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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모았던 블로그 콩 저금통중에 '전세계 빈곤아동 학교보내기' 가 있었다. 메일을 보내거나 블로그씨 질문에 답변하는 것으로 하나하나 모은 200개가 좀 넘는 콩을 저금해서 기부하는 것이었는데 책을 읽으며 그때 그 모금함 포스터 속의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는듯 하다. 나는 고작 메일 한통한통으로 모아 만든 몇만원의 돈을 기부한 것 뿐이지만 모텐슨은 직접 몸으로 움직여 수많은 학교를 지어냈다. 그도 물론 처음에는 1센트의 기부금으로 시작했지만 말이다. 작디 작은 1센트의 동전이 산을 움직일 수 있을만큼의 힘을 그에게 안겨준 것이 아닐까.
발티 사람과 처음에 함께 차를 마실 때, 자네는 이방인일세. 두 번째로 차를 마실 때는 영예로운 손님이고. 세 번째로 차를 마시면 가족이 되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 -219쪽.
이 책은 누이동생의 죽음으로 그녀의 목걸이를 지구상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산-K2에 걸기 위해 등반을 시작했으나 여러가지 사고로 실패하게 된 그레그 모텐슨이 히말라야 코르페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구조되고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지어주겠노라 약속하게 되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그의 일대기가 담겨있다. 세잔의 차를 함께 마시라고, 서두르지 말고 학교를 짓는 것 못지 않게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그의 삶을 바꾸어버린 하지 알리의 말이 향기로운 찻내음과 함께 내게도 뜨겁게 다가오는듯 하다.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 모금을 하고, 야간병원에서 일하며 유명인사들에게 500여통이 넘는 편지를 보내 기부금을 요청하지만 모두 묵살당하고 다른이라면 좌절하고 포기할 법한 상황에도 끈질기게 노력하여 또 다른 인연이 된 장 회르니로부터 기금과 유산을 받아 그는 히말라야 오지의 마을에 78개나 되는 학교를 지어내고야 말았다. 오지마을의 쉽지 않은 환경과 이슬람 국가, 그리고 탈레반의 위협과 전쟁의 공포속에서도 강한 의지로 그들과의 약속을 하나하나 지켜나가는 모텐슨의 행적을 보며 놀라움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 번져가는 충격을 느낄 수 있었던 듯 하다.
"이 코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겠나? 그런데 난 이걸 못 읽네. 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어. 이게 내 평생 가장 큰 슬픔이라네. 우리 마을 아이들이 이런 기분을 맛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난 무슨 일이든 할 거야. 그 아이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교육을 받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어. " -224쪽.
글도 읽지 못하는 하지 알리의 이야기 속에서 배우지 못한 이의 어리석음 보다는 그 누구보다도 무한한 지혜를 담고 있는 그의 여러 이야기들 속에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끔 만들고야 만다. 모텐슨의 의지와 하지 알리의 열정과 소망이 어우러져 산간 오지에 세워진 수많은 학교들 속에서 하나하나 단어를 배워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지는듯 하다. 실패한 것이 아닌 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했을 뿐이라는 책 속 글귀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에게도 희망의 숨결을 맛보게 한다.
"날세, 장. 난 히말라야의 카라코람에 학교를 지었다네. " 그가 으스댔다. "자네는 지난 50년간 뭘 했나?" 나는 후에 어떤 말을 친구에게 자랑하듯 자부심을 갖고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