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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ㅣ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를 읽었다. 한 때 e-book으로만 책을 구매했던 때가 있었다. 종이로 된 책보다 휴대가 용이하고 어두운 공간에서도 가독이 가능해 지금 스마트폰의 반 만한 화면으로도 책을 읽은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전자책을 구매하지 않게 되었고, 여전히 종이로 된 책의 물성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어쩌다 가끔은 미리 읽을 책을 구비하지 못했을 때 급하게 전자책을 구매하기도 한다. 그렇게 짬을 내어 구입한 전자책들은 대부분 읽다가 그만둔 후 종이로 된 책처럼 눈에 띄지 않아서 그런지 읽던 페이지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경우가 많았다. [로기완을 만났다]가 그랬다. 벌써 몇 년 전에 절반 정도를 읽다가 그만둔 채로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할 텐데 생각만 할 뿐 구입해놓은 다른 책들을 읽다보니 또 다시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대대적인 홍보에 이어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에 차라리 종이책을 구입해서 읽자고 결심했고, 왜 알리딘 배너 창에 ‘숨이 멎을 것 같은 완벽한 작품’이라고 칭송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과대광고가 아니라 정말로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슬픔이 태풍처럼 밀려왔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한 사람이 타인의 마음을 이 정도로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대체 얼마나 오랜시간을 고뇌하고 이해하려고 기다려왔기에 자기 자신조차 잘 알지 못하는 죄책감의 근원을 이토록 적절히 해체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할 수 있는 것인지 놀람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김작가는 방송국에서 나중에 연인이 된 재이 피디와 함께 형편이 안 좋은 사람들의 사연을 25분짜리 미니 다큐로 만들어서 전화 ARS로 후원을 받는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로 일한다. 김작가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얼굴에 큰 혹이 생긴 윤주를 만나게 되었고 윤주가 더 많은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수술을 미루다가 조직 검사를 통해 악성 종양임을 전해 듣게 된다. 윤주를 살리고자 애썼던 마음이 송두리째 무너지며 엄청난 죄책감에 휩싸인 김작가는 차마 윤주에게 그 비극적인 소식을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아서 재이에게 이별을 고하며 윤주를 외면하게 된다. 방송국을 그만두고 김작가는 우연히 시사주간지에서 탈북 청년 로기완에 대한 사연을 읽게 되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무작정 벨기에의 브뤼셀로 향한다.
김작가가 로가 머물렀던 과거의 시간을 뛰따라가며 방송을 위해 글이 아니라 자기만의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표면적으로 드러냈지만, 사실은 로가 남긴 일기의 한 구절이 김자가를 떠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김작가는 브뤼셀에 도착하여 로가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 박을 만나게 되고 로가 남긴 노트를 통해 탈북 이후의 발자취를 그대로 재현해보기로 한다. 2007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로는 159센티의 외소한 몸을 가진 20살의 청년으로 유로 버스를 타고 낯선 곳에 도착하게 된다. 거인국의 후손인 것처럼 보이는 그 나라의 사람들 속에서 소년으로 보이는 로는 남루한 옷차림 속에 어머니의 목숨값에 달하는 650유로를 방수포에 칭칭 감고 남한 대사관에 갈 날을 하루하루 미루게 된다. 김작가는 로가 걸어가며 마주했을 처음보는 낯선 세계에 대한 묘사와 숙박비를 지불하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었는지 로를 외면하고 무시했던 이들에게 뜬금없은 분노를 드러내며 윤주를 마주하지 못하고 떠나온 자신을 경멸한다.
3년 전 로가 거리에서 쓰려져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하고 길 잃은 청소년이라 여겨져 고아원에 보내진 것을 계기로 박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뜻밖의 연속된 은인을 통해 정식 난민 지위를 얻게 된 과정 속에서 안도와 감사의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김작가가 로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뒤를 따라간 시기가 2010년 12월이라 그런지 비록 소설 속의 설정이지만 동시간대에 유럽에 머물렀던 시간이 떠오르며 축축하고 칙칙한 하늘이 반복되는 그때의 마음이 아주 조금이나마 로가 지녔던 애달픔에 닿았으리라 생각하니 더더욱 가슴이 아려왔다. 생면부지의 알수도 이 다음에도 만날 길이 없는 익명의 누군가임에도 불구하고 김작가가 윤주를 생각하며 자신의 가식적인 진심을 단죄하며 보낸 시간들은 박이라는 또 다른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갑작스럽게 치유받게 된다.
이런 우연한 타인의 만남들이 마치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꿈같은 일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놓치고 그리워하다가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우연한 만남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치유된 현재의 나는 무상으로 주어진 그 타인의 애정어린 선물에 보답하는 길로 또 다른 타인에게 무상의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이 세상의 또 다른 로가 구원될 수 있기를, 또 다른 김작가가 용기를 내어 윤주에게 전화를 걸 수 있기를, 또 다른 박이 아내가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하도록 한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염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디에 있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꺼번에 유인하던, 그애의 오른쪽 뺨과 턱을 감싸는 얼굴만큼 커다란 혹이 그애에게서 아름답고 당당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는 타인의 외로움을 위로할 줄 아는 목소리를 부여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면 그 비참한 선물이 가혹해서 출처와 분량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 혹은 근육과 핏줄, 신경으로 이루어진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타인의 무분별한 시선 한줌과 그 시선에 놀란 여린 마음 한줌,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흘려야 했던 눈물 한줌으로 이루어진 이상하고도 잔인한 윤주의 또다른 얼굴이면서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는 그애의 진짜 인생이었다.(24-25)”
“연민이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진보하다가 어떤 방식으로 소멸하는 것인가.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이 진심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58-59)”
“진심이란 것에 병적으로 엄격했던 우리가 언어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 역시 가변적이고 생각보다 훨씬 협소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감정적 차원의 진실이란 한순간에 급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추억을 헌납하며 조금씩 만들어가는 공유된 약속일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 시간이 조심스럽게 준비해놓은 구체적인 사건들도 있어야 한다. 사랑이란 언어가 그 모든 것을 보듬어준다고는 믿지도 않았고, 이제부터 연인이 되자는 식의 선언은 유치하게 느껴졌다.(72)”
“나는 배고프의 끝을 모른다. 가난은 늘 상대적이었고 더 가진 사람들의 시선으로 상상하여 바라본 대상화된 박탈감이었을 뿐이다. 대학 시절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언제나 과외 아르바이트를 두세개씩 해야 했기 때문에 엠티니 농활이니 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했을 때, 재이는 진정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그때는 내게도 아무런 거부감이나 감상 없이 상대의 연민을 이끌어낼 만한 단서 하나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기까지했다. 그러니까 내게 배고픔은 가상의 영역일 뿐 현실의 차원은 아닌 것이다. 나는 배가 고파서 헛것을 보거나 구걸을 한 적이 없고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비참하게 쓰러지는 경험도 해본 적이 없으며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은 없다.(161)”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222)”
언제나 거창한 족적을 남기는 것만이 성공한 삶으로 여겨지는 세상의 논리 한 가운데에서 얼마나 위로가 되는 한 마디인가. 미안한 마음, 진심을 다하는 것인지 고뇌하는 마음, 가슴 저미는 아픔에 머무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삶이 완성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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