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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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스완슨, <아낌없이 뺏는 사랑> 리뷰


 Imageⓒ aladin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아자르는 본인의 책 <자기 앞의 생>에서 '사랑에 미쳐본 자들만이 생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말한다. 그렇게만 본다면, 피터 스완슨의  이 책은 '사랑에 미친' 어떤 남자의 우여곡절을 그린, 조금은 '기이한' 로맨스 소설이다. 아니, 책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 로맨스는 쏙 빠지고 스릴러와 추리물만 남아 머리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 예삿일이다. 이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베스트셀러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작가 피터 스완슨의 신작인 <아낌없이 뺏는 사랑>에 대한 요약이다. 제목부터 남다른 이 책은, 첫사랑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호구가 되어버린(?) '조지 포스'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아낌없이 '빼앗긴다.'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도, 신분이 보장되는 아늑한 삶도, 그리고 아름다운 첫사랑의 추억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조금은 안타까운 주인공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뒷장이 궁금해 페이지를 급하게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평범하게 생겨서?" "그보다는 정체를 알 수 없어서."

조지 포스는 잡지사에서 일하는 회계사원이다. 그에게는 같은 잡지사에서 일하던 여자친구도 있다. 이렇게 평범하고 지루하고 그래서 가끔은 남의 일에 참견이라도 해보고 싶을 만큼 조용한 그의 일상에, 난데없이 대학시절의 첫사랑이 돌아온다. 근데 이 첫사랑이 조금 이상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청순하고 가련하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가끔은 생각이 나서 다른 일을 멈추게 만들 만큼 먹먹한, 그런 이미지의 여인이 아니다. 그녀는 오래전 대학시절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고, 그길로 사라졌었다. 감쪽같이. 그런 그녀가 갑자기 눈앞에 돌아오니 주인공으로서는 어리둥절하는 동시에, 그녀를 잡고 싶을 뿐이다. 오랜시간 사라졌던 일을 해명하기에 앞서, 갑자기 곤경에 처한 자신을 도와달라는 그녀(리아나)의 말에 조지는 홀린 듯이 그녀의 일을 돕기 시작한다. 이렇게 비극이 시작된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고, 조지는 애써 그걸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까 구룡에서 리아나는 아이린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조지가 아는 한 리아나는 아이린을 본 적이 없었다.

그날 저녁 리아나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그랬다면 왜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까? 

(...)

모두 계산된 행동이었을까?


- p. 109


우리가 틀에 박힌 것처럼 생각하는 대학 첫사랑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고뭉치에 궁지에 몰리면 사라지기 일쑤인, 묘한 느낌의 여인이 조지의 첫사랑이라는 지점부터 불안감이 스친다. 하지만 조지는 그녀와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그녀의 비이성적인 부탁에도 어쩔 수없이 말려들고 만다. 그렇게 또다시 살인사건에 연루된 리아나와 그녀의 일을 도와주다가 경찰조사를 받게 된 조지의 동행은 책을 읽는 내내 독자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감이 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본인이 믿고 싶은 대로만 믿어버리는 조지의 답답한 태도에 화가 나다가도, 당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사건을 꼬아내기만 하는 리아나의 이중적인 모습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Imageⓒ 푸른숲_가제본_아낌없이 뺏는 사랑


이 책은 두 개의 시간이 병행하여 전개된다. 하나는 거의 십년만에 리아나를 다시 만나 비극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조지의 현재를 비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리아나와 조지가 처음 만나 사귀게 된 대학교 신입생 시절이다. 작가는 이 두 개의 시간을 병치하여 보여주면서, 신원을 속인 채 학교를 다니며 살인사건의 용의자로까지 지목된 리아나와 조지의 파국의 시작점을 보여준다. 사실은 주인공이 알고 있는 로맨틱한 첫사랑의 기억은 거진 대부분이 날조된 것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순수했을 것만 같았던 대학생 시절부터 무언가 잘못 되었던 리아나의 실체를 확인하면, 이 책이 다소 가볍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계속되는 반전에 또 다른 반전이 더 있을까 싶어, 책의 뒷장을 자꾸만 흘끗흘끗 넘겨보게 만든다. 순식간에 이 책을 읽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리아나의 이야기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오드리가 다시 자기 이름을 찾고 싶다고 했을 때 네 기분은 어땠어? 

넌 계속 학교에 다니고 싶었을 텐데."


- P. 238


첫사랑에 대한 발칙하고도 무서운 상상

공부도 외모도, 그 특유의 매력으로도 빠지는 데가 없었던 리아나가 이토록 삶을 파국으로 치닫도록 설계하는 데에는 그녀 삶에 대한 비관이 있다. 가난하고 별볼일 없으며, 빈민촌에 살며 성상납까지 해야만 했던 리아나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어쩌면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그녀가 조지를 끌어들였던 것도, 어린 시절 살인사건을 저지른 것도, 그녀 자신이 원하는 '완전히 다른 삶'에 대한 비정상적인 욕망 때문이었음을 책의 뒷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이의 것을 빼앗아 자기것으로 만들고 나서도, 계속해서 쫓기는 삶을 사는 리아나는 결국 다시금 사라진다. (조지는 그녀가 죽은 게 아니라 사라졌다고 믿는다) 죽음으로 처리되어서라도 다른 삶을 시작하고 싶었던 리아나가 책 속 어딘가에서 다른 모습을 하고 등장하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책을 덮었다.


"넌 마치 사람은 마음만 내키면 언제든 다른 신분으로 살 수 있다는 듯이 말하잖아.

그렇게는 안 돼. 

원래의 내가 싫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우린 여전히 그런 사람인 거야."


"언제든 다른 신분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냐. 

변한 모습이 진짜 나라는 거지. 

영화에서처럼. 

모든 걸 지어냈다 해도 그게 룰루의 실체잖아."


- p. 287.


피터 스완슨의 <아낌없이 뺏는 사랑>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는 것, 그것이 아무리 비이성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일지라도 감정이 뒤섞인 상대가 하는 말을 이성적으로 듣기란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랑에는 단순히 주고 받고, 고마워하고 그리워하며, 이별에 아파하는 잔잔하고 정상적인 루트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아닐까. '아낌없이 빼앗아 상대를 말라죽이는 사랑'도 과연 사랑이라 믿을 수 있을까. '첫사랑'에 대한 조금은 발칙하고 무시무시한 상상. 피터 스완슨의 책 <아낌없이 뺏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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