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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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르메트르의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을 읽었다. 뭔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에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얼마나 큰 책임을 요구하는지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느껴졌다. 주인공 앙투안은 자신의 고향인 보발을 싫어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12살 때 옆집 6살짜리 꼬마아이를 우발적으로 죽였기 때문이다. 앙투안은 이웃집 꼬마 레미네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 많은 위로를 받고 있었는데, 그 개가 어떤 차에 치여 죽어가자 레미의 아버지가 엽총으로 쏴서 죽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앙투안은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하며 그가 만든 아지트가 있는 생퇴스타슈 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울고 있던 앙투안은 레미가 자신의 아지트로 온 것을 보고 갑자기 분노가 솟아올라 막대기로 레미의 관자놀이를 때려 죽게 만든다. 앙투안은 뒤늦게 정신을 차려보지만 이미 레미는 숨을 쉬지 않는다. 레미의 시신을 어디론가 숨기기 위해 갈팡질팡하던 앙투안은 쓰러진 나무에 가려진 구덩이에 레미를 던져놓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레미가 사라지자 부모들은 공황상태에 빠지고 작은 마을은 급속도로 분주해진다. 마을 사람들과 군경들은 레미를 찾기 위한 수색대를 조직하고 레미를 마지막으로 본 앙투안에게 아는 게 있는지 묻는다. 앙투안은 얼떨결에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들이 레미의 시신을 찾고 앙투안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어 자신을 체포하러 올지 모른다는 망상에 빠져 괴로워한다. 연못에 빠졌을지 모른다는 가정으로 연못 수색이 이루어지고 다음날은 숲을 수색하자고 결정된다. 숲에 들어간다면 분명 레미가 발견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진 앙투안은 약장을 뒤져 한꺼번에 입어 넣어 죽고자 한다. 하지만 앙투안은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다 깨어나게 된다. 앙투안의 어머니 쿠르탱 부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왕진 의사에게 부탁하여 입원시키지 않는다. 깨어난 앙투안은 디욀라푸아 박사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듣게 된다. “만일 내가 널 입원시켰다면 일은 다른 식으로 진행됐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하지만 지금 이렇게 된 상황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온 거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러니까,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넌 날 찾으면 된다고, 날 부르면 된다고 네게 말해 주려고 말이야. 언제든지 부르면 돼. 자, 그거야. 불러서 내게 얘기하면 돼. 언제든지.(159)” 그리고 숲을 수색하려고 예정되어있던 날 엄청난 폭풍과 폭우로 보발 사람들은 수해를 입게 되고 숲은 쓰러진 나무로 뒤엉키게 된다. 

12년이 지나 앙투안은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의사가 된다. 로라라는 애인도 생겼고 조금씩 레미를 죽였다는 괴로움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듯 했다. 앙투안은 보발의 끔찍한 기억을 잊기 위해 인도주의적 구호 단체에 참가하여 고향을 떠나 살고자 했다. 하지만 어머니 쿠르탱의 요구로 참석한 어느 파티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향의 첫사랑 에밀리와 갑작스럽게 관계를 맺게 되다. 앙투안은 로라와의 숙소로 돌아와 후회하지만 그냥 잊으려 한다. 하지만 얼마 후 에밀리가 앙투안에게 찾아 오게 되고 에밀리는 앙투안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폭풍으로 버려졌던 생퇴스타슈 숲이 개발 된다는 뉴스가 나오고 얼마 후에 레미의 시신이 발견된다. 사랑하지 않는 에밀리와 결혼할 수 없다고 버티던 앙투안은 에밀리의 아버지가 유전자 검사를 하겠다고 하자 레미의 시신 주위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유전자와 대조될까 두려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에밀리와 결혼하게 된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고향 보발을 제발로 다시 걸어들어온 것이다. 

“아침이 될 때까지 그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걸었다. 너무나도 불행했다. 그의 삶은 슬프기만 했던 그의 어린 시절이 예정해 놓은 거대한 패배일 뿐이었다. 
동이 텄을 때, 그는 자신이 에밀리와의 그 일을 통해 스스로를 심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범한 죄에 대한 형벌은 교도소에서 세월을 보내는 게 아니라, 그가 미리부터 혐오해 마지않던 삶을, 그가 끔찍이 여기는 모든 것들로 이루어진 삶을 보내는 것이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 곁에서, 그가 증오하는 환경 속에서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그의 형벌이었다. 그의 삶 전체를 내놓는 대가로 완전한 자유의 몸으로 죗값을 치르는 것이었다. 아침에 앙투안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285)”

마지막 부분에 앙투안은 숨겨진 더 놀라운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아마도 이 부분은 독자마다 다른 평가를 내릴 것 같다. 어쩌면 작가는 사람마다 가슴에 품고 사는 도저히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는 추악한 자신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스스로를 단죄하는 삶을 선택한 이들에게 이제는 그러지 말라고 조금은 위로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옮긴이는 이렇게 말한다. 

“원죄(숲속에서 앙투안이 어린 레미를 쳐 죽이는 광경은 카인이 아벨을 쳐 죽이는 그것과 겹쳐지지 않는가?)에 의해 종말(폭풍과 홍수 등의 종말론적 분위기)과 심판이 예정되어 있는 운명은 그러나 어떤 초월적 존재의 개입에 의해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바로 그를 구해 준 어머니와 닥터 디욀라푸아(그의 이름 디욀라푸아 Dieulafoy는 <하느님-믿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여기서 정체를 굳이 밝히지 않는 또 한 사람이 이 신의 숭고한 체현들이며, 이 의인들 덕분에 앙투안은 이 먼지 날리는 타락한 소읍에서 이 어리석고도 가려한 중생들 틈에서 그나마 작은 선행들을 하며 소금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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