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짐승 (반양장)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인간사에 있어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특히 내겐 더 그런 것 같다. 사람을 사귀는 일, 살림을 잘 하는 일, 가끔 화가 나도 싸우지 않기 위해 참아야 하는 가족간 관계 등...
그러나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쟁투는 더 힘들다. 왜 이리 힘들고 기운이 부치는가, 하는 일이 딱히 어렵고 힘든 일도 아닌데... 노다지 피로함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화도 나지 않는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생리적인 문제....
맞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서 종내 그것을 이룰 때도 있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열심히 해도 안되는 것은 정말 안 된다. 아무리 공부해도 안되는 사람, 두뇌가 타인들에 비해 우수하지 못해서이리라. 누군가를 열렬히 사모하지만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없어 절망하는 사람. 상대의 맘을 얻을 수 없는 자신의 어떤 단점을 어찌할 수 없어서이리라.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하지만 여전히 늘 허덕이는 사람, 아무리해도 돈을 벌기에는 정신적인 또는 환경적인 어떤 요인이 있으리라.
누군가는 '안되면 되게 하라'는 단순하고 폭력적인 언명을 한 적이 있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정말 아닌 일이, 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엔 무수히 많다.
<인간 짐승>은 욕망에 충실하지만 결국은 남자들에 의해 피해자가 되기만 했던 세브린의 비참한 생과, 자신의 잔혹한 욕망에서 도망치고자 했지만 끝내 그 욕망에 굴복해서 범죄를 범한 자크가 주인공인 ,졸라의 "마공루카르 총서" 계획에 따른 17번째 작품이다.
세브린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법원장 그랑모랭의 집에서 자랐다. 법원장은 그녀를 결혼시켜주고 그녀 앞으로 넓은 땅이 달린 저택을 증여한다. 그녀는 열네살이나 많은 루보의 아내가 되었는데 남편인 루보는 그녀를 아끼고 행복해한다. 그녀는 아름답고 연약하며 매력적인 여자이다.
그러나 세브린은 외롭다. 그녀는 어떤 고통을 견딜 수 없어한다. 어느 날,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 그녀의 하찮은 말실수가 빌미가 되어 남편이 폭력적으로 다그쳤기 때문이었다. 세브린은 자신이 열여섯 살에 그랑모랭에게 겁탈을 당했고 그 이후로 결혼 후에까지도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된 것이다. 이 고백은 루보의 비인격적인 면을 이끌어내고 루보는 법원장을 죽이기 위해 세브린을 동원한다. 결국 루보부부는 열차칸에서 법원장을 죽이고 그 시신을 열차밖으로 밀어떨어뜨린다. 이후로 부부 사이는 이전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이 파탄 나고, 루보는 역사에서 근무할 때를 제외하고는 도박장에 드나들게 된다. 그리고 세브린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의 범죄를 지나치는 열차 유리창으로 순식간이지만 지켜본 자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세브린은 자크를 단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목격자였기 때문에 입막음을 위해서 일부러 그를 유혹한 것이다.
한편 자크는 세브린도, 그 누구도 모르는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에게는 젊은 시절부터 살인에의 충동이 항시 그림자처럼 내재되어 있었다. 더구나 젊고 아름다운 세브린의 모습에 미리부터 그는 겁을 내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자신의 음울하고 파괴적인 충동이 그녀에게 행사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세브린의 유혹에 빠진 자크는 결국 그녀를 사랑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그 이상증세가 사라졌다는 결론을 얻기에 이른다. 둘은 밀회를 즐기고 세브린의 사랑은 순수성마저 띠게 된다. 그러나 남편인 루보가 계속된 아내의 불륜을 눈치채게 되고, 둘은 루보를 죽여야 한다는 당위에 처한다. 그러나 자크는 루보를 죽이는 일에 주저하게 되고 치명적인 세브린의 나신에 매료되면서 그의 살인충동은 엉뚱하게도 그녀를 향한 칼부림을으로 끝을 맺게 된다.
그러나 그 살인은 자크에게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가져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소원해온, 바라왔던 살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안에 있는 알 수 없는 짐승, 어쩌면 선사시대 동굴에서 살던 시절부터 인간짐승에게 붙어다녔던 살인욕망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묽게 흘러넘치는 피를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짐승의 생명을 인간짐승 자신이 획득했다는 뿌듯한 욕망은 그에게 양심이라는 한낱 문명에 의해 장치된 것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본능이었던 것이다.
욕망에 의해 마구 굴러가는 자크와 세브린 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이성에 반하는. 아니 그들에게 이성은 없었다. 욕망과 탐욕을 만족시키고자 오히려 이성을 이용할 정도의 파렴치한 인간짐승들만이 횡행했다.
어떻게 하면 돈을 차지할 수 있을까, 지나는 열차초소를 지키는 늙은 미자르는 음험하고 혐오스러운 짐승 이하의 행태를 보여준다. 천 프랑의 돈을 찾기 위해 집안 곳곳을 뒤지는 인간짐승, 아내 파자를 서서히 독에 물들여 죽이고 그 주검 앞에서 또 집안과 집밖을 계속 뒤지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 졸라가 서술한다. 영원히 천 프랑을 찾아 뒤질 것이다, 라고.
파자의 딸 플로르는 너무나 비극적인 희대의 악녀가 된다. 그녀는 자크를 짝사랑하다 자크가 세브린과 정분이 나 금요일 아침 파리행 열차를 타고 밀회를 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단지 그들 연인을 죽이기 위해 자크가 운행하는 열차를 다섯 말이 이끄는 마차와 부딪혀 전복되게 한다. 그러나 자크는 구출되고 객차들 중에서도 뒤칸에 있었던 세브린은 멀쩡하게 살아남는다. 대신 객차 앞칸에 탔던 사람들이 죽고 다치게 되는데, 이것은 사적인 감정 때문에 엄한 죽음들을 불러온 광폭한 사건이었다. 플로르는 살아있는 연인을 보고 절망과 고통으로 기차에 치이는 자살을 택한다. 이토록 광적인 사랑이 있을까. 플로르는 극단의 감상적인 인물일까, 흉악한 범죄자일 뿐일까. 인간짐승의 비루하고 난폭한 애정결핍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외
필로멘, 그녀는 거의 아무렇게나 욕망대로 사는 전형적인 인간이다. 아무 남자하고나 단지 성욕을 위해서 거리낌 없이 만난다. 화부인 페괴와의 관계를 유지하다 자크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녀의 사랑은 '사랑'이라고 이름하기엔 너무나 추접하고 가볍다. 그녀의 이런 행태가 두 남자를 죽게 만든다.
페괴는 아내를 두고 필로멘과의 관계를 당연시하면서 알콜중독자로 살아간다. 그의 생 또한 필로멘보다 더한 욕망과 나태와 퇴행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 그의 마지막은 결국 필로멘과 애욕을 나눈 자크와 엉켜 달리는 열차 밖으로 떨어져 온 몸이 찢어지는 죽음으로 귀결된다.
루보, 그는 세브린의 남편으로서 질투 때문에 그랑모랭 법원장을 죽이고 그 후로 계속되는 퇴행의 길을 걷는다. 결국 그는 그랑모랭의 살인사건과 세브린의 살인사건의 공모자가 되어 종신형을 언도받는다.
루보와 죄없는 카뷔슈가 공모자가 되어 종신형을 똑같이 언도받게 된 것은 드니제라는 예심판사의 수사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드니제는 자신의 범죄심리학과 자신의 추리력, 추측을 완전히 과신하는 사람이다. 그는 일말의 의혹도 없이 자신의 깊지 않은 상상력을 실제라고 고집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얕은, 뻔한 사실만을 조합해 사건을 단순하게 조작해내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 이 사회에도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모든 사안을 아주 단순하게 만들고 모든 이들을 자신의 자로 재어 비루한 인간으로 만든다. 어떤 깊이도, 어떤 복잡하고 특별한 것도 알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들이다. 그들의 죄악은 외형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래서 선하고 순수한 인간마저 평범하고 탐욕적인 인간들과 동등하게 취급해 그들의 가슴속의 진실을 묻고 죄인으로 둔갑시킨다는 것이다. 바로 이 사람 때문에 카뷔슈는 범죄자가 된 것이다.
또, 카미라모트, 그는 법무부 사무처장인데 현 정권을 위해 루보부부가 살인했음을 알면서도 덮어둔다. 그에게는 진실보다, 정의로운 법집행보다 자신이 몸담은 정권의 평화로운 유지를 위해서라면 순전한 인간이 살인의 누명을 쓰건말건 상관않는 인사이다.
얼마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위직 인물들이 이런 행태를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국민을 개돼지로 지칭하면서 당연시했던가. 지금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진실은 고사하고 거짓뉴스를 밥먹듯 만들어내는 졸렬한 위인들이 얼마나 횡행하는가. 자신의 이익만 된다면 남을 사지로 내몰고도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인간들... 그들은 인간 짐승들이며 짐승이라는 단어조차도 아까운 족속들이다.
인간에게도 분명 단계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분류하자면... 짐승만도 못한 인간, 짐승쯤 되는 인간, 짐승보다 더 정신적인 인간, 인간을 넘어서 해탈 지경의 인간(이런 사람은 없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책 읽는 것도 내겐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안에 흐르는 태생 전부터 내 안에 잠복하고 끝까지 내 육체에 머물러 있는 어떤 기계같은, 어떤 짐승같은, 그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어떤 존재가 나를 자꾸 피곤하게 하고 나를 구속한다. 나에게 진정한 자유란 그래서 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나를 향상시키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그런대로 이성을 가동할 수 있고 미래를 희망할 수 있는 정신은 충분히 내재되어 있다. 에밀졸라의 자연주의적인 이론에 공감하고 또 그의 작품들에 감동하지만 우리의 삶은 지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저 높은 이상세계를 바랄 수 있음을 상기하고 싶다.
<인간 짐승>, 서사와 주제가 잘 다듬어진 명작이다. 철도와 열차와 그 안의 인간들, 욕망과 번뇌에 마구 달리기도 하고 장애물에 부딪혀 쓰러지기도 하는 인간들을 상징적으로 잘 형상화했고, 인류에 대한 성찰이 깊고 오롯하다. 물론 그 너머에 충분히 인간적인 인간들이 있음도 알고 있다. 그러나 한 편의 작품에서 그 모든 인류 전체를 그려낼 수 없으니, '인간짐승'에서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의 모습만을 제대로 그려냈다고, 거기에 의미가 있다고 하리라. 에밀 졸라,그의 재능과 그 정신에 매혹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