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주의보
정진영 지음 / 문학수첩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진영 작가의 [침묵주의보]를 읽었다. 지금 방영중인 드라마 ‘허쉬’의 원작이라고 하는데, 매일한국이라는 신문사의 배경은 같지만 등장인물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 ‘박대혁’ 기자는 드라마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황정민 배우가 맡았는데, 소설 속 인물은 훨씬 더 어리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넉살을 부릴 정도의 지위를 가진 인물은 아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윤아 배우가 맡은 역할은 소설 속에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병희형을로 나오는 주인공의 절친한 선배는 드라마에서는 유선 배우가 맡아 다른 색깔을 입힌듯 하다. 어찌보면 이 소설의 가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연 인턴 사원은 드라마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경수진 배우가 맡았는데, 안타깝게도 2회만에 자취가 감춰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수연의 이름은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 회자되는데 드라마는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저자가 기자 생활을 오래 해온 터라 우리나라 언론의 상황과 온라인 매체들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묘사해 더욱 실감이 났다. 특히나 시간이 갈수록 문제점으로 부각되는 ‘일단 저질러 보고 아니면 그만’ 이라는 식의 기사보도로 인해 더 이상 언론을 신뢰하기 힘들어지는 상황과 더불어 많은 기업들이 청년들을 인턴으로 부려먹는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비판해온 언론사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해온 점을 ‘매일한국’이라는 가상의 언론사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평론가도 지적했지만 이 소설의 이야기가 그냥 씁쓸히 생각하고 말 허구에 불과한 것이라면 참 좋을텐데, 소설의 이야기가 그냥 상상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현실과의 거리감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 소설 속에 나오는 배경과 등장인물에 실제의 이름을 붙인다 한들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소설을 읽으며 생계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순간 우리의 자성을 촉구하는 사회적 문제들로부터 애써 시선을 외면해오지 않았나 싶다. 소설 속에 수연의 죽음으로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제기하기 위해 수많은 청년들이 ‘No Gain, No Pain’이라는 화두로 플레시몹을 하려고 공지했지만 겨우 스무 명 정도 모인 이들이 당황할 정도의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잔인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고통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기성 세대의 당연한 교훈이 작금의 현실에서는 무엇인가 얻으려 하지 않는다면 고통도 없다는 말로 청년 세대의 무기력함을 피력한다. 지금의 세대에서는 내가 게으르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어떻게 해도 얻는 것은 없는 채 고통만이 가중될 뿐임을 직시한다. 그럼에도 박대혁 기자가 샤르트르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용기내어 매화 향기를 맡기 위해 사원증을 화단으로 내던지는 선택은 단지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모든 세대는 앞선 세대보다 영리하고, 다음 세대보다 현명하다고 상상한다-조지 오웰(49)”


“당신은 이와 비슷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으리라. 한 기업의 인턴이 당직 근무 중 사망한다. 청년은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고 회사에서 투신한다. 사망한 청년은 인턴들 중 가장 ‘나이가 많고’, 게다가 ‘지방대학’을 졸업한 ‘여성’이다. 나이와 학력과 성별만 눈여겨봐도 다음 날 어떤 기사들이 쏟아질 것인가는 자명하다. 우선 청년들의 노동력을 싸게 부리는 기업들이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식인-전문가랍시고 사회학과 심리학과 교수들이 등장해서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운운하면서 현재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그들의 진단은 낡고 진부하기만 하다. 그래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기자들은 반복적으로 지식인들의 코멘트를 따서 기사의 객관성을 포장한다. 이어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청년들의 인터뷰가 익명으로 실릴 것이다. 또한 사회의 고착화된 학력 차별을 성토하는 기사가 나올 것이고, 취업전선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이 부각될 것이다. SNS에는 수많은 ‘좋아요’와 ‘화나요’와 ‘슬퍼요’가 난무하고 한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몬 사회를 욕하는 댓글이 어지럽게 달리고.... 그 다음은? 바로 당신이 예측하는 그대로다.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 스포츠의 결과, 화제의 드라마와 영화, 연예인의 열애와 일탈, 충격적인 범행으로 소재가 바뀌면서 이 풍경은 지겹도록 반복된다. 그리고 청년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망각된다. 사람들은 기자들을 손가락질하면서 ‘기레기’라는 욕설을 퍼붓지만 자신들도 기꺼이 무책임한 말들을 쏟아내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않는다. 너무 정의롭지 않게 적당하게 살아가기, 이런 세계에서는 당사자가 되지 않도록 사건과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의 삶에 몰두하는 것만이 유일한 처세술로 취급된다.- 이정현 문학평론가(348-3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