훠궈 : 내가 사랑하는 빨강 띵 시리즈 8
허윤선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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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선 에디터의 [훠궈: 내가 사랑하는 빨강]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8번째 책이다. 훠궈를 처음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니 무려 16년 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도 생각보다 꽤 앞서 훠궈를 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홍대 근처의 어느 훠궈 전문점이었는데, 당시에는 마라가 뭔지도 모를 때였다. 그냥 중국식 샤브샤브라는 것만 듣고 가서 보니 둥그런 냄비에 가운데 물결처럼 흐르는 칸막이가 있어서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에는 홍탕, 다른 쪽에는 백탕을 끓이며 평소 샤브샤브를 먹듯이 고기와 야채와 해물을 넣고 익는 족족 집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평소 매운 맛을 즐기지 않는터라 홍탕의 넘실거리는 기운이 너무나도 강렬해 섣불리 젓가락을 내밀지 못했는데, 용기를 내어 한 점 집어 맛보니 생각보다 많이 맵지 않고 백탕과는 다른 화끈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훠궈를 즐길 일이 별로 없었고, 홍대 얘기가 나오면 제일 먼저 그 훠궈집이 떠오르곤 했다. 


요즘엔 그야말로 마라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밀집 상가 지역에는 반드시 마라탕집을 지나치게 된다. 특히나 매운 맛에 대한 열광이 지나칠 정도로, 때로는 익명의 사람들의 위장이 걱정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기에 마라탕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감이라고 하던데,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이 나거나 열이 나는 순간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호르몬이 나온다고 하니, 매운 음식을 먹고 스트레를 푼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닌것 같다. 아무튼 저자의 훠궈 사랑은 정말로 대단해서 담낭 제거 수술을 한 직후에도, 홍콩의 훠궈집을 지도 없이도 찾아내는 정도라고 하니 책 제목을 [내가 사랑하는 빨강]이라고 짓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보인다. 근래에는 훠궈 전문점을 가본 적이 없기에 우리나라에 이렇게 다양한 훠궈 체인점이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훠궈를 먹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보니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한 번에 채소를 다 때려 넣었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펄펄 끓는 홍탕, 백탕에 오랜 시간 잠수했던 채소들은 당연히 본연의 맛을 잃고 바닥에 가라앉은 채 누군가 어서 집어 가기를 기다리겠지만, 이미 풀죽은 채소들은 누군가의 선택을 받았다 하더라도 앞접시에 머물며 버려지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저자가 소개한 훠궈 전문점은 언젠가 한 번 가서 책에 나온 매니저들이 만들어준 소스에 홍탕의 기운을 입은 탱탱한 채소를 찍어 맛보고 싶다. 빨간 맛을 괜히 아이돌이 노래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맹장도 약간의 기능은 한다는 이론이 있을 정도인데, 쓸개는 분명한 역할이 있다. 물론 의학적 관점에서 쓸개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살 수 있는 기관이다. 만약 여러분의 담낭에 문제가 생긴다면 의사들은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떼어버리자고 할 것이다. 담낭 따위 없어도 생명에 문제가 없다니 그 점은 다행스럽지만 쓸개가 없으면 간에서 만든 담즙을 보관해둘 수가 없다. 그래서 담낭을 제거한 많은 사람들이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폭풍 설사'가 예정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84)" 


"나는 마음의 추위도 제법 탄다. 겨우 어린애였을 때도 나는 마음이 줄곧 추웠다. 왜 그렇게 허구한 날 마음이 쓸쓸하고 추웠는지 모르겠다. 빨리 어른이 되길 갈망했지만 되어서도 그랬다. 친구도 연인도 있었지만 하하호호 떠드는 시간이 끝나면 어김없이 마음이 추웠다. 붐비는 거리에 나만 혼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외로움인 줄 알았다. 외로움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줄 알았고, 나의 외로움을 없애줄 사람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외로웠던 게 아니라 고독함을 느꼈던 것이라는 걸. 돌아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의 쓸쓸함, 변해가는 것들에 대한 애석감일 때도 있었다.(15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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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
송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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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화 기자의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를 읽었다. 현직 기자가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기에 더욱 실감나고 기자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어떤 큰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이 등장해서 실마리가 하나씩 풀려나가는 것은 아닐까 궁금했는데, 여러가지 사건들이 단편처럼 엮어져 있어 다양한 사건들을 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저자가 실제로 취재하며 겪었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하지 않았을까라는 추측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등장인물과 사건이 펼쳐진 정황들이 깔끔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점점 커져가고 있기에 각 개개인이 엄청난 양의 정보와 기사들을 나름대로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중요시 되어가고 있다. 마치 정보의 바다에서 바늘처럼 날까롭게 정의를 부르짖을 올바른 잣대를 찾는 것처럼 우리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가짜 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다. 누군가는 재미로, 누군가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누군가는 권력 연장을 위해 실제 벌어진 일에 대한 해석이 너무나도 상이해 독자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럽기 그지 없을 때가 많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분명 우리나라의 많은 기자들 중에 주인공 송가을 기자처럼 진실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진실을 전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한 사람을 구하는 길이고, 그로 인해 맺혔던 한이나 억울함이 해소되어 결국은 사람을 이해하는 길로 귀결되기에 기자의 일은 우리시대에 더욱 숭고한 일이 아닌가 싶다. 


하루에도 수십번 씩 스마트폰으로 각종 신규 이슈들을 손쉽게 접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정작 가까운 사람의 안부를 묻는 것에는 주저하게 되는 익명의 웹문화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부단히 몸부림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늘도 가짜 뉴스에 열광하며 누군가를 지옥에 보낼지 모른다. 앞으로도 인간 삶에는 끊임없는 사건 사고들이 넘쳐나겠지만 그럼에도 혀를 차는 안타깝고 슬픈 기사만이 아니라 옹졸하고 편협해진 나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따뜻한 기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소설은 1부 경찰팀, 2부 법조팀, 3부 탐사보도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3부에 나온 내용들이 좋았다. '미국에서 만난 탈북 청년'은 탈북자들이 우리나라가 아닌 제3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고민과 어디서든 그들이 자리를 잡기를 바라며 탈북자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비딱한 시선을 반성하게 해주었다. 비슷한 내용의 '북한 여공'에서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탈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바라보게 해 주었다. 


"제가 왜 탈북을 해야 하나요? 우리 집은 평양이고, 우리 가족들은 모두 다 거기에 있고, 그곳이 저의 조국인데요? 왜 떠나야 한다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아, 가난하고 살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 조국이 부귀하지 못해 먹고살기가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런데 남조선이라고 다들 살기 좋고 행복한가요? 그것도 아니라고들 하던데요.

말문이 막혔다. 전혀 생각지 못한 답변이었다. 북한 사람이라면 응당 탈북을 하고 싶어 하고 남한이든 미국이든 다른 나라로 떠나 자유를 얻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다.(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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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띵 시리즈 9
윤이나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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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나 작가의 [라면: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를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9번째 책이다. 8번째 ‘훠궈’에 대한 시리즈도 같이 구입했음에도 라면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 먼저 픽! 띵 시리즈 에디터가 지적하듯이 우리 나라에서 대체 라면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간혹 이제는 안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려서 혹은 형편상 끼니로 때우던 때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라는 이유가 아니라면, 밀가루 음식을 먹을 수는 없는 위장의 상태가 아니라면 어디선가 그윽한 라면 냄새가 풍겨올 때 한 젓가락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찌 물리칠 수 있으랴~~

그다지 식욕이 강한 편이 아닌 나도 라면에 대한 추억은 참 많은 것 같다. 특히나 물리적으로 춥고 배고픈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뭔가 처량해졌을 때 유독 라면은 뜻모를 포만감을 안기며 잠시나마 나를 위로해줬던 것 같다. 벌써 십년 전 고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단호한 결심을 했다. 이제 한 동안 절대 라면을 먹지 않으리라고 말이다. 유학 시절에 너무 많이 먹기도 했고 이제 더 먹게 되면 뭔가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란 염려증 때문에 그리고 이제는 라면 말고도 한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무궁무진하게 많기에 그런 독기어린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새벽미사를 마치고 복사를 선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곤 했는데(그 아이들도 집에서는 엄마가 못 먹게 하기에 성당에서라도 라면을 먹는 것은 허락해주었던), 아이들이 항상 내게 묻고 했다. “왜 같이 안 드세요?” 나의 굳은 결심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녀석들의 순진한 눈망울에 여러 번 무릎을 꿇을 뻔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유혹을 견뎌냈는지, 아니 라면 먹는게 뭐 그리 대다한 일이라고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들이 라면 먹는 걸 부러워했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예전처럼 라면이 땡기지도 않고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되는 게 자연스러워졌지만, 저자의 글을 읽으며 ‘라면에 이렇게 진심인 사람이 또 있을까?’, ‘내가 라면을 먹었던 시간은 정말 조족지혈에 불과하구나’란 겸손함에 머물게 된다. 특히나 라면이 라면이 아닌 척 다른 맛을 흉내내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질색할 만큼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여’라는 강력한 메시지는 라면이 그냥 단순한 간식이나 급할 때 먹는 인스턴트 식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엿한 음식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란 호소력 깊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이렇듯 설득력 넘치는 라면애의 글귀들에도 불구하고 숙면을 취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한밤의 라면은 꿈도 못꾸는 안타까운 몸뚱아리는 슬프기만 하고, 언제든 뚝딱 해치워야 더 꿀잠을 잘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한 밤이다. 

“아마도 나는 그 시기를 인스턴트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순간이자, 임시의 삶. 누구보다 그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이국에서의 삶을 한껏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다음이, 이어지는 삶이 거기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장 안에서의 삶도, 공장 바깥에서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정해진 기한을 두고 어딘가에 머무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건 임시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견뎌지지 않는 현실이 거기에도 있었다. 그렇게 끓지는 않을 만큼 미지근하게 익어가다가, 먹어버리면 끝나는 순간들이었다.(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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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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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의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을 읽었다.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남형도 기자의 일상을 보게 되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실제로 기사 대상의 입장이 되어 하루를 보내기에 ‘체헐리즘’이라는 합성어가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방송에 나온 내용은 목줄에 메인 개의 하루를 살아보는 것이었다. 실제로 1미터 밖에 안되는 목줄을 발에 채우고 영하의 날씨에 개집 근처에서 하루를 보내는 내용이었다. 누군가는 아니 뭘 그렇게까지 하면서 기사를 써야 하나라는 생각도, 사람도 아닌 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도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가 목줄을 발에 걸고 보낸 하루에 대한 감상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시사했다. 누군가에게는 미천해보이고 심지어 손쉬운 놀이대상이나 처분이 가능한 것으로만 여겨지는 개와 같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과 무언가에 묶여 있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진실하게 보여주었다. 


머니투데이에 연재되는 ‘남기자의 체헐리즘’은 이렇게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앞으로도 이어지겠지만 그동안 그가 체험했던 내용들을 어서 빨리 읽어보고 싶었다.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특정한 대상에 대한 내용들도 있었고, 아니 어떻게 이런 체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신박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자가 얼마나 진심으로 체험 대상들의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하는지 그가  전해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특히나 저자가 관심을 갖고 주의깊게 선택한 대상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거리를 거닐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쉽게 마주치는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면 가슴 한 구석이 쓰리게 느껴지며 연민의 마음이 들다가도 쉬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곤 한다. 마음이 불편하고 걱정이 되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게 없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곤 했다. 


저자의 글 중에 ‘폐지 165킬로그램 주워 1만 원 벌었다’라는 내용을 보고 고구마 한 덩어리를 생으로 삼킨 것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운전을 하다보면 리어카에 산처럼 박스를 싣고 좁은 도로를 거북이처럼 끌고 가는 연로한 분들을 가끔 마주치게 된다. 어서 빨리 저 신호를 받아서 가야되는데, 운전대만 잡으면 급변하는 신경질적인 태도로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가는 분들을 째려보기도 했었다. 가끔은 아이고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란 걱정도, 택배를 받을 때마다 박스를 뜯으며 아무렇게나 분리수거함에 내던졌던 기억들도 떠올랐다. 그런데 남기자가 소개한 최진철 씨는 하루종일 박스를 모아 팔아도 만원 남짓 벌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폐지를 모아 팔게 되는 이들은 어쩌다가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일까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그가 무슨 잘못을 해서 아니면 억세게 운이 나빠서도 아니었다. 오래전 잘나가던 중식 주방장이었던 이가 일하다 쓰러저 병을 얻게 되고 몸에 장애가 생겨 하던 일을 못하게 되니 이렇게라도 일을 하여 자식들을 키우게 된 것이다. 저자가 폐지 수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허기가 져서 분식집 메뉴판을 보다가 떡볶이 2인분에 김밥 한 줄이면 최진철 씨가 하루종일 번 돈이 사라질 것이라고. “그리고 이런 물음이 잔상처럼 남았다. 진정 괜찮은 걸까, 이들의 삶이 말이다.(146)”


읽는 내내 잔상처럼 아른거리는 폐지 줍는 이들에 대한 내용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는데, 에필로그를 읽으며 나 또한 큰 위로를 받게 되었다. 


“그해 겨울, 토요일 새벽에 눈이 번쩍 떠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15분이었다.

눈을 비비고 졸음을 애써 쫓았다.

그리고 내 기사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폐지를 함께 주웠던 최진철 씨 기사였다. 

치아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식사도 잘 못 하는 

그의 모습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가난해도 밥은 먹어야 살지 않겠는가.

매일 1만 원 벌이라 치과 치료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댓글로 치과 치료를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며칠에 걸쳐 메일 200여 통이 쏟아졌다.

그를 돕고 싶다고 했다.

편의점 야간 알바라 넉넉지 않지만 보태겠다고,

고등학생이라 용돈은 적지만 나누겠다고, 

기초생활수급자라 그 힘듦을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며칠 뒤 최진철 씨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울고 있었다. 

계좌에 모인 금액이 700만 원이라고 했다.

2년간 매일 폐지를 주워야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치과 치료를 무료로 해주겠다는 의사도 있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는 그 말만 반복하며, 

수화기 너머에서 꺽꺽 울었다.

별로 한 게 없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뜨거운 게 목구멍에서 눈으로 차올랐다.


우리 삶이 그런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은 서툴더라도

온기 어린 공감과 작은 위로 덕에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살아나게 된다.

다가올 또 다른 하루가 고단할지라도 

다시 잘 살고 싶게 만드는 것도 

그 작은 것들의 힘이다.(33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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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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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작가의 [평범한 결혼생활]을 읽었다. 임경선 작가만의 색깔과 매력이 듬뿍 묻어나는 글로 저자의 결혼생활을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연애기간이 무척이나 짧았던 것에 반해 벌써 20년이나 지나버린 결혼생활을 그린 표현들은 비록 저자 자신이 무척이나 시니컬하고 언제든 남편을 떠날 수 있을 것처럼 쿨하게 말하지만 남편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가 곳곳에 심겨 있어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질투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말했듯이 이 세상에 연애와 결혼에 대한 책들은 넘쳐날 정도로 많지만, 그 어느 커플도 다른 이들의 조언에 끌려다닐 필요성을 못 느낄 정도로 그들의 사랑에 대한 원대한 자신감을 뿜뿜 내뿜고 있다. 하지만 살아본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다양한 각도와 시선으로 결혼생활에 대한 조언들을 내뱉고 있는지 역시나 살아봐야 알게 된다고 저자 또한 말하고 있다. 특히나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로 변화된 연인관계와 결혼생활에 대한 적절한 비교는 학문적 성찰이나 논쟁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시켜준다. 우리가 왜 이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을 만나 한평생 살아가는 문화가 형성되었는지,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열려진 만남을 추구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특정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렇게 나와는 다른 또 다른 개별적 주체와의 만남은 서서히 나를 성장시키고 시간이 흐른 후 지난 시간들을 돌아봤을 때 남겨진 나의 발자취들은 어느 순간 내 삶을 너무나도 철저하게 평가내리고 있다. 그 순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뒤안길을 바라본 이후 더욱 열정적으로 내 삶의 주인일수 있도록 지금 자신이 만나는 사람과의 시간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자가 안내해주는 것만 같다. 


작가와 남편 스스로가 어느 누가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보고 배움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겸손함을 내비치지만, 임경선 작가가 보여준 너무나도 솔직하다못해 이런 것 까지 얘기해도 괜찮을까 싶은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오히려 많은 순간 자기 자신조차 속이려했던 시간들은 을 반성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책의 제목인 [평범한 결혼생활]은 아마도 모든 남녀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결혼생활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결혼생활이란 무엇보다 '나와 안 맞는 사람과 사는 일'이다. 생활 패턴, 식성, 취향, 습관과 버릇, 더위와 추위에 대한 민감한 정도, 여행 방식, 하물며 성적 기호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렇게 나와 다를 수 있지?'를 발견하는 나날이었다. 나중에 이 질문은 점차 '이토록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어째서 이렇게 오래 살 수가 있지?'로 변해갔지만.(8)"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게 그렇다. 애정을 느끼는 상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마주 보며 부드럽게 대화를 나누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러 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푹 빠진 열정의 시절에는 맛있는 것을 먹다가도,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사실은 한시바삐 침대로 끌고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여타 사사롭게 흐뭇하고 즐거운일들은 그저 침대에서 알몸이 되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면서 상대를 달뜨게 만드는 '전희'에 불과하다. 대게 처음엔 아닌 척, 같이 잠을 자는 것 외의 모든 것들을 함께해보면서 분위기를 살피다가, 불꽃이 튀면 같이 잠을 자는 것이 알파와 오메가인 밀월의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그 종점을 찍게 되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뜨겁던 열정은 또다시 함께 '다른 것들'을 즐기는 일에 두루 배분된다. 연애할 당시엔 그 과정에서 이별한 가능성도 높아진다.(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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