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가라사대 - 청년 목수의 '건방 쩌는' 건설 현장 이야기, 2022 우수출판컨텐츠 선정작
송주홍 지음 / 시대의창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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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홍 작가의 [노가다 가라사대]를 읽었다. 부제는 “청년 목수의 ‘건방 쩌는’ 건설 현장 이야기”이다. 2022년을 시작하며 [노가다 칸타빌레]를 읽고 적잖은 감동을 받았고, 우리나라 건설 노동 현장의 현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한 해를 지나 우연히 다시 서점에서 저자의 후속작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 궁금했고, 여전히 형틀목수의 일을 하며 1년 만에 다시 책을 내었다니 정말 놀라운 성실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러한 부류의 책을 읽을 때면 리뷰를 남기는 것조차 망설여지곤 한다. 대체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와 행여나 현장의 삶을 사는 분들에게 심려를 끼치는 말을 남기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노가다를 해보지 않아도 삽질이나 곡괭이질을 할 수 있는 것은 군복무를 하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는 다양한 작업거리의 지시가 하달된다. 심지어 진지보수를 하거나 구덩이를 만드는 이유가 딱히 할 일이 없는 기간에 몸을 놀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 나올 정도니, 그야말로 무상의 노동력을 가만히 나둘 이유가 있겠는가? 입대를 앞두고 신체검사를 받을 때만 해도 1등급을 받으려 애쓰며 어디에 배치가 되던 상관없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막상 보충대에서 다시 신체검사를 받으면서부터는 어떻게 해야 편한 보직을 받을 수 있을까란 상념에 빠졌다. 군대에서도 학벌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기 전까지 말이다. 신병훈련을 마치고 사단 본부에서 필요한 우수한 자원들이 빠지고 연대 본부에서 또 조금 덜 우수한 자원들이 빠지고 대대 본부에서 또 그렇게 쫌 덜 우수한 자원을 빼고 더 이상 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에도 최후의 보루로 행정실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아주 우수와 그럭저럭 우수의 모든 자원들이 빠져나가기까지 난 어째서 한 번도 걸려지지 않은 것인지 그냥 몸으로 때워야 하는 보직을 받게 되었다. 처음엔 나도 몰랐는데, 나를 잘 몰랐던 고참들끼리 나를 두고 ‘힘들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니 왜 나에게 그런 이상한 별명이 붙었는지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내가 이런 저런 작업을 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아오 힘들어 죽겠네’ 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었던 것이다. 내막을 알고나니 부끄러움이 한도까지 차올라 내 입을 꿰메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럭저럭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시작한 군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를 꽤나 아껴주는 선임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제대를 하고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 군번에 해당되는 선임에게 연락이 왔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연락이라 반갑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조심스럽게 뭘하고 지내느냐는 질문에 갑자기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선임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뭐 재주가 있냐? 그냥 노가다 하면서 입에 풀칠한다. 넌 어떻게 지내? 이제 복학하는 거야?” 어떻게 통화를 마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저자의 책을 읽으며 그 선임 생각이 났다. 지금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이제는 노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어디선가 책임자를 맡고 있지는 않을까 막연히 기대해본다. 


얼마전 가족모임을 하며 조만간 맞이하게 될 조카들의 취업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큰형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 사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 바로 공부야. 공부만큼 쉬운 일이 없어.” 혹자가 들으면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도 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로 형 말이 맞는 것 같다. 공부야말로 그냥 나 혼자 성실하게 잘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공부말고 나 혼자 잘해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특히나 노가다 현장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빨리빨리와 헐레벌떡 일하는 현장에서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언제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그 관계를 통해서 가장 큰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공부에는 관계가 필요없으니 가장 쉬운 일이 맞는것 아닐까? 물론 공부를 마치고 나면 어디에서든지 관계를 맺고 일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내 입에 밥을 먹여주는 노동은 더 이상 논할 필요도 없이 가장 신성하며, 가장 욕된 순간에도 나를 버티게 만들어주는 원천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가 인용한 김훈 작가의 글은 몸을 지탱하기 위한 지긋지긋한 밥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어준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99)”


특히나 이번 책에서 가장 깊은 감동을 받은 부분은 ‘촉촉하게 젖은 사람들’라는 쳅터이다. 항상 큰 현장에서만 일하던 저자가 원룸 공사 현장에서 만난 아저씨들의 이야기이다. 큰 현장에서는 작업 중에 술을 마시는 일 불가능한데, 저자가 놀란 작은 현장에서는 아저씨들이 아침부터 아니 어제 밤에 마신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종일 거의 취한 상태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전불감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짐작하며 이어진 내용을 읽다보니 나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천명관 작가의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라는 소설을 오마주하여 그 아저씨들의 일상을 전해준다. 

“다들 그랬다고 한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인생이었다. 군대 다녀와 노가다판에 왔더니만, 일 못 한다고 욕먹고, 눈치 없다고 욕먹는 신세였다. 돈 없고 빽 없는 인생만으로도 충분히 서러운데 욕까지 먹으면서 일하려니 더럽게 느껴졌다. 그나마 참 먹을 때 나눠주는 한잔 술에 위안을 얻었다. 그것으로 젊은 날 차올랐던 세상에 대한 울분을 식힐 수 있었다. ~~ 언젠가부터 외롭다고 느꼈다. 퇴근하고 집에 가봐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자기 방으로 ‘훽’ 들어가는 자식들을 볼 때마다, 날 더운데 수고했다는 한마디 건네주지 않는 아내와 마주할 때마다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귀가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에 일찍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239-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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