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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평점 :
명성만큼이나 논란이 많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독일 나치의 영관급(최종 계급은 중령) 장교인 아이히만은 유럽전역의 유대인을 ‘이송, 재정착’ 시켜 ‘최종 해결책’에 이르게 한 실무 담당자였다. 물론 그는 영관급으로 그 보다 높은 자의 명령에 따랐기에 그가 학살 정책의 입안자도 아니고, 또 그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단시일에 전유럽에서 600만 유대인을 색출하여 ‘수용-이송-학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정과 방법상의 합리가 수반됨으로써 가능했는데, 여기에 아이히만의 실무적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아렌트가 참관한 재판 과정에 대한 기록 뿐 아니라, 정의, 도덕, 죄 등 인간 일반에 대한 철학적 통찰로 가득 차 있다. 덧붙여 당시 유럽 각국의 유대인 학살의 전반적 경과를 볼 수 도 있다. 아렌트의 책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라 하지만, 그녀 특유의 문체적 특징(조소와 반어, 그리고 대체로 장문이기에 주술 관계의 호응 문제와 의미의 분산)으로 인해, 이 책의 대중적 명성에 비교해보면,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독자는 번역자의 오역을 맹비난하고 있던데, 이는 번역자의 문제가 아니라 아렌트의 저작이 갖는 특성인 것 같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 번역을 문제 삼은 점이 걸려 주저했었는데, (원문은 모르지만) 번역자체는 오히려 양호한 편인 것 같다.
아이히만의 변호사가 내세운 주된 변론은 “피고(아이히만)로 하여금 무죄 주장을 하게하는 이유는 피고가 당시 존재하던 나치 법률 체계 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범죄가 아니라 국가적 공식 행위이므로 (…) 복종을 하는 것이 그의 의무”(74) 였다는 것이다. 또 아이히만은 자신의 살인죄 기소는 부당하며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나는 어떠한 인간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 그 일은 그냥 일어났다.” (74)고 말한다.
어떤 기분이 드는가? 우리 독자들은 그를 수백만 유대인 학살자의 주책임자로 이미 지목하고 있겠지만, 그는 자신이 살인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한번도 ‘직접 자기 손으로’ 살인을 하지 않았으며 더구나 자신의 이송작업은 당시 법에 따른 국가의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이런 형식논리, 어디서나 많이 접하지 않는가. 아이히만은 그러면서 ‘복종’의 문제를 제시한다. 어쩌면 이것이 이 사건의 가장 핵심일 수 있다.
“그(아이히만)의 양심에 대해 그는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거라는 점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란 수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것이었다.”(79)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이 아이히만에게서는 양심의 문제였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충실한 사람,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정신과 의사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은 아내, 자식, 부모, 형제, 친구들에 대한 그의 모든 정신적 상태가 정상일뿐 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또한 도덕적인 이상 상태도 아니며,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판명했다. 그는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는 유대인에 대한 개인적 증오나 거부감도 없었다. 반유대주의 친구도 있었고, 유대인 친척도 있었으며 관계도 좋았다. 더구나 한 때 시온주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친구의 권유에 “그렇게 하지 뭐”라며 나치당에 가입했고, 그 때 당의 정강도 몰랐으며 히틀러의 『나의 투쟁』도 읽지 않았었다. 즉, 그는 그냥 그렇게 흘러간 것이다!
아이히만의 언어는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아이히만에게 ‘양심’이 어떤 문제였는지 (학살의 전체 조감도를 그릴 수 있는 ‘지금 우리’로서는 그의 양심을 쉽게 경멸하겠지만, 현재 우리 주변의 양심에 대해 성찰한다면, 결코 쉽게 경멸만을 퍼부을 수 없는 양심의 문제)처럼, ‘이상(理想)’이란 말도 참으로 곤혹스럽다.
“아이히만의 생각에 따르면 ‘이상주의자’란 단지 어떤 ‘이상’을 신봉하거나, 또는 도둑질하거나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주의자’란 자신의 이상을 삶을 통해 실천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 특히 어떤 사람이라도 희생시킬 각오가 된 사람이었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경찰심문에서 (아이히만이) 말했을 때, (…) 그는 자신이 얼마나 ‘이상주의자’로서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97)
아, 이해가 되는가? 아이히만에게 이상(理想)은,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에 따라 이송과 학살을 얼마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업무를 잘 실천하느냐의 문제였다. 자신은 이를 잘 실천했기에 자신의 이상에 합당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아주 그로테스크한 ‘이상주의’의 언어 사용법이지만,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어긋남을 항상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이처럼, 언어 정확히 말하면 ‘언어와 현실’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는 단지 언어 사용법의 차이가 아니라, 그 인간 존재의 실존적 차원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언어 사용법은 결코 그 사람의 한 단면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와 맞닿아 있는, 그 사람의 전(全)존재적 문제라고 줄곧 생각해 왔다.
아이히만은 당시의 국가적 명령과 법, 의무을 준수했다. 그래서 그는 칸트의 도덕 교훈, 칸트가 말하는 의무에 따라 살아왔다고 진술해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왜냐하면 칸트의 도덕철학이 말하는 의무란, 맹목적인 복종을 배제하는 인간 판단으로서의 의무를 말하기 때문이다. 즉 아이히만은 칸트를 완전히 180。 거꾸로 해석에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어이없어 하는 재판관이 그가 칸트를 알고 있는지를 의심해 몇몇 질문을 던져보니 아이히만은,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읽었으며 ‘정언명법’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칸트는 인간의 행위 일반에 대해 그 행위자가 입법자로서의 양심과 도덕을 행위할 것을 말한 것인데, 아이히만은 히틀러 총통의 명령이 양심과 도덕의 입법자로서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아이히만은 여러 면에서 ‘허풍’을 떠는 경향이 있었는데, 아무튼 그가 가진 ‘조직능력과 협상능력’(이송하는 조직 능력과, 이송문제를 다른 부대와 협상하고, 또 특별히 유대단체와 협상하는 능력)은 남들보다 뛰어날 만큼 ‘현실적 감각’이 탁월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는 ‘현실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그의 언어가 현실과 겉도는 것이다.
“아이히만의 성격 결함은 그에게 그 어느 것도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104)이었고, 그래서 아이히만과의 심문에서 재판관은 ‘소통’되지 못하는 답답함을 토로한다.
“재판관들이 피고에게 그가 말한 모든 것이 ‘공허한 말’뿐이라고 말한 것은 옳았다. (…) 자기에게 중요한 일이나 사건에 대해 동일한 선전 문구와 자기가 만든 상투어를 단어 하나 틀리지 않게 일관성 있게 반복한 점 때문이다. (…)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106)
즉 아이히만의 말은 공허한 것이었다. 그가 ‘이상’ ‘양심’을 말할 때, 그리고 그가 자신이 받은 명령만을 이야기 할 때, 더 이상 타인과의 소통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자신만의 언어 사용법에 함몰 된 것이었다. 그는 “관청용어만이 나의 언어입니다”(105)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상투어가 아니고서는 말할 능력이 없는 인간이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가 8,000만 사람의 총통에 올랐다는, 즉 히틀러의 그 성공만으로도 자신은 히틀러에게 복종할 충분한 증거’(198)라고 했다. 지위가 곧 정당성의 근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성공 제일주의의 모습이다. 그래서 아이히만 역시 그러한 성공을 열렬히 희구했다. 그런데 자신 인생의 성공은 자신의 계급인 ‘중령의 지위’까지만 성공했다는 것이, 그는 스스로 안타까웠던 것 같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지 않았다. (…) 이 문제를 흔히 있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391)
공허한 언어들, 상투어! 현실감이 전혀 부재하는 공허한 언어들. 요즘 어디에서나 많이 듣는 소리 아닌가? “서민들이 행복한 사회를 위하여” “엄격한 법 적용” “중도 실용” 처음엔 이 말의 실체가 헷갈리기도 했으나, 이제는 너무나 명백하게 안다. 이는 ‘방언’이었다! 성령에 감읍한 기독교인이, 엑스타시 상태에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쏟아붓는, 방언! “상투어로 자신을 위로하는 이 끔찍한 재능”(113)
아이히만은 자신의 이송 작업을 도와주던 그래서 예전에 잘 알던 ‘스토르퍼’라는 유대인 대표가 아유슈비츠로 이송되자 그를 찾아간다. 아이히만은 책임자에게 부탁해 그를 힘든 작업조에서 빗자루로 자갈 포장 도로를 쓰는 손쉬운 작업조로 옮겨 준 것에서(109), 자신은 큰 내적 기쁨을 느꼈으며 이것이 자신의 인간애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인간적인 만남’이 있은 6주일 후 스토르퍼는 총살로 처형되었다. 그에게 인간적이란 이런 것이었다. 또 아이히만 자신이 사형 당하는 처형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349) 라며, 죽음을 앞두고서도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만을 말하고 있다. 마치 그가 다른 사람의 장례식에 참가한 것처럼.
"상투어나 관용어 등은 늘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특징을 갖는다. 현실-말-사유의 관계가 유기적이지 못하고, 언어가 고정되어 버림으로써 사유와 판단이 현실과 유리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22)
또 나치스는 학살이나 수용 같은 “문제를 다루는 모든 문서들은 엄격한 ‘언어규칙’을 따랐다.”(149) 학살이라는 말 대신 최종 해결책, 특별취급, 재정착 등의 언어를 사용 했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업무를 스스로에게 거부감 없이 수행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나치 수뇌부는 언어의 현실감을 제거해야 할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 학살은 많은 독일 국민들과 유대인의 협조하에 이루어지는데, 이 부분에서 예루살렘 법정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은 무척 불편해 한다.
“친위대나 당 뿐만 아니라, 착하고 연륜 있는 엘리트 공무원들이 이 피투성이 문제에서 주도권을 갖는 명예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것을 자신(아이히만)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었다.”(183)
즉 유대인 절멸 계획은 나치나 히틀러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다. 1942년 소위 ‘반제회의’의 유대인 절멸에 대한 토론에서, 많은 참여자들이 동의와 환영을 한다. 유대인 절멸을 위해 나치 당원뿐 아니라, 외무성, 법률 전문가, 재무부와 국가은행, 교통부 등 모든 기관과 공무원들의 적극 동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더구나 유대인 장로회까지 협조하게 된다. 그 후 이주와 학살은 점점 더 쉬워지고 곧 일상이 되어 버린다. 아이히만이 아는 한,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고 협력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이히만은 자신은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낀다고 하며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183)라고 한다. 예수의 처형을 예수의 동족인 유대인의 손에 맡겨 버리고, 자신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빌라도처럼!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유럽 각국의 차이였다. 전후 보고에 따르면, 나치스는 각국 현장의 여론과 동태가 저항적일 것에 대해 많은 염려가 있었고, 그 지역의 동조 여부에 따라 학살 작업이 이루어졌다. 즉, 그렇게 무자비한 정권도 현장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던 것이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무관심과 동조 혹은 자발적 참여 혹은 적극 참여 등으로 학살에 관여하게 된다. 그런데 덴마크는 유대인 학살에 대해 관료들의 저항, 노동자들의 파업과 폭동 등으로 저항했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또 불가리아에서도 주민들이 유대인 학살에 반대해 기차역을 막고 시위를 하는 등으로 학살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 지역 독일 관료들은 자심감을 잃었으며, 사실상 나치스가 현지의 협조 없이는 그 모든 유대인을 학살하기란 불가능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단 두 지역에서만 말이다.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그 교훈이란 공포의 조건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라가지만, 어떤 사람은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최종해결책이 제안된 나라들의 교훈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그 일이 어디에서나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325)
그래서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 진실을 이야기해야한다고, 그래서 ‘망각의 구멍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또 전후에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자신들은 나치 정권에 대해 항상 ‘내면적으로 반대’했다며 자신들의 협조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대란,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며, 오히려 학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변명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독일계 개신교 목사인 ‘그뤼버’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뤼버는 히틀러에 원칙적으로 반대한 용감한 사람이었는데, 법정에서 그의 진술과 아렌트의 지적은 다음과 같다.
“ “(그뤼버) 당신은 그(아이히만)에게 영향력을 주려고 애써보았습니까? 목사로서 당신은 그의 감정에 호소하고, 그에게 설교하고, 그에게 그의 행위가 도덕성에 모순된다고 말하려고 시도해 보았습니까?” 물론 아주 용감한 이 감독은 그런 종류의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의 대답은 아주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행동이 말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또 말해보았자 슬데 없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여기서 단순한 말 자체가 행동이었을 수가 있고, 또 아마도 ‘말이 쓸데가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해 보는 것이 목사의 의무였을 것이다.” (204)
‘말이 쓸데가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보는것!’, 참으로 타당한 지적이다. 아이히만은 재판과정에서, 이제까지 자신의 일에 대해 비판하거나 그 일의 부당성을 말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물론 그에게 학살의 잔인함을 말했다하더라도 그는 그 일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주변에 있는 가능한 누군가가 그에게 그 말을 했어야 했고, 던져진 말들이 그에게 어떤 씨앗이 될는지, 그 여지는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유대인 절멸 사업에 유대인 사무실 조직이 동원되고 각 지역의 유대인 지도자들의 상당한 협조가 이루어졌다. 그들 유대인 권력자들은 동족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그나마 구출된 소수의 유대인들이 고위층과 저명인사였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의 씁쓸함이 더해진다. 아렌트가 보기에 사실상 구출자보다 희생자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았기에, 그들 유대인 위원회의 협조가 정당화되기 힘들다고 한다. 구체적 예로, 유대인 위원회의 협조로 수용소행을 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살되었지만, 나치스나 유대인 위원회를 탈출한 사람들의 생존율은 40~45%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아렌트는 유대인 지식인을 비롯한 전반적인 도덕의 붕괴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어두운 진실을 아렌트가 직접 이 책에서 제기했기에, 이스라엘은 이 책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기소된 범죄들에 대해 ‘살인을 교사’(즉 가스실로 이송한 책임)한 부분에서만 유죄일 뿐이며, 공공연한 학살을 자행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사실, 검찰은 이 점에서 아이히만의 유죄를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답한다. “살상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342)
이에 대해 아렌트는 독일 도시에 대한 무차별 폭격과 히로시마에 원자탄으로 수십만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연합군이 헤이그 협장을 위반한 것이며, 이는 누가 책임져야하는가라는 똑같은 질문을 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재판이 승자의 법정이라는 비판이 계속 나오는 이유이다.
이 책이 말하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간단치 않은 논쟁거리를 제시한다. 내게는 이 개념의 정당성을 깊이 따질 능력이 없다. 단지 성찰하지 않는 행동이, 어떻게 역사적 사회적 정의를 배반하느냐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해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중요한 책이다.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392)
아이히만 문제는 ‘무사유와 악의 이상한 상호 연관성’을 보여주는 한 예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 판단 기능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책의 후기에서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간주해야 하는 것과 완전히 어긋나는 것일 때조차도, 사람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옳고 그름을 여전히 구별할 수 있었던 그 소수의 사람들은 실로 그들 자신의 판단들을 따라서만 나아갔”(400)으며, 그들이 곧 양심과 도덕과 정의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참으로 어렵고도 근본적인 통찰을 매 순간 요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61년 12월 아이히만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62년 5월 29일 항소심에서도 1심 판결이 그대로 수용되어 사형이 확정되었다. 이스라엘 대통령은 아이히만 가족의 사면 청원을 거부하고, 31일에는 전세계 저명한 유대인 지도자들이 부탁하는 관대한 조치를 거절하고, 바로 2시간 뒤 아이히만을 교수형에 처한다. 물론 예루살렘 법정의 정당성에 대해 비판이 있었음에도, 이스라엘은 그를 서둘러 처형한 것이다.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당시의 일반적 비판은 다음과 같다.(352)
① 아이히만은 소급법에 의해 재판을 받았으며, 승자의 법정에 섰다는 점 ② 납치행위를 고려하지 않는 예루살렘 법정이 이 재판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점 ③ 그래서 이 범죄를 재판하는 데 유일하게 적절한 곳은 국제 재판소라는 점이 지속적으로 제기 되었었다.
아렌트 역시 집요하게 이 문제들을 다루며, 그녀 나름으로, 이 재판의 근본 문제를 3가지로 지적하고 있다.(376) ① 승자의 법정으로 훼손된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고 (즉 예루살렘 재판의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함) ② 인류에 대한 범죄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하고 (인류에 대한 범죄를 어떻게 정의하며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 국가 기구에 의한 행정적인 대학살을 다루는데, 현재의 사법개념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이번 재판이 보여 주었다고 함) ③ 이러한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새로운 범죄자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할 것을 제기하고 있다.(즉 나치스뿐 아니라, 연합군 등의 전쟁 범죄 행위들, 혹은 각종 제노사이드 문제도 함께 인식할 것을 제기)
책을 읽고 난 뒤, 이 책을 관통하는 시선은 크게 3가지로 떠오른다. 아이히만의 죄를 극대화시키려는 이스라엘의 관점, 자신의 죄가 과장되었다며 인정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려는 아이히만의 관점, 그리고 이 사태를 냉정하게 관찰하는 아렌트의 관점이 있다. 이 세 관점이 서로 얽히면서, 전 유럽이 함께 한 600만 유대인 학살의 입체적 조망이 날과 씨로 드러난다. 특히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과와 더불어 이 재판의 불공정성도 함께 지적하며, 결국 ‘정의, 도덕, 죄’에 대해, 결코 만만치 않은 철학적 질문을 던져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지 아이히만에 대한 개인적 기록만이 아니라, 유대인 학살 문제와 인간 일반에 대한 성찰의 보고서라 할만 하다.
이 책을 읽은 후 크게 4가지 측면에서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첫째,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의 의미와, 그에 따르는 죄, 책임, 정의, 윤리의 문제이다.
둘째, 언어의 문제이다. 현실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투적 언어가 어떻게 악의 평범성으로 연결되는지를, 아렌트는 집요하게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셋째, 600만 유대인 학살에, 동족인 유대인의 협조와 책임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유대인 학살에 나치는 물론 독일 국민의 적극적 동조가 있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렌트 자신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지도자들의 책임을 냉정하게 서술하고 있다.
넷째, 예루살렘의 재판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전승국들이 행한 전범 처리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문제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의 엄청난 비난이 있었고, 그리고 2000년까지 아렌트의 저작들이 단 한 권도 히브리어로 번역되지도 예루살렘에서 출판되지도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셋째, 넷째 사항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즉, 저명한 정치사상가인 아렌트가 이스라엘의 관점을 거부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내게 개인적으로 할 말이 많은 책이다. 또 그래서 이 책이 가진 몇몇 결함에도 불구하고, ‘아이히만 문제’로 다가오는 정의, 도덕, 책임, 죄,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범한 일에 묻어오는 악의 문제’ 등에서 언제나 새로운 질문과 답을 요구하는 책이다.
덧붙여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이 책에서 제기하는 도덕, 정의, 죄, 악의 문제는, 그대로 지금의 이스라엘에게 다시 던질 수 밖에 없는 물음이라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산업으로 명명되는 추악한 모습들, 또 홀로코스트가 인류의 엄청난 재앙임이 틀림없지만 어느 듯 전세계인에게 도덕적 수치심을 이데올로기화한 점, 그리고 미국의 1,000만 이상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스탈린의 1,000만 학살과 700만 우크라이나의 대기근의 책임, 세계 대전에서 수백만 학살에 대한 처칠의 책임, 이라크 봉쇄에 따른 수백만 이라크민들의 사망, 등등 이루 헤아릴수 없는 인류의 재앙에 대해서는, 어떤 질문이 가능하며, 어떤 교훈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홀로코스트만이 인류에 대한 유일한 범죄도 아니었고, 또 가장 부끄러운 인류의 기억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소소하다 할 수 있지만,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로 글을 맺을까 한다. 2008년 말 팔레스타인을 포위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아이들이 무방비로 죽어갔다. 그 때 도시락과 망원경을 준비한 젊은 이스라엘 남녀들이, 전장 가까운 곳에서 폭격을 지켜보며 부라보를 외치던 사진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그 때 감정의 기억이, 슬프고도 길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