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이 작품은 아주 오래 전 보았던 "아일랜드"(영화)나 기타의 SF물과 형식이나 내용에서 굉장히 달랐다. 일반적인 다른 SF물의 영화나 소설이 충격적이고 드라마틱한 전개를 이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아주 천천히 주인공 자신의 예전 심리를 좇기도 하고 돌이켜 바라보기도 한다. 마치 SF물이 아니라 그냥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한 소녀의 성장기쯤으로 읽힐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하는 이상한 단어들이 문득 공포와 슬픔을 띠곤 한다. 그러나 왜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태어났는가,라는 질문은 만들지 않는다. 누구나 '클론'이라는 소재는 알고 있으니까...

 

주인공은 언제적부터인지 모르게,아주 어려서부터 기숙사에서 살며 학교생활이 전부이다. 그곳은 헤일셤(Haklsham). 밖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충족되는 듯 보이는 세계다.

그들은 선생님들의 지도 아래 자신들끼리 작은 사회를 이루고 있다. 캐시와 루스 그리고 토미는 삼각관계를 이룬다. 언제나 루스가 중심이 된 듯하지만 캐시와 토미의 단 둘만의 관계도 있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루스와 토미의 연인관계에 자리를 내주고 어느덧 성인에 이른다.

캐시는 유능한 간병사가 되지만 루스와 토미는 대부분의 클론들처럼 기증자가 된다. 그리고 루스는 두번 째 기증에서 목숨을 잃는다. 죽기전에 루스는 캐시와 토미에게 자신이 그동안 토미를 억지로 자기의 연인이 되게 했지만 사실 토미와 캐시는 서로 아주 오래전부터 연인이 되었어야 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너희 둘은 '마담'을 찾아가 기증하는 시간을 연장시키라고 유언같은 부탁을 남긴다. 캐시는 토미의 간병사가 되고 둘은 루스의 유언을 따라 어릴적 자신들의 그림이나 시를 가져갔던 '마담'을 만나러 떠난다.

둘은 마침내 '마담'인 마리 클로드와 에밀리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규칙은 없으며 그것은 옛날부터 어디선가 만들어진 소문일 뿐이라는, 허탈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서 토미와 캐시는 자신들이 헤일셤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에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나이를 들면서 의문스러웠던 점들을 묻게 되는데, 그것은 클론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겨난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기도 했다. 그들 클론들은 선생님들에게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그 잔혹한 진실을 아주 서서히 알게끔 지도한다. 그래야 클론이 성장할 수 있고 자신을 파괴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루시선생님은(이 루시선생은 아이들에게 진실을 제대로 말해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고 스스로 고통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결국 다른 선생들과 갈등을 일으켰고,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었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에게 다른 미래는 없었던 것이다. 간병사로 살다 기증자가 되든지 기증자로 몇 번의 기증 끝에 죽든지, 다른 선택지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토미는 네 번째 기증을 하고 죽는다. 캐시는 그들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함께 했던 친구들과 그들과의 관계에서 상처입고 또 성장하고 어른이 된 지금, 캐시는 그래도 헤일셤을 그리워한다.

토미가 죽고 두어 주가 지났을 때 캐시는 차를 몰아 노퍼크를 찾아간다. 노퍼크는 루스의 '근원자'를 찾아 떠났던 여행 때, 토미가 캐시에게 캐시가 헤일셤 시절에 잃어버렸던 'never let me go'라는 노래가 담긴, 똑같은 카세트테이프를 함께 발견해낸 마을이었다. 어린시절 그들은 노퍼크라는 곳은 모든 잃어버린 것이 결국 그 곳에 도착해 있으리라는, 일종의 분실물 보관소 같은 곳이라는 상상의 놀이를 하던 곳이었다. 캐시는 그 노퍼크 끝에 이르러 서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이후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이 곳에 모여 있다고, 이 앞에 이렇게 서서 가만히 기다리면 들판을 지나 저 멀리 지평선에서 하나의 얼굴이 조그맣게 떠올라 점점 커져서 이윽고 그것이 토미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리라고, 이윽고 토미가 손을 흔들고, 어쩌면 나를 소리쳐 부를지도 모른다고"

 

이시구로의 문학성은 가히 최대치를 언제나 작품마다 이뤄내고 있다. 놀라운 일이고 놀라운 작가다. 예술은 결국 예술가의 진지하게 내재돼있는 상상과 그 디테일과 품격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