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움은 떠나야만 가능하다 - 생태마을에서 배운 교육, 지혜, 사랑,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배움 시리즈 1
김우인 지음 / 열매하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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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인 님의 [어떤 배움은 떠나야만 가능하다]를 읽었다. 부제는 ‘생태마을에서 배운 교육, 지혜, 사랑’이다. 프랑스 떼제Taizé, 독일 지베린덴Sieben Linden, 이탈리아 토리Torri, 잉글랜드 비치 그로브 부르더호프Beech Grove Bruderhof, 스코틀랜드 핀드혼Findhorn, 포르투갈 타메라Tamera 이렇게 6개의 마을을 다녀온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도 유럽의 마을들을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떼제를 제외한 다른 곳은 모두 생소하고 나라 이름이 설명되어 있지 않다면 어느 곳인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겠지만 이렇게 세계의 각지에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진다. 

저자가 다녀온 공동체들의 특징은 초기 공동체 사회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핀드혼의 초창기 세대와 지금은 젊은 세대들이 갈등을 겪는 것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르고자 하는 이들의 갈망과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에 더욱 강조점을 둔 이들의 고집으로 인해 생겨나는 부딪힘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으로 비롯된 다툼과 거리감을 어떻게 회복시켜 나가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태마을의 기원과 상황을 전해받으며 그들이 삶으로 생태마을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단 하나라고 생각된다.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견디어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자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는 초대이다. 우리가 그 초대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아닌 실제의 몸으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이것은 비단 자연과 사람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사귀기 힘들어지는 이유는 겁이 많아지고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하다보니 짐짓 스스로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상대방을 쉽게 판단해버리는 오류에 점점 길들여진다. 그 길들여짐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예전처럼 몸을 부대끼며 다투고 토라지고 서운해하는 시간을 견뎌내야만 새로운 사람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그 친구는 나에게 온 생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줄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처음의 마음을 함께 회복해나가자고 손짓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예술가는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칠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온 삶에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아름다움에 맞추는 사람이다.(88)”

“한국 사회는 사람도 나무도 저마다 지닌 섬세한 감각들을 마구 도려내어, 아프다는 사실조차 느낄 수 없게 만드는 곳 같았다.(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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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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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작가의 [러시아의 시민들]을 읽었다. 최근 ‘방구석1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쇼생크 탈출’ 영화를 다루었다. 아마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를 꼽을 만큼 뛰어난 작품성과 드라마틱한 내용에 감동까지 갖춘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원제에서는 탈출이라는 단어가 아닌 ‘Redemption구원’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말했듯이 단순히 감옥에서 탈출하는 경로의 긴장과 재미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를 통해 구원받게 되는 인간의 영혼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러시아의 시민들]은 어쩌면 시베리아 형장과 서슬퍼런 사회주의 국가의 엄격한 통제가 연상되는 동토의 땅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추천하는 말을 쓴 박정민 배우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유럽 여행을 하고자 하면 서유럽의 선진국가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좀 더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면 동유럽이나 북유럽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를 가겠다고 생각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러시아에 뭐가 있지? 혹시 러시아는 무서운 곳이 아닐까? 거기 엄청 춥기만 한 게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러시아에 대한 호기심을 가로막는다. 더불어 소비에트 연방국으로 냉전시대의 커다란 한 축이었던 소련에 대한 기억들은 그다지 호의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백민석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 근래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가는 예능 프로그램이 나왔을 정도로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한 번 쯤은 시도해보고 싶은 코스이다. 우리와 별 상관없는 것 같은 러시아라는 나라의 엄청난 영토를 가로지르는 열차에 대한 로망은 왜 생겨난 것일까? 어쩌면 구한말 일제의 탄압을 피해 연해주로 이주했던 우리의 수많은 조상들이 스탈린에 의해 대륙의 정반대편으로 강제이주 당하면서 생겨난 카레이스키(고려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보여준 러시아는 소위 잘사는 서방 국가들에서는 볼 수 없는 러시아 시민들만의 고뇌가 엿보이는 듯 하다. 러시아 여행은 편리와 안락함에 길들여져 불편한 것들은 단 한 순간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나약해진 본성에 날카로운 얼음칼로 틈을 내어 냉기를 불어넣는 상상을 해 본다. 러시아의 곳곳에 세워진 도스토에프스키의 동상이 하나같이 구부정한 모습이라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러시아 시민들만의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관광객이라는 신분 덕택으로 우리는 이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고, 정치적 현실에 관심을 갖지 않고 여행할 수 있다.-롤랑 바르트. 그 신분을 넘어서고 싶다면, 우리는 기꺼이 양심과 책임의 문제와 마주서야 한다.(129)”

“아마 도스토옙스키의 구부정한 등과 슬픈 표정의 동상은, 그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그의 작품들 속에서 건져 낸 인간 심연의 모습이 아닐까. 그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인간과 종교의 밑바닥까지 훑는 닻 같은 묵직함이 느껴진다. 그의 소설에는 행복해하거나 기뻐하는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이 웃는다 하더라도 꼭 광인처럼 웃는다. 도스토옙스키의 분신인 주인공들은 늘, 깊고 어두운 영혼의 지하방에서 허리를 굽히고 불안하게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기나긴 사유를 풀어놓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줄기 광적인 깨달음을 얻고 미친 사람처럼 외친다. ~~ 여기까지 생각하자 도스토옙스키의 동상이 어째서 그처럼 등이 굽어 있는지 이해가 된다. 그의 등은 심연을 들여다보느라 굽은 것이다. 그의 동상이 정치가나 군인의 동상처럼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뻗은 등을 하고 있다면 그의 작품 세계와는 결코 어울리는 않을 것이다.(219-220)”

“횡단은 자신이 가로 건너는 시공과 물리적으로 접촉을 하는 일이다. 그곳에 직접 가보는 일이며, 시간과 공간이라는 현실의 제약을 순차적으로 가로질러, 그곳의 실재와 구체적으로 만나는 일이다. 그런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만남 속에서 여행자는 실존에 대한 현실 감각을 되찾고 세계에 육체성을,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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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주의보
정진영 지음 / 문학수첩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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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작가의 [침묵주의보]를 읽었다. 지금 방영중인 드라마 ‘허쉬’의 원작이라고 하는데, 매일한국이라는 신문사의 배경은 같지만 등장인물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 ‘박대혁’ 기자는 드라마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황정민 배우가 맡았는데, 소설 속 인물은 훨씬 더 어리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넉살을 부릴 정도의 지위를 가진 인물은 아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윤아 배우가 맡은 역할은 소설 속에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병희형을로 나오는 주인공의 절친한 선배는 드라마에서는 유선 배우가 맡아 다른 색깔을 입힌듯 하다. 어찌보면 이 소설의 가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연 인턴 사원은 드라마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경수진 배우가 맡았는데, 안타깝게도 2회만에 자취가 감춰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수연의 이름은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 회자되는데 드라마는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저자가 기자 생활을 오래 해온 터라 우리나라 언론의 상황과 온라인 매체들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묘사해 더욱 실감이 났다. 특히나 시간이 갈수록 문제점으로 부각되는 ‘일단 저질러 보고 아니면 그만’ 이라는 식의 기사보도로 인해 더 이상 언론을 신뢰하기 힘들어지는 상황과 더불어 많은 기업들이 청년들을 인턴으로 부려먹는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비판해온 언론사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해온 점을 ‘매일한국’이라는 가상의 언론사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평론가도 지적했지만 이 소설의 이야기가 그냥 씁쓸히 생각하고 말 허구에 불과한 것이라면 참 좋을텐데, 소설의 이야기가 그냥 상상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현실과의 거리감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 소설 속에 나오는 배경과 등장인물에 실제의 이름을 붙인다 한들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소설을 읽으며 생계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순간 우리의 자성을 촉구하는 사회적 문제들로부터 애써 시선을 외면해오지 않았나 싶다. 소설 속에 수연의 죽음으로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제기하기 위해 수많은 청년들이 ‘No Gain, No Pain’이라는 화두로 플레시몹을 하려고 공지했지만 겨우 스무 명 정도 모인 이들이 당황할 정도의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잔인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고통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기성 세대의 당연한 교훈이 작금의 현실에서는 무엇인가 얻으려 하지 않는다면 고통도 없다는 말로 청년 세대의 무기력함을 피력한다. 지금의 세대에서는 내가 게으르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어떻게 해도 얻는 것은 없는 채 고통만이 가중될 뿐임을 직시한다. 그럼에도 박대혁 기자가 샤르트르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용기내어 매화 향기를 맡기 위해 사원증을 화단으로 내던지는 선택은 단지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모든 세대는 앞선 세대보다 영리하고, 다음 세대보다 현명하다고 상상한다-조지 오웰(49)”


“당신은 이와 비슷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으리라. 한 기업의 인턴이 당직 근무 중 사망한다. 청년은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고 회사에서 투신한다. 사망한 청년은 인턴들 중 가장 ‘나이가 많고’, 게다가 ‘지방대학’을 졸업한 ‘여성’이다. 나이와 학력과 성별만 눈여겨봐도 다음 날 어떤 기사들이 쏟아질 것인가는 자명하다. 우선 청년들의 노동력을 싸게 부리는 기업들이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식인-전문가랍시고 사회학과 심리학과 교수들이 등장해서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운운하면서 현재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그들의 진단은 낡고 진부하기만 하다. 그래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기자들은 반복적으로 지식인들의 코멘트를 따서 기사의 객관성을 포장한다. 이어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청년들의 인터뷰가 익명으로 실릴 것이다. 또한 사회의 고착화된 학력 차별을 성토하는 기사가 나올 것이고, 취업전선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이 부각될 것이다. SNS에는 수많은 ‘좋아요’와 ‘화나요’와 ‘슬퍼요’가 난무하고 한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몬 사회를 욕하는 댓글이 어지럽게 달리고.... 그 다음은? 바로 당신이 예측하는 그대로다.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 스포츠의 결과, 화제의 드라마와 영화, 연예인의 열애와 일탈, 충격적인 범행으로 소재가 바뀌면서 이 풍경은 지겹도록 반복된다. 그리고 청년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망각된다. 사람들은 기자들을 손가락질하면서 ‘기레기’라는 욕설을 퍼붓지만 자신들도 기꺼이 무책임한 말들을 쏟아내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않는다. 너무 정의롭지 않게 적당하게 살아가기, 이런 세계에서는 당사자가 되지 않도록 사건과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의 삶에 몰두하는 것만이 유일한 처세술로 취급된다.- 이정현 문학평론가(348-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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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가
정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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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작가의 [젠가]를 읽었다.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허쉬’의 원작인 [침묵주의보] 저자의 새로운 신간이다. 어디선가 저자 자신이 가독성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인터뷰를 보았는데, 정말로 술술 진도가 나갔고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한때 보드게임이 꽤나 유행했을 때 누구나 한 번 쯤은 해봤을 ‘젠가’라는 단순한 게임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쉽게 열광시켰다. 횟수가 반복될수록 쌓은 탑은 위태로워지고 누군가 실수를 해서 와르르 무너져 벌칙을 수행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위태로운 게임이 단순히 놀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중측이 되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은 고진시라는 가상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설정하여, 고진시에서 꽤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내일전선’이라는 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하고 있다. 특히나 주요 갈등 쟁점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되는 케이블의 납품가 관련된 비화이다. 등장 인물은 꽤나 많이 나오지만 쉽게 몰입되기에 그렇게 헷갈리지 않는다. 읽는 내내 16부작의 인기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화면이 마구 연상되는 매력을 듬뿍 담고 있다. 그래도 소설의 주인공은 구매자재팀의 서희철 과장, 경영지원팀의 이형규 차장 그리고 고진매일의 김진원 기자 정도로 볼 수 있다. 


첫 장면은 구매자재팀의 김호열 부장이 납품업체의 오발주 건의 책임을 모두 서희철 과장에서 지우면서 시작된다. 앙심을 품은 서희철은 익명으로 사내 게시판에 불합리함을 올리게 되고, 혹시나 상무이사 승진 후보에서 제외될까 겁을 먹은 김호열은 서희철을 나중에 잘라낼 것을 다짐하며 그동안 몰래 모아놓은 업무추진비로 갈음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또 다른 부서인 경영지원팀으로 넘어가게 되고 새로온 신입사원과의 회식 자리에서 이형규 차장은 이나라 사원에게 성추행을 하다 옛 연인인 강영초 대리에게 발각되게 된다. ‘내일전선’이라는 기업은 고종석 사장이 취임하면서 서울의 유명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고진시에서 자라고 고진고-고진대를 나온 이들과의 연대를 중시하는 골품제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형규 차장은 그 골품제의 성골에 해당되며 승승장구 했지만 성추행 사건으로 대기발령이 나고 이혼당할 위기에 처한다. 김호열 부장은 서희철의 비리를 캐내기 위해 이형규를 이용하다 내일전선의 거대한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또한 고진시의 신문사 고진매일의 김진원 기자는 1년 전 우연히 내일전선이 아랍에미리트의 원자력 발전소 케이블 수주에 참여했다가 적정 검사 기준에서 미달되어 탈락된 사실을 알게 되고 특종으로 보도하여 주목을 받지만 내일전선에 미운털이 박혀 고진매일은 내일전선의 광고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서울의 메이저 신문사를 갈망하던 김진원은 내일전선을 벼르고 있지만 데스크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어찌보면 등장 인물들 중에 정말로 정의롭고 진실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모습에 실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습이 이와 닮았고 그렇게 실수하고 배신하고 상처를 받는 가운데에서도 쓰러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간다. 이렇게 자기 밥그릇만 챙기던 이기적인 사람도 가족에게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자상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도대체 누가 선인이고, 누가 악인이란 말인가?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정의와 선을 논하기에 사람들은 많이 지쳐 있다. 우리는 더 잘 살고 싶어서,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인생의 게임에 동참했지만 어쩌면 어차피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젠가라는 게임의 일원은 아닌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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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번 써봅시다 -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
장강명 지음, 이내 그림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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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었다. 부제는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이다. 책 읽기는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도 한번 언젠가 책을 낼 수 있다면’이라는 기대와 희망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단행본으로 예쁘게 편집된 책에 내 이름 석자가 적힌 표지를 마주한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방방 뛰며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그 책이 어떤 평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동안 수많은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그들의 놀라운 필력과 참신한 표현력과 기발한 소재에 감탄하며 역시 책은 아무나 쓰는게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아주 오래전에 어느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 그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소회가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나름 나도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는데, 내가 우러러본 작가들은 대부분 유년시절부터 엄청난 독서량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고백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타국 작가들의 작품이며 나이가 들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작품을 그 어린 시절에 탐독했다는 부분에서는 좌절감마저 들었다. 어쩌면 작품상을 받은 마당에 젠체하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장강명 작가의 책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되살려주는, 용기를 뿜뿜 나게 해주는 내용이 많았다. 책에서 작가가 말한 것처럼 누군가 책을 내려고 하면 이런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요즘 누가 책을 읽기는 하나?, 어차피 아무도 보지 않을 책을 뭐하러 돈 들여서 종이 아깝게 내느냐?’ 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많았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독서 경향은 참으로 신기하게도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저자가 얼마나 유명한지가 판매의 척도를 가른다. 무명작가가 쓴 책이 아무런 홍보 없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란 참으로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보니 나까지 책을 내서 이 혼잡한 출판계에 또 하나의 쓰레기를 양산해 낼 필요가 있을까란 자성을 하게 된다.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장강명 작가는 꼭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읽고 쓰기를 즐기는 이들이 서로의 생각을 정리하여 길게 논술한 책들이 많이 편찬되어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의 생각을 인내롭게 살펴볼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요즘은 혼자 있어도 할게 많다. 특히나 인터넷의 발달로 다양한 재미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심란하거나 정리가 되지 않을 때 OTT서비스를 통해서 밀린 드라마와 영화의 몰아보기를 할 수 도 있고, 유튜브로 각종 정보를 섭렵하거나 흥미 위주의 기사를 접하며 시간을 때울 수도 있다. 심심한데 잠깐 들어가볼까 하다가, 자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몇 개만 훓어본다는 게 그만 한 시간도 넘게 이것 저것 넘기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너무나 많고 다양한 콘텐츠 덕분에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TV를 봐도 한 채널을 보지 못하고 이리 저리 채널만 돌리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금방 몸에 젖어들어 책을 읽다가도 스마트폰으로 이것 저것 둘러보기 일쑤이다. 인터넷으로 길들여진 조급증과 산만함은 텍스트로 길게 쓰여진 누군가의 스토리를 따라가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현대문물의 유혹은 애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쉽게 빠져들기에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책 읽기는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은 하나의 읽기와 쓰기를 즐기는 이들이 더욱 늘어나 우리가 더 이상 감각적인 것들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장려해주고 있다. 장 작가님 덕분에 글쓰기에 대한 꿈을 놓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본능적인 욕구들을 채우지 못하면 몸이 신호를 보낸다. 그것이 고통이다.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속이 쓰리고 머리가 어지럽다. 화장실을 억지로 참으면 방광이 아파 온다. 호감 가는 사람과 따뜻하고 우호적인 대화를 며칠씩 하지 못하면 옥시토신 분비량이 줄어들고 어두운 정서에 휩싸인다. 재미있는 영화를 한창 보는데 컴퓨터가 갑자기 꺼져버리면 답답해서 화가 치솟는다. 다 인간의 본성이다. 

창작의 욕망을 억지로 누루면 어떻게 될까. 나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공허감이 바로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요즘 한국 사회는 어느 연령대, 어느 세대를 봐도 ‘내가 여기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객관적인 조건이 나쁘지 않은데도 공허함을 토로하는 젊은이도 있고, 중년에 이르러 허무함을 못 견디겠다며 뉘늦게 일탈하는 이도 있다. 그런 정체성 위기는 자기 인생의 의미, 자신이 만들어내는 일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할 때 온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지금 내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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