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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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만큼이나, 대단한 소설이다. 이런 소설이 1948년 경에 쓰여졌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소설은 대체로 소련의 스탈린 체제 비판, 즉   전체주의 체제의 비판으로 읽히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해석일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군사독재 시절인 1984년 TV에서, 이 책이 냉전에 기대어 소련 체제를 비판하는 텍스트로 선전되던 것을 기억한다. 오웰은 실제로 소련 전체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일상화된 감시 체계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모든 전체주의 비판은 이 소설의 명확한 주제이다. 이런 이유로 이 소설은 냉전시절, 자본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들을 비판하는 텍스트로 이용되었다. 그런데 사회주의자인 오웰이 스탈린 체제를 비판했다는 것이 곧 사회주의 자체의 부정이나 자본주의 옹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데도, 오웰을 사회주의 비판 작가로만 유통된 기간이 있었다. 오웰은 사회주의의 탈을 쓴 전체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인간을 통제하고 소외시키는 그 어떤 것, 자본주의 체제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진정한 인간의 사회’를 향한 열망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21C인 지금에 더욱 절실하게 읽히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일망 감시체제가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빅 브라더로 일컬어지는 감시체계가 현 정보화시대인 ‘판옵티콘’의 시스템을 정확히 비유했다. 현금카드, 폐쇄회로, 도로의 각종 촬영, 휴대폰 위치, 등등 우리의 일상을 확인할 수 있는 전자 감시 시스템의 현실은, 인간의 비주체화를 말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대체로 이런 전자 감시 체계로서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읽힌다. 

 나는 줄곧 이 소설이 지배권력의 헤게모니, 즉 ‘지배 권력 시스템에 대한 복종과 감시’로 읽혔다. 이 소설을 이미 지나간 소련의 전체주의 사회 비판으로만 읽으면, 지금 우리와는 무관한, 그래서 거리를 두고 단지 ‘감상’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긴장감이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소설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 그 자체로 느껴져서, 섬짓할 정도로 생생하고 또 불편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며, 소설 속의 지배당이 모든 사실과 기억을 조작하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왜곡과 조작은, 소설 그대로인 것이다. 지금- 이곳의 언론과 교육을 통제하는 지배권력들의 감시가 온 국민을 상시적으로 옮아 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설 내의 인물들에게, 직업은 그 자체로 ‘의미없는 작업’으로 여겨지고, 이러나 저러나 삶의 본질성과 연결되지 않는, 오직 기계적 움직임만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율성이나 주체성은 전혀 없으며, 오직 ‘소외’를 견디는 비루한 삶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파편화된 인간 군상과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윈스턴은 체제 비판을 일삼고, 체제의 균열을 갈망한다.  

 “그는 비로소 노동자들을 경멸하지 않게 되었다. 경멸하기는커녕 그들이야말로 어느 날인가 생명을 되찾아서 세계를 재건할 수 있는 잠재된 힘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노동자야말로 인간이다.”(234)

“사실 하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은 것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십억의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증오와 거짓의 벽으로 유리되어 있지만, 그리고 이들은 생각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지만 저마다 가슴과 배와 근육에 언젠가 이 세계를 뒤집어엎을 힘을 기르고 있다. 만약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에게 있다!” (306) 로 체제의 저항자인 골드스타인의 메시지를 요약하고 있다.  

 윈스턴은 지배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골드스타인으로 명명되는 반역 세력의 ‘그 책’은 명백히 계급투쟁을 말하는 것이다. 비록 윈스턴은 함정에 빠져, 온갖 고문으로 자신의 비참과 굴종을 드러내지만, 이 소설은 그것으로 이미 독자들에게 계급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만약 이 책을 편안하게 읽었다면, 그 독자는 우리 사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과 다름 아니다. 이 소설이 말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는 바로, 지금 이 곳인 것이며,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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