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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김화진 작가의 [나주에 대하여]를 읽었다. 가끔씩 '민음사TV'를 통해서 편집자로 알고 있었는데, 신작을 둘러보다가 저자의 이름을 보고 동명이인인가 싶었다. 게다가 출판사가 문학동네라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띠지에 나온 사진을 보고 '맞구나'싶고 왠지 모르게 아는 사람이 책을 낸 것 같은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래서 책을 사놓고도 한 동안 다른 책들을 읽다가 새해를 맞이하는 겨울이 되어서야 손에 쥐게 되었다. 다 읽고 나니 조금 미루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소설이 겨울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따뜻한 방 안에서 스탠드 불빛에 비추어 오롯이 소설의 주인공들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어서. 그렇게 쓸쓸한 마음들을 보듬기에는 겨울이 제격인거 같아서.
이번 소설집에는 "새 이야기", "나주에 대하여", "꿈과 요리", "근육의 모양", "척출기", "정체기", "쉬운 마음", "침묵의 사자" 이렇게 8편이 수록되어 있다. 평론가의 해설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이 단편들의 주인공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적, 관계적 정체성이 새롭게 형성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성인이 되기 이전에 정규 교육 과정의 학교를 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교우 관계를 통한 정체성의 형성과는 사뭇 다른 이제는 누군가의 법적 보호자가 필요치 않은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완성되지 못한 자신과의 내적 투쟁을 뜻한다. 특히나 주인공들의 공통된 관심은 바로 타자의 마음이다. 사실 내 마음도 알지 못하겠다고 생각될 때가 많은데, 하물며 타인의 마음이라니, 독심술과 같은 투시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에 지레짐작으로 무엇보다도 공감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 노력한다.
가끔은 '타인의 마음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닐까란 의심이 드는 이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언행으로 타인에게 쉽사리 불쾌감을 안기고 자기는 결코 의도적이 아니었다며 선연히 제 갈길을 가버리는 그들의 쿨함을 이기성의 극치라고 욕하며, 다시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얽히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사람들의 주변에도 타인의 마음이 존재했다. 당연히 왕따가 되고 고립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가 함께 하며 웃었고 정보를 교환했으며 칭찬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차오르는 무력함은 세상이 절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우면서 어쩌면 내가 욕했던 그 사람도 타인의 마음에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헤아려보게 된다.
누군가가 나를 몹시 사랑해주고 아껴주길 바란 적이 있었다. "침묵의 사자"에서 화자인 '나'가 초등학교 육학년 때 지수를 좋아하게 되었고 지수의 모든 것을 따라 하다가 결국 지수에게 이런 말을듣게 된다. "너 왜 자꾸 나 따라 해?" 누군가의 마음을 동경하게 되면 무작정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을 따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롤모델이라는 말도 긍정적으로 사용되고,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히는 것 또한 위대한 이들의 삶을 따라해보라는 권유가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수는 자기를 좋아하는 화자가 자신을 따라하는 것을 왜 싫어했을까? 이런 마음은 어른이 되어서 비슷한 것 같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티셔츠나 자켓을 누군가 똑같은 옷을 입고 온 것을 보게 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내가 입은 옷이 멋져 보여서 따라 입은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갑자기 기분이 상한다. 왜냐하면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타인의 마음을 갑자기 알아챘기 때문이다. 난 알고 싶지 않은데, 그냥 모른 척 내 마음만 들여다보며 살고 싶은데, 어느 순간 이미 확인해버린 타인의 마음이 이기적인 나를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무례하다, 함부로, 다른 사람의 공간에, 침범. 그런 말을 할 때 너는 너무나 규희 같다. 자기 공간을 소중하는 사람들. 오롯한 혼자를 내버려둬야 하고 스스로가 세운 원칙을 존중받아야 해서 섣불리 노크하거나 노크조차 않고 불쑥 가까워지려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소개하며 절대 먼저 뭔가를 제안하지 않는 사람들. 깉이 저녁 먹을래요? 시간 되면 볼래요? 하는 말을 주로 듣는 쪽인 사람들(62-63)"
"나주에 대하여"의 화자인 '나'는 한 평생 이렇게 제안을 기다리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침묵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어색한 시간이 흐르는 것을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몸부림치며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이들 덕분에 기다리는 이들은 어느덧 고고한 학처럼 정갈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반문한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분위기를 주도하고 설레발을 치는 이들을 보며 왜 저렇게 설치나 싶다가도 그러한 활기참을 부러워하다가도 과도한 리액션에는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아지는. 타인의 마음은 다양한 모양의 처신이 있음을 알려준다.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라 몸에 집중하는 일. 은영은 그걸 바라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에서는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는 일을 악질적으로 즐겼다. 은영의 상사부터가 그랬다. 은영은 회사에서 사람들을 깊이 알아가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저 자신의 일을 잘하는 것. 그것이 은영의 회사생활 원칙이었다. 그 외엔 신경쓰고 싶지 않았고 휘둘리고 싶지 않았는데, 상사의 곁에 있으면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언제든 후배들을 비꼬았고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더 비꼬았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옷차림, 말투, 습관 같은 업무 능력 외의 것을 평가하며 우습게 만들고 일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심부름을 시키면서도 그의 업무 능력을 과도하게 평가하며 우습게 만ㄷ르었다. 그러면서 티나게 사람을 가려 칭찬을 하거나 추켜세워서 후배들로 하여금 계속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은영의 동기와 후배들은 필사적으로 눈치를 보며 알았다. 저 사람 눈 밖에 나면 지옥 같을 것이다.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하는 예감이 모두에게 있었다.(131)"
일을 하려고 모인 곳에서는 당연히 서로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잘 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은영의 상사가 그런 것처럼, 상사에게는 일을 잘하는 직원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도 잘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언제든 알아챌 준비를 하라는 것. 생각보다 어렵고 지치는 일이다. 하지만 상사의 마음을 알아채는 노력을 서투르게 하는 순간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소설은 알려준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이기적인 타인의 마음을 맞춰주는 역할에 서투른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다.
"아픈 것은 그런 일인 것 같았다. 평소의 나와 아주 많이 달라지는 일. 혼자가 되는 일. 평소에도 영은은 그렇게 생각해왔다. 다르다는 건 외로운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서로 모두 다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외로운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도 생각했다. 다만 달라도 괜찮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해도 외로운 걸.(157)"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마음을 읽기 위해 마음과 마음 사이를 무수히 오가는 그 헤아릴 길 없는 왕복 운동, 그 지난한 마음 읽기의 실패는 사랑이다. 마음 읽기는 알 수 없다는 막연함과 끝내 모르겠다는 실패 속에서만 가능하다. 실패 속에 있을 때만 우리는 사랑을 한다. 실패하는 여덟 편의 소설을 통해 작가 김화진이 쓴 것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지치지 않는 열정일 것이다. 그 열정은 우리를 애타는 마음의 온도보다 더 뜨겁고 깊은 곳에 데려다 놓는다. 실패로서의 사랑과 그런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 밑도 끝도 필요로 하지 않는 이 무모한 사랑의 주체는 언제나 타인의 마음을 읽는 중이다. 때로 천국이고 주로 지옥인 그곳을 무엇 하나 건너뛰는 법 없이 모두 읽어내는 이 완전한 짝사랑의 고백을 읽는 내 마음도 어느새 사랑이다.(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