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말이야, 그냥 재미로,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살면 되는 그런 게 아냐.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짓을 저지르고, 그래서 되는 게 아니라고.  그건 틀렸어.  넌 많은 사람들을 속였지만 결국 그 거짓말은 들통이 나고 말았지.  거짓말은 반드시 들통이 나.  진실이란 건 말이지, 네놈이 아무리 멀리까지 가서 버리고 오더라도 반드시 너한테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  3권-512쪽

참으로 대단한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1500페이지가 넘는, 원고지 6천매 이상이라는 글 속에서 군더더기나 쓸데없는 묘사는 거의 없다.  정말 알짜배기로 꽉 찬듯한 느낌이다.  이것이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미야베미유키의 저력이 아닐까.  5년여간에 걸친 잡지의 연재를 묶어 만들어 졌다는 이 책.  일본인들은 이 연재되는 소설을 읽으며 마치 실제의 연쇄살인범을 함께 쫏는 심정으로 읽지 않았을까.

 

돈때문에 일가족이 강도의 손에 처참하게 몰살되고 홀로 살아남은 소년 신이치에 의해 발견되는 공원 쓰레기통에 담긴 여자의 오른팔과 핸드백.  그것으로 부터 알려진 연쇄살인범의 세상에 대한 도전과 비웃음을, 그리고 그들을 쫏는 경찰과 가족 그리고 주변인들의 심리묘사가 세 권의 책 속에 가득 펼쳐져 있다.  이미 중반에 들어서기 전부터 범인의 윤곽이 밝혀지고 그중 한 사람의 죽음과 살인자의 길에서 친구를 구해내고자 노력하는 한 사람의 죽음으로 사건이 종결되는듯 하지만 남은 진범의 손에 의해 농락당하는 사람들... 살인자와 피해자, 그리고 엉뚱하게 살인자로 지목된 가족들의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져온다.

 

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지 서서히 죽여가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가족을 죽이는 것은 살인자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들 자신의 마음이야.  정말 웃기는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래.  난 그게 싫어.  난 아무리 자신을 책망해도, 조금씩 죽어가도, 가만히 이를 악물고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인간이 아냐.  이제 더이상은 싫어.  -3권 280쪽.

현실속에 남은 살인자 가족들이 겪는 아픔과 힘든 생활을 절실하게 그려놓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 '편지' 를 통해 '피해자' 라는 것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조금은 다르지만 모방범에서도 역시 다양한 '피해자'의 아픔을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 이유없이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황폐해지는 현대사회의 사람들 마음속의 깊은 우물에 비춰지는 그림자가 참으로 두렵기만 하다.  잔혹한 범죄가 이어지고, 별 이유없이 생겨나는 피해자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 주변에 있지 않을까.

 

3권의 소설속에 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 한사람 한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양한 심리묘사를 펼쳐내는 글 속에서 때로는 불안으로, 때로는 흥미로움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분노와 연민으로 바꾸어 놓는 미야베미유키의 글 속에서 내내 감탄이 흘러나오고야 만다.  요즘들어 수많이 출간되는 일본 소설의 홍수 속에서 멋진 대작으로 우뚝 서 있는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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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8-06-2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땡스 투~ 보내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