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래적 작가를 만나다.

사실 나는 이제껏 소설을 안 읽었다. 난 거짓말하는 게 싫다. 솔직한 게 좋았다. 과연 그럴까?  안다. 사실을 쓰지, 거짓말은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나는 이상한 결벽증이 있었다. 김영하 작가님이 문학이 주는 카타르시스나 거짓이 주는 정신적 치료 효과에 대해서도 비관했다. 북클럽을 통해 소설을 읽었다. 처음에는 참 힘들었다. 특히 내가 실제로 겪으면 끔찍했을 일을 대면하는 게 제일 고통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고통받는다니, 어이없어하며 읽었다. 그리고 난 결심했다. 언젠가 멋진 사기꾼이 되기로. 아주 제대로 거짓말을 해 보기로 말이다.
 어떤 작가는 더 이상 끔찍함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이상 끔찍함을 창조한다.(코맥 맥카시) 누군가는 매우 비참한 상황을 그리는데 이상하게 내가 웃고 있다. 사람을 변태로 만든다.(위화, 필립 로스) 어떤 사람은 평범한 일상을 그릴 뿐인데 그 공명이 큰 글을 쓰기도 한다.(줌팔 라히리, 존 윌리엄스)
 이 작가는 다르다. 매우 숙련된 아나운서 같은 느낌이다. 내용은 끔찍하다. 이상하게 그 끔찍함이 현실적으로 적혀있지만 불쾌함이 밀려오지 않는다. 분명 내가 그 사건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은 든다. 그러나 작가가 보호해 주는 안전한 막에 싸여 모든 상황을 응시하는 느낌이다. 아주 잔혹한 사건을 뉴스로 생생하게 보는 듯한 느낌. 나는 이 작가에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책 안에 작가가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작가는 선생님이었다. 이 책은 과연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아주 모호하다. 한마디로 독자들에게 제대로 사기 친 책이다.


줄거리

 엄마 로레타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후에 알게 된다. 그녀에게 세 자녀가 있었다. 줄스란 아들과 머린과 베티라는 딸. 줄스는 잘 생긴 아들, 그리고 머린은 그 상황에서도 책을 좋아했던 딸. 베티는 흑인들과도 잘 어울리는 민족 평화주의자(?)다. 1930년에서 1960년 중반 공장이 밀집해있는 하층 노동자 계급이 사는 디트로이트가 배경이다. 이들은 빈곤 때문인지 교육 때문인지 환경 때문인 건지 비극이 계속된다. 마지막은 흑인 폭동 사건으로 끝난다.

로레타
                

내가 상상한 로레타

단단한 여자. 시련이 있어도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오빠가 같이 자고 있던 남자친구를 죽였다. 그 후 조사 나온 경찰이 그녀를 겁탈했다. 임신으로 결혼한다. 후에 남편은 경찰에서 비리로 잘리고 공사장에서 죽는다. 재혼했지만 남편이 딸 머린을 죽도록 때려 이혼한다. 쥴스, 머린, 베티를 키웠다. 결국 남자는 경제력이라고 생각하며 나름 열심히 산다.

그래, 내가 잘해줬다니까. 항상 걔를 많이 사랑해주고, 관심을 줬어. 우리 엄마랑은 달리. 우리 엄마는 애를 키우는 게 어떤 건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었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애를 낳아 기를 수 있었던 게 놀라울 따음이야!(438)
줄스
                

이렇게 생겼다면 부잣집 딸이 너랑 도망갈만해.

로레타 큰 아들. 살해당한 남자친구 아들인지, 경찰 남편 아들인지 확실하지 않다. 나름 가족을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한다. 부잣집 마나님을 모시는 일(호스트)을 하며 돈을 번다. 그러다 연결해 준 부자 사업가 기사 노릇을 하다 네이딘이란 소녀를 만난다. 앞에서 잠깐 이디스라는 여자아이가 나온다.(의도 한 걸까?) 참 스토너에 나오는 이디스와 네이딘 성격이 비슷하다. 네이딘에게 고통받고 폭동으로 고통받는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면 사치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들의 눈에는 기적의 막이 덮인다. 그러니 평생 가난했지만 지금은 사랑이라는 사치에 흠뻑 젖은 줄스도 비현실적인 감각을 떨쳐버리고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544)
네이딘
                

줄스가 정신을 잃고 사랑할만한 여인.팜므 파탈

 줄스는 돈을 위해 부자인 부인들을 모신다. 그러다 인생 모든 것을 걸고 싶은 여자가 생겼다. 네이딘. 그녀와 함께 도망쳐 냄새나는 모텔에서 힘든 삶을 살기도 했다. 아픈 줄스를 두고 네이딘은 결국 도망친다. 변호사와 좋은 집에 살던 네이딘은 다시 줄스를 만나 흔들린다.

여자는 꿈같아. 여자의 일생은 기다림의 꿈이지.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면서 꿈속에서 산다는 뜻이야. 굴욕적이지만 여기서 벗어날 길은 없어. 어떤 여자도 도망치지 못해. 여자의 일생은 남자에 대한 기다림이야. 그뿐이야. 이 꿈에는 문이 하나 있는데, 여자는 그 문을 통과해야 돼. 선택의 여지가 없어. 늦든 빠르든 그 문을 열고 통과해서 어떤 남자, 한 명의 남자에게 도달해야 돼.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 결혼 상대는 누구든 상관없지만, 이 길에서 벗어날 수 없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507)

이 부분에서 바로 보인다. 왜 네이딘이 왜 악독한가에 대해서. 사회 규범으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내면에서 거부한다. 시대는 1900년 중반이다. 여자의 삶은 한없이 수동적이었다.

머린
                

삶이 힘겨울 때 책으로 도피하는 여자.

엄마는 머린을 이해 못한다. 여자는 남자만 잘 만나면 된다. 그런데 얘는 왜 도서관에 가는 거야? 결국 삶은 머린에게 몸 파는 법을 가르쳐주고 만다. 엄마처럼. 엄마는 책 읽는 딸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남자를 만나려는 머린을 보고 안심한다. 머린은 영문학(국어) 수업을 듣는다. 내 실제 일을 썼는데 선생님이 낙제 점수를 줬다. 이유는 '개연성 부족'. 한마디로 이야기가 황당무계하다는 거다. 뭐라고? 내 진짜 이야기인데 네가 이해가 안 간다고 이 점수를 줘? 먹물 먹으면 다야? 항의 편지를 오츠(지은이 실명) 선생님에게 보낸다. 머린은 애가 셋이나 있는 유부남 강사를 꼬셔 이혼시키고 결혼에 성공한다.

이 허구가 알려주는 것.

이 책은 40년 전 나온 책이다. 그 당시의 이야기였고 지금은 과거 이야기가 됐다. 과거는 아름답게 포장된다. 아니면 지나치게 과장된다. 이 책을 사실 그대로를 담았다. 그렇기에 오히려 세련 되고 객관적이다. 디트로이트 하급 노동계층을 통해 작가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이 끔찍한 삶. 죽음이 아주 가까이 있고 돈이 가끔은 몸과 사상보다 중요해지기도 하는 삶. 그래서 정말 나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의 영혼은 분노였다. 분노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엇에 대한 분노인가? 대상 없는 분노, 자신에 대한 분노, 인생에 대한 분노, 조립 라인에 대한 분노, 바퀴벌레 물이 새는 변기에 대한 분노. 어떤 것이든 훌륭한 이유가 되었다. 분노. 돈이 없다는 것. 그 돈이 다 어디로 갔어? 돈이 어디서 나와? 분노. 돈. 아버지.(197)

과거 이야기지만 지금 이야기이기도 하다. 점점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 힘든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도 성공하기 어렵다. 이 소설처럼 부당한 방법으로 훔치거나 몸을 팔거나 폭동을 일으켜야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 사람들은 평등하지 않다. 같이 가난해도 백인들은 흑인들을 보며 더 못난 사람들이라며 위안을 얻는다. 사는 방식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살아간다. 부잣집 소녀 네이딘도 다르지 않다. 여자라는 이유로 마음껏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할 수 없다. 마치 '위대한 개츠비'의 황금소리나는 '데이지'같은 인물이다.

넌 날 사랑한다면서 내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 나한테서 뒤로 물러나지. 너는 평생 가난하다는 것, 남들한테 이리저리 차인다는 것을 피난처로 삼고 나 같은 사람들한테 우월감을 느낄 거야. 넌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지 않으려고 해.(541)

삶은 계속 어긋난다. 열심히 살고 올바르게 살고 싶은데 불가능하다. 항상 윤리와 양심을 무시하고 살아야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그들은 결국 조금씩 법을 어기고 윤리를 무시하고 죄책감에 대해 무뎌진다. 그 사실을 책은 그냥 보여주기만 한다. 그래도 궁금했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등장인물들이 좀 더 나아질 것인지. 넌지시 작가는 답을 넣어놨다. 잘생기고 사랑스러운 남자아이 줄스 입을 통해서.

언제나 계속 살아가면 돼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거핀 2016-03-30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줄스에 데인 드한..잘 어울려요. 약간 머리탈색을 조금 하고 눈에서 기를 좀더 빼면 더 어울릴듯. 저도 종종 소설을 읽을 때 영화배우를 대입시켜서 읽는 때가 있는데..네이딘은 클로이 모레츠도 어울리기는 하는데, 그보다는 약간 더 백치미 느낌이 나는 쪽으로 가도 좋을듯. 누가 있을까요...

책한엄마 2016-03-30 17:40   좋아요 0 | URL
지금은 나이가 많아서 안 되지만 젊을 적 밀라 소르비노가 생각났어요.
글쎄-워낙 연기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니퍼 로렌스(?)도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맥거핀님 이번에 읽은 1980년대 시카고 배경으로 한 소설도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6-03-30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영화로 나오나요? 사진을 올려주셔서요.^^
꿀꿀이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책한엄마 2016-03-30 17:42   좋아요 1 | URL
아니요-나온다면 영화보다는 미드(?)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오랜만이에요.서니데이님!!

eL 2016-03-31 2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끔찍한 내용인데도 불쾌함이 밀려오지않고 보호받는 느낌이라니 읽고 싶어지네요. 빨책에서 칭찬이 자자해서 궁금한데도 저도 때론 내용이 힘든 내용이면 너무 이입이 되어서 읽기 힘들어하곤 했거든요. 서평감사해요! ^^

책한엄마 2016-03-31 23:40   좋아요 0 | URL
네-가장 대표적으로 고통이 밀려오는 책은 `호밀밭 파수꾼`이죠.
부잣집 도련님이 방황하는 이야긴데 왜 이리 읽기 힘든지..이 책은 그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찢어지게 가난하고 끔찍한 상황 안에서 희망을 보는 내용입니다.^^

서니데이 2016-04-01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꿀꿀이님 ,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책한엄마 2016-04-01 18:3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6-04-03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꿀꿀이님 , 편안한 일요일 저녁 되세요.^^

책한엄마 2016-04-03 20:54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 벚꽃이 예뻐요.비가 안타깝긴 하지만요.즐거운 하루 마무리 잘 하시고 내일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