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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벌써 1년이 됐다. 이섬님이 북클럽 책으로 '설국'을 추천했다. 눈이 내리는 계절에 한 번 읽을만한 소설이라고 했다.
요즘 계속 눈이 보인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이 책을 선정했다.
스무 페이지 정도 읽었을까?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면 이 책이 가진 공허함을 견딜 재간이 없었다. 올레 티브이를 뒤졌다. 설국이란 영화를 발견했다. 언제 만든 작품인가? 1977년? 주인공 직업이 무용평론가에서 민속학 전문가로 바뀌었을 뿐, 모든 내용이 똑같았다.
영화를 보면서 책을 읽었다. 지금은 중년을 넘어 '할배'가 된 박근형과 김영애가 가진 청춘이 영화 속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책을 읽으니 대사가 그대로 영화에 담겨 있었다. 일본이 아닌 과거 우리나라 설원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 읽기 지루하지 않았다면 절대 이 영화를 보지 않았겠지. 나름 인연이다. 덕분에 나는 책을 견뎠고, 오래된 이 영화를 견뎌냈다.
작년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칭찬해야 할 점. 일본에 대한 비뚤어진 고정 관념을 어느 정도 벗어났다. 일단 일본에 관련된 문화는 한 단계 낮춰 봤다. 그다지 도덕 군자처럼 살지도 않았건만 소설을 윤리 틀에 맞추어 색안경을 쓰고 봤다. 사실 문학이란 장르는 그저 순수한 동물 같은 날것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분야인데 말이다.
'설국'이란 제목도 그렇지만 이 책 첫 문장은 마법 주문 같다. 내가 읽은 책을 다 합쳐도 이만큼 강렬한 첫 문장을 본 적 없다. 그래서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잘 모르는 내가 일본어로 된 첫 문장을 찾아봤다. 대충 짐작할만 하다. 어떤 점에 매혹되어 1930년대 초록 눈을 가진 심사위원이 황인종이 쓴 이 문학에 상을 줬는지.
國境の長いトンネルを拔けると雪國であった. 夜の底が白くなった.
굳이 잘한 해석, 못한 해석을 갖다 붙이고 싶지 않다. 이 첫문장은 내게 '문학'이란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이정표 같았다. 문학 책을 편 순간 내 머리에 눈과 같은 흰 장막을 덮어 놓는다. 내가 가진 어두운 감정은 저 밑에 넣어 놓은 채 문학이란 새하얀 새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주인공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이 아닌 고단한 몸을 쉬기 위한 새로운 세상에 잠시 머문다.
설국에 손님으로 온 주인공 시마무라. 직접 보지도 않은 서양 무용에 대해 대충 상상해서 쓴 글로 먹고사는 부잣집 도련님이다. 돈 많고 시간 많은 그. 심심함에 못 이겨 기생을 소개해 달라고 여관 주인에게 부탁해 고마코를 소개받는다. 고마코도 시마무라가 싫지 않다. 둘은 사랑싸움을 벌인다. 시간이 가며 고마코는 사실 처음 부부 사이인 줄 알았던 요코가 간호한 아픈 사람, 유키오 약혼자라는 걸 알게 된다. 시마무라가 그 고장에 방문할 때, 고마코가 믿고 의지한 선생님과 그 아들이자 약혼자인 유키오가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으로 신비한 여인 요코가 빨간 기모노를 입고 자살한다.
이 소설에서는 두 여인이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외부에서 온 주인공 시마무라가 관심 갖지 않아도 된다. 외지인이지만 설국이란 곳에 애정을 준다. 이후 시마무라는 어쩔 수 없이 이 두 여인 운명에 영향을 준다.
고마코는 시마무라를 만나기 전에는 악기만 다루는 기생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도쿄에 간 선생님 아들인 유키오와 결혼할 사이라는 걸 공공연하게 알고 있다. 선생님이 중풍에 걸려 고마코가 그분을 모시고 있는 사이, 유키오는 반신불수 모습을 한 채 요코라는 여자까지 데리고 이 설국에 돌아온다.
그 사실도 진짜인지 알 수 없다. 장님인 마사지사에게 우연찮게 듣고, 깊은 사이가 되면서 고마코와 대화가 깊어지며 알게 된 단편 조각뿐이다. 이 소설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아주 조금이다. 요코 동생은 근처 철도 회사에 취업했다. 유키오에게 많은 의지를 했지만 죽자 갑자기 시마무라에게 와서 자신을 식모로 도쿄에 데려다 달라고 요구한다.
요코는 그런 여인이다. 자신 감정에 충실하고 그걸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 다만 정조를 중시하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고고한 성격을 갖고 있다. 결국 그 고결한 성품은 요코 같은 순백색으로 덮인 눈 위에 빨간 핏물이 되어 생을 마친다.
고마코는 결국 시마무라에게 순결을 주며 진정한 몸을 파는 '기생'이 된다. 마을 사람은 이를 약혼자인 유키오를 치료하기 위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고 이해한다. 결국 그 소문으로 유키오는 죽기 직전 '미안하다'라는 말을 남기며 최후를 맞이한다.
고마코는 현실적인 여인이다. 마을에서는 나름 이유가 있는 삶을 산 여인이다. 소설만을 보면 시마무라와 고마코는 진정 둘이 애정을 나누며 즐기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고마코는 시마무라를 붙잡지 않는다.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저 일 년에 한 번 자신을 보러 오라는 말로 자신이 가진 간절한 애정을 표현한다.
이 둘이 가진 모습은 기차 안 주인공 착각으로 다시 그린다. 부부인 줄 알았지만 잠깐 만나 얘기를 나눴던 사이인 두 남녀. 과연 주인공 시마무라 눈에 비친 고마코와 요코 또한 보이는 그대로인 여인이 맞을까?
주인공과 고마코가 한 사랑싸움은 과연 진심일까? 요코와 유키오 관계는 도대체 어떤 관계였던 건가? 고마코는 진정 유키오 간호를 위해 기생이라는 일을 선택했을까?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시마무라는 그냥 그 설국에서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고마코에게는 같이 있는 시간만큼 돈은 지불했다. 요코는 그저 쉬며 오는 곳에 우연히 만난 여인에 지나지 않는다. 시마무라에게 이런 일 속에 들어가 책임을 질 권한도 의무도 없다. 그저 눈이 어두운 세상을 흰색으로 삼키듯, 그렇게 그곳에 있는 일은 시마무라와 아무 관련 없는 일이다.
이 소설은 흰색이 가득한 세상으로 시작해 죽음이 물든 붉은색으로 끝맺는다. 이 소설에 그린 모든 인물은 헛되고 헛되다. 꼭 솔로몬이 쓴 전도서에 쓴 구절 같다. 주인공은 보지도 않은 걸 본 것인 양 쓴다. 고마코는 사랑하지 않은 약혼자를 부양한다. 요코는 가망 없는 환자를 성심성의껏 간호한다. 소설 속 인물 모두 다 정말 쓸 데 없는 짓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말한다. 사람은 어쩌면 쓸 데 없는 일을 하다 세상을 끝내는.. 그런 허무한 존재들이다.
이 소설을 읽으니 생각나는 시구절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