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런 말을 하세요? - 마땅히 불편한 말들
미켈라 무르지아 지음, 최정윤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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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불편한 말들 : 아직도 그런 말을 하세요? - 미켈라 무르지아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탈리아나 여기나 여성에 대한 일상에 숨 쉬듯이 존재하는 차별적 언어들이 비슷한 맥락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어쩜 조금 나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던 서구조차 뿌리 깊이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조금은 아니길 하고 바랬었지 말이다.

최근 들은 무례한 이야기 중 하나를 공유하겠다. 월급을 받는 직장인으로서 야근은 업무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쓸데없이 하는 야근은 누구나 사절이지 않은가. 그런 무의미한 야근을 강요하는 어느 날 윗분이 그러시더라 “김과장(가명)은 집에 밥해줘야 하는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일찍 갈려고 해?” 라는 것이었다. 첫째, 무릇 성인이라면 자신의 끼니는 자기가 챙겨먹는 게 당연하건만 누가 누구 끼니를 챙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점과 둘째, 너 혼자 말고 달리 부양할 가족도 없는 게 뭣하러 일찍 가냐는 빈정거림 섞인 어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밥을 해주는 게 여성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에게 비수를 꽂더라. 이 세 가지 이유중에 하나라도 불편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나는 그날 눈치를 보면서 야근을 해야 했다. 끼니는 못챙기더라도 밥을 사먹을 직장을 빼앗길 수는 없었기에 말이다. 이렇듯 이렇게 불편함을 느끼는 말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할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매번 위계를 가지고 내뱉는 말들에 대해서 다 참지는 않고, 아직도 그런 차별적인 말씀을 하시냐고 할 때가 된 것 같다.

책의 첫 챕터는 발언하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내용에 대해 씌여 있다. 참지 않는것 이런 말들에 대해 부당함을 제기하는 것이 첫 번째 스텝일 것이다.

두번째 챕터에서 이름을 앗아가는 숙녀나, 여인, 소녀들, 핑크, 엄마 등의 대명사로 불려지는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지금까지 대처 수상을 철의 여인이나

앙겔라 메르켈의 무띠(엄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까지는 크게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강한 면모 혹은 부드러운 이미지의 정치인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름과 성 그리고 계급으로 부르는게 기본인 세상에서 이또한 생각해볼 내용인 것 같다. 메르켈 총리, 대처 수상 정도면 적합한데 특별히 여성 정치인들에게만 친근한 애칭을 붙여주는 것도 본인이 선택한 것일 때만 유의미하다. 이탈리아에서도 <우주비행사 엄마>라는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해줬을 때는 정말 놀랐다. 우주비행사라는 전문직 중에도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도 그런 말을 하다니 말이다. 사만타는 우주 국제정거장 도킹에 성공했을 때 “우주 비행사 사만타”라는 말로 불리다가, 결혼하고 출산하자 “우주비행사 엄마”라고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내가 많이 목도하는 비슷한 경우로는

피의자가 남자일 때는 별다른 수식어가 없다가, 반대로 여성인 강력범죄의 경우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책에 관해서 말하자면 남자인 작가의 경우에는 작가 김철수 등으로 소개되는 반면, 여성의 경우는 꼭 <여류작가> 등으로 수식하는 것이다. 작가면 작가지 다르게 수식어를 붙인다. 이런 경우에는 여성이 이성적인 결과를 얻으려면 감성적인 동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남성은 어떤 이유 때문에 일하지만, 여성은 오직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므로 이런 말들에도 주의를 요한다. 초반에 내가 들은 말도 <부양할 가족>이라는 목적으로 나의 가치가 훼손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외에도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던가, 그러다 결혼도 못한다던가, 흔히 하는 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나도 알게 모르게 하는 경우가 있는 말들도 있었기에 다시 한번 내뱉는 말에 차별적인 요소가 없는지 점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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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보다 더 인정받는 일잘러의 DNA, 일센스
김범준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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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그리고 친화력 : 능력보다 더 인정받는 일잘러의 DNA 일센스 - 김범준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나도 늘 혼자 일하면 똑부러지는 성격이고, 남들 담배타임이나 수다 떠는 시간에 참여는 안하고 일을 하는 타입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소한 단합을 갖는 시간과 행위들을 <일도 안하는 쯔쯔 사람들...내지는 시간 낭비> 등으로 치부하며 살아왔다. 작가도 단합하는 무리들 사이에서 죠스라고 불릴 정도였다니, 나도 아마 그런 이미지 이지 않을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더라. 아마 작가도 나와 비슷한 타입의 일하는 스타일을 가졌던 사람인 것 같아서 내가 읽고 느낀바와 비슷한 조언을 해준 게 아닌가 싶다. 나처럼 좀 유연하지 못하고 FM적으로 일을 하고, 관계에 조금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읽으면 훨씬 더 참고할 꺼리가 많은 책이었다. 이게 친화력 뿐만 아니더라도 떠다니는 고급 정보에 도달 할 수도 있고, 거기에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을 심어두는 것에도 일조한다고 한다.

그리고, 보고할 때는 두괄식, 그리고 직접보고를 원칙으로 한다. 나 같은 사람들은 일단 이유를 많이 갔다 붙이는데, 늘 보고서에 이유가 많은 것 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한다. 가짓수만 많아지면 안그래도 남의 생각을 읽어야 하는 보고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부담이 되며, 거기에 결론을 얹어 결재하고 나면 그에 대한 책임까지 지게 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혹시라도 부정적인 결론이 날 때면 꼭 해결방안을 붙여서 보고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거기에 더불어 스마트한 보고채널이 많아졌지만, 예를 들어 벗어나고 싶지만 퇴사 시에만 나갈 수 있다는 업무 단톡방에서 긍정적이거나 칭찬은 문자로 보고하고, 어렵거나 해결이 필요한 일은 “목소리”로 전달하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늘 어떤 일이든 단톡 공유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도 칭찬은 문자로 길이길이 남게 하는 전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 먼저 가져야 할 일센스 중에는 <긍정>이 있다. 언제나 부정적인 것 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시키는 일에 임할 수 있다는 자세 (마음은 안그렇더라도 그렇게 보이는 것이 중요) 이다. 예를 들어줬던 야구선수의 돈을 벌러 나왔으면 언제나 임할 자세로 Yes를 이야기 해야한다는 말을 조금 더 품기로 했다. 그래서 최근 이뤄진 부서이동에서도 예스를 했더니 잘 이해해 줘서 다른 부서로 배치시켰노라는 답변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역시 부서를 옮겨서 새로 일하게 되는 것은 처음 입사한 것 처럼 힘들더라. 그렇지만 어느 자리에서도 잘 해낸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좋은 포지션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말센스 부분에 있어서 사람들과의 스몰토크를 잘 이끌어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나에게 필요했다. 적당하게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면서도 내가 부족하거나 모르는 것은 물어보겠다 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서로의 관심영역이 합해지면서 업무에의 윤활유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칭찬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드는 계기가 되므로 적절히 스몰토크에 칭찬을 얹고, 상사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짧은 성과보고와 더불어 공을 잘포장해서 돌리는 말센스도 조금 더 연마해봐야겠다.

책의 많은 내용에서 공감했지만, 일만 잘하는 사람은 3등급이고, 일을 잘하면서, 특출난 성과를 내면서도 직원들에게 선한 영향력까지 선사하는 사람이 윗분들이 보기에 1등급이라는 말에 나는 너무 관계를 등한시 하지 않았나 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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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랩소디, 빈티나지 않고 빈티지하게
이솔잎 지음 / 푸른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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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행복할게 : 마흔랩소디 빈티나지않고 빈티지하게 - 이솔잎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작가는 40세의 아줌마다. 아줌마라고 주눅들것도 제3의 성이라고 괄시받을 것도 없고 빈티나지 않고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도 작가와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람이기에 여가학자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는지가 궁금했다. 빈티나지 않고 빈티나지 않고, 티 내면서 지랄맞게 여가를 즐기는 법을 많이 배웠다. 여가학자의 여가라고 크게 다른 것은 없었지만, 차이는 역시 마인드라는 생각을 했다. 책의 방향성이자 인생의 모토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티내면서 희생하지 않고 도전해보는 의식이 제일 컷던 것 같다.

나도 늘 여가시간을 보드나 인라인을 타면서 지내는 아기들과 청춘들을 보면서 특히 친한 친구와 <우리들은 저런 거(특히 숏보드) 타면 뼈 부러져서 뼈도 잘 안 붙는 나이야> 라고 이야기 했던 게 생각났다. 그렇지만, 나도 늘 타는 사람을 보면서 재미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는 바로 마음에 끌리는 아마도 마법처럼 보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야자수 보드를 만나서 바로 타고 다닌다. 1미터를 가던 30cm를 가던지 어제보다 더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하게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시간이 좀 걸릴 뿐 결국은 익숙해진다고 하니까 말이다. 내재된 내 맘속 어른과 타협해서 전동킥보드도 아니고 그냥 킥보드라도 타볼까 했는데, 주위에서 이것조차 골반 불균형 온다고 만류해서 접었는데, 뭐 어떤가 올 봄에는 킥보드던 숏보드든 타는 내가 될 지도 모르겠다.

두번 째 에피소드도 역시 다른 사람들의 이목과 생각에 나를 끼워맞추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던 어머니와 패들링보트 탄 이야기였다. 저런 사람들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남들 때문에 시작도 못해보고 무기력을 학습해온 건 아닐까 생각했다. 막상 해보니 재미있고 잘 타서 아버지께 내 평생 처음으로 이런 걸 해봤노라고, 절대 못할 줄 알았는데 해보니 재미있었으니 당신도 도전해보라고 하셨단다. 이외에도 두 손을 안쓰고 도너츠 빨리먹기 대회에 나간다던지, 여러 가지 옷으로 코디하는 재미를 찾아낸다던지 인생의 기쁨을 늘리는 일에는 대단히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최근 나도 계획하고 하지 못했던 반전염색인 <이어링염색> 이야기도 좋았다. 얼마나 다양한 파랑색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머리 1/3정도가 파랑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이야기다. 나의 경우 혹시나 회사에서 두발이 이게 뭡니까 지적받을게 두려워서 아직 시도도 못해봤다. 물론 작가는 프리랜서기에 조금 더 규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으나 녹을 먹는 나는 여기까지는 괜찮을지 아직 조금은 자신이 없다. 자유롭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봄옷 정도에서 타협을 일단 해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보기만 해도 좋아지는 물건을 쇼핑 하는 것, (물론 나는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등은 작가와 닮은 구석이 있다. 언제나 잘 웃고 인생을 행복하게 즐기자는 것은 조금 더 마인드를 열어서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2장의 소제목이었던 여기서 행복할게가 마음에 든다. 지금 여기의 행복을 찾아 노력해봐야지. 이번 3월 따뜻한 봄꽃을 찾아 나에게 선물해주고, 그 시간 , 그 향기를 앞으로도 기억할 수 있게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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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가족 - 비혼 싱글맘의 공동육아기
가노 쓰치 지음, 박소영 옮김 / 정은문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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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싱글맘의 공동 육아기 : 침몰가족 - 가노 쓰치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옛 말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예전처럼 이웃 간의 왕래가 있고 어른들의 지혜도 빌리고, 공동 생활을 마을에서 미리 훈련시킨다는 이야기로 쓰이면서 반대로 현재 독박육아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르게도 받아들여지는 이야기가 되겠다. 현대 핵가족을 넘어서 1인 가족이 30%에 육박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개인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 한 비혼모가 경제적 사정과 더불어 사람들과 공유하며 아이를 키워하고 싶어 한다. 아이 아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이가 좋지 않고 경제력도 잃지 않아야 해서 물리적인 육아 시간도 모자란다. 이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가족을 직접 모집하기로 한 이야기가 바로 이 책 <침몰가족>이다. 아들과 모자가정이지만 호기롭게 같이 공동육아 할 사람이 나서줄까? 라는 생각이었는데 소설 같은 게 아니고 작가 자신(스치)이 이렇게 만난 집단(침몰가족) 내에서 공동육아로 길러진 장본인이다. 작가의 외할머니는 젠더이슈에 관한 사회학자셨고, 아마도 그 영향을 받았던 어머니가 확실히 진보적인 가족 형태를 고안하신 것 같다. 진보적이지만, 온 마을에게 필요를 역설했다는 점에서는 옛날방식이라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은 과거와 현재와 그 어디쯤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 만들려고 하지 않는 가족의 바운더리다.

작가는 대학 졸업 작품 다큐멘터리로, 남들과는 다르게 자란 자신의 이야기를 촬영하기 시작했고, 졸작에서 영화제 출품까지 성장하여, 극장에서 상영할 정도의 이슈를 만들어 냈다. 거기에 영화에서는 인터뷰 형식이라 잘 드러내지 못했던 인물간의 전후관계나 아이였던 자신의 감정 등을 진솔하게 그려냈다. 진솔함을 드러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유년시절의 본인의 기억이라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지만. 당연히 두 살 세살 기억을 하는 사람은 없지않은가. 일반 부모가정에서 자란 내가 보기에, 이렇게 특이한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뭔가 특이한 점이 있을꺼야! 라고 생각한 것 자체도 편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침몰가족 내에서 자란 친구를 다시 만난 에피소드에서도 보면, 특별한가 싶기도 하지만(남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놀랄 때)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라는 특이할 것 없는 소회였기 때문이다. 전우라고 표현되는 메구와의 인터뷰에서 이혼가정에서 징검다리 식으로 키워졌고, 공동육아도, 싱글육아도 다 지나온 사람이지만 그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성장에 영향을 줬겠지만 별로 다를 것 없다는 것이었다.

작가도 늘 유치원에 데리러 오는 이모, 삼촌들이 여럿이라 다른 집은 안그렇구나 하는 정도에 그쳤다고 하니 어른들이 생각하는 주 양육자와 부 양육자의 관계형성에서 오는 불편함 정도는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성급한 일반화는 하지 않겠지만..)

작가도 생물학적 아버지인 야마씨와 어릴 적부터 주말 주중을 나누어 교류하고 있고, 이 영화를 위해 다시 공동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책에 언급된 대로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야마씨라고 부르는데, 아마 이 책에서 내가 느낀 제일 쇼킹한 부분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인데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 것. 다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공동육아에 참여했지만, 자신은 가정의 해체를 당한 입장이라 그렇지 않다는 것을 드러냈다. 어머니(호코)와 야마씨의 성격차이로 헤어지게 되었지만 가족은 계속된다.

이외에도 어떤 이유로든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같이 살게 되는 내 생각으로는 독특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큰 이유든 별다른 이유 없이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은 생겨나고 나름대로 유지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코의 철학으로 시작된 이 가족은 20년 전에도, 영화와 책으로, 지금도 이야기 되고 있다. 그리고, 호코는 침몰가족을 떠나 도쿄에서 300 킬로 떨어진 섬(하치조지마)에 정착했는데 스치가 8살 정도 되었을 때부터이다. 거기에서도 새로운 사람과의 인연을 중요시 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하시는 분인 것 같다. 내가 혹시 자녀를 갖게 되면 이런 방식을 고수할 생각은 없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실천할 수도 있구나 하는 실존적인 측면에서 느낀 점이 많았다. 내가 필요한 도움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요청해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다양한 필요에 의해 사람들이 모인다는 점에서 말이다. 침몰가족이라는 이름은 당시 회자되었던 이 공동육아를 통해 일본의 전통가족이 침몰되고 만다는 우려를 비틀었다는 점이 포인트다. 또 다른 형태라고 꼭 이상하게만 볼 필요는 없다.

 

P. 153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언론에 소개된 침몰가족

침몰가족은 당시 새로운 대안의 삶으로 미디어에 소개되었다. NHK ‘쓰치 군 두 살 우리들의 육아일기’(1996년 9월 17일 방송), 후지TV ‘우리 애를 키워보실래요?: 침몰가족이라는 시도’(1998년 5월 17일 방송), 요미우리신문 ‘가족의 형태 NOW: 따뜻한 관계를 찾아 혈연이 아닌 일곱 명의 편안한 공동생활’(1998년 3월 28일 기사) 같은 타이틀을 달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97년 5월 잡지 『현대사상』의 스트릿 컬쳐 특집 기사에서 「돌봄을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침몰가족’ 공동육아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침몰가족을 소개했다. 돌보미들과의 대담 속에서 엄마는 “딱히 무언가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고 어느새 보니 이렇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침몰가족은 종교적·정치적인 신념을 공유하는 운동이나 사상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위한 모임이었다

 

 

P. 14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아이를 키우느라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공동?) 육아 참가자 모집 중

나는 쓰치를 만나고 싶어서 낳았습니다. 집에 틀어박혀 종일 가족만 생각하느라 타인과 아무런 교류도 없이 살다가 아이는 물론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공동육아라는 말에서 공동은 대체 무엇이고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아이와 어른, 여자와 남자 그리고 어머니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등 아이와 지내다 보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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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 룸에서의 마지막 밤 - 리버 피닉스, 그리고 그의 시대 할리우드
개빈 에드워즈 지음, 신윤진 옮김 / 호밀밭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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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피닉스 : 바이퍼 룸에서의 마지막 밤 - 개빈 에드워즈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1970년 태어난 리버피닉스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지금쯤 라떼를 시전하는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나도 리버가 잘생긴 배우였다는 것 정도는 아는 세미 고인물 정도인데, 19년 <조커>나 <허>를 주연한 리버의 친동생인 호아킨 피닉스를 보면서, 그를 보면 자연스레 너무나 꽃미남이었던 리버를 기억하게 된다. 아마 리버가 살아있었다면 디카프리오와 쌍벽을 이뤘을까, 아님 어떤 연기를 하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23살에 요절한 탓에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의 연기를 볼 수 있음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는 리버는 꽃미남의 라이징 스타였는데, 책을 읽으며 히피부모에게서 태어났고, 그 가족에서 이단인 ‘칠드런 오브 갓’이라는 괴랄한 종교(아동 성애에 대한 교리 무엇)에 빠져있었으며, 채식주의자였고, 음악을 사랑했던 리버를 만날 수가 있었다. 종교 때문에 베네수엘라 등 남미에 살면서 길거리에서 구걸에 가까운 기타를 연주했었다고 한다. (동생들도 물론 같이)

원래 성은 바텀이었지만,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며 피닉스라고 성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길거리 캐스팅이라고 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역시 동생들과 길거리에서 버스킹 공연(좋게 포장해서)하는 모습을 본 에이전트의 눈에 띄어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된다. 연기자이지만 진솔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던 배우. 특히, <허공에의 질주> 라는 작품에서는 불안한 가족속에서 음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아들을 연기한다. 원래 악보를 보지 못했지만, 손만 인서트를 따고 얼굴로 이어지는 감정은 따로 연기하는 것이 싫어 피아노를 배우고 직접 연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 경찰에게 쫓겨다녀야 해서 집을 옮겨다니는 가족에의 설정 때문에 리버 본인의 가족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인터뷰도 하긴 했더라. 연기에 실제감을 불어넣는 것, 사실적인 연기가 그의 의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더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지미리어든(지미의 사춘기) 이라는 영화 오디션을 본 이야기와 감독과의 에피소드도 그를 다시 평가하기에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냥 떠오르는 스타라는 이유만으로 오케이를 받았지만 리딩을 해보겠다는 배우, 그리고 하는 대사의 파급력을 이해하고 모방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 기존 대사를 철학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 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미 17살이 된 리버에게는 많은 재력과 명성이 따라오게 되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영화. 나에게는 숱한 90년대 영화 포스터로 각인인 된 <아이다호>라는 작품이다. 키아누 리브스와 같이 연기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이다.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남창(마이크)을 연기했는데, 리버를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꼭 보기를 권하고 싶다. 벌써 개봉한지 30년이 넘은 영화가 되었다는게 조금 슬프다. 영화 속의 리버는 여전히 젊고 그대로다. 사랑을 고백하는 캠프파이어 씬이 제일 명장면인데, 실제 리버의 고향 근처이다. 이 시기 이후, 이전부터 마약을 복용하기는 했지만(불문율처럼) 조금 더 심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93년 10월 31일 조니뎁의 클럽인 바이퍼룸에서 공연예정이었으나 옆구리에 기타와 여자를 끼고 왔지만 (책의 표현대로) 약물 과다 중독으로 사망하게 된다. 급작스럽게 떠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리 곁에서 많은 작품으로 즐거움과 감동을 줬을지 모르는 배우라고 생각된다. 비슷한 이미지의 사람이 나오면 리버를 한번 씩 떠올리게 되는 건 요절한 배우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며 배우 이외에도 그 당시 할리우드나 기타 미국에 대한 무드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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