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
미우라 시온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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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상쾌했다.  바람을 가르고 땅을 밟았다.  '이 순간만은 바람도, 땅도 내 거다.  이렇게 달리고 있는 한 나만이 체감할 수 있는 세계다. '  심장이 뜨거웠다.  손가락 끝까지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겁다.  이런 게 아니다.  아직 한참 멀었다.  몸에 더 변화를 주어라.  고통을 느끼지 않고 초원을 달리는 자늑자늑한 짐승처럼.  암흑을 밝히는 은색 빛 처럼.  -343쪽.

달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심장이 터질듯한 압박감 속에서 어느순간 찾아오는 쾌감같은 충격속에 몸을 내맡기며 바람과 동화된 듯한 절정을 맛보게 되는것,  그것때문에 많은 이들이 달리는 것에 매혹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열정적이고 멋진 달리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단거리이든 장거리이든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내뱉게 만들고야 마는.  그야말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달리기를 소재로 한 두번째 소설을 만났다.  작년에 읽었던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를 읽었을때도 놀라운 감동을 가득 전해주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짜릿한 흥분을 맛보게 해준 이야기인듯 하다.  마치 내가 한 사람의 주자가 되어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절정을 맛보게 된 듯 하다.  소재도 비슷한 '이어 달리기' 인데다가 제목에도 '바람'이 들어있어 더 친숙함이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4명이 배턴을 넘겨주며 달렸던 고교생들의 400미터 계주에서 대학생이 되어 10명의 선수로 늘어나 어깨띠를 넘겨받는 200킬로미터의 대장정을 달리는 하코네 역전경주로 바뀌었지만 그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넘겨준듯 이야기는 가슴뛰는 성장소설을 그려주고 있다.

 

부상으로 육상의 길을 접었지만 선수들을 모아 하코네 역전경주에 출전하고 싶은 꿈을 버리지 않은 기요세는 어느날 편의점에서 도둑질을 하고 달려가는 가케루를 만나게 되어 그 꿈을 비로소 현실로 이루게 된다.  천재적인 러너지만 고교시절 폭행사건을 일으켜 혼자서만 묵묵히 달리고 있는 가케루를 지쿠세이소로 입소시키게 되며 그 첫발을 내디딘다.  기요세와 가케루 말고는 달리기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나머지 8인을 설득해 예선전부터 본선에 이르기까지 함께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과정을 그려놓은 책 속에서 나 자신도 마치 그들과 함께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한명 한명 모든 에너지를 불살라 달리는 20킬로미터씩의 대장정을 이어가며 땀에 젖은 어깨띠를 넘겨주는 그 순간을 위해 그들이 달려온 여정에 그야말로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어느 순간에는 나도 함께 달리는 주자가 되고, 어느 순간에는 그들의 곁에서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는 구경꾼이 되어 즐거움을 한껏 누렸던 독서였던듯 하다.  따스한 봄날, 작은 공원의 트랙이지만 문득 달리고 싶어진다.

 

"하늘이 파랗구나. " 여름이었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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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걷다 - 2009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 Nobless Club 11
김정률 외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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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이라 이름붙은 이 책.  경계문학이 뭘까?  낯선 장르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책을 들어 첫번째 이야기를 읽는 순간 '아하~' 라는 탄성이 나온다.  쉽게 말하면 '무협지'의 느낌이라고 하면 되겠다.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들이 요즘은 경계문학이라 불리우나보다.  여튼, 그래서인지 판타지를 좋아하다보니 이 책 '꿈을 걷다' 는 처음부터 내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여자이지만 무협지도 꽤 많이 읽었었기 때문에 오랫만에 보는 무협 단편들이 왠지 새로운 느낌이다.

 

1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은 참으로 묘하고 색다른 느낌이다.  뭔가 시작하려는듯 하다가 갑자기 끝나는 아쉬움을 전해주는 터라 단편집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도 이번 이야기는 절묘한 매력을 들려준다.  단편이지만 단편같지 않은, 짧지만 긴 이야기같은 느낌을 전해주는 한편한편의 이야기들이 판타지라고 하지만 동화가 아닌 몽환속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듯 하다.  13편의 단편중 단 한편의 이야기만 내게는 따분함을 전해주었을뿐 나머지 이야기는 모두 신비하게 다가온다.  기억해두었다가 누군가에게 들려주어도 재미있을법한, 그런 이야기꺼리라고나 할까.

 

익살스런 웃음을 전해주는 이야기도 있고, 마음아린 사랑 이야기도 있다.  살짜쿵 두려움을 주는 호러도 있고 그야말로 판타지의 세상임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도 있다.  정통 무협지같은 스릴을 안겨주기도 하고,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의 딱딱함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500여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두께의 책이지만 꽤 오랜시간을 내 손에서 벗어나지 않은-지루함이 아니라 꼼꼼히 즐기면서 읽느라 오랜시간을 들이게 만든, 그래서 즐거움을 한껏 안겨준 책인듯 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삼휘도에 관한 열두가지 이야기' 로부터 조금은 난해했던 '느미에르의 새벽' 까지 독특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책 속에서 마치 내가 좋아하는 일본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아보아 더 즐거웠던 듯 하다.  한국 문학은 상상력의 부재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그러한 선입견의 벽을 허물어 주게 만든 이야기속에서 한국 작가들의 점점 더 발전하는 상상력을 맛보고 싶어지는 욕심을 잠시 부려본다.

 

이야기꾼이란 남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들 한다.  하지만 그 반대다.  이야기꾼은 듣는 자다. 

나는 듣는 자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먼저 배웠다.  보이기보다 보기를 좋아하며 타인의 생을 읽는 것 이상으로 큰 도락을 알지 못한다.  -335쪽.  두왕자와 시인 이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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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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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전에 모았던 블로그 콩 저금통중에 '전세계 빈곤아동 학교보내기' 가 있었다.  메일을 보내거나 블로그씨 질문에 답변하는 것으로 하나하나 모은 200개가 좀 넘는 콩을 저금해서 기부하는 것이었는데 책을 읽으며 그때 그 모금함 포스터 속의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는듯 하다.  나는 고작 메일 한통한통으로 모아 만든 몇만원의 돈을 기부한 것 뿐이지만 모텐슨은 직접 몸으로 움직여 수많은 학교를 지어냈다.  그도 물론 처음에는 1센트의 기부금으로 시작했지만 말이다.  작디 작은 1센트의 동전이 산을 움직일 수 있을만큼의 힘을 그에게 안겨준 것이 아닐까.

 


발티 사람과 처음에 함께 차를 마실 때, 자네는 이방인일세.  두 번째로 차를 마실 때는 영예로운 손님이고.  세 번째로 차를 마시면 가족이 되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  -219쪽.

이 책은 누이동생의 죽음으로 그녀의 목걸이를 지구상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산-K2에 걸기 위해 등반을 시작했으나 여러가지 사고로 실패하게 된 그레그 모텐슨이 히말라야 코르페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구조되고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지어주겠노라 약속하게 되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그의 일대기가 담겨있다.  세잔의 차를 함께 마시라고, 서두르지 말고 학교를 짓는 것 못지 않게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그의 삶을 바꾸어버린 하지 알리의 말이 향기로운 찻내음과 함께 내게도 뜨겁게 다가오는듯 하다.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 모금을 하고, 야간병원에서 일하며 유명인사들에게 500여통이 넘는 편지를 보내 기부금을 요청하지만 모두 묵살당하고 다른이라면 좌절하고 포기할 법한 상황에도 끈질기게 노력하여 또 다른 인연이 된 장 회르니로부터 기금과 유산을 받아 그는 히말라야 오지의 마을에 78개나 되는 학교를 지어내고야 말았다.  오지마을의 쉽지 않은 환경과 이슬람 국가, 그리고 탈레반의 위협과 전쟁의 공포속에서도 강한 의지로 그들과의 약속을 하나하나 지켜나가는 모텐슨의 행적을 보며 놀라움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 번져가는 충격을 느낄 수 있었던 듯 하다.

 


"이 코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겠나?  그런데 난 이걸 못 읽네.  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어.  이게 내 평생 가장 큰 슬픔이라네.  우리 마을 아이들이 이런 기분을 맛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난 무슨 일이든 할 거야.  그 아이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교육을 받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어. "  -224쪽.

글도 읽지 못하는 하지 알리의 이야기 속에서 배우지 못한 이의 어리석음 보다는 그 누구보다도 무한한 지혜를 담고 있는 그의 여러 이야기들 속에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끔 만들고야 만다.  모텐슨의 의지와 하지 알리의 열정과 소망이 어우러져 산간 오지에 세워진 수많은 학교들 속에서 하나하나 단어를 배워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지는듯 하다.  실패한 것이 아닌 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했을 뿐이라는 책 속 글귀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에게도 희망의 숨결을 맛보게 한다.   

 


"날세, 장.  난 히말라야의 카라코람에 학교를 지었다네. "  그가 으스댔다.  "자네는 지난 50년간 뭘 했나?"  나는 후에 어떤 말을 친구에게 자랑하듯 자부심을 갖고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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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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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소망을 들어주는 쿠키를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가 있다.   wizardbakery.com.  싫어하는 이를 살짝 흔들어놓아 실수를 연발하게 하는 '악마의 시나몬 쿠키' 부터 마인드 컨트롤을 용이하게 해주는 푸딩, 짝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쿠키, 실연의 상처를 잊고싶을때, 기억 저편에 잊혀졌던 잠재의식을 떠올리고 싶을때, 누군가를 저주하는 부두인형도 판매하고 시간을 되돌릴수 있는 '타임 리와인더' 까지.  내가 필요로 하는 과자는 어떤 것일까.  하나하나 다 매력적인 과자가 아닐까, 사람을 저주하는 인형이나 주문만 빼면 말이다.  가끔 심술이 날때도 있지만 저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고 하니 그 부작용이 더 두려워서라도 사용은 못할듯 싶다.  재료도 요상하고 효과도 요상하지만 하나쯤은 재미로라도 사보고 싶은 소망을 담은 과자, 그것을 만드는 위저드 베이커리는 어떤 곳일까.

 

어린시절의 충격적인 기억때문에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말을 더듬는 주인공.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의 악독한 새엄마는 없다고 하지만 매일저녁 밥도 못얻어먹는, 그렇다고 해도 항의의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소심남인 그는 늘상 이리저리 치이기만 한다.  종국에는 이복여동생을 성추행했다는 억울한 누명까지 뒤집어 쓰고 집에서 도망쳐나와 매일저녁 식사를 때우는-그것도 엄청나게 싫어하는 빵으로 배를 채워야하다니-단골 제과점으로 도망을 치고 '단골' 이라는 명목으로 도움을 받게 되어 위저드 베이커리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현실과 과거의 기억을 넘나들며 아픔을 떠올리는 과정과 그 아픈 기억으로 인해 그의 삶이 달라졌고 성격까지 바뀌어버린 그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또다른 인간들의 씁쓸한 내면을 발견하고 그렇게 삶을 배워나간다.  '이런 것들이 인간들 사이에서의 삶인가' 싶을 만큼 밝지 않은 어두움 속이지만 그는 또 다른 선택을 통해 자신을 가꿔 나간다.  엄청난 고가를 자랑하는 '타임 리와인더' 쿠키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로 갈라지는 두개의 선택중에서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과거속으로 돌아가 단순히 그 상황을 회피하는 쪽일까 아니면 그 상황을 딛고 일어서서 성장하는 쪽일까.

 

... 무엇보다도 사람의 감정은 어째서, 뜨거운 물에 닿은 소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없는 걸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치 통조림만도 못한 주제에.  그러다 문득 소금이란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강제와 분리가 없다면 언제고 언제까지고 그 안에서.  -185쪽.

제 2회 창비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작은 성장소설 한편으로 이미 어른인 내가 훌쩍 더 성장한 듯한 뿌듯함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판타지와 호러를 적절히 조화롭게 섞어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며 펼쳐놓은, 상상력이 담뿍 담겨있는 책 한권으로 나른한 봄 오후를 깨울 수 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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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놀라운 팝업왕
로버트 사부다 팝업제작, 루이스 캐롤 원작, 존 테니엘 그림, 홍승수 옮김 / 넥서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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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동화라는것에 아무도 이의가 없을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보았을법한, 그리고 누구나 좋아할 이야기인 앨리스는 그래서인지 여느 책들에 비해 다양한 출판사에서 많이 출간되었다.  앨리스 매니아도 아닌 내가 갖고 있는 앨리스만 해도 4권이나 되니 말이다.  그럼에도 앨리스는 늘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을 가져다 준다. 

 

이번에 만난 앨리스는 팝업북이다.  팝업북의 대가라고 불리움에 손색이 없는 '로버트 사부다'의 작품인 이 책은 첫장을 펼쳐들자마자 그야말로 환상의 나라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내가 앨리스가 되어 이상한 나라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만큼 책은 신비한 매력을 잔뜩 뽐낸다.  단순한 평면의 책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멋진 책속에서 로버트 사부다의 정교한 솜씨를 만날 수 있다. 

 

그저 단순한 팝업의 수준이 아닌 이렇게 까지나 정교한 솜씨를 책으로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지어내게 만드는 두툼한 책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책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모를만큼 아름답다.  물론 팝업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내용은 다소 축약되어 있어 허전함을 느낄수도 있지만 앨리스를 좋아하는 이라면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이어져 있기에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앨리스의 모든것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커다랗게 책 전면에 펼쳐져 있는 메인팝업과 매 페이지마다 들어있는 서너장의 스몰팝업 속에서 단순한 동화가 아닌 그야말로 꿈을 꾸게 만들어주는 동화속에서 거듭된 감탄으로 책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맘껏 느끼게 해준 앨리스와의 만남이었다.  로버트 사부다의 모든 작품이 만나고 싶어진다.  지름신의 강녕이 다시금 시작되는 것일지 살짝 두려움도 맛보게 해주는 책-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언제쯤 우리 아기도 조심스레 다루며 즐거워할 수 있는 날이 올지 살짝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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