는 제도를 해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폭력은 그것이 지니는 많은 문제성을 내포하고 있더라도 옹호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나는 이 ‘반폭력’을, 정당화되지 않는 대항적 폭력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현재로선 잘 모르겠다.”(218)

 즉 모든 폭력을 해체하는 반폭력의 정당성은 옹호하지만, 이것이 대항적 폭력과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는 이론적 구분일 뿐, 현실에서는 아무런 효용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 아닌가? 정당한 정치적 저항마저도 불법의 딱지를 붙여버리는 이 시대에, 우리의 저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속 시원한 답은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저항이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으로든 저항해야 하는 것>이리라.

폭력에 대해 나름 정리가 잘 된 책이다. 군데군데 약간 모호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미덕이 이를 상쇄시켜 준다. 이 만한 책을 찾기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출판사가 ‘산눈’이라고 낯선 곳인데 혹시 일찍 절판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함께 읽은 『폭력』 (책세상 刊 공진성 著)은, 빈약하고 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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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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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만큼이나 논란이 많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독일 나치의 영관급(최종 계급은 중령) 장교인 아이히만은 유럽전역의 유대인을 ‘이송, 재정착’ 시켜 ‘최종 해결책’에 이르게 한 실무 담당자였다. 물론 그는 영관급으로 그 보다 높은 자의 명령에 따랐기에 그가 학살 정책의 입안자도 아니고, 또 그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단시일에 전유럽에서 600만 유대인을 색출하여 ‘수용-이송-학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정과 방법상의 합리가 수반됨으로써 가능했는데, 여기에 아이히만의 실무적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아렌트가 참관한 재판 과정에 대한 기록 뿐 아니라, 정의, 도덕, 죄 등 인간 일반에 대한 철학적 통찰로 가득 차 있다. 덧붙여 당시 유럽 각국의 유대인 학살의 전반적 경과를 볼 수 도 있다. 아렌트의 책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라 하지만, 그녀 특유의 문체적 특징(조소와 반어, 그리고 대체로 장문이기에 주술 관계의 호응 문제와 의미의 분산)으로 인해, 이 책의 대중적 명성에 비교해보면,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독자는 번역자의 오역을 맹비난하고 있던데, 이는 번역자의 문제가 아니라 아렌트의 저작이 갖는 특성인 것 같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 번역을 문제 삼은 점이 걸려 주저했었는데, (원문은 모르지만) 번역자체는 오히려 양호한 편인 것 같다.

아이히만의 변호사가 내세운 주된 변론은 “피고(아이히만)로 하여금 무죄 주장을 하게하는 이유는 피고가 당시 존재하던 나치 법률 체계 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범죄가 아니라 국가적 공식 행위이므로 (…) 복종을 하는 것이 그의 의무”(74) 였다는 것이다. 또 아이히만은 자신의 살인죄 기소는 부당하며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나는 어떠한 인간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 그 일은 그냥 일어났다.” (74)고 말한다.

어떤 기분이 드는가? 우리 독자들은 그를 수백만 유대인 학살자의 주책임자로 이미 지목하고 있겠지만, 그는 자신이 살인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한번도 ‘직접 자기 손으로’ 살인을 하지 않았으며 더구나 자신의 이송작업은 당시 법에 따른 국가의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이런 형식논리, 어디서나 많이 접하지 않는가. 아이히만은 그러면서 ‘복종’의 문제를 제시한다. 어쩌면 이것이 이 사건의 가장 핵심일 수 있다. 
 

“그(아이히만)의 양심에 대해 그는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거라는 점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란 수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것이었다.”(79)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이 아이히만에게서는 양심의 문제였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충실한 사람,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정신과 의사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은 아내, 자식, 부모, 형제, 친구들에 대한 그의 모든 정신적 상태가 정상일뿐 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또한 도덕적인 이상 상태도 아니며,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판명했다. 그는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는 유대인에 대한 개인적 증오나 거부감도 없었다. 반유대주의 친구도 있었고, 유대인 친척도 있었으며 관계도 좋았다. 더구나 한 때 시온주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친구의 권유에 “그렇게 하지 뭐”라며 나치당에 가입했고, 그 때 당의 정강도 몰랐으며 히틀러의 『나의 투쟁』도 읽지 않았었다. 즉, 그는 그냥 그렇게 흘러간 것이다!

아이히만의 언어는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아이히만에게 ‘양심’이 어떤 문제였는지 (학살의 전체 조감도를 그릴 수 있는 ‘지금 우리’로서는 그의 양심을 쉽게 경멸하겠지만, 현재 우리 주변의 양심에 대해 성찰한다면, 결코 쉽게 경멸만을 퍼부을 수 없는 양심의 문제)처럼, ‘이상(理想)’이란 말도 참으로 곤혹스럽다. 
 

“아이히만의 생각에 따르면 ‘이상주의자’란 단지 어떤 ‘이상’을 신봉하거나, 또는 도둑질하거나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주의자’란 자신의 이상을 삶을 통해 실천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 특히 어떤 사람이라도 희생시킬 각오가 된 사람이었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경찰심문에서 (아이히만이) 말했을 때, (…) 그는 자신이 얼마나 ‘이상주의자’로서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97)

아, 이해가 되는가? 아이히만에게 이상(理想)은,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에 따라 이송과 학살을 얼마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업무를 잘 실천하느냐의 문제였다. 자신은 이를 잘 실천했기에 자신의 이상에 합당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아주 그로테스크한 ‘이상주의’의 언어 사용법이지만,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어긋남을 항상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이처럼, 언어 정확히 말하면 ‘언어와 현실’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는 단지 언어 사용법의 차이가 아니라, 그 인간 존재의 실존적 차원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언어 사용법은 결코 그 사람의 한 단면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와 맞닿아 있는, 그 사람의 전(全)존재적 문제라고 줄곧 생각해 왔다. 
 

아이히만은 당시의 국가적 명령과 법, 의무을 준수했다. 그래서 그는 칸트의 도덕 교훈, 칸트가 말하는 의무에 따라 살아왔다고 진술해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왜냐하면 칸트의 도덕철학이 말하는 의무란, 맹목적인 복종을 배제하는 인간 판단으로서의 의무를 말하기 때문이다. 즉 아이히만은 칸트를 완전히 180。 거꾸로 해석에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어이없어 하는 재판관이 그가 칸트를 알고 있는지를 의심해 몇몇 질문을 던져보니 아이히만은,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읽었으며 ‘정언명법’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칸트는 인간의 행위 일반에 대해 그 행위자가 입법자로서의 양심과 도덕을 행위할 것을 말한 것인데, 아이히만은 히틀러 총통의 명령이 양심과 도덕의 입법자로서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아이히만은 여러 면에서 ‘허풍’을 떠는 경향이 있었는데, 아무튼 그가 가진 ‘조직능력과 협상능력’(이송하는 조직 능력과, 이송문제를 다른 부대와 협상하고, 또 특별히 유대단체와 협상하는 능력)은 남들보다 뛰어날 만큼 ‘현실적 감각’이 탁월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는 ‘현실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그의 언어가 현실과 겉도는 것이다. 
 

“아이히만의 성격 결함은 그에게 그 어느 것도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104)이었고, 그래서 아이히만과의 심문에서 재판관은 ‘소통’되지 못하는 답답함을 토로한다.

“재판관들이 피고에게 그가 말한 모든 것이 ‘공허한 말’뿐이라고 말한 것은 옳았다. (…) 자기에게 중요한 일이나 사건에 대해 동일한 선전 문구와 자기가 만든 상투어를 단어 하나 틀리지 않게 일관성 있게 반복한 점 때문이다. (…)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106)

즉 아이히만의 말은 공허한 것이었다. 그가 ‘이상’ ‘양심’을 말할 때, 그리고 그가 자신이 받은 명령만을 이야기 할 때, 더 이상 타인과의 소통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자신만의 언어 사용법에 함몰 된 것이었다. 그는 “관청용어만이 나의 언어입니다”(105)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상투어가 아니고서는 말할 능력이 없는 인간이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가 8,000만 사람의 총통에 올랐다는, 즉 히틀러의 그 성공만으로도 자신은 히틀러에게 복종할 충분한 증거’(198)라고 했다. 지위가 곧 정당성의 근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성공 제일주의의 모습이다. 그래서 아이히만 역시 그러한 성공을 열렬히 희구했다. 그런데 자신 인생의 성공은 자신의 계급인 ‘중령의 지위’까지만 성공했다는 것이, 그는 스스로 안타까웠던 것 같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지 않았다. (…) 이 문제를 흔히 있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391
 

공허한 언어들, 상투어! 현실감이 전혀 부재하는 공허한 언어들. 요즘 어디에서나 많이 듣는 소리 아닌가? “서민들이 행복한 사회를 위하여” “엄격한 법 적용” “중도 실용” 처음엔 이 말의 실체가 헷갈리기도 했으나, 이제는 너무나 명백하게 안다. 이는 ‘방언’이었다! 성령에 감읍한 기독교인이, 엑스타시 상태에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쏟아붓는, 방언! “상투어로 자신을 위로하는 이 끔찍한 재능”(113)

아이히만은 자신의 이송 작업을 도와주던 그래서 예전에 잘 알던 ‘스토르퍼’라는 유대인 대표가 아유슈비츠로 이송되자 그를 찾아간다. 아이히만은 책임자에게 부탁해 그를 힘든 작업조에서 빗자루로 자갈 포장 도로를 쓰는 손쉬운 작업조로 옮겨 준 것에서(109), 자신은 큰 내적 기쁨을 느꼈으며 이것이 자신의 인간애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인간적인 만남’이 있은 6주일 후 스토르퍼는 총살로 처형되었다. 그에게 인간적이란 이런 것이었다. 또 아이히만 자신이 사형 당하는 처형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349) 라며, 죽음을 앞두고서도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만을 말하고 있다. 마치 그가 다른 사람의 장례식에 참가한 것처럼. 
  

"상투어나 관용어 등은 늘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특징을 갖는다. 현실-말-사유의 관계가 유기적이지 못하고, 언어가 고정되어 버림으로써 사유와 판단이 현실과 유리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22)

또 나치스는 학살이나 수용 같은 “문제를 다루는 모든 문서들은 엄격한 ‘언어규칙’을 따랐다.”(149) 학살이라는 말 대신 최종 해결책, 특별취급, 재정착 등의 언어를 사용 했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업무를 스스로에게 거부감 없이 수행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나치 수뇌부는 언어의 현실감을 제거해야 할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 학살은 많은 독일 국민들과 유대인의 협조하에 이루어지는데, 이 부분에서 예루살렘 법정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은 무척 불편해 한다.

“친위대나 당 뿐만 아니라, 착하고 연륜 있는 엘리트 공무원들이 이 피투성이 문제에서 주도권을 갖는 명예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것을 자신(아이히만)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었다.”(183)
 

즉 유대인 절멸 계획은 나치나 히틀러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다. 1942년 소위 ‘반제회의’의 유대인 절멸에 대한 토론에서, 많은 참여자들이 동의와 환영을 한다. 유대인 절멸을 위해 나치 당원뿐 아니라, 외무성, 법률 전문가, 재무부와 국가은행, 교통부 등 모든 기관과 공무원들의 적극 동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더구나 유대인 장로회까지 협조하게 된다. 그 후 이주와 학살은 점점 더 쉬워지고 곧 일상이 되어 버린다. 아이히만이 아는 한,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고 협력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이히만은 자신은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낀다고 하며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183)라고 한다. 예수의 처형을 예수의 동족인 유대인의 손에 맡겨 버리고, 자신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빌라도처럼!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유럽 각국의 차이였다. 전후 보고에 따르면, 나치스는 각국 현장의 여론과 동태가 저항적일 것에 대해 많은 염려가 있었고, 그 지역의 동조 여부에 따라 학살 작업이 이루어졌다. 즉, 그렇게 무자비한 정권도 현장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던 것이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무관심과 동조 혹은 자발적 참여 혹은 적극 참여 등으로 학살에 관여하게 된다. 그런데 덴마크는 유대인 학살에 대해 관료들의 저항, 노동자들의 파업과 폭동 등으로 저항했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또 불가리아에서도 주민들이 유대인 학살에 반대해 기차역을 막고 시위를 하는 등으로 학살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 지역 독일 관료들은 자심감을 잃었으며, 사실상 나치스가 현지의 협조 없이는 그 모든 유대인을 학살하기란 불가능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단 두 지역에서만 말이다.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그 교훈이란 공포의 조건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라가지만, 어떤 사람은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최종해결책이 제안된 나라들의 교훈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그 일이 어디에서나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325)


그래서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 진실을 이야기해야한다고, 그래서 ‘망각의 구멍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또 전후에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자신들은 나치 정권에 대해 항상 ‘내면적으로 반대’했다며 자신들의 협조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대란,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며, 오히려 학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변명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독일계 개신교 목사인 ‘그뤼버’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뤼버는 히틀러에 원칙적으로 반대한 용감한 사람이었는데, 법정에서 그의 진술과 아렌트의 지적은 다음과 같다.

“ “(그뤼버) 당신은 그(아이히만)에게 영향력을 주려고 애써보았습니까? 목사로서 당신은 그의 감정에 호소하고, 그에게 설교하고, 그에게 그의 행위가 도덕성에 모순된다고 말하려고 시도해 보았습니까?” 물론 아주 용감한 이 감독은 그런 종류의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의 대답은 아주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행동이 말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또 말해보았자 슬데 없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여기서 단순한 말 자체가 행동이었을 수가 있고, 또 아마도 ‘말이 쓸데가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해 보는 것이 목사의 의무였을 것이다.” (204)
 

‘말이 쓸데가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보는것!’, 참으로 타당한 지적이다. 아이히만은 재판과정에서, 이제까지 자신의 일에 대해 비판하거나 그 일의 부당성을 말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물론 그에게 학살의 잔인함을 말했다하더라도 그는 그 일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주변에 있는 가능한 누군가가 그에게 그 말을 했어야 했고, 던져진 말들이 그에게 어떤 씨앗이 될는지, 그 여지는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유대인 절멸 사업에 유대인 사무실 조직이 동원되고 각 지역의 유대인 지도자들의 상당한 협조가 이루어졌다. 그들 유대인 권력자들은 동족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그나마 구출된 소수의 유대인들이 고위층과 저명인사였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의 씁쓸함이 더해진다. 아렌트가 보기에 사실상 구출자보다 희생자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았기에, 그들 유대인 위원회의 협조가 정당화되기 힘들다고 한다. 구체적 예로, 유대인 위원회의 협조로 수용소행을 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살되었지만, 나치스나 유대인 위원회를 탈출한 사람들의 생존율은 40~45%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아렌트는 유대인 지식인을 비롯한 전반적인 도덕의 붕괴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어두운 진실을 아렌트가 직접 이 책에서 제기했기에, 이스라엘은 이 책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기소된 범죄들에 대해 ‘살인을 교사’(즉 가스실로 이송한 책임)한 부분에서만 유죄일 뿐이며, 공공연한 학살을 자행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사실, 검찰은 이 점에서 아이히만의 유죄를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답한다. “살상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342)

이에 대해 아렌트는 독일 도시에 대한 무차별 폭격과 히로시마에 원자탄으로 수십만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연합군이 헤이그 협장을 위반한 것이며, 이는 누가 책임져야하는가라는 똑같은 질문을 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재판이 승자의 법정이라는 비판이 계속 나오는 이유이다.

이 책이 말하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간단치 않은 논쟁거리를 제시한다. 내게는 이 개념의 정당성을 깊이 따질 능력이 없다. 단지 성찰하지 않는 행동이, 어떻게 역사적 사회적 정의를 배반하느냐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해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중요한 책이다.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392) 
 

아이히만 문제는 ‘무사유와 악의 이상한 상호 연관성’을 보여주는 한 예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 판단 기능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책의 후기에서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간주해야 하는 것과 완전히 어긋나는 것일 때조차도, 사람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옳고 그름을 여전히 구별할 수 있었던 그 소수의 사람들은 실로 그들 자신의 판단들을 따라서만 나아갔”(400)으며, 그들이 곧 양심과 도덕과 정의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참으로 어렵고도 근본적인 통찰을 매 순간 요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61년 12월 아이히만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62년 5월 29일 항소심에서도 1심 판결이 그대로 수용되어 사형이 확정되었다. 이스라엘 대통령은 아이히만 가족의 사면 청원을 거부하고, 31일에는 전세계 저명한 유대인 지도자들이 부탁하는 관대한 조치를 거절하고, 바로 2시간 뒤 아이히만을 교수형에 처한다. 물론 예루살렘 법정의 정당성에 대해 비판이 있었음에도, 이스라엘은 그를 서둘러 처형한 것이다.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당시의 일반적 비판은 다음과 같다.(352)
 

① 아이히만은 소급법에 의해 재판을 받았으며, 승자의 법정에 섰다는 점 ② 납치행위를 고려하지 않는 예루살렘 법정이 이 재판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점 ③ 그래서 이 범죄를 재판하는 데 유일하게 적절한 곳은 국제 재판소라는 점이 지속적으로 제기 되었었다. 
 

아렌트 역시 집요하게 이 문제들을 다루며, 그녀 나름으로, 이 재판의 근본 문제를 3가지로 지적하고 있다.(376) ① 승자의 법정으로 훼손된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고 (즉 예루살렘 재판의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함) ② 인류에 대한 범죄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하고 (인류에 대한 범죄를 어떻게 정의하며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 국가 기구에 의한 행정적인 대학살을 다루는데, 현재의 사법개념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이번 재판이 보여 주었다고 함) ③ 이러한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새로운 범죄자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할 것을 제기하고 있다.(즉 나치스뿐 아니라, 연합군 등의 전쟁 범죄 행위들, 혹은 각종 제노사이드 문제도 함께 인식할 것을 제기)

책을 읽고 난 뒤, 이 책을 관통하는 시선은 크게 3가지로 떠오른다. 아이히만의 죄를 극대화시키려는 이스라엘의 관점, 자신의 죄가 과장되었다며 인정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려는 아이히만의 관점, 그리고 이 사태를 냉정하게 관찰하는 아렌트의 관점이 있다. 이 세 관점이 서로 얽히면서, 전 유럽이 함께 한 600만 유대인 학살의 입체적 조망이 날과 씨로 드러난다. 특히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과와 더불어 이 재판의 불공정성도 함께 지적하며, 결국 ‘정의, 도덕, 죄’에 대해, 결코 만만치 않은 철학적 질문을 던져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지 아이히만에 대한 개인적 기록만이 아니라, 유대인 학살 문제와 인간 일반에 대한 성찰의 보고서라 할만 하다.

이 책을 읽은 후 크게 4가지 측면에서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첫째,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의 의미와, 그에 따르는 죄, 책임, 정의, 윤리의 문제이다.

둘째, 언어의 문제이다. 현실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투적 언어가 어떻게 악의 평범성으로 연결되는지를, 아렌트는 집요하게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셋째, 600만 유대인 학살에, 동족인 유대인의 협조와 책임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유대인 학살에 나치는 물론 독일 국민의 적극적 동조가 있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렌트 자신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지도자들의 책임을 냉정하게 서술하고 있다.

넷째, 예루살렘의 재판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전승국들이 행한 전범 처리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문제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의 엄청난 비난이 있었고, 그리고 2000년까지 아렌트의 저작들이 단 한 권도 히브리어로 번역되지도 예루살렘에서 출판되지도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셋째, 넷째 사항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즉, 저명한 정치사상가인 아렌트가 이스라엘의 관점을 거부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내게 개인적으로 할 말이 많은 책이다. 또 그래서 이 책이 가진 몇몇 결함에도 불구하고, ‘아이히만 문제’로 다가오는 정의, 도덕, 책임, 죄,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범한 일에 묻어오는 악의 문제’ 등에서 언제나 새로운 질문과 답을 요구하는 책이다. 
 

덧붙여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이 책에서 제기하는 도덕, 정의, 죄, 악의 문제는, 그대로 지금의 이스라엘에게 다시 던질 수 밖에 없는 물음이라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산업으로 명명되는 추악한 모습들, 또 홀로코스트가 인류의 엄청난 재앙임이 틀림없지만 어느 듯 전세계인에게 도덕적 수치심을 이데올로기화한 점, 그리고 미국의 1,000만 이상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스탈린의 1,000만 학살과 700만 우크라이나의 대기근의 책임, 세계 대전에서 수백만 학살에 대한 처칠의 책임, 이라크 봉쇄에 따른 수백만 이라크민들의 사망, 등등 이루 헤아릴수 없는 인류의 재앙에 대해서는, 어떤 질문이 가능하며, 어떤 교훈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홀로코스트만이 인류에 대한 유일한 범죄도 아니었고, 또 가장 부끄러운 인류의 기억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소소하다 할 수 있지만,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로 글을 맺을까 한다. 2008년 말 팔레스타인을 포위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아이들이 무방비로 죽어갔다. 그 때 도시락과 망원경을 준비한 젊은 이스라엘 남녀들이, 전장 가까운 곳에서 폭격을 지켜보며 부라보를 외치던 사진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그 때 감정의 기억이, 슬프고도 길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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