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정치의 시대
한홍구 지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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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정치의 시대 :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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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학생들의 작은 시위였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불공정한 성적평가에 대해 규탄하며 일어난 몇몇 학생들의 무리에 불과했다. 처음엔 그저 타인의 기회를 빼앗아 자기 밥그릇을 채우는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려니 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일은 우리 사회에 아주 오래 전부터 뿌리내려 왔던 관습, 어쩌면 악습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번도 저번과 같겠지. 달라지는 것 없이 소리를 내지르는 이들의 목구멍만 아픈, 그러나 결코 변하는 것은 없는 뉴스 몇 줄에 지나지 않겠지. 누구도 오랫동안 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겠지, 라는 생각. 


하지만 어느새 이는 우리 사회의 썩어빠진 단면을 뿌리 뽑는 도화선이 되었고, 이어 박근혜-최순실이 중심이 된 국정농단, 그리고 여기에 개입했던 수많은 우리 사회의 민낯들을 있는 그대로 들어내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국정농단의 윤곽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는 지난한 6개월의 여정동안, 그 긴시간을 지치지 않고 붙잡아 준 힘은 단연코 시민들의 촛불이다. '바람이 불면 꺼지는 게 촛불'이라는 어느 정치인의 비아냥에도, '거짓과 선동 시위'라는 가짜뉴스의 횡포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광장의 수많은 시민들은 지금도 격동하는 우리 한국사회의 역사 한가운데에 서있다. 그 어떤 때보다도 빠르게 흘러간 2016년 연말부터 장미대선을 치른 2017년의 5월이라는 시간동안, 대한민국을 움직인 건 '광장의 민주주의'다. 


"왜 이런 촛불 현상을 하버마스나 지젝한테 물어봐야 합니까? 

그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기득권 부패는 국민들에게 큰 상처로 남았지만, 동시에 이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무관심을 해소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치인을 혐오하고, 정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려 했던 다수의 시민들은 점차 자신만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근 몇 년간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더불어 우리 삶의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수준도 고양되었다. 이전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사회의 사각지대를 바라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함께 나서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기존의 민주주의 정치를 바꾸려는 우리 사회의 자연스러운 발걸음이라 할 수 있다.


"'정치의 시대'라는 강의를 하지만, 여러분 정치권을, 정치인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우리가 현대사에서 여러 번의 기회를 놓쳤지만, 그럼에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우리의 힘입니다. 

저는 우리밖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p. 90, 대한민국호의 무게중심


역사학자 한홍구는 "여의도 민심과 일반 민심이 따로 노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 말하며, '대의 민주주의' 제도가 지니고 있는 한계에 대해 먼저 짚는다. 대의 민주주의 제도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중 효과적인 제도이기는 하나, 현실적인 한계점들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들의 생각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하는 한국 정치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광장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하나의 변곡점이 되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실제 삶과 유리되어 있는 기존 정치에 만족하지 못한 국민들의 행동이 지금과 같은 변화의 시간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현대사에서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단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그들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부분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 정리를 역사학자인 제가 책임지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쉬운 언어로 짚어주는 우리나라 현대정치사

한홍구의 <정치의 시대 :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는 2017년 상반기에 출판사 창비에서 진행했던 ‘정치의 시대―2017 시민혁명을 위한 연속특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책으로 펴낸 결과물이다.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쉬운 언어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솔직히 깊이 있는 강의는 아니지만(현대정치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원하는 독자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한국현대정치사를 어렵게 느끼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입문서다. 흐름을 이해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지속해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 책으로 보인다.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민주주의의 중심에 서 있기 위해 앞으로 우리는 어떤 것들을 해나가야 할까.



"우리는 헌법을 어기고 주권자인 국민을 핍박한 사람들을 현실의 법정에 세우지 못했습니다. 

현실의 감옥에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법정에는 세워야 할 거 아닙니까."


- p.116, 묻고 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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