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 작가의 [아이스크림: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를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20번째 책이다. 체리쥬빌레, 거북알, 메로나, 바밤바, 깐도리, 트위스트 트리트, 아이스팜 자두바, 투게더, 빵빠레, 더위사냥, 엑설런트, 맥도날드 소프트콘, 하겐다즈, 키위아작, 빠삐코 딸기, 구구콘, 뽕따, 수박바 등 챕터 마다 열거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떠올리게 만드는 마치 마력을 가진 글을 만난 기분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띵 시리즈 전권 중에 가장 재미있었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했으며 반전으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열거된 아이스크림 중에 안 먹어본 게 몇 개 안되는 걸 보니 나 또한 어릴 때는 꽤나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것일까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우리나라 아이스크림 세계에서 신인이 나와서 히트를 치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위의 많은 아이스크림을 내가 어릴때도 먹었었는데 지금도 잘 팔리는 품목이라니 정말 아이스크림의 역사는 길고 기존의 기성세대 같은 아이스크림의 위엄은 아무나 높아서 쉽게 무너지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아는 이탈리어어 중의 하나가 젤라또가 아닐까 싶다. 아이스크림의 시작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 만큼이나 젤라또에 대한 자부심이 꽤나 크다. 대부분 수제 젤라또를 만들어 팔기 때문에 가게 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고 수분의 양도 차이가 나서 쫀쫀한 젤라또를 주로 파는 가게와 수분이 좀 더 많은 젤라또를 파는 가게 혹은 사베트처럼 얼음 알갱이가 느껴지는 젤라또를 파는 가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번 마트 냉동고에 있는 아이스크림, 하드만 먹다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수제 아이스크림을 먹어봤다. 신세계가 열리는 것처럼 너무나 다양한 맛과 열대 과일들의 과육이 씹히는 맛이며 찐득한 초콜렛을 먹는 것 같은 맛은 1일 1젤라또를 외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이미 우리나라에 베스킨라빈스가 상륙하여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데도 어느 정도 돈을 써야 한다는 것에 익숙해졌기에 없는 살림에도 젤라또는 꽤나 꾸준히 먹고 다녔다. 하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서 맛 본 것들이기에 저자의 글에 나온 향수와 추억은 그렇게 깊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열거한 아이스크림을 거의 다 나도 어릴때 먹어봤기에 갑자기 그 아이스크림이 생각나서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젤라또에 비하면 거의 5분의 1가격인 하드 하나를 나누며 즐거워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특히나 거북알에 대한 내용은 진짜 너무 공감되서 거북알의 주둥이를 떼어내기 전에는 심호흡을 하며 멈추면 안된다는 국률을 떠올리 게 만든다. 소개된 하드 중에 아이스팜 자두바를 못 먹어봤는데, 역사가 길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자두맛이라는 레어템이라서 그런건지 나도 요즘 우후죽순 생기는 아이스크림 할인 판매점에 들어가서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어른이 되면 입맛이 변하기도 하고 건강을 생각해서 어릴때 즐겨먹던 간식과 주전부리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된다. 요즘처럼 더운 날이라 해도 점심 식후에 슈트를 입은 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아니라 뽕따를 입에 물고 회사로 복귀하는 것은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사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뽕따가 값도 싸고 더 시원할텐데 말이다. 건강 걱정하지 않고 무턱대고 좋아하는 걸 마구마구 먹을 수 있던 때가 그립다. 시간이 갈수록 이건 이래서 먹으면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좋을텐데 라는 입맛 떨어지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진짜 꼰대가 되어간다는 증거일까? 이런 저런 이유가 먹지 않고 못 먹는 상황이 생겨나지만 이 책 덕분에 유년 시절을 추억하며 한바탕 웃고 아직도 내 안에 동심이 남아있기를 바라게 된다. 조만간 아이스크림 털러 가야지.
“한 사람의 취향이 형성되는 과정에 나는 관심이 많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제일 먼저 그의 취향이 궁금해진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지, 신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작가가 있는지, 역 근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 골목 깊숙한 곡의 작은 개인 카페 중 어느 쪽이 더 편한지. 살아온 시대와 지역,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 잊지 못할 추억, 용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취향에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와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때로는 열 마디 말보다 하나의 취향이 그 사람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준다.(43-44)”
“나는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 마음은 아마도 의심일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 내게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대한 의심, 내가 이룬 성과에 대한 의심, 나의 노력과 의지에 대한 의심, 다음 기회에 대한 의심… 의심에는 끝이 없어서 하나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다른 것들도 줄줄이 무너진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재빨리 손을 떼도 이미 늦었다. 그래서 가만히 지켜본다. 다 무너질 때까지. 더 좋은 방법도 있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143)”
“누군가의 최선을 기억하는 일은 중요한 것 같다. 모두가 돌아서도 끝까지 응원할 용기를 주니까. 가능성은 숨은그림찾기의 아주 작고 희미한 그림 같아서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존재를 자꾸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가장 멋진 모습을 발견하면 그 장면이 흐릿해지기 전에 마음속 깊이 새겨놓는다. 그게 나 자신일 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때도. 형편없이 눅눅해질 미래의 어떤 날에도 우리의 최선은 거기 남아 변함없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