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가지고 있다 

-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 리뷰 -

Imageⓒ 창비 페이스북


'사회적 공감'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혹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불우한 사연을 텔레비전이나 여타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안타깝다' '돕고 싶다' 혹은 '나라가 이런 일에 가만히 있으면 되냐'라는 말을 하곤 한다. 분명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 마주칠까 말까한 사람들을 두고 왜 우리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가. 그것도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창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일들을 두고 말이다. '공감'이라는 감정은 참으로 특별하고 기이한 것이라, 내가 겪은 일이 아니어도 한 순간의 감정일지라도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리고 사회적 동물로서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 사회에서 이 '공감' 능력이라는 것은 필요조건에 속한다. 다시 말해, 공감 능력이 없으면 인간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말.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나아가 타인의 감정까지 유추해내며 공감할 수 있는 건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편도체'라는 기관 덕분이다. 편도체, 마치 컴퓨터 부품의 이름과도 비슷해 보이는 이것은 인간의 감정을 처리하고 표현하는 기관이다. 정서적인 표현이 강한 사람일수록 편도체에서 강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실제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편도체는 기억을 통한 학습 과정에서 알게 되는 감정의 모든 처리를 담당하기도 하는데, 그 모양이 복숭아씨 또는 아몬드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amygdala)'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아몬드는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즉,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책은 특별히 조금 작은 아몬드를 가지고 태어난 한 소년의 이야기다.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다."

손원평의 장편소설 <아몬드>는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다. 엄밀히 말하면,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데에서 문제가 컸지만 말이다. 유난히 어릴 때부터 흔들림이 없고 잘 웃지 않았던 아이를 두고, 아이의 엄마는 그저 '아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차분한 편이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어려운 말들로 장식된 아이의 병(정확히 말하면 감정 '장애'에 가깝지만)을 두고 의사들은 아이를 그저 호기심을 해소해줄 실험 대상으로만 보았다. 그때부터 시작된 엄마의 철저한 교육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사회에서 조금이나마 평범하게 살 수 있게 하고자 마련된 안전장치였다. 타인의 감정에 동화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공식처럼 감정을 외우는 게 그 방법이였다.  하지만 어느날 사회부적응자의 칼끝에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어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년이 철저하게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기 시작한 첫날이다.


Imageⓒ 창비 페이스북



이 책이 담고 있는 포인트는 총 2가지다. 하나는 감정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있는 주인공이 세상의 부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고, 나머지 하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곤이'와 주인공의 만남이다. 


할머니와 엄마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살인마의 칼에 찔려 죽어가는 순간에도, 소년은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못했다'는 표현이 '않았다'는 표현보다 정확하다.) 할머니의 장례식에 찾아 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떠든다. "쟤는 어떻게 울지도 않니?" "좀 무섭다..." 하지만 피투성이가 된 채 할머니가 죽어가는 순간에 주인공이 목도한 세상은 '껍데기로만 떠드는 공감의 공간'이다. 할머니를 찌른 살인마의 심리에 대해 궁금해하던 소년의 물음은 점점 다른 곳으로 향한다. 관심을 갖는 척하다가도 정작 필요할 때는 손 내밀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면서도 뒤에서는 알지도 모하는 사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 바쁜 사람들. 할머니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저 지켜보고만 있던 사람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무런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싶어."

반면 '곤이'는 이런 소년과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아이다. 어린 시절, 유원지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후 고등학생이 되어 원래 가정의 품으로 돌아온 곤이는 이미 많이 변해 있었다. 강한 척하면서도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으로 매일 밤 괴로워하는 곤이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 '윤재'를 괴롭히다가 제 풀에 지치고 만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매순간 폭력으로 끝을 맺고 마는 아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는 사실은 무엇 하나 어른스러운 데가 없는 아이. 윤재는 곤이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의 온갖 '감정들'을 배우고 조금씩 알아나간다. 그래서 결국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아이가 도리어 사회가 외면한 문제아를 외면하지 못하고 도와주기 위해 달려간다는 이야기. 둘.


손원평의 <아몬드>가 말하는 바는 결국 껍데기만 남아버린 우리 사회의 공감과 유대다. 누군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보듯 홀린 듯이 멈춰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는 '무섭다' '소름끼친다'는 말을,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며 방황하는 아이에게는 '거칠다'며 '문제아'로 낙인 찍은 채 팔짱 끼고 있는 우리 사회에 두 10대 소년이 던지는 물음은 날카롭다. "차라리 말이야, 다들 내가 더 나쁜 짓을 저지르기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모두가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책 속의 한줄>


"심 박사를 찾아간 어느 날이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폭격에 두 다리와 한쪽 귀를 잃은 소년이 울고 있다.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관한 뉴스. 심 박사가 화면을 보고 있다. 얼굴은 무표정하다. 내 인기척을 느낀 그가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자 다정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내 시선은 미소 띤 박사의 얼굴 뒤로 떠오른 소년에게 향해 있었다. 나 같은 천치도 안다. 그 아이가 아파하고 있다는 걸. 

끔찍하고 불행한 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묻지 않았다. 왜 웃고 있느냐고. 

누군가는 저렇게 아파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등지고 어떻게 당신은 웃을 수 있느냐고."


- p. 209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 p. 210


"P.J 놀란의 죽음은 여러 면에서 논란이 되었다. 딸에 대해서만은 결백했지만 그에겐 이미 폭력, 절도, 살인 미수 등의 무거운 전과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시한폭탄이라 불렀다. 무죄 선고를 받았더라도 언젠간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 말이다. 어쨌든 세상이 이미 죽어 버린 남자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동안 P.J 놀란의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 p.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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