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띵 시리즈 9
윤이나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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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나 작가의 [라면: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를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9번째 책이다. 8번째 ‘훠궈’에 대한 시리즈도 같이 구입했음에도 라면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 먼저 픽! 띵 시리즈 에디터가 지적하듯이 우리 나라에서 대체 라면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간혹 이제는 안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려서 혹은 형편상 끼니로 때우던 때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라는 이유가 아니라면, 밀가루 음식을 먹을 수는 없는 위장의 상태가 아니라면 어디선가 그윽한 라면 냄새가 풍겨올 때 한 젓가락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찌 물리칠 수 있으랴~~

그다지 식욕이 강한 편이 아닌 나도 라면에 대한 추억은 참 많은 것 같다. 특히나 물리적으로 춥고 배고픈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뭔가 처량해졌을 때 유독 라면은 뜻모를 포만감을 안기며 잠시나마 나를 위로해줬던 것 같다. 벌써 십년 전 고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단호한 결심을 했다. 이제 한 동안 절대 라면을 먹지 않으리라고 말이다. 유학 시절에 너무 많이 먹기도 했고 이제 더 먹게 되면 뭔가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란 염려증 때문에 그리고 이제는 라면 말고도 한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무궁무진하게 많기에 그런 독기어린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새벽미사를 마치고 복사를 선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곤 했는데(그 아이들도 집에서는 엄마가 못 먹게 하기에 성당에서라도 라면을 먹는 것은 허락해주었던), 아이들이 항상 내게 묻고 했다. “왜 같이 안 드세요?” 나의 굳은 결심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녀석들의 순진한 눈망울에 여러 번 무릎을 꿇을 뻔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유혹을 견뎌냈는지, 아니 라면 먹는게 뭐 그리 대다한 일이라고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들이 라면 먹는 걸 부러워했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예전처럼 라면이 땡기지도 않고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되는 게 자연스러워졌지만, 저자의 글을 읽으며 ‘라면에 이렇게 진심인 사람이 또 있을까?’, ‘내가 라면을 먹었던 시간은 정말 조족지혈에 불과하구나’란 겸손함에 머물게 된다. 특히나 라면이 라면이 아닌 척 다른 맛을 흉내내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질색할 만큼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여’라는 강력한 메시지는 라면이 그냥 단순한 간식이나 급할 때 먹는 인스턴트 식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엿한 음식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란 호소력 깊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이렇듯 설득력 넘치는 라면애의 글귀들에도 불구하고 숙면을 취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한밤의 라면은 꿈도 못꾸는 안타까운 몸뚱아리는 슬프기만 하고, 언제든 뚝딱 해치워야 더 꿀잠을 잘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한 밤이다. 

“아마도 나는 그 시기를 인스턴트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순간이자, 임시의 삶. 누구보다 그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이국에서의 삶을 한껏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다음이, 이어지는 삶이 거기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장 안에서의 삶도, 공장 바깥에서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정해진 기한을 두고 어딘가에 머무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건 임시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견뎌지지 않는 현실이 거기에도 있었다. 그렇게 끓지는 않을 만큼 미지근하게 익어가다가, 먹어버리면 끝나는 순간들이었다.(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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