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띵 시리즈 6
고수리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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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리 작가의 [고등어: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를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6번째 책이다. 먹는 것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20대 초반에는 이런 생각까지 했었다. 어서 빨리 과학이 발달해서 알약 하나만 먹어도 살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때에는 아마도 억지로 많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줘야하는 경우가 많아서 스트레스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런 말도 안되는 기대를 했었는지 모르겠다. 과연 살기 위해서 먹는건지, 먹기 위해서 사는건지 헷갈릴 때가 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우선순위는 중요치 않고 사람에게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먹는 것은 우리 삶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우선순위에 들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특정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 내면의 깊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집밥에 대한 그리움 예찬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셨던 고등이 구이에서 시작하여 입덧으로 힘들어 할 때 엄마가 해준 시금치된장국으로 인해 몇 달 만에 밥다운 밥을 먹었다는 고백에서 절정에 달한다. 남자와 여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별하여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할머니에서 엄마 딸에게 이르기까지의 집밥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접하다보면 여성이 가진 엄마로서의 정체성은 어쩌면 단순히 9개월 동안 태어날 아기를 배는 것만으로 국한된 것이 아닌 태어난 후에도 젖을 먹이며 아기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를 정성스레 넣어주며 자라난 것이 아닐까 싶다. 젖을 먹는 아기를 보며 엄마들은 아마도 제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피붙이가 쪽쪽 젖을 빠는 모습에 삶의 기운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남자들은 어쩔 수 없이 덜 성장할 수 밖에 없는 한계성을 지닌 것인지, 때로는 밥을 때려 먹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에 대한 폭력을 행사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타고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어쩌면 스스로 밥을 지어 먹으며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소비된 시간과 정성을 헤아려보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비용을 지불해서가 아니라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어야할 의무가 있음을 깨달을 때야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후로도 나는 자주 부엌에 서서 밥을 먹었다. 아이 둘 홀로 육아하며 나까지 챙기기에는 시간과 체력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번씩은 나를 위해 따뜻한 국을 끓여보고 고등어도 구워보았다. 집이 좁고 혼자 밥 먹는다고 불평하기에, 누군가 나의 수고를 알아주길 바라기에, 누가 해주는 밥이 그립다고 슬퍼하기에, 먹고사는 일상은 하루하루가 반복. 지겹고 지루했다. 먹고 돌아서면 또 배고프고. 밥을 지어 먹이고 먹으며 다시 힘을 내야 했다. 놀랍게도 살아가는 일의 절반은 밥을 지어 먹는 일이라는 걸 아이들 키우면서 깨달았다. 그러니 제대로 힘내서 살아가려면 나 스스로를 잘 챙기는 수밖에.(91)”

“겨우 한 끼 만들어 먹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지.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고 같이 나눠 먹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따뜻한 집밥 한 끼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보살피는 사랑이더라. 엄마. 나는 비로소 나 자신도, 다른 사람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아. 
아이들 챙긴다고 서서 혼자 밥 먹는 나에게 화를 낸 엄마의 마음, 고향에 내려가면 늦잠 자는 나를 깨우지 않는 엄마의 마음, 엄마 있을 때만이라도 좀 쉬라며 부엌엔 오지도 못하게 등 떠미는 엄마의 마음, 새벽 어시장에 나가 귀하고 신선한 것들 양손 가득 사 오는 엄마의 마음, 집에 돌아가는 나에게 꽁꽁싸맨 보따리를 쥐여주는 엄마의 마음... 엄마가 최선을 다해 나를 키웠다는 걸 알아. 그러니 엄마, 나도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울게. 그리고 나를 지킬게. 밥 잘 챙겨 먹고 든든한 밥심으로 잘 살아볼 거야.(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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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0 - 소유의 문법
최윤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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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20]을 읽었다. 대상 수상작으로 최윤 [소유의 문법]이 우수작품상으로 김금희 [기괴의 탄생], 박민정 [신세이다이 가옥], 박상영 [동경 너머 하와이], 신주희 [햄의 기원], 최진영 [유진]이 실려 있고, 기수상작가 자선작으로 장은진 [가벼운 점심]이 수록되어 있다. 여느 문학상 작품집 보다 한 편, 한 편이 가진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가진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이미 작년에 대상 수상으로 자선작이 수록된 장은진 작가의 [가벼운 점심]은 항상 부정적인 시선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아버지의 외도를 이해하게 된 아들의 10년을 담아내 적지 않은 여운을 남겼다. 

누군가 그랬다. 하늘이 더 가까운 곳에 살게 되면 날씨에 따라 더욱 기분이 좌우되는 것 같다고.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칠흙같은 어둠과 커다란 통 유리창으로 보이는 흔들리는 억새들의 춤사위를 보면서 자연이 가진 치유의 힘과 무한함에 쉼없이 감탄하다가도 어느새 여지없이 홀로 그 광경을 바라봐야만 하는 현실에 울컥 외로움이 밀쳐 올라오곤 한다. 어차피 함께 있을 때에도 동일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모두가 떠나버린 끝자락이 남긴 을씨년스러움은 비단 흐린 날의 기운만은 아닌듯 싶다. [소유의 문법]에서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은사가 어떻게 알게되었는지 자폐증을 앓고 있는 딸과 지낼 수 있도록 산중의 집을 맡기게 된다. 갑작스럽게 고성을 지르는 딸 동아의 증세는 산중의 집에 살면서 조금씩 나아지는듯 하고 동아의 아빠는 시간이 지나며 산중 마을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은사를 몰아내기 위해 은사의 집을 거주하고 있는 아마도 동아의 아빠처럼 은사와 지인이었을 P의 소유권으로 이전시키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마을 사람들의 이기적으로 무모한 시도는 엄청난 폭우와 산사태로 무마되어버리지만, 아빠를 무사히 폭우 속에서 살려낸 동아의 고성은 아마도 우리가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욕구하는 집착에 대한 호소였을지 모른다. 

[가벼운 점심]에서 아버지는 10년 만에 할아버지의 장례 때문에 고국에 돌아오게 된다. 아들은 왜 그렇게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버린 것이 아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어느 덧 자신의 아이를 가진 애인과 결혼을 앞둔 상태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홀로 3일간 울음을 참지 못하는 역할을 맡은 것처럼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우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버지를 배웅하며 아들은 아버지와 햄버거 집에서 마지막 정찬을 하게 된다. 고기를 잘 소화하지 못해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던 아버지가 아무렇지 않은 듯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들은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떠난 이유를 묻게 된다.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20년을 버티다 결국은 그렇게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를 10년 전이라면 아마도 이해할 수 없었을 테지만, 이렇듯 가벼운 점심을 먹으며 어느덧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아들은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생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뚜렷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아기는, 커다란 점의 형태로 흑회색 부채꼴 안에 떠 있었다. 아기는 작은 잠수함 혹은우주 캡슐 안에 담긴 것처럼 보였다. 아기를 감싸고 있는 어두운 바탕은 거칠게 폭풍우 치는 바다 같기도 하고, 신비한 우주의 어딘가를 찍은 사진 같기도 했다. 어쩌면 저 작은 ‘한 점’에게 그곳은 망망한 바다이기도 우주이기도 할 것이다. 흑회색의 거친 질감 때문인지 처음 윤주가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아기가 몹시 외로워 보인다고 느꼈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어두운 곳에 갇혀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지내는 ‘한 점’ 사람의 외로움. 사람은 시작부터가 외롭구나. 절대 고독과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 거구나. 그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윤주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야만날 수 있어, 라고 말해 주었다. 윤주의 말대로 녀석이 그걸 견디며 자라는 중이란 생각이 들었을 때는 눈물이 웃음으로 바뀌었다. 녀석은 거친 바다와 우주를 제 영역으로 만들어 가며 나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고, 그렇게 생겨났던 것이다.(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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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는 나라의 공장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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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해 뜨는 나라의 공장]을 읽었다. 벌써 30여년 전에 쓰여진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각종 공장 견학에 대한 내용이다보니 지금과는 참 많은 것이 달라졌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일본이 이 당시에는 우리나라보다 여러 모로 발전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공장 견학 프로그램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일본 여행 중에 맥주 공장 견학 프로그램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래봤자 어차피 마지막에 가서 갓 나온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는 걸로 귀결되지만 말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을 갔을 때에는 기네스 팩토리에서 검은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았다.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쌌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래도 일본에서의 이해할 수 없는 일본어보다 영어로 쓰여진 기네스 팩토리가 더 인상적이었다. 기네스 맥주는 마지막에 맥주잔에 쌓이는 하얀 크림이 압권인데 견학을 끝내고 마지막 맥주바에서는 생맥주 기계로 맥주를 따르는 방법을 실습해 본다. 한명씩 자신이 마실 잔을 가지고 생맥주 기계에 여느 방법처럼 앞으로 당겨 4분의 3지점까지 따르고 잔을 가만히 나둔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기계의 레버를 반대로 누르면 하얀 거품 크림만 나와 흑맥주 위를 눈쌓인 것처럼 예쁘게 덮어버린다. 내가 만든 기네스 생맥이라고 하니 뭔가 재미있고 기특하게 여겨져 얼굴이 벌개짐도 무시하고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킨 기억이 난다. 기네스 맥주는 다른 유럽지역은 물론이고 더블린을 제외한 다른 도시에서 마시는 것과 더블린에서 마시는 맛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철분을 꽤 많이 함유해서 임산부도 마실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서양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기네스 맥주는 생맥으로는 누구나 쉽게 하얀 크림 거품을 만들 수 있지만 문제는 캔으로 포장하여 판매할 때 생겨났다. 다른 맥주는 캔으로 포장해서 판매해도 큰 차이가 없었지만 기네스는 크림 거품이 생명이기에 일반 캔 포장으로는 그 거품이 생겨나지 않았다. 수차례의 실패 이후 기네스 생맥주는 캔 안에 질소가 들어간 구슬을 넣어 캔을 딱 하고 여는 순간 구슬에서 질소가 터져나와 생맥주때와 마찬가지로 크림 거품이 생성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 인셈이다. 

하루키와 미즈마루 동행은 1986년 일본의 여러 공장들을 견학한 후의 이야기를 전한다. 인체모형을 만드는 공장, 마치 신혼부부를 양산해내는 공장같은 결혼식장(일본의 결혼식 문화는 우리나라보다 더 허례허식이 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요식행사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우개 공장, 경제동물이라고 표현한 소를 증식하는 공장(아마도 지금처럼 동물권이 주장되는 시기라면 이런 견학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환경오염 및 동물 학대로 심각히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라 공장식 축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도 이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긴 그렇다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공장식 축산이 줄어들거나 규제를 받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기에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큰 문제로 지속될 것이지 않을까 싶다.), 콤데가르송이라는 일본 옷 상표 공장, 하이테크 CD 공장(콤팩트 디스크가 나왔을 때에는 그야말로 혁명과도 같은 반응이었고, 뒤 이어 저장이 가능한 CD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어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별로 상용화되지 않고 가볍고 작은 USB저장 장치나 아예 클라우드로 변모되어가니 앞으로는 또 어떤 변화가 다가올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무튼 본문에서 커다란 LP판을 사용하던 사람들인 손바닥만해진 CD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묻는다는 내용에서는 정말 옛날 얘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가발을 만드는 아데랑스 공장(가발은 아마도 전 인류가 대머리에 대해 편견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이 올때까지 지속될 사업이 아닐까 싶다.)을 방문하여 이것 저것 살펴보며 공정에 대한 묘사를 전해준다. 하루키의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더불어 미즈마루의 장난끼가 가득 담긴 삽화들을 보며 혼자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부분이 많았다. 

“일종의 공장인 결혼식장, 혹은 ‘결혼식장’이란 이름의 공장에서 사용하는 원료는 다름아닌 신랑 신부로 불리는 한 쌍의 남녀이며, 그 기계적 추진력은 전문적 노하우와 숙달된 서비스, 주된 부가가치는 감동(좀더 소극적으로 표현하면 정서의 고양), 그 수요를 뒷받침하는 것은 세상 일반의 ‘관례, 상식, 습관’이다. 그런식으로 결혼식장에서는 오늘도 흉일만 아니면 한 회 또 한 회, ‘의식’이라는 이름의 휘황찬란한 상품이 생산되고 있다.(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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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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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르메트르의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을 읽었다. 뭔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에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얼마나 큰 책임을 요구하는지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느껴졌다. 주인공 앙투안은 자신의 고향인 보발을 싫어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12살 때 옆집 6살짜리 꼬마아이를 우발적으로 죽였기 때문이다. 앙투안은 이웃집 꼬마 레미네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 많은 위로를 받고 있었는데, 그 개가 어떤 차에 치여 죽어가자 레미의 아버지가 엽총으로 쏴서 죽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앙투안은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하며 그가 만든 아지트가 있는 생퇴스타슈 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울고 있던 앙투안은 레미가 자신의 아지트로 온 것을 보고 갑자기 분노가 솟아올라 막대기로 레미의 관자놀이를 때려 죽게 만든다. 앙투안은 뒤늦게 정신을 차려보지만 이미 레미는 숨을 쉬지 않는다. 레미의 시신을 어디론가 숨기기 위해 갈팡질팡하던 앙투안은 쓰러진 나무에 가려진 구덩이에 레미를 던져놓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레미가 사라지자 부모들은 공황상태에 빠지고 작은 마을은 급속도로 분주해진다. 마을 사람들과 군경들은 레미를 찾기 위한 수색대를 조직하고 레미를 마지막으로 본 앙투안에게 아는 게 있는지 묻는다. 앙투안은 얼떨결에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들이 레미의 시신을 찾고 앙투안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어 자신을 체포하러 올지 모른다는 망상에 빠져 괴로워한다. 연못에 빠졌을지 모른다는 가정으로 연못 수색이 이루어지고 다음날은 숲을 수색하자고 결정된다. 숲에 들어간다면 분명 레미가 발견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진 앙투안은 약장을 뒤져 한꺼번에 입어 넣어 죽고자 한다. 하지만 앙투안은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다 깨어나게 된다. 앙투안의 어머니 쿠르탱 부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왕진 의사에게 부탁하여 입원시키지 않는다. 깨어난 앙투안은 디욀라푸아 박사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듣게 된다. “만일 내가 널 입원시켰다면 일은 다른 식으로 진행됐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하지만 지금 이렇게 된 상황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온 거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러니까,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넌 날 찾으면 된다고, 날 부르면 된다고 네게 말해 주려고 말이야. 언제든지 부르면 돼. 자, 그거야. 불러서 내게 얘기하면 돼. 언제든지.(159)” 그리고 숲을 수색하려고 예정되어있던 날 엄청난 폭풍과 폭우로 보발 사람들은 수해를 입게 되고 숲은 쓰러진 나무로 뒤엉키게 된다. 

12년이 지나 앙투안은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의사가 된다. 로라라는 애인도 생겼고 조금씩 레미를 죽였다는 괴로움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듯 했다. 앙투안은 보발의 끔찍한 기억을 잊기 위해 인도주의적 구호 단체에 참가하여 고향을 떠나 살고자 했다. 하지만 어머니 쿠르탱의 요구로 참석한 어느 파티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향의 첫사랑 에밀리와 갑작스럽게 관계를 맺게 되다. 앙투안은 로라와의 숙소로 돌아와 후회하지만 그냥 잊으려 한다. 하지만 얼마 후 에밀리가 앙투안에게 찾아 오게 되고 에밀리는 앙투안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폭풍으로 버려졌던 생퇴스타슈 숲이 개발 된다는 뉴스가 나오고 얼마 후에 레미의 시신이 발견된다. 사랑하지 않는 에밀리와 결혼할 수 없다고 버티던 앙투안은 에밀리의 아버지가 유전자 검사를 하겠다고 하자 레미의 시신 주위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유전자와 대조될까 두려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에밀리와 결혼하게 된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고향 보발을 제발로 다시 걸어들어온 것이다. 

“아침이 될 때까지 그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걸었다. 너무나도 불행했다. 그의 삶은 슬프기만 했던 그의 어린 시절이 예정해 놓은 거대한 패배일 뿐이었다. 
동이 텄을 때, 그는 자신이 에밀리와의 그 일을 통해 스스로를 심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범한 죄에 대한 형벌은 교도소에서 세월을 보내는 게 아니라, 그가 미리부터 혐오해 마지않던 삶을, 그가 끔찍이 여기는 모든 것들로 이루어진 삶을 보내는 것이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 곁에서, 그가 증오하는 환경 속에서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그의 형벌이었다. 그의 삶 전체를 내놓는 대가로 완전한 자유의 몸으로 죗값을 치르는 것이었다. 아침에 앙투안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285)”

마지막 부분에 앙투안은 숨겨진 더 놀라운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아마도 이 부분은 독자마다 다른 평가를 내릴 것 같다. 어쩌면 작가는 사람마다 가슴에 품고 사는 도저히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는 추악한 자신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스스로를 단죄하는 삶을 선택한 이들에게 이제는 그러지 말라고 조금은 위로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옮긴이는 이렇게 말한다. 

“원죄(숲속에서 앙투안이 어린 레미를 쳐 죽이는 광경은 카인이 아벨을 쳐 죽이는 그것과 겹쳐지지 않는가?)에 의해 종말(폭풍과 홍수 등의 종말론적 분위기)과 심판이 예정되어 있는 운명은 그러나 어떤 초월적 존재의 개입에 의해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바로 그를 구해 준 어머니와 닥터 디욀라푸아(그의 이름 디욀라푸아 Dieulafoy는 <하느님-믿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여기서 정체를 굳이 밝히지 않는 또 한 사람이 이 신의 숭고한 체현들이며, 이 의인들 덕분에 앙투안은 이 먼지 날리는 타락한 소읍에서 이 어리석고도 가려한 중생들 틈에서 그나마 작은 선행들을 하며 소금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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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반려병 - '또 아파?'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도 아무튼 시리즈 35
강이람 지음 / 제철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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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람 님의 [아무튼, 반려병]을 읽었다. 부제는 “‘또 아파?’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도”이다. 아무튼 시리즈 35번째 책이다. 반려자라는 말은 흔히 들어왔지만, 반려병이라는 말은 어쩌면 이번 아무튼 시리즈에서 처음 들어본 것 같다. 저자는 어릴때부터 일생을 골골거리며 살아온 덕분에(?) 작은 아픔과 병을 수반해온 삶에 대한 일종의 달관함이 엿보일 정도로 자신과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심도있게 고찰한 것 같다. 읽는 내내 아이고 정말 고생이 많았겠네 라는 안타까움과 그럼에도 자녀를 낳고 직장 생활을 해내는 저자의 강단이 놀랍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게 전국의 골골이들이 감동할 만한 아무튼 시리즈까지 내놓았으니 그녀의 반려병은 더 이상 그녀를 힘들게 하는 무엇이 아니라 그녀를 이렇게 힘차게 살게 해준 원동력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아무리 튼튼하고 건강해보이는 사람도 중병을 얻어 한 순간에 몸이 쇠약해지기도 하고, 외소하고 허약한 체질을 타고나 잔병을 달고 살아도 오래 살기도 한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타인이 똑같이 그 고통을 느낄 수 없기에 때로는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졌다는 지독한 고독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오만상을 찌푸리며 응급실로 달려가는 시간은 마치 어떤 중대한 심판을 앞둔 죄인의 심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나이가 들어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서로가 얼마나 더 많이 아프고 급작스러웠는지 배틀을 벌이기도 한다. 나중에 승부가 갈린다 하더라도 대체 뭘 이런걸 그렇게 장황하게 떠들어댄 것인가 허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라도 내가 홀로 힘겹게 보낸 시간을 뒤늦게나마 보상받고 싶기 때문에 침을 튀겨가며 몇 배의 과장을 보태 아픔에서 벗어난 시간을 장황하게 떠들어대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저자의 말에 공감이 되고 또한 웃지 말아야 할텐데 도저히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는 소재들을 솔직하고 가감없이 묘사함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자녀를 낳고 보니 그때서야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너무나도 절절히 다가왔다. 언니도 마찬가지로 골골이 인생을 살아가다보니 노심초사 딸들을 보살피느라 여념이 없는 아버지의 사랑도 애틋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저자의 엄마가 보내준 메시지에 대한 감상은 눈물을 핑 돌게 만든다. 

“언젠가 이른 아침에 엄마에게서 긴 문자가 왔다. 

오늘은잠에서깨었는데
기분이참좋았어너희들
이내게와준것이얼마나
감사한지너희들많이사
랑한다오늘도좋은하루
보내거라늘건강챙기고
차조심하고문단속잘하
고밥거르지말고

돋보기안경을 쓰고, 독수리 타법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이 문자 속에 딸들의 안녕을 기도했을 엄마의 새벽이 오롯이 담겨 있다. 단 한 칸의 띄어쓰기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빈틈없는 간절함이 그대로 전해져 오늘도 다짐해본다. 건강 챙기고 차 조심하고 문단속 잘하고 밥 거르지 말자고.(135-136)”

“동료: 커피 드시게요?
나: 이제 설사도 좀 멎고 괜찮지 않을까요?
동료: 음, 설사할 때 커피는요.... ‘내가 커피를 먹어도 되나?’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먹는 거예요.
나: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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