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가즈오 이시구로, 이 이름은 이제 나의 시기와 동경의 대상이 될 작가의 이미지로 남을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불필요한 문장 하나 없이 완결미를 갖출 수 있을까. 어찌하여 소리치지 않고 조곤조곤 설명하는 투의 문체로 독자를 완전히 몰입하여 숨죽이고 책장을 넘기다 한숨을 토해내게 만들까. 작가가 되기 위해 전생부터 준비하고 태어난 사람같다.

 <남아있는 나날>로 이시구로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삼백 페이지 정도로써 읽기에 부담 없는 길이에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도 힘들지도 않게 잘  읽히는 편이다. 그렇다고 술술 읽힐 정도의 속도감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 이시구로는 글을 쓸 때도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차분히 앉아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자로 잰 듯 작업하는 작가일 것 같다. 글이 언제나 반듯하고 깔끔하다. 군더더기가 없고 비슷한 문장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 작품마다 타작이 없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일 것이다.

 

 <남아있는 나날>은 일인칭 시점의 회고적 고백기이며 일종의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달링턴 가의 집사였던 나, 스티븐스는 달링턴 경이 저택을 팔은 후에 그대로 인수인계되듯 새 미국인 주인인 패러데이의 집사로서의 생활을 앞두고 있다. 새로 주인이 된 패러데이는 고용직원들을 넷으로 줄이고 달링턴 시대와는 다른 소박하고 간소한 저택생활을 할 작정이다. 그러나 넓은 저택에서 갑자기 줄어든 인원으로 최대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새 주인을 모시자니 점점 난점이 드러난다.

 이런 시점에서 오래전 달링턴 시절에 총무직을 수행했던 미스 켄턴에게서 온 편지가 스티븐스에게 어떤 희망을 암시해주는 것 같다. 켄턴은 20년전(1936년) 달링턴 가를 떠나 결혼했으며 그 동안 몇 번인가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최근 보내온 편지에서 그녀는 왠지 결혼생활이 불행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으며 지나간 달링턴 시절 스티븐스와 함께 일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투를 담고 있다. 스티븐스는 어쩌면 그녀의 결혼생활이 파탄이 났을지도 모르며 그러면 그녀가 다시 이 저택으로 돌아와 총무직을 수행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거기에 주인 패러데이는 미국에 5주간 갔다올 테니 그동안 여행을 다녀오라며 포드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스티븐스는 처음으로 집을 떠나 여행을 하기로 마음 먹는데, 그는 켄턴을 찾아가 다시 저택의 총무직을 맡아달라고 청해볼 생각이다.

 이 여행은 오직 집사로서 대저택 안에서 주인을 모시고 저택을 관리하며 수하의 직원들만을 챙기던 그에게 두렵고도 생기있는 일종의 모험이 된다. 여행하면서 그는 날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과 생각들을 기록하는데(나레이션) 이 복합적인 여행기가 바로 이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는 포드를 운전하며 점점 켄턴을 만날 도시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면서 그녀와 이십년 전 함께 일할 때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하는데, 그것은 결국 독자들에게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그러나 문제는 나, 스티븐스는 케턴과의 관계가 사랑이었다는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그녀를 함께 일하는 동지 이상으로 보지 않았으며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 속 자신의 감정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시구로는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스티븐스를 통해 독자들을 점점 안타까움과 답답함으로 몰아간다. 켄턴은 얼마나 여러번 스티븐스에게 자신의 감정을 암시적으로 알렸던가. 묵묵부답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오직 집사로만 처신하는 그에게 그녀는 끝내 이렇게 말하는 수 밖에 없었다.

 "스티븐스 씨, 최소한 오늘밤 제 지인과 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 정도는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녀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의 청혼을 수락하고 그 남자를 따라 달링턴 가를 떠나고 만다. 그녀가 그렇게도 스티븐스가 자신에게 진심을 말할 기회를 주기 위해 어깃장을 놓았어도 그는 그녀를 스르르 보내버린 꼴이었다.

 또 그에겐 켄턴과의 관계만이 아닌 주인나리인 달링턴 경과의 관계가 있었다. 달링턴 경은 순수하고 점잖은, 품위있는 신사였다. 그는 주인을 믿었고 주인이 유럽의 평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달링턴 저택이 수많은 인사들의 모임장소가 될 때마다 자부심과 극도의 조심성과 성실성으로 그 모임이 완전한 목적을 이루기를 소망하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여행하면서 평범한 시민들을 만나본 스티븐스는 너무나 당혹스러운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영국의 시민들은 오래 전 행해진 달링턴 경의 이적행위을 비난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양심에도 제대로 된 처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믿고 그저 충성했던 달링턴 경은 히틀러의 선전선동을 위해 이용되고 거기에 놀아난 반동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는 어떤 수치를 느끼고 자괴감에 곤혹스럽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옛 주인 달링턴 경을 옹호하고 비난할 마음을 갖지 못한다. 자신 또한 집사로서의 생을 최대한 성심껏 수행했을 뿐, 주인의 비난받을 행적은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한다.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성실했고 사적인 존재로서보다 공적인 존재로서의 삶을 살았기에 자신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독자가 보기에 안타깝지만 한심스러운 인간에 속한다. 그에게 진실이 완전히 봉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의 대자인 카디널 경은 어느 밤, 비밀리에 모임이 진행되고 있을 때 그를 불러 진실을 모두 말해주었었다. 카디널 경은 대부인 달링턴 경의 어리석은 모임에 분노하고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 당신 주인 달링턴 경은 지금 히틀러의 수하들에게 이용당하고 속고 있다, 당신은 진실을 알고 싶지 않은가. 그걸 주인에게 말해줘야한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여러 번 카디널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죄송합니다만 도련님, 저는 나리의 훌륭한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씀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스티븐스는 로즈호텔 휴게실에서 켄턴과 재회한다. 그녀는 사실 남편과의 사소한 불화로 집을 떠났던 짧은 시기에 그 편지를 부쳤으며 지금 자신은 집으로 돌아갔으며 결혼한 딸이 곧 아기를 낳을 예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제 자신은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남아있는 나날', 그 날이 이제 스티븐스에게 얼마나 무력하고 광채 없는 시간이 될까. 그래서 내게는 이 제목이 합당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스티븐스에게 남아있는 나날은 이제 스러지는 삶 그 자체일 뿐이라고.....

 스티븐스는 켄턴과 작별하고 홀로 부둣가에 앉아 달링턴 저택에 돌아가면 패러데이 새 주인이 좋아하고 즐기는 농담을 배우고 연습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자신에 대한 성찰도 없고 켄턴에게 마지막 고백조차도 안했으니(못했겠지만) 그의 남은 삶이 어떻게 광휘를 얻을 수 있을까. 이제는 중년에 이른 켄턴의 눈물어린 마지막 얼굴, 작별을 하고 버스에 탄 그녀의 그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스티븐스처럼 살고 있다고 여겨진다. 경험이 부족했던 시절, 사고가 짧고 자신의 삶을 자신이 운용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몰랐던 시절, 사랑을, 진실을 향해 달려가지 않고 뒷걸음질쳐 도망나온 시절들, 앞가림에 어두워 어리석은 행위를 하고도 수치인지 몰랐던 그 시절, 오랜 후에서야 그것을 간신히 깨우치고 회한에 젖는 사람들....

 나의 지난 날 또한 스티븐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고 상대를 떠나보내고 스스로 떠나왔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기 위해 어리석은 만남을 갖고 어리석은 행동들을 했다. 부끄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수치와 자괴와 슬픔이 간혹 떠오른다. 진실 앞에서 도망치고 모험을 하지 않으려고 대충 안일을 택했던 수많은 날들.

 '남아있는 날들'은 남아있는 날이 많지 않음을, 내가 남은 날들을 주도적으로 살아야 함을 성찰해준다.

 

 

***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인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에서 성실하게 일상을 반복함으로써 악을 돕고 악에 이용당하는 범인들의 삶, 그 소름끼치는 관성의 폐해에 대해 말한다. .................스티븐스가 위대한 집사였다면, 아히히만은 좋은 아버지, 자상한 남편, 성실한 직업인이었다.

계급과 편견과 차별에 길들여져 있었던 근대인의 조건은 고려해야겠지만, 결국 인간은 자신의 더듬이로 길을 가고 그 여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작품해설 306쪽, 그대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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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이 작품은 아주 오래 전 보았던 "아일랜드"(영화)나 기타의 SF물과 형식이나 내용에서 굉장히 달랐다. 일반적인 다른 SF물의 영화나 소설이 충격적이고 드라마틱한 전개를 이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아주 천천히 주인공 자신의 예전 심리를 좇기도 하고 돌이켜 바라보기도 한다. 마치 SF물이 아니라 그냥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한 소녀의 성장기쯤으로 읽힐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하는 이상한 단어들이 문득 공포와 슬픔을 띠곤 한다. 그러나 왜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태어났는가,라는 질문은 만들지 않는다. 누구나 '클론'이라는 소재는 알고 있으니까...

 

주인공은 언제적부터인지 모르게,아주 어려서부터 기숙사에서 살며 학교생활이 전부이다. 그곳은 헤일셤(Haklsham). 밖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충족되는 듯 보이는 세계다.

그들은 선생님들의 지도 아래 자신들끼리 작은 사회를 이루고 있다. 캐시와 루스 그리고 토미는 삼각관계를 이룬다. 언제나 루스가 중심이 된 듯하지만 캐시와 토미의 단 둘만의 관계도 있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루스와 토미의 연인관계에 자리를 내주고 어느덧 성인에 이른다.

캐시는 유능한 간병사가 되지만 루스와 토미는 대부분의 클론들처럼 기증자가 된다. 그리고 루스는 두번 째 기증에서 목숨을 잃는다. 죽기전에 루스는 캐시와 토미에게 자신이 그동안 토미를 억지로 자기의 연인이 되게 했지만 사실 토미와 캐시는 서로 아주 오래전부터 연인이 되었어야 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너희 둘은 '마담'을 찾아가 기증하는 시간을 연장시키라고 유언같은 부탁을 남긴다. 캐시는 토미의 간병사가 되고 둘은 루스의 유언을 따라 어릴적 자신들의 그림이나 시를 가져갔던 '마담'을 만나러 떠난다.

둘은 마침내 '마담'인 마리 클로드와 에밀리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규칙은 없으며 그것은 옛날부터 어디선가 만들어진 소문일 뿐이라는, 허탈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서 토미와 캐시는 자신들이 헤일셤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에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나이를 들면서 의문스러웠던 점들을 묻게 되는데, 그것은 클론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겨난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기도 했다. 그들 클론들은 선생님들에게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그 잔혹한 진실을 아주 서서히 알게끔 지도한다. 그래야 클론이 성장할 수 있고 자신을 파괴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루시선생님은(이 루시선생은 아이들에게 진실을 제대로 말해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고 스스로 고통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결국 다른 선생들과 갈등을 일으켰고,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었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에게 다른 미래는 없었던 것이다. 간병사로 살다 기증자가 되든지 기증자로 몇 번의 기증 끝에 죽든지, 다른 선택지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토미는 네 번째 기증을 하고 죽는다. 캐시는 그들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함께 했던 친구들과 그들과의 관계에서 상처입고 또 성장하고 어른이 된 지금, 캐시는 그래도 헤일셤을 그리워한다.

토미가 죽고 두어 주가 지났을 때 캐시는 차를 몰아 노퍼크를 찾아간다. 노퍼크는 루스의 '근원자'를 찾아 떠났던 여행 때, 토미가 캐시에게 캐시가 헤일셤 시절에 잃어버렸던 'never let me go'라는 노래가 담긴, 똑같은 카세트테이프를 함께 발견해낸 마을이었다. 어린시절 그들은 노퍼크라는 곳은 모든 잃어버린 것이 결국 그 곳에 도착해 있으리라는, 일종의 분실물 보관소 같은 곳이라는 상상의 놀이를 하던 곳이었다. 캐시는 그 노퍼크 끝에 이르러 서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이후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이 곳에 모여 있다고, 이 앞에 이렇게 서서 가만히 기다리면 들판을 지나 저 멀리 지평선에서 하나의 얼굴이 조그맣게 떠올라 점점 커져서 이윽고 그것이 토미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리라고, 이윽고 토미가 손을 흔들고, 어쩌면 나를 소리쳐 부를지도 모른다고"

 

이시구로의 문학성은 가히 최대치를 언제나 작품마다 이뤄내고 있다. 놀라운 일이고 놀라운 작가다. 예술은 결국 예술가의 진지하게 내재돼있는 상상과 그 디테일과 품격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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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짐승 (반양장)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인간사에 있어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특히 내겐 더 그런 것 같다. 사람을 사귀는 일, 살림을 잘 하는 일, 가끔 화가 나도 싸우지 않기 위해 참아야 하는 가족간 관계 등...

 그러나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쟁투는 더 힘들다. 왜 이리 힘들고 기운이 부치는가, 하는 일이 딱히 어렵고 힘든 일도 아닌데...  노다지 피로함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화도 나지 않는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생리적인 문제....

 맞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서 종내 그것을 이룰 때도 있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열심히 해도 안되는 것은 정말 안 된다. 아무리 공부해도 안되는 사람, 두뇌가 타인들에 비해 우수하지 못해서이리라. 누군가를 열렬히 사모하지만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없어 절망하는 사람. 상대의 맘을 얻을 수 없는 자신의 어떤 단점을 어찌할 수 없어서이리라.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하지만 여전히 늘 허덕이는 사람, 아무리해도 돈을 벌기에는 정신적인 또는 환경적인 어떤 요인이 있으리라.

 누군가는 '안되면 되게 하라'는 단순하고 폭력적인 언명을 한 적이 있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정말 아닌 일이, 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엔 무수히 많다.

 

 <인간 짐승>은 욕망에 충실하지만 결국은 남자들에 의해 피해자가 되기만 했던 세브린의 비참한 생과, 자신의 잔혹한 욕망에서 도망치고자 했지만 끝내 그 욕망에 굴복해서 범죄를 범한 자크가 주인공인 ,졸라의 "마공루카르 총서" 계획에 따른 17번째 작품이다.

 

  세브린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법원장 그랑모랭의 집에서 자랐다. 법원장은 그녀를 결혼시켜주고 그녀 앞으로 넓은 땅이 달린 저택을 증여한다. 그녀는 열네살이나 많은 루보의 아내가 되었는데 남편인 루보는 그녀를 아끼고 행복해한다. 그녀는 아름답고 연약하며 매력적인 여자이다.

 그러나 세브린은 외롭다. 그녀는 어떤 고통을 견딜 수 없어한다. 어느 날,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 그녀의 하찮은 말실수가 빌미가 되어 남편이 폭력적으로 다그쳤기 때문이었다. 세브린은 자신이 열여섯 살에 그랑모랭에게 겁탈을 당했고 그 이후로 결혼 후에까지도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된 것이다. 이 고백은 루보의 비인격적인 면을 이끌어내고 루보는 법원장을 죽이기 위해 세브린을 동원한다. 결국 루보부부는 열차칸에서 법원장을 죽이고 그 시신을 열차밖으로 밀어떨어뜨린다. 이후로 부부 사이는 이전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이 파탄 나고, 루보는 역사에서 근무할 때를 제외하고는 도박장에 드나들게 된다. 그리고 세브린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의 범죄를 지나치는 열차 유리창으로 순식간이지만 지켜본 자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세브린은 자크를 단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목격자였기 때문에 입막음을 위해서 일부러 그를 유혹한 것이다.

 한편 자크는 세브린도, 그 누구도 모르는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에게는 젊은 시절부터 살인에의 충동이 항시 그림자처럼 내재되어 있었다. 더구나 젊고 아름다운 세브린의 모습에 미리부터 그는 겁을 내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자신의 음울하고 파괴적인 충동이 그녀에게 행사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세브린의 유혹에 빠진 자크는 결국 그녀를 사랑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그 이상증세가 사라졌다는 결론을  얻기에 이른다. 둘은 밀회를 즐기고 세브린의 사랑은 순수성마저 띠게 된다. 그러나 남편인 루보가 계속된 아내의 불륜을 눈치채게 되고, 둘은 루보를 죽여야 한다는 당위에 처한다. 그러나 자크는 루보를 죽이는 일에 주저하게 되고 치명적인 세브린의 나신에 매료되면서 그의 살인충동은 엉뚱하게도 그녀를 향한 칼부림을으로 끝을 맺게 된다.

 그러나 그 살인은 자크에게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가져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소원해온, 바라왔던 살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안에 있는 알 수 없는 짐승, 어쩌면 선사시대 동굴에서 살던 시절부터 인간짐승에게 붙어다녔던 살인욕망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묽게 흘러넘치는 피를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짐승의 생명을 인간짐승 자신이 획득했다는 뿌듯한 욕망은 그에게 양심이라는 한낱 문명에 의해 장치된 것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본능이었던 것이다. 

 

 욕망에 의해 마구 굴러가는 자크와 세브린 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이성에 반하는. 아니 그들에게 이성은 없었다. 욕망과 탐욕을 만족시키고자 오히려 이성을 이용할 정도의 파렴치한 인간짐승들만이 횡행했다.

 어떻게 하면 돈을 차지할 수 있을까, 지나는 열차초소를 지키는 늙은 미자르는 음험하고 혐오스러운 짐승 이하의 행태를 보여준다. 천 프랑의 돈을 찾기 위해 집안 곳곳을 뒤지는 인간짐승, 아내 파자를 서서히 독에 물들여 죽이고 그 주검 앞에서 또 집안과 집밖을 계속 뒤지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 졸라가 서술한다. 영원히 천 프랑을 찾아 뒤질 것이다, 라고.

 파자의 딸 플로르는 너무나 비극적인 희대의 악녀가 된다. 그녀는 자크를 짝사랑하다 자크가 세브린과 정분이 나 금요일 아침 파리행 열차를 타고 밀회를 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단지 그들 연인을 죽이기 위해 자크가 운행하는 열차를 다섯 말이 이끄는 마차와 부딪혀 전복되게 한다. 그러나 자크는 구출되고 객차들 중에서도 뒤칸에 있었던 세브린은 멀쩡하게 살아남는다. 대신 객차 앞칸에 탔던 사람들이 죽고 다치게 되는데, 이것은 사적인 감정 때문에 엄한 죽음들을 불러온 광폭한 사건이었다. 플로르는 살아있는 연인을 보고 절망과 고통으로 기차에 치이는 자살을 택한다. 이토록 광적인 사랑이 있을까. 플로르는 극단의 감상적인 인물일까, 흉악한 범죄자일 뿐일까. 인간짐승의 비루하고 난폭한 애정결핍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외

 필로멘, 그녀는 거의 아무렇게나 욕망대로 사는 전형적인 인간이다. 아무 남자하고나 단지 성욕을 위해서 거리낌 없이 만난다. 화부인 페괴와의 관계를 유지하다 자크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녀의 사랑은 '사랑'이라고 이름하기엔 너무나 추접하고 가볍다. 그녀의 이런 행태가 두 남자를 죽게 만든다.

 페괴는 아내를 두고 필로멘과의 관계를 당연시하면서 알콜중독자로 살아간다. 그의 생 또한 필로멘보다 더한 욕망과 나태와 퇴행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 그의 마지막은 결국 필로멘과 애욕을 나눈 자크와 엉켜 달리는 열차 밖으로  떨어져 온 몸이 찢어지는 죽음으로 귀결된다.

 루보, 그는 세브린의 남편으로서 질투 때문에 그랑모랭 법원장을 죽이고 그 후로 계속되는 퇴행의 길을 걷는다. 결국 그는 그랑모랭의 살인사건과 세브린의 살인사건의 공모자가 되어 종신형을 언도받는다. 

 루보와 죄없는 카뷔슈가 공모자가 되어 종신형을 똑같이 언도받게 된 것은 드니제라는 예심판사의 수사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드니제는 자신의 범죄심리학과 자신의 추리력, 추측을 완전히 과신하는 사람이다. 그는 일말의 의혹도 없이 자신의 깊지 않은 상상력을 실제라고 고집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얕은, 뻔한 사실만을 조합해 사건을 단순하게 조작해내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 이 사회에도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모든 사안을 아주 단순하게 만들고 모든 이들을 자신의 자로 재어 비루한 인간으로 만든다. 어떤 깊이도, 어떤 복잡하고 특별한 것도 알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들이다. 그들의 죄악은 외형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래서 선하고 순수한 인간마저 평범하고 탐욕적인 인간들과 동등하게 취급해 그들의 가슴속의 진실을 묻고 죄인으로 둔갑시킨다는 것이다. 바로 이 사람 때문에 카뷔슈는 범죄자가 된 것이다.

 또, 카미라모트, 그는 법무부 사무처장인데 현 정권을 위해 루보부부가 살인했음을 알면서도 덮어둔다. 그에게는 진실보다, 정의로운 법집행보다 자신이 몸담은 정권의 평화로운 유지를 위해서라면 순전한 인간이 살인의 누명을 쓰건말건 상관않는 인사이다. 

 

 얼마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위직 인물들이 이런 행태를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국민을 개돼지로 지칭하면서 당연시했던가. 지금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진실은 고사하고 거짓뉴스를 밥먹듯 만들어내는 졸렬한 위인들이 얼마나 횡행하는가. 자신의 이익만 된다면 남을 사지로 내몰고도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인간들... 그들은 인간 짐승들이며 짐승이라는 단어조차도 아까운 족속들이다.

 

 인간에게도 분명 단계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분류하자면...  짐승만도 못한 인간, 짐승쯤 되는 인간, 짐승보다 더 정신적인 인간, 인간을 넘어서 해탈 지경의 인간(이런 사람은 없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책 읽는 것도 내겐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안에 흐르는 태생 전부터 내 안에 잠복하고 끝까지 내 육체에 머물러 있는 어떤 기계같은, 어떤 짐승같은, 그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어떤 존재가 나를 자꾸 피곤하게 하고 나를 구속한다. 나에게 진정한 자유란 그래서 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나를 향상시키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그런대로 이성을 가동할 수 있고 미래를 희망할 수 있는 정신은 충분히 내재되어 있다. 에밀졸라의 자연주의적인 이론에 공감하고 또 그의 작품들에 감동하지만 우리의 삶은 지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저 높은 이상세계를 바랄 수 있음을 상기하고 싶다. 

 

 

<인간 짐승>, 서사와 주제가 잘 다듬어진 명작이다. 철도와 열차와 그 안의 인간들, 욕망과 번뇌에 마구 달리기도 하고 장애물에 부딪혀 쓰러지기도 하는 인간들을 상징적으로 잘 형상화했고, 인류에 대한  성찰이 깊고 오롯하다. 물론 그 너머에 충분히 인간적인 인간들이 있음도 알고 있다. 그러나 한 편의 작품에서 그 모든 인류 전체를 그려낼 수 없으니, '인간짐승'에서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의 모습만을 제대로 그려냈다고, 거기에 의미가 있다고 하리라. 에밀 졸라,그의 재능과 그 정신에 매혹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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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뿌리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아, 로맹가리, 정말..... 질린다. <하늘의 뿌리>를  읽으며 몇 번이나 속으로 씹었던 말이다.  623페이지가 너무 두껍다는 뜻만은 절대 아니다. 무난하게 페이지를 넘기며 읽을 수 있었다면 600페이지를 넘겨도 뭐라 하지 않겠다. 어쨋든 나는 꽤 의리있는(누구를 향한, 또 무엇에 대한 의리인지는 따지지 않겠지만) 독자니까. 그런데 이 책은 되새김질을 하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는 문장들이 연속된다. 흥미를 끄는 데도, 궁금증이 이는데도, 쉽게 읽히지 않으면서 사람을 놓지 않는 악마적인 문장들... 누군가 리뷰에서 한 달 간 읽었다고 했는데 수긍한다. 나는 2월 12일부터 3월 7일까지 읽었다. 그 중간에 숨이 막혀 다른 한 권의 책을 읽었고 한권은 아직도 읽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재능을 너무 과시하는 것 같아 일견 부럽고 일견 짜증난다. 뭐 이쯤 로맹가리를 성토하고.....

 

하지만 로맹가리는 매력이 충분하다. '하늘의 뿌리'는 우리가 간직하고 버릴 수 없는 이상이며 끝까지 간직해야 할 책무다. 그런 드높은 이상을 아무데서나 만나기는 어렵다. 그러니 뭐랄까. 일종의 경건한 의무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이 책의 끝을 보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 해서,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고 자위한다. 

 

 

 성과

 

 1. 어려운 책에 대한 두려움 타파

 2. 로맹가리를  이해하겠다(?)

 3. 자연보호가 생태계나 자연환경에 대한 보호를 넘어선 인권이 되는 이유.

 4. 대화체로 소설의 중요한 서사를 가볍지 않게 다 풀어낼 수 있다(도스토예프스키도). 묘사가 간혹 끼어있긴 하지만 381쪽까지 생드니의 회고적 술회가 이어진다.

 5. 내 인내심 테스트, 합격(좋은 점수는 아니지만).

 6. 독립운동을 했던 당시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이해.

 7. 독자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들의 공통점 ㅡ 미나와 모렐, 생드니, 파르그신부, 페르 크비스트, 밥콕 대령, 필즈, 유세프 등: 외로움, 상처, 어떤 이상, 동정과 연민을 아는 정서, 이루어지지 않을 목표를 지닌, 현실의 탐욕에서 거리가 먼, 이상주의자를 지키는, 박애적인, 가장 약한 것들을 지키는, 이 세계의 안락함을 거부하는, 이런 인물이 독자에게 호의를 끌어내고 감정을 이입시킨다. 감동을 자아낸다.

 8. 작가는 안과 밖을, 인간의 내면과 외양과 행태를 묘사해야 한다. 역사와 철학과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작품을 쓸 수 있다.

 9. 주제가 되는 부분을 여러 번 여러 사람의 말로 드러냈는데, 필요이상으로 주제를 설파하는 것은 독자를 짜증나게 한다. 두세 번으로 족하다. 숱한 인물을 창조해냈는데, 다 쓸모 있는 사람들이었으나, 생드니의 회고는 과하게 길고 중복되는 부분도 많았다. 퇴고 때는 불필요한 단락은 아까워 말고 잘라내야 한다는 걸 가르쳐준다.

 

줄거리는 적지 않겠다. 엄청나게 밑줄을 그은 부분도 베껴적지 않겠다. 하늘의 뿌리는, 하늘을 파아랗게 간직하려면, 땅 밑에 뻗어있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함부로 훼손하지 말아야 그 위의 하늘이 맑고 푸를 수 있다는, 역설적이지만 사실은 너무나 적나라한 유기체적 진실만을 말해야겠다.

오늘은 오랜만에, 닷새만인가, '최악'으로 기록되던 먼지들이 가라앉고 초록 바탕에 둥근 스마일의 '보통'이라는 예보가 스마트폰에 떴다. 너무 반갑다. 그래서 더이상의 감상은 접고 강아지와 놀이터에 나가 놀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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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paltree 2019-03-1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우리 팀에서 유일하게 읽으신 것 같네요. 로맹 가리는 이래저래 흥미있는 인물입니다.~~

lea266 2019-03-12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닌것같아요 누군가 두분 정도는 읽으셨을 듯.... 고맙습니당 앞으로도 함께 문학의 주변을 서성거리자구요!^^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이 책을 읽은 건 뜻하지 않은 일에 속한다. 원래 이번 주 독서를 해야 할 책은 '하늘의 뿌리'였는데 그 책은 너무 길거니와 우선 도대체 속도가 나지 않았다. 600페이지를 넘기는 '하늘의 뿌리'는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배경사건을 주로 보여주는데 그 대화는 사건의 정황과 경과 그리고 인물의 심리까지 빼곡히 몇 장씩 진행된다. 로맹가리의 복잡하고 깊은 시각을 따라잡으며 그 대화체의 문장들을....ㅠㅠ.

 그러다 이 책으로 돌아섰다. 그렇지 않아도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기에 '하늘의 뿌리'를 한쪽으로 제쳐두고 이 책을 사왔다. 이 책은 언젠가부터 나를 유혹해왔고 이제야 그 유혹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 책은 350페이지를 조금 넘는다. 글쓰기에 대한 책치고 분량이 많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 읽고나면 글쓰기에 대한 방법서로서 꽤 기초적이고 실용적인 면이 잘 설명되어 있다고 누구나 느낄 것이다. 

 처음부터 124페이지까지는 스티븐 킹의 어린시절부터의 이야기가 자전적인 소설처럼 펼쳐진다. 이 부분을 통해 스티븐 킹은, 작가는 태어나지만 끊임없이 쓰면서 자신을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는 요지를 펼치는 것 같다. 그리고 본격적인 글쓰기 안내는 125페이지부터 시작된다. 내게 꼭 필요한, 알면서도 자꾸 잊게 되는, 중요한 키워드와 설명을 페이지 관계없이 나의 쉬운 말로 요약해 보겠다.

 

 * 어휘 ㅡ 어휘력을 키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는 없다(책을 많이 읽으면 저절로 해결될 일).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라. 제일 먼저 떠오른 낱말이 생생하고 상황에 적합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 낱말을 써야 한다. 낱말에도 무게가 있다. 정성의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다.

 

* 수동태, 부사 ㅡ 한사코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어설픈 동사를 만들지 마라.

 예) "그 총 내려놔." 하면서 지킬은 이를 갈았다.

      "입맞춤을 멈추지 말아요!" 하고 셰이나가 헐떡였다.

    그냥 그는 말했다, 그녀는 말했다라고 쓰는게 낫다.

 

* 문단 ㅡ 은 그 내용 못지않게 생김새도 중요하다. 문단은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문단에는 주제문이 있고 부연 설명이 뒤따른다는 규칙.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소설의 문단 구조는 자유로운 편이다.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도 된다. 나중에 다시 고쳐도 되니까....

 

* 문장 ㅡ 단문이 좋다(장문이 의미를 어렵게 할 때). 허나 때로는 미완성 문장으로 멋진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문법적으로 올바른 문장만 쓰다보면 글이 너무 딱딱해져 유연성을 잃게 된다.

 

* 독서 ㅡ 좋은 책은 문체와 우아한 서술과 짜임새 있는 플롯을 가르쳐주며, 언제나 생생한 등장인물을 창조하고 진실만을 말하라고 가르친다. 텔레비젼은 백해 무익한 물건. 독서할 시간을 빼앗는다. 바보상자를 꺼버리면 작품의 질은 물론 삶의 질까지 향상된다. 독서는 어디서든지 할 수 있다.많이 읽고 많이 써라,는 우리의 지상명령.

 

* 집필 ㅡ 일단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도중에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날마다 꼬박꼬박 쓰지 않으면 마음 속에서 인물들이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목표량을 정해놓으라. 시간을, 단어 수를 정해놔라.

집필실 안에는 전화조차 없어야 좋다.

초고를 쓴 후에는 오랫동안 묵혀둔다.

어느 적당한 날 그 원고가 어느 고물상에서 구입한 골동품처럼 낯설어 보인다면 수정으로 들어간다.(스티븐 킹은 6주후가 자신에게 좋다고).

이 스토리에 일관성이 있는가? 그 일관성을 시처럼 우아하게 만들려면?

반복되는 요소들은? 혹시 그 요소들이 어울려 어떤 주제를 이루고 있지 않는가?

그 의미를 강조하는 몇몇 장면이나 사건들을 덧붙이기.

오락가락하는 부분들을 삭제하기(통일성).

스토리의 진행 속도(따분한 부분들은 지워버리기, 군더더기 잘라내기),

배경 스토리를 만족스럽게 처리했는지 가늠하기.

 

* 무엇을 쓸 것인가 ㅡ 쓰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단, 진실만을 말해야한다.

 

* 플롯 ㅡ 은 중요하지 않다. 소설 창작이란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므로 작가가 할 일은 그 이야기가 성장해갈 장소를 만들어주는 것뿐. 플롯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럴듯한 어떤 상황만 있으면 플롯 따위는 의미를 잃고 만다.

 

* 결말 ㅡ 왜 결말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가? 모든 이야기는 결국 어딘가에서 끝나게 마련인데.

 

* 묘사 ㅡ 묘사가 빈약하면 독자들은 어리둥절하고 근시안이 된다. 

지나치면 온갖 자질구레한 설명과 이미지 속에 파묻히고 만다. 중용을 지키는 겻이 요령.

그리고 어떤 것은 묘사하고 어떤 것은 그냥 내버려둬야 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이것도 독서의 이력이 알려준다). 독자들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느끼게 만들려면 인물의 겉모습보다 장소와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 비유 ㅡ 직유법을 비롯한 여러가지 비유적 표현은 소설의 주된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상투적인 직유나 은유나 이미지 따위를 사용하지 말라. 이러면 작가가 게으르거나 무식해 보일 뿐.

 

* 대화 ㅡ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말해주는 것은 말보다 행동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에게 성격을 드러낼 때가 많다. 주인공의 입을 빌리면 똑같은 내용을 훨씬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평소에 남의 말을 열심히 주의해서 들어라. 억양, 리듬, 사투리, 속어 따위.

 

* 등장 인물들 ㅡ 현실 속에는 나쁜 놈도 없고 절친한 친구도 없고 고결한 마음을 가진 창녀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때로는 악당도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때로는 악당들도 연민을 느
낀다. 그리고 때로는 착한 인물도 옳은 일을 외면하려고 노력한다.

직설적인 표현을 하지 말고 보여줄 것(그날 애니는 마음이 울적해서 자살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는 표현은 실패한 것. 대신 실감나는 묘사를 할 것).

 

* 주제와 상징 ㅡ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그 저변에 깔린 패턴이 찾아지면 그 때 상징이나 주제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러면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시켜 다듬어낸다.

 

* 창작교실이나 세미나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 341쪽ㅡ 초고를 수정했던 그대로를 보여준다. 정말 유용한 페이지다. 

 

 이외, 스티븐 킹은 오전에 시간을 정해서 글을 쓴다. 이천 단어 목표. 후에 낮잠을 자고 일을 보고 저녁에는 책을 읽는다고.

 책의 말미에서 작가는 '인생론'을 썼다. 이 책을 쓰는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했던 일을 자세히 쓰고 있다. 솔직히 마지막엔 대강 훑어내리다 책장을 덮었다. 따라서 그의 인생론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이 그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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